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천 억새 소리> 최용순
서울에서는 잠실 한강 둔치를 자주 찾았는데 이곳 분당에 온 후로는 탄천을 자주 찾는다. 탄천에서는 서울에서 보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자주 만난다. 새로운 만남 때문일까. 흩날리는 꽃보라 속을 거닐 때나, 풀벌레 소리를 음미하며 거닐 때나, 불곡산 단풍을 탐닉하며 거닐 때나, 눈밭을 거닐 때나, 나는 언제나 탄천을 온 몸으로 사랑한다. 탄천은 행복을 가까이 두고, 행복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행복의 나라로 초대한다. 그 중에도 외로움에 흔들리는 억새가 칼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타성에 젖어 무디어진 나의 의욕을 자극하여 좋다.
외로움에 흔들리는 것이 어디 억새뿐이겠는가. 이 세상은 모두 외롭다. 혼자 있는 사람도, 잘 나가는 사람도, 잘 사는 사람도, 누구랄 것 없이 외롭다. 동병상련이랄까. 억새의 외로움을 나는 잘 안다. 나도 찾는 이 없이 지리한 밤을 외로움에 눈물 흘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억새가 흔들리는 까닭도 잘 안다. 나도 가끔은 홀로 밤을 지새며 잠 못 이루고 뒤척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람이란 잔정을 털어버리지 못하여 미련에 흔들리고, 쓸데없이 알량한 이해타산에 흔들리고, 때로는 지난 일에 대한 후회의 정에 흔들린다고나 할까.
그래도 나는 외로움을 사랑한다. 외로움 때문에 더 열심히 살고, 외로움 때문에 뜨거운 사랑을 하고, 외로움 때문에 남의 일에 눈물도 흘리고, 다른 사람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위안을 느낀다. 아플 정도로 외로운 만큼 영혼은 성숙한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외로움을 사랑한다.
이 세상 그 무엇이든 살아있는 것은 존재이유가 있기 마련인가 보다. 사랑이란 것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아픔도 외로움도 없으리라. 그러나 내 뜻과는 상관없이 억새가 흔들리듯이 조금씩 흔들리며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해만 뜨면 사라지는 아침이슬이나 다름없는 인생인 것을 마치 영원을 누릴 것처럼 내것, 내것 하며 얼마나 안달복달하는가. 그렇지만 습관처럼 뉘우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자신을 추스르는 것을 생각하면 그나마도 다행스럽다. 이 나이가 되도록 별로 자랑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착하게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며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지금의 나를 허락하였으리라 믿어 마음으로 감사한다. 그러므로 남은 삶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쉼없이 기도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보니 오늘이 절집 스님들이 동안거에 들어가는 음력 시월 보름이다. 인도에서는 수행하기 어려운 여름 3개월 간 한곳에 머물면서 수행에 힘쓰는 하안거(음력 4월 보름 ~ 7월 보름)가 있었는데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기후관계로 동안거를 하게 되었다. 참선에 들고, 독경도 하며 정진하기를 석 달이면 동안거는 끝나고, 만행(여행을 통하여 보고, 깨닫는 것)을 떠난다. 한곳에 오래 머물면 정이 들고, 정이 깊으면 미련을 남기고, 미련은 수행자를 욕정의 늪에 빠지게 한다고 믿으므로 석 달 이상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쓸데없는 기우인 것 같지만 지금도 여전히 지켜진다. 그런데 동안거는 불교도만이 아니라 지구촌 사람들이 하나같이 관심을 가지는가 보다. 방법은 다른지 모르지만 마이크로 소프트 빌게이츠도 동안거를 한다. 이와같이 동안거는 종교 종파를 넘어 자신을 살펴보는 자아성찰의 힐링캠프로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 더불어 사는 것이 우리가 자칫 놓치기 쉬운 사랑과 행복이 아닐까. 세상이 각박할수록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나는 가끔은 구속된 현실에서 일탈하여 거듭나기를 꿈꾼다. 한번 뿐인 삶 스스로 섬기며 물욕과 번민에 악착하지 않고 허공을 누비는 새들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고 싶다.
김순이는 억새의 노래 <너는 기도할 때>에서
“너는 기도할 때 눈을 감지만/ 나는 기도할 때 몸을 흔든다/ 너는 기도할 때 눈을 감지만/ 나는 기도할 때 몸을 흔든다.// 빛이 그림자를 안고 있듯이/ 밤이 새벽을 열어 주듯이/ 그렇게 나도/ 그렇게 나도/ 눈부신 것 하나쯤/ 눈부신 것 하나쯤/ 지니고 싶어/ 지니고 싶어 /바람에 흔들리며/ 바람에 흔들리며/ 기도한다 온 몸으로/ 기도한다 온 몸으로//”라고 노래했다.
나도 억새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그리움에 병든 세월 벗겨 주시옵고, 마음의 허물을 씻어주시옵기를 온몸으로 간절히 기도하리라.
바람이 차다. 그러나 억새에 착 달라붙어 흔들어대는 칼바람도 찾아드는 봄기운을 어쩌지는 못하리라. 저 통한의 억새 소리도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을 몰고 오겠지.(2012. 12. 11)
첫댓글 감사합니다.
외로움에 흔들리는 억새와 갈대!
그러나 꺾이지 않는 이유를 글에서 알게 됩니다.
외로움 때문에 더 열심히 살고, 외로움 때문에 뜨거운 사랑을 하며 존재의 이유를 갖는 긍정의 삶이 감동을 줍니다.
정호승님의 강연에서 외로움은 가장 가까운(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느끼게 된다는 말이 생각나는 시간입니다. 결국 외로움과 사랑은 이질적인 듯하면서도 동질적인가 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용순님, 탄천억새와 벗하는 님의 상념을 살짝 엿보니,
여인네 감성이 무색하리만큼 秀麗합니다.
탄천갈대에 묻혀 지낸 님의 겨울이 분명 통한의 몸짓만으로
刻印되진 않았을 거란 것쯤은 믿고 있지요
'강릉가는길'이 함께 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