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닦음
팔도가 내집이요,나는 잡놈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하게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뿐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본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백범 김구)
천상 내 팔자는 여기저기를 떠도는 지독한 역마살에 전염된 중이 될 팔자였다. 바랭이 하나에 무자 화두나 어울릴 놈이 사치스럽게 백범 선생의 문화화두 하나를 무겁게 짊어지고 지금까지 수많은 방황과 고통으로 참 많이도 싸돌아다녔다. 그러나 무나 문이나 쓸쓸하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남은 것은 그늘 짙은 허무와 독설뿐이었다.
소리가 있음직한 전국의 시골을 떠돌며 장단도 익히고, 춤도 익히고,음식도 익히고,막걸리도 익혔다. 무속을 공부한답시고 지리산 자락을 떠돌다가 한맺힌 혼령들의 넋두리에 취해 진한 삶의 무게도 익혔다.
그렇게 한 스무 해를 헤매다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주변인이 아닌 그 분들의 치열한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소리에 대한 나의 미친 짓거리는 저녀 예상하지 못한 하나의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십몇 년 전, 차를 몇 차례씩 갈아타야 하는 거제도 깊은 골짝에서 있었던 사건이였다.
두 시간 동안이나 완행 버스를 기다리기가 무료해서 들른 허름한 대표집에는 초로의 주인 아낙이 있었다.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막걸리 대포 한 잔을 시킨 젊은이가 낯익었던지 아낙은 내게 어느 동네의 누구 친척인지를 자꾸 물었다.
이상하게 대꾸했다가는 금방 들통이 날 것 같아 소리를 찾아서 왓다고 하니 대표 한 잔을 서비스로 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낙은 자기 아버지가 옛날에 그렇게 소리를 잘하셨다면서 자기 아버지가 불렀던 모심기 노래를 구성진 목소리로 불렀다.
한동안 그 소리에 넋을 잃고 있는데 버스 시간이 되고 말았다. 사흘 후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르겠다고 약속하고는 하루에 들락날락 두 번밖에 없는 완행 버스를 겨우 탔다.
며칠 후 바쁜 일정을 끝내고 다시 가보았다. 그러나 대포집앞에는 형형색색의 만장기를 펄럭이고 아낙의 아들임직한 맏상주만 꺼이꺼이 울음을 놓고 있었다.
나도 죽어 남자 몸이 되어
처자권속만 섬길라네...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아낙의 죽음은 한 문화의 죽음이였다. 하루만 빨리 서둘러 갔더라면
좋은 가사라도 베껴 적었을 터이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연약한 지반에 있는 우리 '문화의 성'에서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사이에 또 한 무더기의 돌덩어리가 천길 절벽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우리의 문화는 지금 제대로 정리해 놓고 보존하지 않으면 소리 소문 없이 무너진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아먹었다. 그리고는 한 길로만 앞을 보고 열심히 뛰어왔다. 구조적인 시각으로 이론
만 가지고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일터에 뛰어들어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같이 부르고 같이 연주하고 같이 춘 춤이기에 보다 살아 있는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음악 이야기를 글로 옮긴다는 것이나의 무딘 감각으로는 한계가 있어 부족함이 많다.
논리성의 부족과 증거 자료의 부족은 앞으로 열심히 연구하여 보완할 것을 약속드리며,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하고 싶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말뚝이같이 생긴 놈에게 기꺼이 소리를 해주시 가르쳐 주시고 격려해 주신
여러 어른들게 감사드린다. 또 항상 나와 같이 해준 평생 동지 진짜 한국 춤꾼 손심심이 없었다면 이 책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졸고 때문에 고생하신 고집 있는 출판사 이론과 실천의 식구 여러분과 글을 다듬느라 애써 주신 남경태 씨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첫째마당
문화 줏대를 세우자
음식 문화에서 소리가 나온다
문화를 보는 시각을 바꿔라
흔히 우리는 문화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문화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의 여러 측면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정치나 경제처럼 딱딱하고 부담 주는 게 아니라서 누구나 편안하게 웬만한 건다
문화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편안한 문화라는 말을 제대로 스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특히 요즘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문화라는 용어를 약간 오용하고 있다. 뭘 보고 문화라고 하느냐면 서구화된 것,서양 사람들 비슷하게 닮아 가는 것을 보고 문화라고들 한다. 그래서 문화인의 첫 번째 조건이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거다. 개고기를 먹었다간 뭐라고 하는가? 야만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 시각이 아니고 서양 사람들의 시각이다. 서양 사람들은 개를 침대에까지 끌어들여 같이 자고 먹고 하기 때문에 개고기를 먹는다는 데 특히 혐오감을 품는다. 그런데 오히려 서양 사람들은 육식 문화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우리보다 훨씬 다양한 종류의 짐승 고기를 먹는다. 원래 요리 기술이 발달한 곳은 옛날엔 먹고 살기 힘들었던 곳이다. 먹고 살기 힘들었기 때문에 요리 기술이 발달한 거라고 보면 된다. 요리 기술이 좋으니까 아무 재료나 가지고도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지금 세계적으로 서양에서는 프랑스 요리,동양에서는 중국 요리를 으뜸으로 친
다. 그런데 프랑스 요리,동양에서는 중국 요리를
으뜸으로 친다. 그런데 프랑스,중국에서는 뭘
가지고 요리하는가를 보면 참 재미있다. 프랑스에선 달팽이, 지렁이가 고급 요리고, 중국에선 원숭이 골,곰 발바닥이 최고다. 개고기쯤 가지고 야만인이라 한다면 그런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은 아예 원시인이다.
