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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巡禮길 (2012년 7월 8일 ~ 7월 10일)
세 번째 巡禮길은 ‘수철~어천’구간의 산청읍에서 이어나간다.
‘지난번 2차 巡禮걸음’을 멈추었든 산청읍 경호강, ‘경호1교’를 찾아간다.
지난번 巡禮以後 거의 한달 만이다.
이것, 저것 小小한 日常과 장맛비에 엮이어 此日彼日 미루다 보니
아니 되겠다 싶어 日氣豫報에서 장마틈새를 찾아 길을 나선다.
일요일 아침에 출발하여 화요일에 돌아오는 日程 이다.
지난번에는 여름철 强한 햇볕에 너무 그을었다며
마누라가 새로 사다준 CooL T-shirts 와 新型 登山帽를 쓰고 나서니
마음부터 시원하고 한결 젊어진 기분이다.
이른 아침 出發길,
地下鐵 上仁驛 입구에서 까치울음소리를 듣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본다.
번잡한 都心, 鐵 電信柱에 依支하고 지져대는 저~ 까치의 울음소리는
‘이제도 반가운 消息일까 ?’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간다.
‘둘레길’을 찾아가는 길이 漸漸 버스便도 멀어지고 中間經由도 거듭 해야 한다.
함양에서 버스를 바꿔 타고 ‘산청읍’에 도착하여 점심짜장면을 먹고 나니 12시 반이다.
巡禮길 連結點. ‘경호1교’를 찾아 걸어간다.
처음 와보는 낯선 ‘산청읍’ 市街골목을 요리, 조리로 方向을 잡아가며 빠져 나가는
재미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둘레길’을 찾아드니 ‘경호강 래프팅 乘船場’이 나온다.
오후 1시, 일요일 오후인데도 래프팅客 이 준비된 시설에 比하여 별로 인 것 같다.
七月初旬이면 休暇철도 시작 하였을 터인데---
세상걱정 혼자서 다 하는구나 하며 씩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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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강을 따라 堤防길이 잘 다듬어져 있고 어린 街路樹는 아직 한참을 자라고 있다.
나도 江따라 江물처럼 걸어 내려간다.
햇볕이 제법이나 强한데도 소매긴 Cool-T Shirt 가 오히려 시원하고,
모양이 自由自在한 帽子챙은 江바람에 더욱 시원하다.
새삼 마누라의 ‘코디-센스’에 40년의 歲月을 느낀다. - 無心한 歲月이 미안할 따름이오. -
둘레길은 경호강을 건너라 한다.
江을 건너 ‘둘레길 안내말뚝’을 찾다가 閑寂한 어떤 마을風景에 넋이 빠진다.
智異山 峻峰아래 야트막한 뒷동山, 門前沃畓이 가슴에 가득한 마을,
그 마을 속에서 잠자는 듯 고요한 시골집, 모두가 내 마음을 통째 사로잡는다.
나른하게 寂寞하던 봄날, 동네 뒷산 어느 묏등에 앉아
혼자 눈물을 일렁이든 아이가 생각나서다.
집 뒤로 대나무 밭이 있고, 누구네의 뫼도 있다. 벌통도 몇이 보인다.
소 먹이던 아이들이 소먹이 풀을 찾아 산골짜기로 멀리 들어가고 난 뒤
반질반질한 봄잔디 묏등에 홀로 남겨졌다가
갑자기 온 세상이 고요 속으로 무너지는 幻想에,
묻혀오는 天刑의 寂寞感에 내 어린 感性은 차마 堪當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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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巡禮에 앞서서는 ‘(사)숲길과 산청군청’ Home-P에서 많은 자료를 찾아 모았다.
호주머니用으로 간편한 ‘둘레길 位置圖’도 만들었는데,
이를 손에 들고 다니면서도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案內말뚝을 놓쳐 버렸다.
다음 포인트는 ‘바람재’ 이다. 지금 걷고 있는 이 아스팔트포장 2차선 도로를 따라
저~ 산 밑에 이르면 ‘바람재’에 닿겠지 하고는 ‘그 마을’을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지나왔다.
길을 물어보고 싶어도 가끔씩 자동차는 깔끔하게 새로 鋪裝한 도로 위를 疾走 하지만
농삿일이 바쁜 탓인지 길거리에는 개미 한 마리(?)도 찾아보기 어렵다.
길을 돌아 마을을 벗어나며, 늙은 정자나무가 마침 길가에 서 있다.
擧動이 불편한 노인이 나무그늘 平床에 앉아 쉬고 있다.
