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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속한 연무에 가야산 만물상의 절경을 빼앗기다
1. 일자 : 2010. 6. 19 (토)
2. 장소 : 가야산 (1430m)
3. 행로 및 시간
[백운동(11:25) -> 만물상 등산로 입구(11:35) -> (무덤, 된비알) -> 암릉쉼터(12:13) -> 이정표(12:24, 서성대 2km) -> 소나무 전망대(12:32) -> 바위계단길(12:57) -> 암릉쉼터(13:07) -> (중식-13:30) -> 이정표(13:53,
4. 동행 : 홀로, 숲향산악회
< 가아산 산행을 준비하며 >
경상남/북도 경계에 있는 가야산은 백두대간 상에 위치해 있지 않으면서도 1400m가 넘는 드문 산이다. 가야산은 해인사와 연관 지어 말해질 때 그 이야기꺼리가 배가 된다. ‘해인사’라는 단어를 접할 때, 난 해질녘 산사의 전경이 머리에 떠오른다. 거기에는 굽고 긴 지팡이를 집고 서 계시는 단호하지만 인자한 미소로 기억되는 성철 스님이 보이고, 팔만대장경 목판에서 묻어 나는 정갈한 옛 것의 냄새도 난다. 해인사에는 경주 불국사나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본 단양 구인사와는 확연히 다른 산사의 이미지가 있고, 그 이미지는 옛스러움과 고즈녁 하면서도 기품이 살아있는 것이다.
지난 3월 중순 산행 장소로 가야산을 정하고도 썩 내키지 않는 것았는데, 당시 명산에 가는데 썩 내키지 않는 것이 어인 연유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마도 계절적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풍성한 눈의 계절은 지나갔고 꽃이 피기는 이른 애매한 시점에 가야산이라는 명산을 가는 것은, 마치 맛난 요리를 놓고 식욕이 당기지 않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두 번째는 올 유월이면 가아샨의 숨은 비경을 담고 있는 ‘만물상’코스가 개방될 예정인데, 때를 잘못 선택한 것 같은 찝찝한 느낌 때문이다. 이런 아쉬움 때문인지 성우의 제안으로 당시 산행은 유명산으로 변경되었고, 오늘 드디어 새롭게 개방된 만물상 코스를 들머리로 가야산을 찾게 되었다.
조선 팔경의 하나이며, 국내 12대 명산 반열에 든 가야산은, 멀리서 보면 그 형상이 “불꽃이 공중에 솟은 듯하다”고 했다, 그만큼 정상부의 칠불봉, 우두봉의 형상이 인상적이라는 뜻일 것이다. 정상은 우두봉인데 대중일반은 소 머리의 형상이 연상된다 했으나, 사진으로 본 내 느낌은 ‘우두’ 보다는 ‘유두’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젖먹이 아이를 둔 발육이 좋은 30대 여인의 크지만 도발적이지는 않은 그런 가슴 말이다. 우두봉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칠불봉이라는 높이로는 우두봉을 3m나 앞지르는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거기에는 금관가야 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에 나선 전설이 서려 있다.
얼추 가야 할 산 길을 집어 본다. 고도 500m 수준인 백운지구에서 새롭게 개방된 험한 그러나 경치가 정말 좋다는 만불상 코스를 따라 2시간 30분 정도를 오르면
< 희망사항 >
최근 삶이 무료함을 느낀 때가 종종 있다. 무기력을 느낄 때도 있다. 쉬이 피곤함을 느끼는 것이 계절 탓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읽은 “개가 되고 싶지 않은 개”라는 책에서는 이럴 때 ‘다른 존재가 되어 나를 바라보라 했다. 그러면 당신도 특별한 존재라 느껴질 거라 하며. 계절의 갈림길, 본격 여름으로 들어서며, 오늘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길에서 나를 되돌아 보아야겠다.
해인사의 명명의 유래는 ‘해인삼매’에서 온 것인데, ‘깨달음의 지혜의 세계가 나타나는 경지”를 이르는 말이라 한다. 또한 해인이라는 말은 ‘거친 바다(海)의 파도가 멈출 때 우주의 참모습이 물 속에 비치는(印) 과정”에서 유래된 것이라고도 한다. 가야라는 말 자체도 인도말로는 ‘깨달음’이라 한다. 이처럼 전설과 현실 세상 모두에서 가야산과 해인사는 맑은 이미지가 강하다. 오늘 초여름 남녘 산과 산사에서 내 마음을 맑게 가다듬고 싶다.
아울러 법보사찰 해인사 경내에는 국보 셋과 보물 여섯이 있다 하는데, ‘고려대장경판, 고려각판, 장경각이 국보이고 희랑대사상 등이 보물’이라 한다. 국보나 보물은 아니지만 해인사 주변의 숲 길도 그 명성이 높다. 이들 문화재와 자연이 주는 향기도 잊지 말고 만끽해 보고 싶다.