문화를 우리 시각 위주로 보지 않고 다른 나라 사람들,특히 서양 사람들 시각으로 보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개라고 해서 우리가 복날이면 모두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에서 개를 기르는 민족들은 많지만,
우리 조상들은 개를 여러 가지로 분류해서 길렀다. 사냥개는 전견,집 지키는 개는 짖는다는 뜻으로 폐견이라고 불렀고, 이런 개들은 잡아 먹지 않았다. 살이 많아 먹기 좋은 개를 식견이라고 불렀는데, 이게 바로 식용 개였다. 그러니까 개를 먹는다고 해서 자기가 기르는 애완견을 생각하고 무조건 펄쩍 뛰는 서양 사람도 문제다. 이렇게 문화를 우리 시작 위주로 보지 않고 다른 나라 사람들, 특히 서양 사람들 시각으로 보는데서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이런 오해는 식생
활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이른바 혼수 품목 1호라는게 있다. 바로 침대다. 언제부턴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침대 생활을 문화 생활의 일부라고 여기고 있다. 사실 우리 집에도 침대 좋아하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예 별거를 하다시피 한다. 나는 생긴 것답게 침대를 별로 안 좋아한다. 요즘 텔레비젼을 보면 별별
침대 광고가 다 나온다. 코끼리가 올라타는 것도 나오고, 주사 맞는 것도 나오고, 볼링공을 든 아저씨가 침대 위로 뛰어내리는 것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도 침대를 많이 쓴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침대라는 걸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침대와 한국 사람이 과연 체질상 맞느냐
안 맞는냐 하는 게 문제다. 어떨까? 봄하고 가을은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한국의 여름,겨울과는 잘 안 맞는다. 특히 겨울철에 우리 한국 사람들은 다른 데는 다 추워도 등하고 발만 따뜻하면 아무데나 막 처박혀서도 잘 누워잔다. 그런데 침대가 어디 그런가?
그래서 우리 문화와 침대 문화를 합치고 절충해서 요즘 생겨난 희한한 풍습이 있다. 전기 장판
을 위에다 까는 거다. 지구상에 치대 위에 전기 장판을 까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부유층
에서 유행하는 돌 침대도 마찬가지다.
서양 사람들이 사용하는 침대는 스프링의 탄력을 아주 높여 놓아서 대다니 푹신푹신하다. 이러면 우린 잠을 잘 수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침대 업자들은 서양 침대보다 스프링의 탄력을 줄여 다소 딱딱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것조차 온동 방바닥과 같은 안정감을 주지 못하기 대문에 이제 돌 침대까지 등장한 거다. 전기 장판과 돌 침대, 이런 것들은 침대 문화와 우리 문화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모두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문화에는 선진,후진이 없다
외래 문화가 다른 문화와 접촉하면 그 문화를 받아들인 측에서는 외래의 이질적인 문화를 자기네 생활에 맞게 변형시키게 된다. 문화는 원래 생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생활 습성이 다른 곳으로 가면 어떻게든 바뀌게 마련이다. 그렇게 보면 요즘 언론에서나 일상 대화에서나 자주 쓰는 선진 문화,후진 문화라는 말도 잘못이다.
문화에는 선진적이고 후진적이고가 없다. 발달한 문화,미발달한 문화도 없다. 무엇이 선진적이다 하는 말은 비교 대상이 있을 대 쓰는 말이다. 비교하고 평가할 기준이 있어야만 그런 말을 쓸 수 있다. 그런데 문화는 원래 생활에서 나왔다고 했다. 생활을 비교할 수 있는가? 흔히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을 나누지만, 그건 경제적인 면에서 나누는 것일 뿐이다.
한 민족의 생활 방식이 다른 민족의 생활 방식에 비해 낫다든가 못하다든가 이렇게 말할 권리
는 아무에게도 없다. 따라서 한 민족의 문화가 다른 민족의 문화에 비해 낫다든가 못하다든가 이렇게 말할 권리도 없다.
후진 문화,뒤처진 문화, 야만적인 문화 같은 말들은 서양 문화를 선진 문화,발달한 문화로 보기 때문에 생긴 말들이다.
그럼 그런 말을 감히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문화에 대한 어떤 비교대상,기준을 가지고 있을까?
그 사람들은 서양 문화를 가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개고기를 안 먹는 게 먹는 것보다 선
진 문화다, 침대 생활이 온돌 생활보다 선진 문화다, 이렇게 말 하는 사람들은 바로 서양 문화를
모범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앞에서 먹는 것 이야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마시는 것 이야기를 해보자. 서양 문화의 원조인 영국에서는 티타임이라 해서 오후 4시만 되면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갖는다. 이건 오랜 옛날부터 게속되어 온 영국 사회의 전통이다. 그래서 영국이 옛날에 지배했던 영 연방 국가들도 아직까지 티 타임의 관습을 지킨다.