꾸벅 미소로 인사를 하고 그 옆, 바위에 걸터앉아 ‘물 한 모금’에 ‘발바닥 피로’를 푼다.
정자나무 옆 別莊式 주택의 아줌마가 疑訝한듯 “어디를 가시는 길이냐”고 묻는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니
“우리 집 앞, 이 길은 둘레길이 아닌 데요.”라 한다.
이 집 앞 도로는 말끔하게 아스팔트포장을 한 2차선도로이다.
“이 길이 ‘바람재’로 오르는 길이 아닌 가요 ?” 라 묻는다.
아줌마 말씀에 이 길은 저~ 山밑에서 끝난다 하며
‘둘레길의 바람재’는 저~ 江을 따라 한참을 더 내려가야 한다고 한다.
다음 포인트 ‘바람재’로 가는 길을 찾으니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나 있었다.
地圖를 읽고, 길(道)의 俗性을 잘 안다고 생각하였던 나의 自慢 탓 이었다.
다시 길을 걸으며 ‘나이가 들어 錯覺인가, 傲慢인가’ 를 뉘우쳐 생각해 본다.
눈치 빠른 그 아줌마가 얄밉도록 고맙다.
외딴 山골짝 깊숙이 들어갔다가 너들 너들 뒤돌아 나오는 그 모습이 아찔하다.
‘바람재’는 경호강이 휘돌아 絶壁을 이루는 山등성이, 언덕을 넘어가는 고개 이다.
고개를 넘자니 ‘재’가 되고, 거센 江바람이 恒常하다 보니 ‘바람재’가 된 듯하다.
江邊을 따르던 길이 언덕을 오른다. 江쪽으로 傾斜面을 비집고 大型建築工事들이 한창이다.
래프팅 등을 資源으로 觀光開發이 한창인 것 같다.
‘바람재’를 넘어가는데 ‘바람 맛’이 나는 光景이 나온다.
萬古風霜이란 이를 두고 이럴 것 같다. 風霜에 휘어진 저 歲月의 限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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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더 내려가니
이제는 ‘萬古風霜’에 ‘덩굴 風霜’이 더 해진다.
죽자 살기로 싸우는 모습에서 우리 人間事를 보는 듯하다.
江을 따라 걷다보면 가끔 레프팅 보-트가 지나간다.
指揮者의 口令소리며, 레프팅 팀의 즐거운 悲鳴소리가 간지럽게들 들려온다.
앞서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虛費한 시간을 補充할 셈으로 걸음을 서둘렀더니
발(足)도 아프지만 배도 허전하다. 시계를 보니 네時다.
에너지 補充도 할 때가 되었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길옆으로 쉴 만한 장소를 찾는데 보이질 않는다.
엉덩이 붙일 만한 場所가 있으면 좋으련만, 한참을 걸어도 適所가 보이질 않는다.
다니는 사람이 워낙 없으니 콘크리트 길바닥 위에라도 적당하면 앉을까도 싶다.
渴症과 虛飢가 짜증날 즈음에
길가 江邊쪽으로 모래를 쌓아 두었던, 적당하게 쉴 자리가 보인다.
그늘도 약간 있다. 반갑게 자리를 틀고 앉아 빵과 육포로 중참을 때우고 잠시 쉬었다.
( 내가 머물렀던 자리, 저 강물위로 방금 레프팅 보-트가 지나갔다. )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데 레프팅 보-트가 다가온다. 보-트를 背景으로 하려 했는데
動作이 느리고, 솜씨가 따라 주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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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다음 포인트인 ‘성심원(풍현마을)’에 닿는다.
(사)숲길 자료에 따르면
이곳은 가톨릭 재단, 프란체스코회(작은 형제회)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로서
한센생활시설 ‘성심원’과 중증장애인시설 ‘성심인애원’이 통합, 운영되고 있다 한다.
멀리서 입구에 서성이는 수녀님을 보았는데
입구에 다다르니 수녀님은 보이질 않고, 안으로 허리 굽으신 할매가 지나간다.
이곳, ‘성심원’은 벌써 五十餘年의 歲月이 흘러
여기서 살고 있는 한센병력 老人, 150 餘분들의 평균나이가 76歲라 하니
우리네 人間事가 참으로 無常도 하다.
이제는 ‘산청 2구간’이라 稱하는 ‘수철~어천 구간’의 종점인 ‘어천마을’을 向한다.
조금을 걸어가니 江邊을 따라가는 길과 山을 오르는 길이 나누어져 삼거리를 이룬다.
