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성찬 예배를 드리다.
첫 성찬 예배를 드렸다. 어제는 하루 종일 노산감리교회에서 연합성경학교가 있었다. 서울 강동 온누리교회 청년들이 와서 산골벽지에 있는 작은 교회들을 대상으로 몇 년째 성경학교를 해주고 있었다. 미탄 반석교회는 주일학교가 없다. 회동리에 초등학생들이 몇 명 있기는 하지만 아직 모으지 못했다. 그래서 근영이 근성이 민지를 데리고 갔다. 녀석들은 무척 좋아한다. 대학생 선생님들이 만져주고 이뻐해주니 얼마나 좋을까? 성경학교가 끝나는 시간이 저녁 6시 마치고 와서 저녁 먹고 설교 준비부터 주보와 성찬 준비 그리고 집집마다 인사하며 돌릴 떡에 부칠 라벨 작업까지 시계를 보니 한시다. 자면서도 내내 걱정이 한 가지 있었다. 성찬보좌를 부탁한 이권사님이다. 전임자였던 유목사 말로는 성찬을 받으러 나오라고 해도 나오시지 않았다고 한다. 설교를 하고 있을 때는 아예 고개를 숙이고 혼자서 성경을 볼 때도 있었고 심지어는 앞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 대로 소리 내서 성경을 읽은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부탁을 해놓고도 걱정이다. 과연 내일 성찬보좌를 하러 나오실지 말이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성찬을 위해서 아침은 금식을 했다. 아내와 함께 거실에 있는 탁자를 내놓고 성찬 준비를 마치고 잠시 짬이 나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우연히 뚱땅 거린 축복송 그전에는 몰랐는데 가사가 참 은혜롭다. 지금 내 처지도 그렇고 나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님들을 생각해도 이 가사는 정말이지 우리들 고백이다. 이분들과 축복송 가사처럼 신앙생활을 했으면 원이 없겠다.
9시 20분 밖에서 인기척이 나서 나가보니 이권사님이 미리 오셨다. 지난 주 부탁 때문에 성찬 보좌 준비하러 오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그것은 모르지만 하여튼 일찍 오셨다. 그래서 성찬예식서를 보여드렸다. 처음에는 난색을 표하신다. 그래서 권사님 손을 잡고 간곡히 부탁을 드렸다. 요는 간단했다. 미탄 반석교회에서 기둥이 되는 분이 누구냐는 것이다. 그런 분이 성찬 보좌를 해주셔야 교회가 든든히 서가는 것 아니겠냐고 설득을 하였더니 권사님은 예식서를 꼭 쥐셨다.
차량운행을 나섰다. 미탄에 사시는 정권사님을 모시고 윗말에 사시는 성도님들을 모시러 올라갔다. 김 성도님 댁 앞에 섰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평소에는 미리 준비를 하고 기다리시는 분이 오늘따라 그냥 집 안에만 계신다. 그래서 들어가 보았다. 아들네 다녀간 뒤로 도저히 기운이 없어서 움직일 수가 없으시단다. 당료가 있는 성도님은 가끔 어질어질 하시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손을 잡고 간곡하게 기도를 한 다음 차를 몰았다.
작은 딸이 와 계신 엄권사님은 얼굴이 밝아지셨다. 연락도 잘 안되고 찾아보지도 않는다고 서운해 하던 둘째 딸이 집에 왔으니 오죽할까? 또 지난주에는 큰 딸과 손주가 와서는 차에 태우고 방림쪽으로 바람을 쐬고 오셨다. 그 바람에 수요예배를 빠지기는 하셨지만 얼마나 좋고 행복하셨을까? 찾아오는 이도 없고 나갈 일도 없어서 주로 집안에서만 생활하시는 권사님이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고 오셨으니 그 기분을 뭘로 표현을 할까? 그것도 매일같이 자랑하는 외손주와 같이 다녀왔으니 말이다.
