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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iversity of Edinburgh ( 에딘버러 대학교 )
*. New College (에딘버러 대학 신학부 전경)
에딘버러는 오랫동안 스코틀랜드의 수도였기에 인접한 글라스고우, 아버딘과 함께 예부터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중심도시다. 북쪽의 아덴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도시에는 왕이 통치하며 기거했던 성이 중심에 있고 돌로 지어진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고풍스러운 데다가 사업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도시 계획을 하여 주요건물을 보존해 왔기 에 도시 곳곳은 역사적 유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를 보려면 에딘버러를 보아야 한다는 말이 실감나게 된다.
인종적으로도 다르다. 스콧, 스코트맨, 스코티시 (Scot, Scotman, Scottish)라고 불리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잉글리시 또nglish)라고 불리는 잉글랜드 사람들과는 달리 에이레, 웨일즈에 사는 사람들처럼 셀틱(Celtic) 종족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중세 수도원 운동의 발상지인 에이레사람 콜롬바 (Columba)라는 인물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어 오늘날의 셀틱 기독교권 (Celtic Christianity)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리적, 정치적. 인종적, 종교적 영향으로 인해 남쪽 잉글랜드에서는 로마 카톨릭의 영향을 받다가 나중에 독립한 성공회(The Anglican Church)가 북쪽 스코틀랜드에서는 칼빈, 루터 등에 의해 주도된 개혁교회와 궤를 같이하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탄생하게 된다. 오늘날 스코틀랜드 교회 (Church of Scotland)라고 불리는 교단은 곧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라 이름을 교단 이름에 넣은 장로교단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스코틀랜드에서 영미권 특유의 장로교단이 형성되어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예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은 1647년 신학교와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준비되어 많은 장로교회가 신앙규범으로 채택했으며 우리나라 장로교 헌법에도 이판을 수록하고 있다. 에던버러대학 신과대학, 뉴칼리지의 역 아이런 장로교 전통 위에 세워진 신학교가 오늘날의 에딘버러대학 신학부이다. 행정적으로 속해있는 에딘버러대학은 어떤 대학인가? 1583년 제임스 6세에 의해 세워져 밭전된 대학으로 철학자 데이빗 흄 9. Hume), 문호 월터 스코트 (W. Scott) , 스티븐슨 (R. Ste-venson)등을 배출했고 2314명의 전임교수와12,000여의 학부생, 3500명의 대학원생이 연구하고 있는 학교다. 영국의 오십여 크고 작은 종합대학 중 하나로 신학, 인문과학, 사회과학, 법학, 의학, 수의학, 자연대학, 공학, 음악 등 120여 과로 구성된 종합대학 (TheUniversity of Edinburgh)"1다.
*. 신학부 입구
그러면 신학대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1846년6월 3일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목사요 개혁자였던 토마스 차머 (Thomas Chalmers)가 뉴칼리지의 초석을 세우고 올바른 신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설교를 한 뒤 시작되었다. 뉴칼리지 (New College)라고 불리는 고색창연한 신학부 건물은 에딘버러 성이 있는 언덕 위에 있고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상설 총회 회의장 The Assembly Hall)이 학교 안에 있어 교단과의 밀접한 유대를 보여준다. 매년 총회가 모이면 전통적인 의상을 입은 회장단과 일련의 대표들이 입장하고 여왕은 축하사절을 보내는 전통의식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어 개혁초기에는 어땠을까 궁금하게 만든다.
*. 정면이 Assembly Hall 입구
신학대학이 가진 이런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오늘날도 개혁자들의 신앙과 전통을 이어받기를 원하는 신앙의 순례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존 녹스가 개혁을 주도했고 시무했던 세인트 자일즈(St. Giles) 교회가 50여 미터 떨어진 구시가지에 있다. St. Giles Church *. 신학부 안에 있는 John Knox 의 동상
또한 왕의 권세에 반대하여 신앙의 자유를 지키다 순교한 계약자 Cfhe Covenanters)들과 개혁을 위해 애쓰고 핍박받던 많은 사람들의 역사가 곳곳에 숨쉬고 있는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서 더 그렇다. 재미있는 것은 개교 이래로 지금까지 학교를 이끌어온 학장, 교장, 교수들의 초상화를 학교 세미나실과 총회회의장 등 곳곳에 걸어놓아 과연 영국은 전통을 중시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 역대 학장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Rainy Hall (여기서는 주로 식사와 공동 모임 등이 열린다)
(위의 사진을 제외한 글은 목회와 학 94년 6월호에 나오는 것을 인용하였다. 글쓴이는 최재덕이다) |
*. 9월 셋째 주 개강 공동 세미나 (이 세미나는 신입생 뿐만 아니라 교수와 모든 학생들이 참여 한다. 그만큼 Opening 세미나를 맡은 사람은 나름대로 학문적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 신학부 건물의 뒷모습.