이 ‘삼거리’는 다음구간으로서 ‘산청 3구간’인 ‘어천~운리 구간’을
당초 ‘둘레길’ 路線을 따라 ‘웅석산 하부 헬기장’을 向하는 山行으로 始作 하느냐,
아니면 ‘웅석산’ 山行을 避하여
당초의 ‘둘레길’ 路線을 벗어나 平地部의 地方道路로 迂廻하느냐의
巡禮길 方向이 바뀌는 갈림길이다.
삼거리에 도착하니 오후 4時다.
이번 3次 巡禮길을 계획하면서부터 나는 山行쪽을 예정 하였던 터라
‘어천마을’에서 一泊을 하고 웅석봉으로 向할 計劃을 하고 있었다.
이곳 삼거리에서 나는 案內板 地圖上의 거리를 읽어며 計算을 굴린다.
江邊을 따라 돌아가느니 일찌감치 山行 側으로 ‘아침재’에 올라가자.
혹시라도 山行길목에서 民泊집을 만나면 더욱 좋을 것이라 계산하며 ‘아침재’를 向하였다.
‘아침재’ 오름은 만만치가 않았고 民泊집은 없었다.
2~3백 미터 오름은 되는 것 같다. 거의 2Km를 걷는 동안 몇 군데 農莊들이 있었지만
鐵門과 鐵柵담이 높고 중간 중간에 무시무시한 개 짖는 소리는 정나미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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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한곳에서는 鐵門을 뛰쳐나온 놈이 나를 한참이나 따라오며 짖어댄다.
主人인가, 미안한 듯 개를 불러보지만
그놈도 심심하던 참인지 못들은 척, 나를 계속 따라오며 짖어댄다.
나는 無對應으로 앞만 보고 걸었지만 그 主人놈(?)이 더 고약하였다.
힘겹게 ‘바람재’에 도착하니
急하게 올라오던 콘크리트 農路는 ‘웅석봉’을 향하는 登山路와 갈라지며 山,중턱에서
左側 傾斜面, 저~ 2, 300 m 밑 마을을 向해 내리 꽂히듯 급한 내리막길이 된다.
당장에 내일아침, 이 길을 다시 올라와야 한다는 생각에 그만 아찔해 진다.
조금 前, 삼거리에서
‘山行길목에 민박집’까지 期待하며 올라온 내가 갑자기 부끄럽다.
그래도 내려가는 수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웅석봉’쪽 등산로에는 민박집이 설마 없을 터)
지팡이를 길게 잡고도 어렵게, 한참동안 내리막을 내려가니 마을은 온통 別莊村이다.
묵직한 別莊들 사이를 돌고 돌아 民泊집 看板을 두 집 찾았으나
食堂을 兼하는 民泊집 할매들은 一行이 몇 사람이냐고 묻더니
‘나’ 한사람을 보고는 營業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狀況을 把握해보니 ‘어천마을’은 저~ 아래에 있다.
1, 2Km는 더 내려가야만 ‘어천마을’에 닿아 民泊을 구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저쪽에서 버스가 지나가는 道路가 보인다. (그날의 마지막 노선버스가 지나간 듯)
地方道路 1001號 이다.
(앞의 10은 ‘慶尙南道’를, 뒤의 01은 道內에서 南北을 달리는 1番道路임을 뜻한다.)
도로 옆, 큼지막한 道路案內看板에서는 ‘斷俗寺地’까지의 거리가 6 Km라 한다.
(‘둘레길 코-스’에서 ‘웅석봉’ 다음 포인트가 ‘단속사지’ 이다.)
조금 前, ‘아침재’를 급하게 내려오며 내일아침에 오를 것을 걱정하였던 것이 생각나면서
이참에서 웅석봉 山行을 抛棄하고 ‘斷俗寺地’로 方向을 돌리고 싶다.
웅석高峯이 저녁노을 구름사이로 얼굴을 뚜렷히 내민다.
이리 저리 살펴도 처마나 電信柱, 電線에 휘감겨 카메라를 꺼집어낼 情況이 아니다.
地方道 1001號에 들어서서 ‘斷俗寺地’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時刻은 이미 5時 半. 일곱時까지는 도착하겠지 생각해 본다.
단단히 마음을 벼르고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여기서 부터는 ‘산청 3구간’인 ‘어천~운리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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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천 ~ 운리 구간” (산청 3구간)
案內冊子의 紹介資料
* 始終點
경남 산청군 단성면 어천마을 입구 다리 (산청방향)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마을 단속사지
* 거리 : 13.3 Km, * 소요시간 : 4.5 hr,
* 難易度 : 老弱者 에께는 약간 힘들다.