강성도님은 또 깜빡하셨나보다 요즘 다른 분들이 걱정이 많다. 가득이나 혼자 사시는 분이다. 자녀가 있거나 다른 가족이나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사시는 분이 자꾸 깜빡하시니 보는 이들이 다들 안쓰러워하신다. 그래 집안에 들어가 보니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 하던 것을 멈추시고 가방을 들고 따라 나서신다. 그렇게 해서 교회에 도착하니 9시 45분이다.
가운을 입고 강단에 엎드렸다. 이 시간만큼은 나와 주님과 시간이다. 주님 앞에 경건하게 엎드리는 시간이다. 그 옛날 제사장들은 이 때 거룩하지 않으면 급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항상 발목에 끈을 묵었다는 것이다. 혹 부정하여 급사를 했을 경우 그 제사장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집례를 하다가 주님 곁으로 간다고 해도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다가 쓰러진다고 해도 여한이 없도록 그렇게 모든 것을 쏟아 붙자고 나는 다짐했다. 일어나보니 모르는 얼굴들이 몇 있었다. 이권사님네 둘째 따님이 오셨고 회동리 5반에 옥분이 할머니네 며느리와 또 친구분들이 오셨다. 교회 위 김치공장 사장님도 오셨다. 사랑의 교회에 다니는 사장님은 가끔 우리 교회에 오신다.
오늘 설교 시간에는 다들 집중력이 좋으시다. 나를 주위 깊게 보시는 이 집사님 고개를 끄덕이시는 이 권사님,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하시는 이 집사님 참 감사할 일이다. 설교 후 성찬식도 은혜였다. 특히 이권사님이 올린 성찬감사기도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은혜고 감동이었다.
이 권사님이 우리 교회에서 반석이고 또한 기둥인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30년 전 그 힘들고 어려울 때 자기가 가지고 있던 밭을 때어서 이곳에 교회를 건축한 분이 바로 이 권사님이시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허가가 안 나서 건물을 다시 헐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 미탄 반석교회가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존경 받아야 할 일들이다. 권사님 업적을 잘 기리고 또한 앞으로 더욱 큰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권사님과 잘 협력하길 나는 바라고 또 바랬다.
오전 예배가 끝이 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갖았다. 손님들은 다 가시고 우리 식구들^^ 성도님들만 남았다. 이 때 떡이 왔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12시까지 오기로 한 떡인데 일찍 왔으니 말이다. 커피 한잔에 떡을 함께 나누었다. 그랬더니 안사람은 수박을 또 내왔다. 수리재 이 집사님이 가지고 오신 것이라는 광고를 빼놓지 않았다. 항상 바쁘셔서 예배가 끝이 나면 부리나케 가는 집사님이시다. 그래도 언제나 그 포근하고 따뜻한 인상과 품성은 내게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아내는 한 마디 더 했다. 엄권사님이 가지고 오신 수박도 있는데 그건 수요일에 쪼갠다는 것이다. 너무 먹을 것이 많아서 고민이라며 크게 웃는다. 언제나 아내는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그만큼 또 받는 것도 많다. 그래서 늘 아내는 행복한 여자다. 사모님 먹고 목사님하고 애들 먹으라고 준 건데 그걸 내오냐고 서운한 표정을 짓지만 권사님도 정말 싫은 표정은 아니다.
엄권사님이 가방을 들고 일어나신다. 먼저 가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딸하고 점심 먹으려면 일찍 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죽 마음 급하실까. 그래서 성서 대학 일찍 끝낼 테니 조금만 참으시라고 했다. 오랜만에 온 딸이지만 그 딸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무엇을 보여 줄 수 있겠는가? 늙은 노모는 다른 무엇이 아닌 신앙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그 힘든 몸을 이끌고 지금도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그것 말고 다른 그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일까?
하여튼 나까지 맘이 급해져서 성서 대학을 조금 일찍 마쳤다. 차량 운행을 하는 도중에 김성도님 댁에 잠시 들렸다. 그리고 준비해간 떡을 드렸다. 조금 어떠신지 여쭙고 빨리 쾌차하셔서 수요일에는 꼭 같이 예배하자고 전한 후 나왔다. 앉아 있고 싶어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회동리를 한 바퀴 돌려면 맘이 급하다.