심지어 인도에서는 영화가 상영되고 잇는 극장에서도 오후 4시만 되면 영화 상영이 중지되고 티탐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영국에서 차를 마시는 관습이 일상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은 이유는 뭘까? 그것은 마실
물이 드물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드문 곳에서 요리가 발달하듯이 마실 물이 없는 곳에서 차가
발달한다. 방방곡곡 어딜 가나 깨끗하고 신선한 물이 가득한 우리나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사실 세계 전체를 놓고 볼 때 마음 놓고 마실 물이 많은 곳은 드물다.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 대륙 전체가 그리 물이 많은 곳이 아니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에게는 차가 사치품이나 기호품이 아니라 수분을 섭취하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수백 년 전 유럽 사람들이 동양을 찾아 동쪽으로 모험을 떠난 것도 차와 향료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와중에서 여러 가지 항로가 개척되었고 칼럼버스가 신륙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서양의 차 문화가 우리나라에 와서 묘한 영향을 주었다, 서양에서는 차가 필수품인데 우리나랑서는 뭔가 선진적인 문화를 향유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차 문화가 없었냐 하면 그렇지 않다. 고려는 불교 국가였다. 불교에는 독특한 차 문화가 발달해 있다. 그래서 고려 시대에는 차 문화가 대단히 발달했고, 조선 시대에는 왕실에서 하루 한 차례 다시라는 티타임까지 정해 놓고 차를 마셨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왕실과 양반 사회에서만 성행했으므로 차는 생활 필수품이 아니였다.
서양의 차 문화를 받아들여 이것을 선진 문화로 여기게 된 것은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다. 이때 전국에 다방이 생겼고 서양의 커피와 홍차도 수입되었다. 일본은 원래부터 우리나라보다 더 서양 문화를 선진 문화로 생각하고 추종했다.
서양에서는 차 문화가 생활의 필요에서 생겨난 평범한 서민 문화인데, 이것을 우리나라에서 잘못 받아들여 마치 선진 문화인 것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우리나라는 서양의 고급 용어를 수입해서 하층 용어로 바꾸는 희한한 버릇이 있다. 미국에서는 미스터라고 하면 학생들이 선생님들에게 붙이는 존칭인데, 우리나랑서는 직함이 없는 아래 직원들을 미스터 김,미스터 리라고 막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마담이라고 하면 상대방에 대한 존칭어이고 귀부인이라는 뜻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마담이라는 프랑스어를 수입해서 거의 술집 여주인이라는 뜻으로 쓴다. 그런데 차에 관해서만큼은 서양 사람들의 일상 문화를 수입해서 고급 문화로 둔갑시켜 버렸다.
이렇게 서양 문화를 모범이자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선진 문화니 후진 문화니 하는
잘못된 용어들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문화에는 선진이고 후진이고가 없다.
최근에는 서양 사람들의 시각도 많이 바뀌어서 문화를 자기네 중심으로만 보지 않는다. 현대
서양의 인류학자들은 아프리카 부족 문화를 과거처럼 원시적이다,야만적이다 이렇게만 보지 않고, 하나으 독자적인 문화로 인정하고 있다. 또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들 중에는 티셔츠에 도 같은 한자어를 크게 그려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젊은이들 중 상당수는 오히려 서양 문화를 향락에 찌든 문화라고 여기고, 동양 문화를 열심히 추구한다. 개중에는 '오리엔트'하면 마냥 신비스럽고 높은 차원의 것으로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종교 광신도처럼 법석을 떠는 일도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어쨋거나 이렇게 서양 사람들의 시각도 바뀌어 가는 즈임에 우리 자신이 우리 문화를 모른다거
나 낯설게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모든 사람이 다 우리 문화를 깊이 연구할 수는 없겠지만,적어도
우리 문화가 어떤 것이구나 하는 것만은 누구나 알아야 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문화가 세게 최고야!"하고 세계 만방에 외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이 너무 지나치면 그런 시각이 나올 수 있는데, 그것은 오히려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아는데 걸림돌이
된다. 그런 편협한 시각은 또다시 선진 문화와 후진 문화를 가르는 잘못된 사고 방식이 되기 쉽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화는 그저 생활의 반영일 뿐,최고도 최저도 없다.
이제부터 우리 문화의 장점들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1.뜨거운 것이 좋아
1080년데 세계 음악 평론가들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있었다. 주최 측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과연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민족 중 리듬이 제일 발달한 미족이 어느 민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물음에 음악 평론가 80퍼센트 이상이 뭐라고 적었는가 하면 '코리언'이라고 적어 냈다.
한국 사람은 이 세상에서 리듬이 제일 발달한 민족이다.그 원인이 뭘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하니까 100퍼센트 모두가 코리언들은 숟가락,젓가락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제일 리듬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 수저를 우습게 보면 큰일난다. 우리 민족이 이것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옛날 임금의 무덤을 발굴 했다 하면,해골바가지는 흙이 되고 없는데 꼭 옆에 누워 있는게 있다. 바로 숟가락과 젓가락이다. 전국 어느 박물관엘 가도 숟가락과 젓가락은 반드시 전시되어 있다.
서양 사람들은 밥을 먹는 데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한다.그러나 포크와 나이프를 서양 사람들이
제대로 사용한 지는 40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 그 전에는 무엇을 사용했을까? 손이다.손으로 음식을 먹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부끄럽다고 감추려고 하는데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는 게 있다. 우리는 아기가 서너 살 되면 턱받침을 떼어 낸다. 하지만 서양사람들은 밥만 먹었다 하면 늙어 죽을 때까지 턱받침을
한다. 손으로 음식을 먹다 보니 질질 흘리는 게 습관이 되어 그런 것이다.