한동안 무게 있는 등산 책을 읽지 않다가, 최근 청량산에 관한 기사를 보가다 퇴계 선생의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란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아 다시 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책 읽기는 산을 노니는 것과 같다고 말들 하는데
이제 보니 산을 노니는 것이야말로 책 읽기와 같네
온 힘을 쏟은 다음에 스스로 내려오는 것이 그러하고
얕고 깊은 곳을 모두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그러하네
가만히 앉아 피어 오르는 구름 보면 묘미를 알게 되고
근원에 이르러 비로소 원초를 깨닫네
그대들 절정에 이르기에 힘쓸지니
늙어 중도에서 그친 나를 깊이 부끄러워할 따름이네]
유산(遊山)이든 독서든 그 궁극은 사물과 세계의 실상을 깨닫는 데 있음을 일깨우는 퇴계선생의 곡진한 당부가 서려 있는 글이다. 특히 ‘얕고 깊은 곳을 모두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그러하네’라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다시 정독하며 책을 읽어야 하고 산에 오르는 것도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 합천 가는 버스 안에서 >
복정에서 탑승한 버스는 만원이다. 오랜만에 대장이 직접 안내에 나선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려 11시가 지날 무렵 해인사IC를 지난다. 해인사 방향을 버리고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달려 11시 20분 무렵 성주군 백운동에 도착했다. 등산로 앞의 지도를 살피니, 이곳은 경상도 땅이다. 그간 가야산은 합천의 산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만물상과 칠불봉 등 가야산의 경치 좋은 곳은 경상도 땅이다. 해인사의 입김이 너무 강해 굳어진 선입감 때문에 성주군에서는 늦게 다마 잊었던 명성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만물상 코스가 개방된 것도 그 일환으로 이해된다.
< 백운동에서
백운동 주차장에서 도로를 따라 걷는다. 가아샨 야생화 식물원을 지나 (평소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그냥 지나치게 되어 아쉽다.) 만물상 코스 들머리에 선다. 올려다 보는 하늘은 연무로 흐릿하다. 내가 만물상에 오를 때 즈음 연무가 걷히기를 기원하며 발걸음을 내딛는다,
< 백운동 야생화 식물원 >
초입부터 길이 무척 가파르다. 게다가 습도도 높다. “여름, 비 온 뒤 습기 많은 날, 오르막 산 길을 걷는 것은 한증막에서 달리기 하는 것과 같다 하였는데” 오늘이 그와 같다. 10분만에 고도 150m를 해치웠다. 길가에 소박한 무덤마저 없었다만 그나마 잠시의 변화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10분 정도를 더 오르니 하늘이 조금씩 열리고 밑으로 가야산관광호텔과 심원사의 모습이 연무 속에서 아스라하다. 모두가 몽롱하다. 하늘도 경치도 정신 없이 된비알을 치고 오른 내 기분도.
< 연무에 젖은 백운동 마을 >
< 본격 암릉지대의 서막 >
백운동 들머리에서 본 이정표에는
바위를 돌아 드는 길에 간간이 돌무덤이 있다. 자세히 살피니 산성의 흔적이다. 아마도 그 옛날 쌓았던 가야산성인가 보다. 어쩌면 2000년도 넘었을 전설의 역사의 현장을 내가 걷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진다.
조금 전 지났던 암릉지대가 만물상 능선의 본격 시작인가 보다. 암릉이 험해지고 곳곳에 계단이 나온다. 첫 이정표를 만난다(12:24). 이제껏 1km를 걸어왔고 가야 할 길은 2km다. 고도가 900m를 넘었다. 부지런히 가자. 가는 길 곳곳에 북한산 사모바위를 연상시키는 사각형의 바위가 많다. 둥글거나 모난 바위만을 보아왔던 터라 특이한 느낌을 준다.
벼랑에 선 소나무가 멋진, 작은 전망대에 도착했다(12:32). 지나는 산꾼과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 한 장 찍고픈 마음이 간절할 때 상대가 먼저 사진을 부탁해 오면 얼씨구나 하고 찍어 주고 나도 부탁한다. 상부상보다. 찍고 나서 보니 잘 나왔다. 경치는 더 좋아지는데 연무는 점점 더 심해진다. 연무 속에서도 이리 좋은데 맑은 날에는 기절할 정도로 멋질 것이라 생각하니 연무가 더 미워진다.