* 區間 略圖
※‘區間略圖’를 당초에는 (사)숲길에서 發刊한 ‘지리산 둘레길’冊子를 찢어서
複寫하였으나 이 글을 繼續하면서 다른 鮮明한 자료와 代替를 하였더니
規格이나 內容에 있어 앞뒤로 약간의 差異가 있다. (산청군청 자료 활용)
* 區間距離 및 高度表
지난번 2次 巡禮때도 ‘저녁나절 길’에서 民泊집을 만나지 못하여
어둠이 내리는 낯선 ‘山골 길’을 비에 쫓기어 뛰듯이 걸음 한 적이 있는데
오늘도 急한 걸음을 해야 하는가 보다.
月刊誌 ‘山’ 6月號 別冊附錄으로 나온 ‘지리산 立體地圖’를 눈여겨보아 두었기 때문에
여기서 민박집을 찾아 ‘어천’ 아랫마을(래프팅 下船場)로 되돌아가느니 日程도 줄일 겸,
또 高峯登攀의 無理數도 避할겸,
나는 敵陣을 向하는 軍將의 心情으로 해거름, 어둠살을 뚫고 前進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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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색 點線이 둘레길, 황색 點線이 登山路 路線이다. 地名이 서로 달라 ‘운리와 덕산’을 덧 붙였다.)
그야말로 閑寂한 山間地 道路이다.
몇 십분 만에 겨우 차량 한 대 쯤 통과하는 교통량이다.
약 3 Km 距離의 오름길이 계속된다. 오름길이 끝날 때까지 한사람도 만난 일이 없다.
左右로 숲이 우거져 있으니 더욱 어둠살이 일찍 다가오는 듯 寂寞江山을 걷는다.
다리가 아프다든가 하는 感覺의 次元을 넘어 無我之境을 걸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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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아스팔트길이나 오래된 구간이 많아 오름길에서는 걸음걸이에 큰 無理는 없다.
九折羊腸을 돌고 돌아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사람냄새가 풍기며 멀리 길가에 자그마한 승용차 한 대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오래된 ‘아벨라 승용차’ 옆으로 道路옹벽위에 할매 한분이 앉아있다.
于先 사람이 반가워서 인사를 건네고 할 겨를도 없이
‘民泊집을 찾는데 얼마나 더 가면 됩니까 ?’ 하고 물어보니
내리막길이라 조금만 더 내려가면 ‘장작불 집’도 있고 몇 집이 더 있다며 걱정일랑 말고
내려가시라는 듯 이야기 한다.
고맙다 인사하고 성큼성큼 신이 나서 내려간다. 벌써 어둑어둑하다.
조금 내려가려니 그 ‘아벨라 승용차’가 스쳐 지나간다.
뒷 자석에 앉아있는 할매를 보고 고맙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더니
내리막길인데도 急停車를 하며 차를 멈춘다.
老人內外 인 듯 運轉하시는 七十客 老人丈께서
미안스러워 하는 나를 앞 자석에 태우더니 ‘왠 노인이 겁도 없이 혼자서 다니는 길’이냐며
꾸중이 半이다. (아마 할매가 방금 지나간 上老人(?)이야기를 자기네 영감님께 告할 틈이 없었던 모양이다.)
할매가 ‘장작불 집’을 안내하자니
그 집은 비싸다며 기어이 몇 걸음 더 달려 貯水池 밑 ‘청계매운탕 집’으로 태워다 주신다.
고맙다는 인사에 ‘절대로 혼자 여행길을 나서지 말라’고 命하듯 當付하고 가신다.
홀로 ‘둘레길 순례’를 시작한지 얼마 아니지만 敢히 同老相憐之情을 云할까부다.
배낭을 내려놓으니 일곱時다.
民泊用 방이 네 개인데 옆 옆방에 3人 1組의 ‘고스톱’ 팀과 ‘나’ 두 팀이다.
‘둘레길’을 시작한 후 옆防 客은 처음인데 ‘고스톱’에 바쁜 분들과 이야기할 틈이 없다.
TV 화면이 시원치를 않아 아홉時도 되지 않아 불을 끄고 누웠다.
이튿날 아침, 옆방의 五十客 3人組 아저씨들은
나와는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중이며 그네들도 高峯登攀을 避하여
地方道를 따라 걷는 中이라 한다.
나에께 ‘산청읍’을 출발하여 여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묻는다.
오후 한 時부터 일곱 時까지 여섯時間이 걸렸다하며 나의 걸음이 매우 느리다 하니
이 양반 말씀이 逸品이다.