손으로 음식을 섭취했느냐, 아니면 수저를 사용했느냐 하는 문화 요인 하나에서 매우 많은 요소들이 파생된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서양 사람들이 뜨거운 음식을 좋아할까,차가운 음식을 좋아할까?
물론 차가운 것을 좋아한다. 뜨거운 음식은 우선 손으로 집어 들기가 어려운 탓이다. 무엇보다 서양 사람들의 주식인 빵이 그렇다. 빵은 구워내자마다 뜨거운 채 그대로 먹는 게 아니라 한 참 두었다가 손으로 조금씩 떼어 먹는 음식이다.또 서양 사람들은 술을 마시더라도 꼭 얼음을 타서 마신다. 얼음을 타지 않는 맥주는 냉장고 안에서 만든 게 아니면 전혀 맛이 없다. 포도주와 샴폐인은 아에 얼음통에 재워 나와야 좋다고 한다. 겨울철 알프스 산장에서 밖에선 스키 탄다고 난린데 물을 시키면 얼음을 둥둥둥 띄어서 갖다 준다.
이열치열은 있어도 이한치한은 못 들어 보았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찬 음식을 좋아하는 냉식 문화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지구상에서 뜨거운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 민족이다. 같은고기 요리라 해도
서양 사람과 우리는 다르다. 서양 사람들이 즐겨 먹는 스테이크 요리는 우리의 불고기처럼 불기
를 계속 가하면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일단 불에 굽고 나서는 접시에 담아 식혀서 먹는 음식이다.
흔히 고급 레스토랑 같은 델 가면 고기를 많이 익혀 드릴까요,적게 익혀 드릴까요를 묻는데,우리 불고기는 그럴 필요가 없다. 불이 요리판 밑에 계속 있기 때문이다. 설익은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충 익었을 때 집어 먹으면 되고,푹 익은 걸 좋아하는 사람은 완전히 익은 것을 집어 먹으면 된다.
심지어 약간 탄 걸 좋아한다면 태워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양 음식은 요리 따로,식사 따로다. 한번 요리해서는 그 다음에는 식혀서 먹는 것이다. 우리네 음식은 불고기든 찌개든 훨훨 타는 불을 음식 아래 척 갖다 놓고 요리하면서 먹는다.
우리 민족은 뜨거운 음식뿐 아니고 뜨거움 그 자체를 좋아한다. 혼수 50도 가까이 되는 온천에
전 세게 여자들을 홀랑 벗겨서 다 집어 놓고 본다.
10분도 못견디고 다 튀어나오는 데 끝까지 앉아 가지고 "아이고 시원하다"는 사람이 한국 할머니들이다.
우리 할아버지들은 펄펄 끓는 콩나물국을 들이마시면서 "아이고 시원하다"할 만큼 뜨거운 것을
좋아한다. 불에서 끄집어내 가지고도 한참 동안 끓고 있는 뚝배기를 낳은 민족이 바로 우리 민족이다.
이러다 보니 통닭 먹는 방법도 다르다. 어머니들은 솥에서 삶은 닭을 거내 안방까지 뛰다시피
하면서 가지고 들어온다. 그리고 다급히 아이들에게 소리친다
"느그 아부지 어딨나?"
왜?아버지가 먼저 닭 다리를 뜯어야 가족들이 "우-"하고 달려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삶은 닭은 뜨거울 때 먹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우리는 뜨거운 음식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서양 사람들은 어떨가? 서양 사람들은 추수감사절 저녁에 칠면조를 굽는다.오븐에서 칠면조를 끄집어내서는 식탁에 올려놓는다. 초대를 받은 한국 사람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는데 이들은 대체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 뜨거운 걸 못 먹기 때문에.그럼 음식이 식을 때까지 뭘 할까? 기도를 한다.
"하느님 아버지,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신 건 고마운데 와 이리 뜨겁습니까?"
빨리 식게 한참 시도한 다음 5분에서 10분이 경과한 다음에 그때 먹는다. 각 민족에 맞게 체질
화된 식성이 예사롭지 않다.
뭐든지 끓어먹고 우려먹는 국물 문화
손으로 음식을 먹는 서양 사람들을 한 번 더 분석해 보자. 그 사람들은 음식에 물기가 많은 걸
좋아하겠는가. 없는 걸 좋아겠는가? 당연히 없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접시가 발달했다.
우리는 온 음식마다 물기가 있기 때문에 오목한 그릇문화가 발달했다.
한국 사람들이 이토록 물이 많은 걸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번째 이유는 누구나 안다.
여러 식구가 먹어야 하기 때문에 국물이 많은 것이 최상책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농경 민족이기 때문에 육식보다는 채식을 주로 했다.고기 맛을 보는 때는 명절,혼인,생일 등 잔칫날 뿐이었다.가장 적은 고기를 가지고 최대 효과를 볼수 있는 조리법은 뭘까?바로 물에 고기를 집어 넣고 푹 끓이는 것이다. 이렇게 고깃국을 끓여 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데, 재수 좋으면 고기 한 점 있는거고 재수 없으면 국물만 들이키는 거다. 그래도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멸치 비린내 나는 국물조차 먹기 어려웠다.