*. 신학기 첫 채플이다. 채플의 집례는 교수님들이나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목사님들이 맡아서 한다. 저기 서 계신 분이 이 날 개강 예배에 초빙된 St. Giles 의 담임 목사님이다.)
*. 개강 채플 후 공동식사. 일년에 딱 두 번 있는 공동 식사 (이것만은 공짜다. 참고로 여기서 공짜 음식을 대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 일반적으로 수업 받는 강의실 (이 강의실 이름이 Senate Room 이다.) 좀 이른 시간이라 아직 학생들이 다 안 왔지만 보통 대학원 세미나 수업은 10 명 내외로 이루어 진다.
*. 음악대학 건물.
내가 살던 기숙사 Churchill House (에딘버러 대학에는 거대한 기숙사 단지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이런 단독 빌딩이나 일반적인 집들을 얻어 기숙사로 쓰고 있다. 방도 작지만 더구나 방값이 너무 비싼 것이 문제다.)
*. 처음 들어간 기숙사 방. 일인용이다. 들어가니 이런 구조로 정렬되어 있었다. 저기 보이는 밥통. 저거 여기서는 구하기 힘들다. 당연히 한국서 가져왔다. 내 생명줄이다.
*. 다시 정렬한 기숙사의 내부. 좁지만 가장 큰 장점은 조용하고 난방이 잘 된다는 것. 그리고, 방 안에 화장실과 샤워룸이 함께 있다. (이거는 옵션이다)
*. 키친과 식당. 한 통로에 보통 5-10명 정도의 학생들이 거주한다. 이들이 이 부엌과 식당을 함께 쓴다. 이 기숙사는 모두 대학원생들로 되어 있다. 시설은 좋은 편이지만 뭔가 아쉬움과 썰렁함이 많이 드는 공간이다.
*. 또다른 기숙사 건물. 아기없는 부부들이 주로 사는 기숙사다. Pollock Hall 이라고 기숙사 단지 안에 있지만, 이건 오래된 건물이다.
*. 기숙사 입구 정문에 붙여진 작품. 저 작품 밑에 이렇게 적혀 있다. "let my bood be a seed of freedom and a sign that hope will soon be a reality." 누구 글이냐고? 1980년에 남미에서 순교한 로메로 주교가 새긴 글이다.
*. 여긴 에딘버러 대학 전체 학생들이 함께 사용하는 Main Library 이다. 물론 각 단과대학 도서관 역시 따로 있다. 미국이든 영국이든 도서관이 잘 되 있다는 것이 결국 대학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 대출 및 안내를 해 주는 Desks.
*. 끝없이 늘어선 서고. 이런게 전체 층을 꽉 메우고 있다.
*. 여긴 컴퓨터 랩이라기 보다는 주로 인터넷 검색이나 도서를 찾는 것만 하는 곳이다. 아직도 CRT 모니터를 사용하냐고? 첨단 기술 보급에 둔한 영국이 이런거에 서두를 리가 없다. 요 앞에 보이는 학생...졸고 있는 거 같다. 참고로 유럽 학생들 한국처럼 책상에 엎어져 자는 거 보기 무지 힘들다. ?告?? 졸리면 무조건 나가 버리는 게 그들의 주요 행태이지만 요 앞의 이친구...좀 다르다.
*. 그래도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곳은 모두 LCD 를 사용한다. 바깥의 자연을 보면서 저 곳에 앉아 책을 보는 기분이.....
*. 내 지도교수의 집에 있는 서고. 교수님은 가끔 자기 집으로 학생들을 불러 식사를 함께 한다. 채식주의자라 나같은 사람 가면 돌아와 또 밥먹기 바쁘지만, 그래도 일년에 한 두 번은 꼭 가는 그의 집이 이제는 친숙하기까지 하다.
*.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에게서 개인적으로 지도받는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이 모두 모였다. 저 뒤 풍선을 머리에 이고 있는 분이 교수님이다. 플래쉬 불빛을 매우 싫어해서 사진찍을 때마다 눈을 감는단다.