‘빠른 걸음에는 쉬는 시간이 길고, 느린 걸음에는 쉬는 시간이 짧아 걸음속도는 別 無關’
이라 한다. 後日 이 이야기를 어느 親友에께 하였더니
그 親友 曰 ‘어찌 그런 師父님을 그냥 헤어졌느냐’ 하며 핀잔이 대단 하였다.
(어림잡아 15Km 거리에 여섯 시간이 걸렸다.)
食堂을 兼한 民泊집이라 나물반찬이 참 逸品이다.
저녁과 아침 밥상에서 산나물 몇 접시를 남김없이 다 먹었다.
‘엄마와 아내’ 에께 ‘밤사이 問安전화’를 하고 발길을 나서니 07時 正刻이다. 出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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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저수지 제방에서 웅석봉을 바라보는 광경이다. 이 제방도 곧 덩굴에 휘 감기겠다)
어제 저녁, ‘어천’에서 둘레길을 벗어나 ‘웅석산’구간을 우회하였으니
이제는 ‘둘레길 제 코-스’를 찾아 들어야한다.
淸溪貯水池 堤防 밑 民泊집에서 쳐다보니 堤防에 오르면 둘레길에 들 수도 있겠다싶어
어제 내려온 길을 뒤돌아 貯水池堤防에 올랐으나 쉽게 近接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올라간 김에 ‘우리나라에서 제일로 물이 맑다는 淸溪貯水池’ 光景만 寫眞에 담고 내려왔다.
이제는 地方道路를 따라 ‘둘레길 포인트; 斷俗寺地’로 向해야 한다.
地方道 1001號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右側 山중턱으로는 둘레길이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른 아침에 生前 처음인 길을 걷다가
왠지 낯설지가 않다. 요즘에는 보기가 貴한 금잔디가 발걸음의 감촉을 한결 더 한다.
옛 잔디를 밞고 걸으니 그런가
왠지 낯설지가 않아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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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포인트; 斷俗寺地’ 를 찾아 道路 옆을 달리는 車輛들과 함께 걷는다.
斷俗寺地를 알리는 ‘둘레길 안내말뚝’이 나타나 반갑다.
案內冊子 資料에 따르면 廢寺地에는 民家가 들어서있고 흔적으로는 보물로 지정된
三層石塔 두 基만 남아 있다고 한다. 왠지 들리고 싶지가 않다.
‘皇城옛터’ 노랫歌詞가 갑자기 생각나며 발걸음은 앞길을 재촉한다.
廢寺地를 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몇 십 m를 걷다보니 길 옆 옹벽 너머로 크다란 幢竿支柱가 老松을 벗하고 있다.
( 언듯 보기에도 幢竿支柱의 크기가 예사롭지가 않다. 저 소나무와의 歲月은 또 얼마 일 런고? )
아침부터 청승맞은 옛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다보니
‘어천 ~ 운리’구간 종점인 ‘운리 마을’에 닿았다.
이제부터 ‘운리 ~ 덕산’ 구간이다.
산청군청 자료에서는 ‘산청 4구간’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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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리 ~ 덕산 구간” (산청 4구간)
案內冊子의 紹介資料
* 始終點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마을 단속사지 앞
경남 산청군 사천면 덕산고등학교 앞 천평교.
* 거리 : 13.1 Km, * 소요시간 : 5 hr,
* 難易度 : 어린이가 걷기엔 힘들다.
* 區間 略圖
(산청군청 자료)
* 區間距離 및 高度表
‘운리마을’은 地方道路 옆 마을이다. 道路邊에서는 펜션형 집들을 몇 집 짖고 있는 중이다.
올 여름, 休暇철 盛需期를 앞두고 서둘러 짖고 있는 것 같다.
어디를 가나 사람, 人間事 살림살이는 別差가 없는 것을,
좋은 시절은 다 가고 ‘백운동계곡’만 아득 하구나 !
(이곳에서 다음 포인트 ‘백운동계곡’까지는 6Km 거리다. )
계곡을 찾아 高度가 점점 올라간다. 지나는 길옆 마을, 마을에는 農作物도 多樣하지만
집, 집이 家勢가 번듯번듯하여 나 홀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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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刊誌 ‘山’ 6月號 別冊附錄에서는 地名과 둘레길 區間名을 달리 쓰고 있다.
‘백운계곡’ 좌편을 ‘마근담계곡’이라 한다는데 이 자료에서 표시가 없다.)
숲속으로 들어가니 넓은 林道가 이어진다. 山이 깊으니 林道도 넓으리라.
요즘 잦은 異常 暴雨로 被害復舊工事를 여기저기서 하고 있다.