여기에 대한 고기 대용품이 바로 콩나물과 대파와 무였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시장에서 쇠고기 몇 점을 살 때 꼭 비짓살과 내장을 많이 달라고요구했다. 가난한 살림에 고깃국 끓이는 흉내는 내야겠다고, 그렇다 보니 고기 기름이 둥둥 떠다녀야 되겠기에 무를 많이 썰어 넣었다. 이렇게 끓이다 보면 고기 맛이 무에 배여 고기 맛이 무 맛이 고기 맛 같아 고기 몇 점 없이도 서로가 이해하면서 먹던 그런 시절이었다. 이렇듯 여러 명을 만족시키기는 국물을 많이 끓이는 방법이 최고였다.
이렇게 뭐든지 많이 넣어 가지고 빨리 끓여 내면 국이라 한다. 물을 조금 붓고 빨리 끓여 내면 찌개나
전골,콩나물이나 무를 집어넣으면 조림,찜이 된다. 하나같이 전부 국물이 있다. 이게 바로 우리 고유의 국물 문화다.
우리 민족이 국물을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는 쌀이 특수하기 때문이다. 우리 땅에서 나는 쌀과 중국의
남방을 비롯한 동남아쪽 쌀은 질 자체가 다르다. 우리 것은 찰기가 있고 동남아 것은 찰기가 없다. 그네들의 살은 흔히 말하는 알람미,입에 넣고 아무리 씹어도 퍼석퍼석하기만 한 쌀이다. 입으로 훅 불면 밥알이 확 날아가 버릴 정도이다. 반면에 우리 쌀밥은 물 없이 한 숟가락 퍼넣었다가는 삼키는 데만도 한참 걸린다. 아마 뱃속까지 내려 가는 데 5초는 걸릴 것이다. 그래서 밥을 잘 삼키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밥그릇 옆에다 뭘 두더라,국물을 둔다. 국물의 종류가 세계적으로 제일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다.뭐든지 많이 넣어 가지고 오래 끓이면 이름을 뭐라 붙이더라,
곰이나 탕이라고 한다. 지구상에서 뼈다귀를 고아 먹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인 것이다.
내가 아는 어느 미국인 친구가 곰탕을 먹으러 가서는 물을 보고 깜짝 놀라 싱거운 말을 한 적이 있다.
"어? 뼈에서 흰 물이 나오네."
짐승을 잡으면 고기와 피,가죽,뼈 기름이 나온다.서양 사람들은 가축을 잡으면 고기와 피, 기름은
먹고, 가죽은 말려 두었다가 옷을 만들지만,뼈는 버린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게 뼈다.
하지만 우린 어떤가?우린 뼈를 고기에 못지않게 중시한다. 고기야 달랑 입에 넣고 씹어 삼키면
그뿐이지만,뼈는 솥에 넣고 오랜 시간을 몇 차례씩 끓여 우려 낸다. 소뼈는 설렁탕을 해먹고
돼지뼈는 감자탕을 해먹는다. 이렇게 우려 낸 국물 맛은 서양 사람들이 즐기는 유일한 국물 요리인
스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뼈값이 가장 비싼 곳이 우리나라이다.
이렇다 보니 우리의 메뉴판과 서양의 메뉴판은 이름부터가 사뭇 다르다. 서양 사람들은 음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서 음식 이름을 짓는다. '햄을 첨가한 야채 샐러드' '치즈버거' '햄버거' '에
그버거' 이런 식이다. 그러나 우리의 메뉴판은 국물 일변도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갈비탕'
'우거지국' 순대국밥'이렇게 나간다. 김치찌개라면 이름만 얼핏 보고는, 이 메뉴에는 김치찌개만
나오겠지 하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김지찌개는 그 메뉴의 대표 이름일 뿐이다. 한국 사람 누구나
가 김지찌개를 주문하면 밥과 김치,나물,멸치조림,마늘장아찌 등 반찬이 따로 나온다는 것을 다
안다. 하지만 그래도 이름은 여전히 김치찌개이다.이렇게 여러 가지 반찬들이 나오는 메뉴에 국물을 대표로 내세우는 것만 보아도 우리 민족이 얼마나 국물을 좋아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런 성향이 대대로 핏줄,즉 DNA를 통해서 유전된다. 할아버지도 그렇고,아버지 엄마도 그렇고,
그 다음 손자들까지 똑같은 식성이 하나 있다. 아무리 우리가 세대 간에 좋아하는 음식이 틀리고,
또 요즘 애들이 패스트푸드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똑같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국물을 즐기는 미각이다. 100원짜리 꼬치 하나 막고 국물은 500원어치 퍼마시는 것. 애나 어른이나 이점은 모두 똑같다.
가게 주인도 이렇게 국물을 많이 퍼마시는 것쯤은 질끈 눈감아 준다. 그래서 국물은 아무리 마셔도 공짜다.
우스개 소리 한 대목 하고 넘어가자. 2002년 월드컵 유치 기념으로 각 나라를 애표하는 개들을 전부 초청했단다. 각 나라에서 온 300여 마리의 개들이 잠실 올림픽 축구 경기장에서 왈왈왈 짖고 난리가 났다.
주최 측에서는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갈비를 큼지막하게 쪄가지고 각 나라 개들에게 안겨 주었다.
그랬더니 독일 대표로 온 셰퍼드 이 놈은 갈비를 몇 대씩 먹고,프랑스 대표로 온 푸들은 갈비
위에 올라타서 막 먹느라고 난리다. 그런데 중간에 보니까 누렁개 한 마리가 갈비는 줘도 안 먹고
탁 토라져 앉아 있다. 도우미 아가씨가 쫓아갔다. 어느 나라 개일까 살펴보니까 태극 마크가 달려 있는
우리 똥개다.
