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윈도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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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뻐근 거리는 몸을 지탱한 채 부엌으로 향했다. 어제 집에 오면서 있었던 일들을 다시 되뇌고 되뇌어도, 그저 나의 착각일 뿐 우리 사이는 바뀌는 게 없었다. 서로 연애에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인데, 어떻게 서로한테 관심이 생기겠냐고. 그저 나에겐 한없이 넘치는 착각일 뿐, 바뀌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아, 바뀔 거면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
"잘 주무셨나요?"
"네."
"아, 그럼 이제 일.."
"갈 거예요."
"아, 네."
나도 모르게 심술을 부리게 되었다. 어제 있었던 일이 나에게는 너무 컸는지, 이 사람과 자연스럽게 선을 긋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먼저 선을 그은 게 아니라 저 사람이 먼저 그은 건데.
"이제 별로 안 남았네요."
"뭐가요?"
"결혼이요. 저희."
"아.. 그러게요."
"그때만 끝나면 편하겠네요."
"네?"
뭐가 편해진다는 걸까, 어제와 같은 생각으로 나한테 그렇게 얘기를 한 거겠지, 결혼식만 끝나면 그 사람은 연기를 해야 할 상황이 줄어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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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축하해!"
"고마워.. ㅎ."
"축하한다."
"고마워."
어쩌면, 결혼을 하고자 했던 이유가 어쩌면. 내가 사랑해서 한 거면 행복했을까, 거짓으로 하는 결혼에 행복해하며 축하한다는 말을 듣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식 시간이 다가오자, 혼자 앉아있던 나에게 다가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조심스레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여주야."
"응?"
"행복하니?"
"어? 엄마 무슨 소리야 당연히 행복하지."
"그치.. 근데 왜 엄만 여주가 안 행복해 보일까?"
"... 무슨 소리야 긴장해서 그래."
"여주야. 결혼이 무조건 행복하다는 이유는 없어. 행복함을 얻어서 결혼하기도 하겠지만, 결혼이 무조건 행복의 끝이 아니야. 많은 사람들은 결혼을 할 때, 그 사람이 좋아서,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이 사람이 없으면 안 되겠기에.. 이런 이유들도 있겠지만, 이 사람과 목표를 만들고 싶어서..라는 이유도 있어. 얻는 게 두 가지라는 거야 행복 그리고 목표."
"..."
"여주는 결혼을 함으로써 행복을 얻었니? 아님 .. 목표를 얻었니?"
엄마의 말을 듣고 난 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결혼은 행복으로 이루어지는 거라 느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걸 결혼을 하고서야 느꼈다. 내가 사랑해서 하는 결혼이 아닌, 그저 나의 득과 그 사람의 득을 위한 결혼으로, 결혼의 의미를 알았다. 그리고 제일 서글펐던 이유는 나는 행복도 목표도 이룬 게 없었으니까,
"여주야."
"응..."
"꼭 행복하렴, 넌 변서방이랑 행복할 거야."
"..."
"결혼 축하한다 우리 딸."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식에서 나는 나가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숙여 울기만 했다. 엄마의 말이 무슨 의미인 건지. 왠지 엄마는 내가 백현씨와 어떻게 결혼을 했는지 꼭 아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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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씨. 이제 가야 해요. 그만 울어요..."
".. 네.."
쉽게 그치지 않는 이 울음을 억지로 그치려고 하니까 더 힘들게만 느껴졌다. 원래는 잘 울지 않았던 나였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눈물이 미친 듯이 흐르는 건지, 진짜 다가오는 식 시간을 이제 더 이상 감당이 안 될 정도인데.
"여주씨."
"..."
"제가 옆에 있어줄게요. 어서 가요."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건 백현씨었다. 그때 이후로 사이가 그렇게 좋았던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매번 피하긴 했지만 좋지는 않았던 우리 사이에 있는 벽을 뚫고 백현씨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거 같았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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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었던 것과는 달리 성공적으로 끝낸 우리의 결혼식은 만족스러웠다. 대기실에서 울었을 때를 제외한 나머지는 절대 울지 않았다. 강해 보여야 했으니까, 이제 홀몸이 아닌, 거짓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도.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신혼여행은 진짜 안가?"
"나중에 가죠 뭐."
"그치 요즘은 바로바로 안 간다잖아."
"그치 ~ "
"오늘 고생했고 진짜 부부네! 우리 시누이 마지막으로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변서방.. 우리 여주 잘 부탁해요."
"네. 제가 꼭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정말로 끝나버린 결혼식은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왠지 모르게 정적만이 흘렀다. 아마도 아까 운 것에 대한 궁금증을 대놓고 물어볼 순 없겠지.
"저.. 아까는 고마웠어요."
"아.. 울 때 말하는 건가요?"
"네... 그때 와주셔서."
"뭐.. 그야 빨리 결혼식이 진행도 돼야 하고.."
"네?"
"다들 기다리시니까요."
"... 그렇죠, 다들 기다리시겠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이 사람은 정말 자신만을 생각하는 거 같다. 우는 사람이 앞에 있는데 식 진행이 먼저 떠올랐다니, 그 잠깐 내민 손을 따듯하게 받아들인 나는 뭐가 돼버리는 걸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앞만 보고 운전하는 백현 씨를 향해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입이 열기 전에 문득 떠오르는 단어에 말을 먹게 된다. 그 생각은 우리의 "가짜 부부"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집에 들어와, 각자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정말 나는 많은 생각과 고민을 거쳐, 방문을 잡기 전 백현씨를 불러냈다. 백현씨는 아무런 표정을 히지 않은 채 그저 뒤만 돌아본 상태로 나를 주시했고, 떨리는 감정을 뒤로한 채 간신히 입을 열었다.
"백현씨."
"네?"
"아까.. 차에서 저 우는 게 사람들이 기다려서 올라온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네."
"그럼 울고 있던 저는 .. 신경 쓰이진 않았나요?"
"..."
"... 그래도 앞에서 울고 있는데, 백현씨는 정말 신경 안 쓰이셨나 보네요. 그렇죠, 그게 맞는 거죠. 저희는 가짜 부부니까요."
".. 저 여주씨."
"아니에요. 제가 괜히 마음 썼네요. 저희는 그저 앞에서만 부부인 걸 제가 순간 까먹었나 봐요."
"..."
"저도 백현 씨도 서로 사랑하지 않는데. 신경 쓸 필요가 없죠."
"..."
"저 먼저 들어갈게요. 쉬세요 백현씨."
나는 안 중에도 없었다. 매번 다짐하고 다짐해도. 같이 사는 사람을 신경 쓸 수 없으니까, 이 사람은 매번 나를 피한다. 많은 것을 다 담지는 못했지만, 하지만 내 내면은 이 사람을 알고 싶어 하는 거 같다. 알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난 오늘도
내가 가짜 부부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머릿속으로 외쳤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2.12 14:12
첫댓글 하 진차....여주 백현이 좋아하는거 누가 몰라..ㅠㅠㅠㅠㅠ 가짜부부 말구 진짜 부부 하자 얘들아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