< 소나무 벼랑에서 >
계단길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계단 위에서 내려다 보는 만물상 능선의 경치는 언제나 근사하다. 걷다가 생각해 보니 이 능선의 하이라이트 즉, 만물상의 대표 바위는 어느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계단이 보이고 갈라진 바위 틈이 보이고 어김없이 소나무가 서 있는 곳에 도착했다(12:57). 직감적으로 바로 이곳이 만물상 코스의 핵심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연무 속에서 내려다 보이는 암릉은 절로 탄성을 자아 낸다. 계단 그 자체의 모습도 그만이다. 중국 황산의 절경이 부럽지 않다. 한참을 서서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 만물상의 하이라이트 >
계단을 내려서서 오른 만물상 바위 암릉지대에 도착했다. 널따란 바위가 점심상을 차리기에 적당할 것 같아 퍼질러 앉는다. 내 모습이 부럽던지 주변에 사람들이 모인다. 바위 절경을 보고 준비한 도시락을 먹는다. 주변 경치가 맛난 반찬이 되어 준다. 멀리 뽀족한 바위군이 나를 올려다 보고 있다. 오늘은 내가 신선이다.
식사를 마치니 1시 30분이
지나가고 있다. 갈 길이 멀어서 마음이 급해진다. 아직 1시간을 더 가야
< 서성재에서 칠불봉, 우두봉 >
< 산목련 >
< 소나무가 있는 풍경 >
건너편 능선의 바위 풍경이 근사하다. 울퉁불퉁한 바위 옆으로 소나무가 서 있고 그 뒤로 다시 소나무와 바위가 서 있는 이중구조가 마치 물에 반사된 그림자인 냥 이국적인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흐린 날에만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모습이다. 오늘은 여기 저기 넘실대는 운무로 기억될 날이다.
잠시 후 칠불봉과 우두봉 갈림이 나왔다. 먼저 칠불봉을 향해 걷는다. 어디서 ‘미라’라고 하는 하이톤의 여성의 목소리가 조용한 산을 흔든다. 미쳤나? 불청객의 등장으로 좋은 주변 풍광을 살필 겨를도 없이 칠불봉 정상에 올라와 버렸다. 성주군에서 설치했을 것이 분명한 ‘가야산 정상 七佛峯’ 표지석이 우뚝하다. 높이로서야 칠불봉이 우두봉보다 위다. 높은 산은 지역의 경계를 나눈다. 가야산 정상이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를 가르듯이, 소백산은 경상북도와 충청북도를, 지리산은 경상남도와 전라북도를…… 수 없이 많은 사례가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가야산 정상을 둘러싼 논쟁은 행복한 경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서로 정성들여 산을 가꾸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것이고, 종국에는 두 지자에 모두의 이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칠불봉에서 >
수로왕의 일곱 형제의 전설을 연상시킬 칠볼봉의 형세는 연무로 가름하기 힘들다. 한참을 서성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올 길을 돌아 우두봉으로 향한다. ‘미라’로 추정되는 하얀 옷의 여인이 올라 오고 있다. 하이톤의 여성이 좋아하겠다.
< 우두봉에서 >
< 봉천대/중봉 >
봉우리를 돌아 우두봉으로 올라서는데 길이 수상하다. 거친 암릉이다. 이상하다 싶어 망설이는데 사람들도 이리로 온다. (낙석주위라는 표식이 마치 이정표인 냥 보여 정작 옆에 난 계단을 모두가 놓친 결과다.) 첫 남자가 힘겹게 바위를 올라선다. 나도 따른다. 뒤에 아까 ‘미라’라는 친구를 찾던 여자분이 나를 의지하여 바위를 올라선다. 분면 이 길은 정상적인 길은 아니다. 그래도 힘겹게 바위길을 돌아서니 우두봉이 보인다(16:22).
가야산 정상은 너른 반석이다. 울퉁불퉁한 돌이 넓게 펼쳐져 있다. 여인의 유두를 닮은 바위는 막상 가까이서 살피니 가름이 힘들다. 산 밑에서는 그렇게 그리던 곳인데 막상 그 자리에 서니 생각만큼의 감흥이 없다. 멀리 운무에 젖은 봉우리가 우뚝 솟은 모습만이 인상 깊다.
< 우두봉에서 해인사 >
어느덧 산행 시작 4시간 가량이 지났다. 하산 길의 사정을 모르니 이정표의 표식 ‘해인사 3.8km’만으로는 소요시간을 가름할 수 없다. 걸음이 빨라진다. 다시 내려 선 갈림길에서 해인사로 향하는 길 찾기가 녹녹하지 않다. 너른 바위 공터에 ‘등산로 없음’이라는 표식만 있을 뿐 어디가 길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한참을 헤매는데, 키 큰 여인네 하나가 내가 좀 전에 ‘이리로는 길이 없어’하고 포기한 길로 터벅터벅 내려선다. 그 모습이 하도 당당해 따라 나서는데 희한하게도 바위 밑으로 길이 보인다. 도처에 고수는 산재해 있음을 오늘도 실감한다.