" 이 자식아, 니 평생에 어디서 그런 갈비를 얻어 먹겠어! 왜 갈비를 줘도 안 먹어?"
호통을 치니까 이 개가 두 눈을 오끔하게 뜨고 하다는 말이 이거다.
"내 참,국물에 말아 줘야 먹죠."
개마저도 국물에 말아 주어야 밥을 먹는 게 우리나라다. 이렇게 뜨거운 음식과 국물 음식을 너무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 음식 문화에서 수저는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국물 문화 덕분에 수저와 친숙하기 때문에 우리는 수저를 다른 용도로도 사용한다. 서양 관광
객들이 와서 한국 사람들이 병에다가 솓가락을 꽂아 흔들면서 노는 것을 보고 희한하게 여겨 홈
비디오로 찍었다. 그래 가지고 어디다 내놓았고 하나 '풍물 기행 세게를 가다- 한국편'이다. 퀴즈가 나오는디 뭐라고 나올까?
"한국 사람들이 밥을 먹고 난 다음 숟가락은 무엇으로 사용 할까요?"
"마이크!"라고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밥 먹고 나서 숟가락으로 사용하는
용도는 마이크만이 아니다.숟가락을 들고 노래를 불렀다 하면 누가 안 시켜도 전자동으로
어떻게 되는가?들고 두들기기 시작한다.
"저건 서커스야!"
우리 나라와 이웃 일본,중국을 묶어서 인류학자들은 흔히 찰스틱문화권이라고 부른다. 젓가락
을 사용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나의 의견은 다르다. 일본,중국은 찹스틱이 옳지만, 우리는 아니다. 우리에겐 젓가락말고도 숟가락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금 숟가락이 거의 퇴화하고 젓가락만
사용한다. 중국에 가면 젓가락은 크고 숟가락은 매우 작다. 또 숟가락은 음식을 퍼내거나 국물의 맛을
볼 때만 주로 사용하는 점에서 우리와는 다른다. 서양 사람들은 숟가락은 써도 젓가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일단 찹스틱 문화권에서 배제된다. 더욱이 서양 사람들은 숟가락을 수프를 떠먹을 때나 음식을 접시에 덜어 내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는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젓가락과 숟가락을 절반씩 사용해 왔다. 숟가락도 50
퍼센트 사용한다. 하지만,사실은 세게에서 숟가락을 제일 많이 사용하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여자가 결혼할 때 은수저를 중요한 혼수품으로 싸가지고 가는 나라가 우리다. 군대 훈련소에
가서 식기는 여럿이 돌려 먹어도 자기 숟가락 하나만큼은 윗주머니에 딱 꽂고 다니는 나라가 우리다.
밥숟가락에다가 사람이 살고 죽는 걸 표현하는 나라도 우리밖에 없다.
"김서방네 집에 밥숟가락 하나 늘었단다."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리다.
"김서방 할아버지가 오늘 아침에 밥숟가락 놓아 버렸단다."
돌아가셨다는 소리다.
그래서 우리는 찹스틱 문화권이 아니고,우리민족은 '스푼 찹스틱 문화권'이다. 우리는 지구상
의 어떤 민족도 절대 못 따라오는 동작을 매일매일 사용하고 있다. 바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놀리는 솜씨다.
유명한 '대지'의 작가 펄벅 여사가 1960년 우리나라에 관광을 왔다. 경주엘 갔는데 불국사를
구경하고 나와서도 별 감흥이 없다. 그런데 한식집에 가서 밥을 먹다가 갑자기 옆자리 다섯 살
짜리 꼬마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동작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저건 서커스야!"하고 고함을 질렀다. 우리 민족의 가능성이 바로 여기 있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힘이다.
세계에서 우리밖에 못하는 것이 바로 한 손에 숟가락과 젓락 두 개를 들고 밥 먹는 것이다. 일본,중국 사람들은 밥을 먹는 도중에라도 숟가락을 쓰지 않을 때는 꼭 밥상에 내려놓는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밥 먹는 도중에는 수저를 절대 밥상에 내려놓지 않는다. 국그릇,밥그릇에 걸어 놓는다. 만약 멋모르고 밥상에 내려놓아 버리면 며느리가 들어와서 "아버님 진지 많이 드셨습니까"하고 밥상을 내가 버린다. 밥 다 먹었다는 표시가 숟가락을 밥상에 내려놓는 것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제삿날 나타나서 밥 위에 꽂아 놓고 딴 일 보지 절대 밥상에 내려놓지 않는다.
펄벅 여사를 감동시킨 동작은 바로 이것이었다. 다섯 살짜리 꼬마가 젓가락을 가지고 번개같이
동굴동굴한 콩알을 콕 집어서는 입에 쏙 넣는 것이다. 젓가락질 한 번만에 콩을 집어먹을 수 있는 민족은 결코 흔하지 않다. 우린 심지어 국물에 빠져 있는 머리카락 한 올조차도 젓가락으로 건져낼 수 있다.
언젠가 한 번 미국인 손님을 한식집에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막걸리에 도토리묵을 반주로 곁들였다.