(조그마한 고개를 넘다가 잠시 앉았는데, 한 젊은이가 지나가 길래 한 장을 부탁을 했다.)
集中暴雨의 被害가 있었던지 溪谷을 통째로 改造하여 물길을 다듬은 곳도 있다.
이제는 自然災害의 規模도 豫測이 無常한데
人間의 自慢은 어디까지 갈려는지 입맛이 쓰다.
나 自身도 土木工事 現場에서 輕妄하게 저지른 잘못들이 이제 와서야
뼈아픈 悔恨이 되어 가슴 속을 저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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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밑 벤취에서 만난 젊은 夫婦가 지나가며 인사를 하길래 부탁을 하였다.)
이제, 7月로 접어들었으니 休暇철이 시작되었나 보다.
스쳐지나가는 젊은 夫婦의 休暇計劃 情談이 憫惘하게도 가깝게 들린다.
콘크리트 길바닥에 발바닥이 지겨울 즈음에 ‘둘레길 안내말뚝’이 나타나
( 누군가 살다가 떠난 자리다.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보다가 카메라를 꺼집어 낸다.)
산속을 걷는지 두어 時間이 흐른다. 등산로는 좁아졌다, 넓어졌다 를 거듭한다.
이 깊은 산골에 누가 살았을까 집터周邊을 살피다가
옛적에 읽은 어느 雜小說속의 ‘山골 夜밤 情史’가 떠올라 히죽 웃고 만다.
곳곳에 ‘國立公園管理所’의 손길이 잦지만, 智異山이라 그런지 登山路도 變化無常하다.
산비탈 傾斜面을 걷는 登山路 中에는
지난 暴雨에 떠밀렸는지 길 없는 傾斜面을 발자국만 따라가는 짧은 구간도 있었다.
傾斜面 저~ 밑으로부터 스피커 소리가 들린다. 團體를 統率하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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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사 ‘백운계곡’에 들었나 생각하며 걷는다.
좌측 溪谷 쪽으로 傾斜진 비탈이 아찔할 때는 ‘혼자’를 切感하기도 했다.
左側 계곡에서 들리던 스피커 소리도 뜸해지고 溪谷물소리는 들릴 幾微조차도 없다.
길은 다시 넓어진다.
登攀路를 다듬은 솜씨가 산뜻하여 한자리 차지하고 발바닥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세 젊은이가 지나며 인사를 한다. 타이밍이 적절하다 싶어 카메라를 내 밀었다.)
백운계곡까지가 멀기는 먼 모양이다.
山모퉁이 마다 조그마한 溪谷을 자주 자주 지나지만 溪谷을 흐르는 물은 흔적만 있을 뿐
발(足)이라도 담글 施惠를 베풀지 않는다.
時計를 보니 한 時 半,
열 時쯤, 林道구간에서 중참을 먹었지만 점심 먹을 시간도 지난 것 같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니 제법이나 溪谷물줄기가 흐르는 골(谷)을 만났다.
時計를 보고나서 갑자기 밀려드는 시장끼에 ‘백운계곡’까지는 버티기가 힘 들것 같아,
이만한 물줄기라도 고맙게 생각하며 자리를 잡고 앉자 빵과 육포로 점심을 한다.
좁은 계곡을 졸졸 흐르는 물에 발을 주무르고 나니 ‘아하~ 이 맛 이로 구나’ 싶다.
약 10餘分을 더 걸어가니 ‘백운계곡’ 이다. 溪谷이름답게 물도 맑고 바위도 좋다.
아쉬운 마음, 한량없었지만 그곳에는 적당한 그늘이 없어
오히려 ‘미리 점심을 잘 먹었다’며 自慰를 한다.
햇볕이 强하고 逆光이라 내 실력으로는 카메라를 만지작만 하다 말았다.
다음 포인트는 ‘마근담 溪谷’이다.
이름이 ‘계곡’이니 그곳에도 발(足) 담글 계곡물이야 흐르겠지 하며
백운계곡을 건넜다.
‘공원관리소’ 안전간판 인 듯 ‘계곡물이 깊으면 위험하오니 돌아가세요.’ 한다.
가끔 ‘智異山 登攀客 遭難’ 뉴스에서 본 것 같아 妙한 기분이 된다.
나는 오늘, 運이 좋은가 보다. 신발을 신은 채로 계곡물을 건널 수 있었으니 運이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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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색 점선이 둘레길이고, 황색 점선은 등산로 이다. 흰색이 도로표시고, 임도는 표시가 없다.)
백운계곡에서 숲길, 林道를 걷고, 稜線을 넘어 마근담溪谷을 向한다.
