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업계뿐만 아니라 전 산업계 최고 히트상품으로 떠오른 막걸리. 생막걸리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얼마 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열린 ‘한국의 밤’ 행사에서는 국순당의 ‘미몽’이 공식 건배주로 채택되기도 할 정도로 막걸리의 위상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막걸리 열풍의 비밀은 무엇일까?
텁텁한 막걸리의 시대는 갔다 배상면 회장의 뒤를 이어 국순당을 맡아 가업을 잇고 있는 배중호 대표는 국순당의 전신인 누룩제조회사 배한산업에서부터 생쌀 발효법 연구개발에 매달려온 전통주 전문가다. 배중호 대표는 최근의 막걸리 열풍에 대해 “과거의 막걸리 시장을 떠올려보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막걸리는 맥주시장을 넘볼 수 있는 유일한 전통주입니다. 사실 30년 전만 해도 막걸리는 우리나라 전체 주류의 70%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1985년에는 50%를 기록했고요.” 지난해 5월 ‘생막걸리’를 출시한 국순당. 요즘은 한 달에 4백만 병씩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막걸리 열풍에 물건이 달릴 지경이다. 배중호 대표는 이러한 인기의 요인을 건강과 웰빙을 중시하는 풍조와 ‘우리 것’에 대한 관심 그리고 막걸리의 품질 향상이라는 삼박자가 고루 갖춰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매출에서 백세주의 비중이 가장 높았던 국순당이지만, 현재의 판매속도로 봐서는 생막걸리의 매출 비중이 올 한 해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넘어설 것 같다고. “막걸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참 많아요. 막걸리는 식이섬유와 식물성 유산균이 넉넉하기 때문에 ‘정장(整腸)’은 물론 피부미용에도 효과가 있고, 효모가 소화되면서 나오는 비타민 등 영양적으로 훌륭하죠. 막걸리를 마시면 텁텁하고 트림이 난다고 꺼려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것은 막걸리가 발효 중일 때 발생하는 현상이거든요. 저희 ‘생막걸리’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장에서 숙성이 완전히 끝난 상태로 출고합니다.” ‘발효제어기술’은 생막걸리 내에 살아 있는 효모의 활성을 조절하고, 외부 공기의 유입을 차단하는 기술로 샴페인 발효법을 생막걸리 발효에 접목한 것이다. 발효과정에서 생성된 탄산은 생막걸리 특유의 새콤함과 어우러져 청량감을 느끼게 해준다. 기존에 판매하던 생막걸리는 10℃ 이하 냉장보관 시 유통기한이 10일인 데 반해 ‘국순당 생막걸리’는 업계 최초로 10℃ 이하 냉장보관 시 유통기한을 30일로 늘려 전국권으로 유통이 가능하다. 소비자들이 마실 때까지 신선함이 지속될 수 있도록 업계 최초로 냉장유통 시스템도 구축했다. 막걸리 열풍에 웃음꽃이 활짝 필 만한데도, 배중호 대표는 벌써 다음 시장을 내다보고 있다. 현재의 붐이 사그라들더라도 지속적으로 막걸리 시장의 성장을 이끌어갈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것. 그는 현재 원가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막걸리 가격이 막걸리 시장의 확대를 막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지역별로 독점적으로 판매되다 보니 막걸리의 경쟁력이 떨어졌고,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안 좋은 인식을 심어줬다는 설명이다. “지금 1천원대 초반인 막걸리 가격은 거의 제조원가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동안 막걸리 업계에서 영업이나 마케팅, 연구개발 비용이나 유통비용을 반영하지 않고 그야말로 제조원가로만 책정해왔던 가격이죠. 깔끔하지 못한 포장과 디자인은 더욱 ‘싸구려’ 이미지를 만들어냈고요. 앞으로는 프리미엄 막걸리 제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깔끔한 포장과 디자인을 선보여야 오래도록 주류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술은 취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다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배중호 대표는 특히 술과 궁합이 딱 맞는 음식을 찾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술과 음식의 맛이 어우러질 때, 진정한 술맛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막걸리는 제품의 특성상 상당히 다양한 음식과 함께 어울릴 수 있어요. 김치와 막걸리의 조합이야 다들 아실 거고, 나물류나 부침개와도 궁합이 잘 맞죠. 집에서 막걸리를 마신다면 딱히 새로운 안주거리를 찾을 것 없이 밑반찬을 활용해도 좋아요. 멸치볶음 같은 마른반찬, 된장찌개와도 의외로 잘 어울리고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이 마셔온 술이라서 그런지, 신기하게도 우리 음식과는 대부분 맛이 잘 어울립니다.” 전통주 업계를 대표하는 큰 산 배상면 회장. 그의 세 자녀는 모두 대를 이어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맏아들인 배중호 대표는 국순당을 물려받았고, 배상면주가의 배영호 대표, 배혜정 누룩도가의 배혜정 대표도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가족 중 배중호 대표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술을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집안에서 저 빼고 술을 다 못해요. 그나마 제가 가장 주량이 강한 편이죠. 술을 마시는 데도 요령이 있어요. 우선 좋은 술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천천히 마셔야 해요. 속도 조절이 생명이죠. 전 그래서 술자리에 갈 때면 처음에는 무조건 우리 회사의 술로 시작하는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웃음).” ‘술을 빚기 전에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는 회사의 가치를 내걸고 있는 배중호 대표는 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술도 사람이 먹는 음식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을 음식으로 보지 않고, 그저 취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는 것이 문제예요. 음식을 즐기듯, 술도 즐겨야 합니다. 음식과 곁들어 기분 좋게 먹고, 적당히 취기가 오를 정도로 그 자리를 부드럽게 해주는 것이 술의 역할이에요. 과거 조상들의 술 문화만 봐도 그야말로 풍류를 즐겼는데, 요즘의 술자리에서는 오로지 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술이 술을 부르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죠.”