이 손님은 부들부들한 도토리묵을 우리가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것을 보고는 미국에 가서 쇼를 하자고 난리다. 결국 그 손님은 젓가락으로 도토리묵을 집지도 못하니까 솓가락으로 양념 간장까지 퍼 먹고는 너무 짜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면 우리는 왜 젓가락질이 발달했을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전 세계 어느 민족이나 식사 문화를 보면 거의 다 두 손을 사용한다.
서양 사람들은 포크와 나이프를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식사한다. 한 손만 사용하는 부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하나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고 그 다음 알라신을 믿는 회교 문화권 민족들이다.
회교에서 왼손은 악마의 손이 라고 해서 그 사람들은 왼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손으로 하는 건 우리가 세계 최고
그러면 이웃인 중국이나 일본과 우리를 한 번 비교해 보자. 그 사람들도 두 손을 사용한다. 숟가락을
쓰지 않는데 왜 두 손을 사용할까? 그 사람들은 왼손에 밥그릇을 받쳐들기 때문이다. 왼손에는 밥그릇,오른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지 않으니 자연 밥알을 흘리기 쉽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밥을 흘리지 않으려고 밥그릇을 입 바로 앞에 가져다 놓고 먹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 식사 예절에서는 금기시되는 쩝쩝 소리를 피할 수 없다. 이 쩝쩝,찹찹 소리를 듣고 서양 사람들이 젓가락을 찹스틱이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왼손에 밥그릇을 들 수가 없다. 왜? 뜨거워서다.
일본,중국 사람들과 우리와는 또 재미있는 차이가 있다. 이 사람들은 밥이 반찬 쪽으로 건너간
다. 팔을 길게 내밀고 반찬을 밥 위에 주섬주섬 얹어서 입 가까이로 가져와서는 젓가락으로 퍼먹
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뜨거운 밥그릇을 손으로 받쳐들 수 없으니까 반대로 반찬이 밥 쪽으로 건너온다.
그렇다면 문제를 내보자, 젓가락질은 밥이 반찬 쪽으로 가는 사람이 잘하겠는가,반찬이 밥 쪽
으로 오는 사람이 잘하겠는가? 우리가 훨씬 젓가락질을 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자, 한 손에 수저를 모두 들고 사용하면 할 일 없이 노는 손이 아나 생긴다. 왼손이 놀기 때문
에 우리 민족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 그게 뭘까? 바로 쌈이다. 우리는 야채가 넙적하다
싶으면 왼손에 놓고 쌈을 싸먹는다. 상추는 물론 배추잎이나 깻잎 ,호박잎 등등 이파리란 이파리
는 모두 쌈으로 이용한다.
서양 사람이나 중국,일본 사람처럼 두 손이 바쁜 민족은 쌈밥을 먹기가 불가능하지만,우린 왼손이 놀기 때문에 쌈을 싸먹을 수 있다. 무너든지 닥치는 대로 얹어 놓고 된장만 가져다 바르면 쌈밥이 된다.
노는 손의 용도가 어디 그뿐이랴? 노는 왼손은 여러 가지 제스처를 위하면서 식사 중 대화의 흥취를 돋우는 데 한몫 단단히 거든다. 두손에 식사 도구를 단단히 붙잡고 목에 턱받이를 하는 사람들은 하고 싶어도 재미있고 신나는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 이야기를 한답시고 포크와 나이프를 든 손을 마음대로 휘두르면 욕먹는다. 하지만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도 비어 있는 왼손을 보조 수단으로 삼아 생생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젓가락질을 잘하다 보니까 한국 사람들은 손가락 근육 자체가 세계에서 최고로 발달하게
되었다. 간다한 예를 들어 보자.우린 누구나 다섯 손가락 중에서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구부려
서로 맞닿게 할 수 있다, 섬척동자도 하는 일이지만,서양 사람들은 이거 못 만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퇴화가 되어 버린 탓이다. 우리는 손가락을 계속 사용해 왔기 때문에 가능하다.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을 저절로 퇴화한다 발가락을 한 번 보자.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발가락은 큰형님밖에 없다.
발가락 큰형님이 움직이면 사형제가 같이 꼬물락꼬물락거리고 따로는 못 움직인다. 그러나 우리의 손가락 근육은 아직도 펄펄 살아 있다.
손가락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근육은 한국 사람이 세계에서 최고로 발달했다. 그래서 손 갖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 잘한다. 첫 번째, 쥐는 힘이 세계 최고다. 쥐는 것과 관련된 운동 경기에서
은메달 따면 우린 섭섭하게 생각한다. 유도,레슬링 경기 예선전에서 대진 추첨을 할 때 '코리아'
하면 저쪽 편에서는 "아이고 머리야!"곡소리가 난다. 그래서 자기 선수들 불러 놓고 한다는 말이 이거다.
"저 한국 사람들한텐 잡혔다 하면 끝장난다. 무조건 도망다니면서 기회를 엿봐라."
도망을 다니다 다니다 당하는 것이 있다. 빠떼루다. 이렇게 유도나 레슬링 같은 경기에서는 쥐
는 힘이 강한 우리가 강세를 보인다.
두 번째로 우리는 겨냥하는 것이 세계 최고다. 던지거나 쏘았다 하면 백발백중이다.겨냥하는
건 손이 아니라 눈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눈으로는
누구나 과녁에 정확하게 겨눌 수 있다. 중요한 건 손으로 활을 꼭 쥐고 흔들림이 없게 하는 거다.