期待와는 달리 ‘둘레길’은 ‘마근담 계곡물’에 接近조차 하지를 못 한다.
이미 溪谷물, 물가에는 體驗 修鍊施設, 別莊, 農莊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아마 이곳은 일찍부터 開發이 되었던 것 같다.
멀리 아래로 溪谷물을 바라보면서 ‘둘레길’은 山중턱의 콘크리트 農路를 타고 내려온다.
이 내리막길은 長長 5 Km를 繼續하며
콘크리트農路 위를 쏟아지듯 밀려 내려와야 한다. 발바닥이 통통 튀며 불이 난다.
이 글을 쓰면서 이런 下山길의 境遇에는
차라리 위 사진에서의 ‘稜線 登攀路’를 내려오는 길이 더욱 좋지나 않을까 하여
위 사진을 확대하여 부쳐보았다.
만약 내가 다시 이 구간을 밟고 내려와야 한다면 稜線을 타고 내려와야 하겠다.
溪谷이 거의 끝나는 즈음에서 溪谷물에 발을 담글 자리를 만났다.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그려 하는데
돌바닥 밑에서 뱀이 굴러간다. 언듯 보기에 뱀 대가리가 옛날 ‘삼강 하-드’ 만 하다.
毒蛇뱀이 물에서 논다니 異常하다만 며칠 前 밤 꿈에, 칼날을 잘못 만지다
손가락 끝에 삼각형 상처가 나던 일이 생각나서 기분이 섬뜩하다.
돌을 쳐서 氣를 뿌리고 발을 물에 담근다. 시원은 하다만,
溪谷물이 맑다 싶어도 물이끼가 잔뜩 이고, 뱀까지 만나고 보니 기분은 半減이다.
‘둘레길: 운리~덕산(사리)구간’이 끝나는 ‘덕산마을’에 지친 몸으로 이른다.
時刻은 여섯 時쯤 이었다.
그날은 마을로 들어서면서 처음 만나는 ‘민박집’으로 躊躇함 없이 바로 찾아 들었다.
마침, 민박집 아줌마가 人心좋게 반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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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 위태 구간” (산청 5구간)
案內冊子의 紹介資料
* 始終點
경남 산청군 사천면 덕산고등학교 앞 천평교 (천평 곳감 경매장).
경남 하동군 옥종면 위태마을 상촌제(저수지) 앞 버스정류소.
* 거리 : 10.3 Km, * 소요시간 : 4 hr,
* 難易度 : 男女老少 누구나 걸을 수 있다.
* 區間 略圖
(산청군청 자료)
* 區間距離 및 高度表
2泊 3日째 오늘은 집으로 가는 날.
집으로 가는 交通便에 맞추어 日程을 짜야한다.
‘덕산~위태구간’ 종점에서 12時 45分에 진주로 가는 버스가 있다한다.
‘智異山 둘레길: 덕산~위태’ 全구간을 반나절에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時間과 空間, 卽 距離가 맞아 떨어진다. 참으로 안성맞춤이다.
民泊집 아침식탁에 主人아줌마도 겸상을 하고 마주 앉는다.
主人도 일찍, 혼자서 農場엘 간다 한다. 젊은 아낙네에께 緣由를 차마 묻지 않는다.
客은 이른 아침 길을 나선다. 일곱 時 正刻이다.
멀리 天王峯 稜線이 하늘자락에 殘影이 되어 한 폭의 水墨畵, 風景畵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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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나서니 ‘南冥 先生 遺蹟地’다
아침 이런 시간이라 紀念館 閱覽은 못하고 사진만 찍고 앞길을 간다.
‘위태’에 버스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옥종’이나 진주까지 택시라도 타야하니 앞길을 서둔다.
(南冥 紀念館 앞에 서 있는 南冥先生 銅像)
( 先生이 居處하였다는 山天齋와 案內, 說明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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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天齋 案內文에서 先生의 行狀을 要約하고 있어 近接撮影을 하였으나 시원치가 않다.
또, (사)숲길의 안내자료에서는
‘지리산 둘레길’을 여행하기 前,
先生의 “智異山 遊覽錄” 을 한번 읽어 보라고 勸하고 있다.
- 해는 저물어 가는데 갈 길이 너무나 멀다. -
덕천마을 길이 과히 市街地 길이다.
天王峯 隣近地域 주민들에께 가장 큰 場이고 ‘산청 곳감장’이 특히 유명하다 한다.
천평교에서 덕천강을 건너 江물 따라 가물가물 堤防길을 내려간다.