전통주 복원을 위한 사명감이 생긴다 배중호 대표는 “본디 우리 전통의 술 문화는 각 집집마다 술을 담그던 가양주(家釀酒) 문화였다”고 설명했다. 집집마다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해 술을 담그고 대를 이어 비법을 전수했다. 집에서 만든 술은 제사, 잔치, 손님 접대용으로 주로 사용됐다. 집집마다 김치 맛이 조금씩 다르듯, 우리의 전통주 역시 집집마다 내려오는 비법이 달랐다. 하지만 일제시대 강압적인 조치로 대부분의 전통주 제조가 단절됐다. 배중호 대표는 전통주 업계 1위의 기업을 이끌면서 사라져버린 숱한 전통주를 복원하고자 하는 사명감을 느꼈다. 전통주 복원사업은 단순히 술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음주풍속까지 복원해내는 작업이라는 생각에서다. 국순당은 지난 2008년부터 회사 연구소 차원에서 ‘우리 술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이름만이라도 남아 있는 술이 6백여 가지 됩니다. 문헌을 참고해 만든 전통주 맛이 옛것 그대로인지는 검증할 길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술도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인 만큼 최대한 많이 복원할 계획입니다. 1년에 5∼6가지만 복원해도 5년이면 30여 가지가 돼요. 꼭 상품화가 되지 않아도, 문헌에 남아 있는 제법에 따라 복원에 성공해서 이를 알린다면 또 다른 이들이 분명 함께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문화의 뿌리를 연결시켜 후대에 전해주고 싶다는 사명감이죠.” 지난 2008년부터 우리 술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십 수 종의 전통명주를 복원해냈다. 연구원들은 1500년에 쓰인 ‘수운잡방’ 등의 고서와 씨름하며 수없이 연구한 끝에 창포주, 이화주, 자주, 신도주, 송절주, 소곡주, 동정춘, 약산춘, 미림주, 상심주, 쌀머루주 등 십여 종의 술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중 신도주, 이화주를 비롯한 몇몇 술은 제품화에도 성공했다. 옛 문헌 속의 술을 복원해내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수운잡방’을 보며 약산춘을 복원할 때는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로 휘휘 저어줘라’는 제법을 보고 난감해한 적도 있다. 복원에 성공한다고 해도 과연 제법 그대로 만들어진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배중호 대표는 “막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보니 연구원들의 반응이 더욱 좋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 술 복원 프로젝트는 돈이 되는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돈을 쓰는 일이죠. 제가 처음에 연구소에 주문했던 것은 본래의 업무를 하면서, 가욋일로 전통주 복원작업도 함께 해보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본래 업무보다도 복원 프로젝트에 더욱 재미를 느끼는 눈치였어요. 전통주를 복원한다는 일 자체에서 오는 긍지도 큰 것 같고요.” ‘돈 되는 일’은 아닐지 몰라도, 연구원들은 전통주를 복원하기 위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고 있다. 배중호 대표는 10여 년간 연구소에서 일해온 베테랑 연구원으로부터 “지난 10여 년간 연구소에서 배운 것보다, 3년간 전통주를 복원하면서 배운 것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조상들은 왜 이러한 제법을 사용한 것일까’ 생각해보고, ‘이렇게 해서 과연 술이 될까’ 고민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전통주를 바라보는 눈이 더욱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배중호 대표는 업계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 전통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 결과로 이뤄진 것이 전통주 아카데미이다. 국순당은 이 아카데미를 통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술의 기초과정을 익힐 수 있는 ‘신토불이 우리술’ 강좌는 송파문화원 평생교육원에서 분기별로 진행하고 있는데, 매번 신청을 받을 때마다 전통주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예상보다도 훨씬 뜨거웠다. 이 강좌에서는 우리 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잃어버린 술 문화를 복원하고, 누구나 우리 술을 즐길 수 있도록 지식과 소양을 갖추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총 12주 과정으로 우리 술의 역사와 특징, 발효이론 및 누룩이야기, 담금주 원리 등을 소개하며 백세주, 증류식 소주, 담금주(리큐르) 등의 실습시간을 가진다. 마지막 주에는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국순당 공장을 찾아 우리 술을 빚는 과정, 전통주기(酒器) 등을 둘러볼 수도 있다. 어릴 때부터 술 빚는 냄새에 익숙했던 배중호 대표는 자연스럽게 가업을 잇게 됐다. 동생들을 비롯해 온 가족이 전통주에 애정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3대 걸쳐 가업을 이어갈 생각이 있을까. “딸은 미국에서 아직 공부 중이고, 아들은 이곳과 관련 없는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어요. 자라면서 지켜본 것이 있으니, 이쪽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진 않겠지만 본인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무엇보다도 저와 같은 생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야 하니까요.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적인 것에 대한 애정이 깊어야 해요. 전통주를 만들며 우리 술의 다양성을 되살리는 일은 우리 문화를 복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죠.” 배중호 대표는 그가 빚는 술 안에 한국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고유의 술을 만드는 일은 문화를 전하는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고집스레 전통주를 만들어온 그. 지금의 막걸리 열풍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