그 사이 이권사님 정권사님 이집사님과 아내는 집집마다 돌릴 떡을 정리했고 라벨도 붙였다. 얼마 전 척추골절로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신지 얼마 안 되는 정 권사님도 함께 하셨다. 정말 더웠다. 더워서 인지 아니면 고장이 난 것인지 자동차 에어컨은 되질 않았다. 차 안에서 아이들과 안사람 그리고 권사님들은 그야말로 고생이셨다. 나와 함께 집집마다 다니며 떡을 돌리고 인사를 한 이권사님은 정말 고생하셨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숨이 막히고 땀이 나는데 우리는 그 골짜기 그 봉우리까지 올라갔다. 그곳에 가보면 외딴집 한 집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떡을 드리고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그 한집을 위해서 말이다. 하여튼 땀은 무지하게 쏟았다. 그 덕에 회동리 마을을 전체로 돌아볼 수 있었고 주민들에게 인사를 할 수도 있었고 마을 주민들 사정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홀로 사시는 분들, 그중에 알코올 중독인 아저씨들 암 판정을 받고 오늘 내일 하시는 아주머니부터, 두 손자와 함께 사시는 할머니. 사시는 내막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내가 틈틈이 둘러봐야 겠다.
시계를 보니 2시가 넘었다. 마을을 도는 시간이 2시간은 더 걸린 것이다. 그것도 가장 덥다는 2시-4시 사이에 말이다. 미탄에 가서 점심으로 막국수 한 그릇씩 했다. 모두들 너무 고생하셨다. 그런데 너무들 좋아하신다. 이렇게 교회생활이 활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사장님은 회동리에 목사가 새로 왔다고 사리를 더 들고 들어오셔서 인사를 하신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메밀 막국수는 꿀맛이었다. 강원도에서는 막국수에 설탕을 넣는다고 하더니 집사님과 권사님들은 정말로 설탕을 넣는다. 나도 따로 넣었더니 나름 맛있다. 앞으로는 막국수를 먹을 때마다 설탕을 넣을 것 같다. 권사님 집사님들을 모셔다 드리고 집에 왔다.
아까부터 물놀이 하자고 조르는 녀석들을 대리고 교회 앞 회동계곡으로 갔다. 녀석들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는다. 김집사님네 아드님이 근성이를 안았다. 그리고 계곡까지 함께 내려오신다. 녀석이 걱정이 된 모양이다. 그러더니 작은 바위들로 담을 만드신다. 깊은 곳에 아이들이 갈까봐 안전장치를 만드신 것이다. 조금 있자니 김집사님도 나오신다. 자녀들이 오는 통에 교회에도 못 오셨다. 옆에 앉아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신다. 근영이와 쪽대로 버들치를 잡았다. 한 50마리는 잡은 것 같다. 모두 살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저녁때다. 저녁을 막 마쳤을 때 이권사님네 손주가 왔다. 저녁 먹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막 숟가락 놓았다고 하니 삼계탕을 끓인다고 조금만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러더니 먹음직한 삼계탕이 큰 냄비에 담겨 온다. 녀석은 아무래도 조금 있다 먹어야겠다. 조금 전에 먹은 저녁 때문에…….
가족 기도회를 마친 후 홀로 다시 강대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곳에 보내신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곳에서 발견해야할 주님 뜻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물었다. 아직 확실치 않지만 ‘야훼 내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이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 같다. 그리고 이곳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주님 뜻이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 내 목회 어떤 목회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고 또 고민이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분을 만나냐는 것이 아닐까? 시늉은 하고 연극은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정말로 성령에 이끌려 목회는 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말로 해야 할 목회는 그것이 아닐까? 가장 먼저 이것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주님께서 아이들을 위한 사업이나 어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면 그것은 그 때 일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과 사업이 아니라 바로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충만히 받아서 확신을 갖고 예수를 전하고 또 그 예수를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이곳에 보내신 그 뜻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