2005년 9월 14일에 이곳에 도착하고 벌써 일년이 넘었다. 무엇을 공부하러 왔다기 보다 어쩌면 내가 누구인지 알려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전통과 자존심이 지나칠 정도로 엄습해 오는 이런 곳에서 내가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배우고 가야 하는가....때때로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늘 그렇지만, 역시 결론은 대학 자체에 대한 기대보다는 인간에 대한 기대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처음부터 유명한 대학은 없었다. 그보다는 위대한 사람이 훌륭한 대학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나타났다 없어지는 그런 대학이 안되는 것은 바로 누군가가 대학의 존재를 가치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리라.......
학교당국의 소개 내용(원문)
New College
New College, Mound Place,
Edinburgh, EH1 2LX.
In 1846 Dr Thomas Chalmers of the Free Church and first Principal of its new College, laid the foundation stone of the imposing twin-towered building overlooking the Mound and Princes Street. The Faculty of Divinity moved here in 1935-37. Gothic library and panelled Rainy Hall are both imposing.
PD Venue partially accessible to the disabled
WCD Toilets adapted for the disabled
New College is home to the School of Divinity at the University of Edinburgh. The College shares its site with the General Assembly Hall, the main meeting venue of the Church of Scotland. Over its history Edinburgh has been one of the world’s leading centres of Reformed theology, and has been home to distinguished theologians such as HR Mackintosh, John Baillie, TF Torrance and John McIntyre, and influential biblical scholars and expositors such as James S. Stewart and James Barr.
The site on the Mound, in the centre of Edinburgh, was purchased in 1844 for £10,000. The celebrated Edinburgh Architect William Henry Playfair designed the buildings, to be an imposing edifice in a prominent part of the capital, and an expression of the confidence of the Free Church. The plan was to provide accommodation for a full university. The cost of the building was raised largely from donations by Free Church members, particularly the Free Church congregation in the Old Town, in return for including a church (now New College Library) among the new buildings. The College's distinguished first principal, Thomas Chalmers laid the buildings foundation stone on 3 June 1846, and it opened to professors and students in 1850.
Those marked with an asterisk (*) have restricted access throughout the year.
Bronze Statue of John Knox
Sculpted by John Hutchinson in 1895, it was originally sited on the Mound. In the 1930s the statue was moved into New College Quad.
The General Assembly Hall / Interim Site of Scottish Parliament *
The College shares its site with the Church of Scotland’s Assembly Hall, where its General Assembly meets. In 1858-9 David Bryce designed this capacious Assembly Hall for the Free Church of Scotland. Since 1929 the hall has been the venue in May each year for the General Assembly of the Church of Scotland. It is also used for other large gatherings and for theatrical events, etc., often during the 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It contains a multi-tiered and galleried interior, and an impressive black and white marble corridor.
The Rainy Hall
This was not part of the original New College, but was built in 1900 to mark the jubilee of the College’s opening in 1850. Perhaps the nearest thing Edinburgh possesses to an Oxbridge college dining hall, it was intended as refectory for the College community. It has since had many other uses but today is once again the main meeting and eating place for New College students. It bears the name of Robert Rainy, appointed Principal in 1874 and Moderator of the first General Assembly of the United Free Church in 1900. Noteworthy are the plaque commemorating Rainy, the coats of arms on all four walls, and the painting hung on the southern wall of Iona Abbey before its restoration.
The Senate Room *
This is the main meeting room of New College Senate and the School of Divinity. From its walls hang impressive portraits of some of the College’s distinguished former Principals and Professors.
New College Library
As is obvious to anyone who enters the Library, this was originally a church - the Free High Church. It was vacated by its members in 1934. The earth beneath the church floor was excavated to build three stackrooms which are used by the library. Many delicate wood carvings adorn the library fittings. The stained glass windows, designed by Dr Douglas Strachan, were completed between 1911 and 1934. The Library holds around 235,000 volumes, including many rare and valuable ones, giving it a leading position among theological libraries in Britain. A separate leaflet is available from the Library desk.
The Martin Hall *
The Hall was named after Alexander Martin, Principal of the College and influential in the Union of the United Free Church with the Church of Scotland, in 1929. The signing of this union took place in the hall.
첫댓글 손목사님, 멋지고, 감동적이네요. 우리가 이런 곳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다듬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가슴이 찡해 오는군요. 멋진 사진 감사합니다.
손목사님이 사진기를 매일 들고 다니는 진짜이유를 오늘에야 알았다. 그 북한공작원들이 가지고 다니는 듯 싶은 검은 가방에서 이런 작품을 창출하시다니 손목사님 검은 가방 다시 봐야 겠네요^^
와아~좋은 정보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