예전에 쓰 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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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요일(2000년 5월28).
집사람 친구네 부부와 같이 경남 의령에 있는 예술인 마을을 찾아 가 보기로 했다.
예술인 마을을 찾아 가는 약도에는 영화"아름다운 시절"을 찍은 장소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시절" 이란 영화는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 본 영화이기 때문에
아름답던, 장면들은 생각이 나는 부분이 많다.
그 중에서도 제일 압권인 장면이자 영화의 동기 부여되는 장면인, 미군부대 미군들의 군복을 빨아서 강변에 빨래를 널어 두는 장면은, 내가 알고 있기로 안동 하회마을의 강변인 걸로 알고 있다.
오늘 가는 의령에서 찍은 장면은 어느 장면을 묘사한 곳일까 하고 가 보았다.
산골이 깊고, 사람 손을 많이 타지 않았고, 녹음이 짙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기억나는 장면과 부합되는 것이 없었다.
예술인 마을이란 곳은 시골에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의 교실을 이용하여 목각, 그림, 시, 서화. 사진, 풀을 이용한 풀벌레 작품등을 진열해둔 지방의 문화 공간이었다.
잠시 들러 보기로는 괞찮은 정도였다.
예술인 마을을 구경하고, 싸 가지고 간 김밥과 고기감을 가지고 식사를 하기 위해 자동차 한대 다니기 딱 알맞은 산길 소로를 타고 계곡을 올라 가는데 아무래도 언젠가
내가 한번 와 본 곳 이라는 기억이 났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장소라는 곳은 내가 본 비디오 테이프 장면과 부합되는 곳은 없어도, 웬지 모르게 지금 식사하러 올라 가는 길은 분명히 내 기억속의 한 장면과 부합되는 곳이었다.
깨끗한 계곡물, 산안개가 산골 골짜기 골짜기 마다 피어나고, 다른 곳 보다 유난히 많은 담배 밭...
궁류마을..
그랬다.
그 마을은 내가 진해에서 군생활하던 1982년도에, 진해에서 이 곳까지 우리 부대원들과 함께 이 곳에 온 기억이 있다.
82년 그 해 여름.
의령의 궁류마을이란 물 맑고 아름다운 동네에서 성이 우씨인 경찰이 동네 주민 30여명을 총으로 살해하고 자기는 자살한 곳이었다.
우리는 그 때, 이 사건을 민심무마차원에서 조속히 처리할려는 군사정부의 행정조치 일환으로 마을 청소등 뒷 수습을 하기 위해 나갔던 것이다.
우리가 도착한 그 때는 사건이 나고 난 이틀 뒤였으니까, 초상난 집의 출상하는 날이었다.
마을에 도착한 시간이 아침이었는데, 산골 골짜기 골짜기 마다 산안개가 피어오르고
하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골짜기, 골짜기 마다에서 줄줄이 내려 오던 그 장면..
나는 그 장면을 기억속의 사진으로 만들어 잊지 못한다.
어느 상주의 손에 들려 있던 녹음기에서 흘러 나오던 스님의 염불소리..
그 낭랑한 염불소리도 귓가에 남아있다.
군복을 입고 있던 우리를 보고, 우순경에게 한가족중에서 한명도 아닌 몇명을 잃은 할아버지는 우리도 같은 경찰인 줄 알고 우리의 버스 앞에 드러누워 "나 죽여라! 나 죽이고 건너가라!!" 하던 그 장면도 잊지 못한다.
우리는 우순경이 수류탄으로 자살했다는 곳으로 가서 집 마당과 주위를 청소하라는 지시를 받고,
마당을 쓸다가 떨어져 나온 사람 발바닥 살(!!)을 쓸어 담았다.
그 집을 청소하기 전에 이웃집 아저씨에게서 듣기를, 우순경은 마지막에 순경들과
대치를 하다가 "이 새끼들 다 죽어라!!"하면서수류탄을 밖으로 던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순경은 자살한게 아니고 방에서 대치하고 있다가 바깥에 있는 순경들에게 수류탄을 던지다가 수류탄이 방문 윗쪽을 맞고 되튕겨져 방으로 들어와서 폭발하는 바람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 것을 좋은게 좋은 거라고 자살했다고 발표가 났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청소를 해서 우리가 쓸어 담은게 누구의 발바닥(!!) 인줄은 알고도 남았다. 우리도 귀찮아서 중대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푸대에 담아 쓰레기 차에 버린 기억이 난다.
점심시간에는 부대에서 만들어 간 점심도시락을 먹었다.
꽁보리밥인 짬빱(!)이 따뜻할 때는 맛있게 먹을 수 있어도 식으면 먹기가 참 불편하다. 돌덩이를 먹어도 소화를 해 낼 그 한참 때의 우리들 이었지만, 식은 짬밥은 먹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모심기, 벼베기 작업지원을 나가면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군대 간 동생 생각난다면서 하얀 쌀밥과 고기국으로 포식을 시켜주시지만, 상황이 상황이
라 따뜻한 국 한 그릇 얻어 먹기도 힘들고 물 한잔 얻어 마실 집이 없었다. 한집에 한명씩 희생자가 생겼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개울가 담배 밭에 앉아, 계곡물을 떠 마시며 식은 꽁보리밥 식사를 했고,
푹푹 찌던 그 담배 밭의 열기속에 잠시 쉬고 있는데,
"너가 여기 어쩐 일이니?" 하시면서 아는 체를 하는 분이 계셔 얼굴을 들어 보니, 진주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계시는 어머니의 사촌동생뻘 되시는 외갓집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도 궁류마을에 행정지원차에 나오셨다고 하셨다.
군생활하면서 그런 깊은 산골 마을에서 그 아저씨를 뵙다니..
이 모든 것이
의령 궁류마을.. 82년 여름날의 삽화이다.
지금도
상주의 손에 들려있던 녹음기에서 울려나오던 염불소리와 산 안개핀 산골짜기 골짜기
마다에서 줄지어 내려오던 하얀 상복의 행렬이 눈에 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