따라서 양궁에서도 손이 가장 중요하다.
원래 양궁 경기는 50미터였는데 애틀랜타 올림칙 때부터 20미터를 늘려서 70미터로 하고 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일까? 한국 사람들에게 질투가 나서 그렇다.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잘 맞추니까
"에라 모르겠다. 우리가 못 먹는 밥인데 너희들도 먹지 마라!"이래서 거리를 늘린 것이다. 양궁 경기장의 과녁 안에 설치된 소형 카메라는 굉장히 비싼 카메라다. 그것은 과녁 한가운데 설치하면서 이랬단다.
"설마 인간이 70미터 거리에서 여길 맞출 수 있겠어?"
그런데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카메라 두 대를 박살내 버렸다. 그런 능력을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개개인이 모두 겨냥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화투판에서 화투
를 딱 들고 "자 똥광 받아라!"겨냉을 마음먹고 안해도 똥 쌍피가 철커덕 들어맞는다. 머리가 "조
건을 맞춰라" 명령만 하념 손이 알아서 다 한다. 이렇게 겨냥을 너무 잘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총을 다루는 군사,활을 다루는 군사,창을 다루는 군사, 포를 다루는 군사들 외에 투석꾼이라하여 돌을 잘 던지는 군대가 있었는데, 그 위력이 대단했다 한다.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이고 돌이니 모았다 하면 무기였을 테고, 또 옛날에는 웬만한 사냥도 돌로 했으니 마음먹은 목표물을 잘 맞추는 그 능력은 저절로 생긴게 아닐 것이다.
머리도 빗고 이도 잡고
손의 감각이 발달하다 보니까 자연히 더불어 발달하는 게 있다. 바로 촉감이다. 촉감이 세계에서 제일 발달한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바로 한국 여자들이다. 한국 여자들 촉감은 세게 최고다.
1980년대 세계 산업을 선도했던 반도체 D램 생산국 1위가 바로 우리나라다. 우리나라의 공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정밀해지면 정밀해질수록 세계 최고의 손 촉감이 더욱 빛을 낸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무 하나와 칼 하나씩 주어서 국제 채썰기 대회를 열어 보자. 얇게 써는 사람이 우승하는 거다. 이런 대회가 열린다면 한국 할머니들이 전부 금메달을 따올 것이다.
새댁들은 보고 썰지만 묵은댁들이나 할머니들은 보지도 않고 썬다."야야 ,솥에 밥물 넘는다." 눈은 이것저것 다 보면서도 손은 여전히 채를 썬다.
왜 한국 여인네들이 촉감이 발달되었을까? 그 이유가 있다. 문화에는 항상 원인이 있다. 수천 년을 사용해 오다가 불과 수십년 저에 손을 놓은 참빗이 한 예다. 참빗으로 머리를 빗던 우리 할머니를 한 번 기억해 보자.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할머니가 하는 첫 작업이 있다. 어두컴컴한 방에 앚아 가지고 참빗으로 머리를 빗다가 뭐를 잡는다? 그 와중에 세가리(이)를 잡아 낸다. 이걸 시각도 청각도 아닌 바로 촉감으로 가지고 잡는다. 사실 시각이나 청각을 쓸 수도 없는 것이, 이 이라는 놈은 몸길이가 2-3밀리밖에 안되닌까 새벽녘의 어둠속에는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피를 빨 때 요란하게 소리를 내는 놈도 아니다.
촉감,이 위대한 촉감을 가지고 지구상에서 우리 민족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이 잡는 것말고는 또 있다. 바로 병아리 암수 구별하는 일이다. 서양 감별사는 암수 구별을 잘 못한다. 그네들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면 암수 구별을 하기 위해 커다란 돋보기를 들이대고 열심히 살펴보지만 봐도 모른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병아리를 한 손에 쓰윽 잡고 밑을 한 번 흝으며 말한다.
"어 걸리네,수탉!아이고 미끄러지네,암닭!"
이렇게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조상들 대대로 핏속에 우리 삶의 원리로,DNA로 딱 정해진 것이 하나 있다. 무엇이냐 하면 국토는 좁고 자원도 부족 하지만 손발만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먹고 살 수 있다는 피가 흐른다는 얘기다.
세계를 놀라게 한 60,7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에서 풍부한 노동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노동력이라고 하면 중국만큼 많은 나라가 없다.
지금 중국도 노동력을 밑받침으로 경제 성장을 게속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력이라고 다 같은 노동력이
아니다. 실 한 오라기 만져 보고 불량을 척척 판별해 내는 60,70년대 우리 여성 노동자들은
위대한 촉감 능력을 천부적으로 타고난 질 좋은 노동력이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데 요즘 청소년들도 그 이야기에 해당할까?혹시 그 탁월한 60,70년대의
촉감 능력이 요즘 아이들에게서 사라지진 않았을까?그런데 미안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 한 번 보자.
오늘 당장 아이들의 공부방 문을 열어 보자. 서양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 공부하는 걸 보면 놀라 자빠질 것이다. 눈으로 공부하고,귀로는 이어폰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입으로는 짝짝거리면 껌을 씹는다.
손에는 무슨 먹고 살 거라도 볼펜을 빙빙 돌리고,책상 밑 다리는 빠른 속도로 달달거리면서 공부한다. 펄벅 여사가 아직도 살아서 이 광경을 보았다면 또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이건 완전히 서커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