10여분 바위 길을 더듬어 내려서니 작은 공터 위로 집채만한 바위들이 서 있다. ‘봉천대나 중봉’일 것이다. 그 규모와 모습에 감탄하며 한참을 서 있는다. 가야산은 분명 바위가 멋진 산이다. 멀리 합천 땅이 아스라하다. 연무가 옅어지고 간간이 맑은 기운이 든다. 젠장 산은 거의 다 내려와 가는데, 웬 조화란 말인가?
< 토신골 계곡 >
< 해인사 전경 1 >
험한 바위 길이 한참을 계속되다. 고도가 1000m 이하로 떨어지자 길도 눈에 띄게 순해진다. 조릿대가 이어진 평탄한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15:53). 이어 완만한 돌 길이 이어지더니 토신골과 극락골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했다(16:01). 극락골 길은 지금은 폐쇄되었나 보다. 멀리서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습기에 시달린 시간이 길어서인지 물소리가 전혀 반갑지 않다. 4시 20분 작은 계곡을 지난다. 물을 보니 씻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남은 거리도 멀지 않고 해서, 팔을 걷어 붙이고 물가에 앉는다. 썬블럭과 소금에 절은 얼굴이 시원한 계곡물에 금방 반응한다. 상쾌해지는 기분에 연거푸 손으로 물을 퍼 올려 얼굴과 목으로 가져간다. 부딪히고 글 킨 다리에는 미안하지만 신발을 벗을 여유로운 마음은 없다. 잠깐의 휴식이 몸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이어지는 길은 편하기 그지없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해인사로 발길을 이어간다. 4시 50분을 지날 무렵 탐방안내소를 지나고, 멀리 해인사 절집의 지붕이 눈에 들어 온다. 갈길이 아직도 멀다. 5시간 30분을 예상했던 산길은 6시간 가까이가 되어야 끝날 것 같다.
해인사 경내로 들어선다. 초입 선원 마당에 석탑이 보인다. 오늘 산행을 준비하며, 해인사 경내에 있는 고려대장경판, 고려각판, 장경각 등 국보와 희랑대사상 등 보물을 둘러 볼 생각이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절 경내가 너무 넓어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시간도 5시가 넘어가고 있고, 급한 마음에 절집의 모습만을 가슴 속에 담아 둔다. 훗날 집사람과 아이들과 함께 다시 찾아야겠다는 지키기 쉽지 않은 약속을 또 해 본다.
< 해인사 전경 2 >
< 에필로그 >
험한 길과 일부 동행들의 하산 지연으로 귀경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예전과 달리 화를 내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사정이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산에서는 예기치 못한 일이 자주 발생한다. 오늘만 해도 초반에 바위에 부딪힌 왼쪽 무릎이 아파왔다. 평소 가지고 다니던 그러나 실제로 사용할 것 같지 않던, 소염진통제가 큰 역할을 했다. 오른쪽 정강이도 까이고, 혹시나 해 가지고 간 비옷은 짐만 되었고, 작은 우산은 집 부근에서 마주한 소나기에 유용했다. 이래서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좀더 담담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귀가 길 버스에서 일본과 네덜란드와의 월드컵 경기를 관람했다. 이구동성 일본의 패배를 연호했다. 우리 민족이 가진 일본에 대한 단결된 증오심과 시기는 참 이상타. 나 역시 마음 속으로 일본의 패배를 기원했고 실제로 무너져 가는 일본팀을 보는 것에 묘한 흥분을 느꼈다. 이래서 사람이던 국가던 죄를 지으면 안되나 보다. 당한 사람에게는 치욕의 역사와 보복의 마음은 늘 현재진행형이니 말이다.
귀가하여 곤한 잠을 자고 다시 아침을 맞는다. 돌이켜보니, 홀로 걷는 연무에 젖은 만물상 능선 길엔 늘 외로움이 함께 했었다. 산에서는 늘 혼자다. 맑은 날은 가깝고 먼 환한 경치에 외로움이 덜하지만, 안개에 젖은 흐린 날에는 혼자만의 사색도 깊어진다. 회사 업무, 암 진단을 받은 동료, 아이들 공부 걱정 등에 생각이 깊어 진다. 동시에 외롭다는 생각도 커진다. 그래도 산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내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깊은 외로움은 결국 나를 다시 깨어나게 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은 다시 솟아날 것이라는 믿음도 생긴다.
산행 일기를 쓰는 지금, 기분 좋은 피곤함, 노곤함이 밀려 든다. 이제 일상이 되어가는 산행일기를 쓰는 시간이 점점 더 소중해지고 즐겁다. 산에 대한 병이 더 깊어가나 보다.
한 가지 의문, 식솔을 이끌고 가야산으로 들어가 종적이 사라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