左便으로 돌아보면 천왕봉 능선들이 아침雲霧속에 아득하기만 하다.
웬 만하면 아침햇살에 카메라를 한번쯤은 받아 줄 텐데 하면서 강을 따라 내려간다.
( 아침 雲霧 뒤로 모습을 감추는 천왕봉 稜線이 아쉬워 無酌定 찍어 보았다.)
길은 덕천강 제방길을 벗어나 ‘중태마을’을 向해 골(谷)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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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태마을’로 들어가는 골(谷)입구와 마을을 들어서면서
‘둘레길’을 몰아가는 深山幽谷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다.
지리산 자락이라선지 골골이 유난히도 아름답게 보인다.
저~ 계곡을 따라 ‘괴나리봇짐 아제’나 ‘단봇짐 아지메’가 골골을 돌아 ‘하동과 산청’을
넘나들며 한 生들을 살았으리라 想像하며 마을을 들어선다.
마을 입구, 정자나무건너 편으로 ‘실명제 마을 안내소’가 있다.
안내자료에도 이곳을 지나가는 여행자는 필히 들러
책임여행과 公正여행을 다짐하는 기록을 남기도록 勸獎하고 있다.
農家被害를 줄이기 위해 마을주민들이 自律的으로 ‘둘레길 안내’를 담당하며
運營하고 있다 한다.
아담한 房과 案內資料들이 어색하지가 않다.
나도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가벼운 마음으로 帳簿에 記載를 하고
房 청소를 하고 있는 女子職員에께 물 한잔을 請하였드니
이른 아침이라 生水配達이 늦다며 微笑를 짖는다.
그냥 돌아서며 길을 나서는 나를 불러
미안하다며 냉장고에서 얼린 生水얼음 한 甁을 건내 준다.
돈을 꺼내는 나를 멋쩍게 ‘좋은 여행 하세요’ 하며 한사코 돌아선다.
(나는 그 女人의 ‘生水얼음’ 德分에 버스到着 30分前, ‘위태마을’에 到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을 안을 길게 지나간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德談인사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께
‘어인 어르신이 --- ’로 始作는 上老人들의 德談인사는 버겁다 못해 憫惘스럽다.
마을을 벗어나자 農場들이 이어진다.
다른 동네나 마을과는 달리 잠자는 듯한 別莊들은 보이지 않는다. 주로 果樹農場들이다.
길을 걷다보면 나 자신도 탐스런 과일에 손길이 절로 가는 誘惑을 느낀다.
이 길은 등산객도 없던 순수한 農村길이었을 텐데 모든 문제는 ‘둘레길 客’에 있을 터,
‘責任旅行, 公正旅行’의 좋은 意味를 되새기며 걸음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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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태재를 넘어 ‘유점마을’에 이르니 길옆으로 큼지막한 교회가 있다.
牧師님인 듯 하얀 모시옷을 입은 얼굴이 하얀 初老어른과 인사를 건 낸다.
언 듯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깊은 山속 마을에서 만나는 敎會에 왜 나는 엉뚱한 想念을 갖는지
反省을 하며 걷는다.
敎會를 지나고 마을을 벗어나
무더운 논, 밭 한적한 길옆으로 정자나무가 있고 ‘(사)숲길 로고’가 찍힌 벤취도 있다.
발바닥 스트레칭을 하고 일어서면서
다음부터는 專屬사진사를 배당에 모시고 와야겠다며 앉았든 자리를 찍어 본다.
산청과 하동군의 경계를 이룬다는 ‘갈티재’를 넘어 내려오는 길목에 왕대 숲이 짙다.
내가 어릴적에 우리 고향마을 대나무 밭에서는 고작 엄지손가락 굵기의 대나무만 있었다.
‘설 名節’, 農樂 풍물때 깃발을 휘날리던 굵은 天王대(竹)가 과연 대나무일까 하던
疑問이 풀린 것은 훨씬 나이가 들어 ‘왕대 숲’을 배우고 난 뒤였다.
산을 내려와 찻길을 들어서며 시계를 보니 집으로 가는 길에는 蹉跌이 없겠다.
이 번 巡禮길에도 고마운 因緣들이 몇 분이나 또 마음에 새겨진다.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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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같은 줄글들이 그렇게 마음을 맑게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 밑바닥에 숨어 있는 감성들을 찾아내고 싶은 바램도 가져봅니다.
혜봉 형님의 구도적인 '지리산 둘래길 순례기'를 읽으니 가슴이 뭉클해져옵니다.
지리산의 맑은 기운이 가슴으로 느껴집니다 저도 모든걸 잊고 떠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