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 체험일주 대장정]
본 행사는 가깝고 도 먼나라 일본의 문화와 생활 을 체험하고 , 일본 역사속에 한민족사를 탐방하며 일본 열도에 흩어진 우리 역사 유적의 흔적 을 둘러보며 일본 속에 심어져있는
우리의 민족혼을 일깨우고 일본 현대사의 다양한 문화 와 그들만의 역사 보존현장을 살펴보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우리가 배울것 과 지킬것 을 알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단순한 일반 문화체험이 아닌 일본속의 한민족사를 탐방하고 이해하기 위해 후쿠오카-구마모토- 벳푸- 오사카- 아소- 교토-고베-오사카등 좀더 넓고 많은 지역을 탐방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본 프로그램은 조선일보사가 1987년 부터 진행하는 교사 해외 연수프로그램 "선생님을 해외로... 일본속의 한민족사탐방" 한일 고대사를 재조명하는 대표적 답사 행사이기도 합니다.
[출처]: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 한국-일본 상호간 이해가 깊지 않은 어려운 여건에서 출발한 이 행사는 일본 열도에 흩어진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면서 한-일 교류사의 실체와 한민족의 진취적 기상을 확인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습니다.
충실한 자료준비와 사실확인, 정상의 강사진으로 구성된 이 행사는 회를 거듭 할수록 국내 최고의 일본 알기 역사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고 1987년 이래 10,500여명의 초-중-고등학교 역사, 사회 선생님들과 일반인 역사 탐구자들이 일본 속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직접 확인하면서 역사 속 한-일관계의 실상을 바로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행사는 하카타(博多)-오이타(大分)-세토(瀨戶)내해-오사카(大阪) 항로를 따라 움직이면서 진행하는 선상강의, 육지에서의 현장 확인 강의, 국악공연 등 입체적이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후쿠오카(博多)-벳부(別府)-오이타(大分)-세토(瀨戶)내해-오사카(大阪)-나라(奈良)-교토(京都)-아스카(飛鳥)-오사카(大阪)로 이어지는 코스는 조선일보 연재소설이었던 '잃어버린 왕국'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는 '해양강국 비류백제(1984)', '일본 속의 한국문화(1985)', '고조선을 찾아서(1986)' 등 조선일보 연재물에서 볼 수 있듯이 한일 고대사 및 민족사의 과거를 올바로 조명해 바르고 생산적인 진로를 제시하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행사을 통해 한일고대사를 제대로 알고 이를 학생들과 이웃, 후세들에게 정확히 전달해 올바른 역사관을 형성하고 세계속에 당당한 한민족으로 우뚝 설 수 있길 기대합니다.
앞으로도 이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 행사에 참가자와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그린캠프단 일본 문화체험 주요도시]
후쿠오카(福岡) 큐슈(九州)의 북부 하카다(博多)만에 접한 후쿠오카(福岡)는 큐슈에서 가장 큰 도시로 흔히 큐슈의 수도라 불린다. 일찍부터 한반도와 중국, 동남아 각국과 교류해 오던 관문으로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온화한 기후로 일년 내내 아름다운 바다경치를 즐길 수 있다.
후쿠오카를 흔히 하카다(博多)라고 부르며 많은 관공서나 상점 등도 이 명칭을 사용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혼동하기 쉬운데 이 명칭은 도시의 남북을 흐르는 나카가와(那珂川) 동쪽을 하카다(博多:상인의 도시)라고 불렀던 반면, 강의 서쪽은 후쿠오카(福岡:무사의 도시)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1889년 이 두도시가 후쿠오카로 병합되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하카다(博多)라는 옛이름으로 불리워진다.
인구는 134만명으로 헤이안(平安)시대부터 시작된 하카타돈타쿠라는 개항축제가 시민 모두가 참석하는 대표적인 민속행사로 유명하며 특산물로는 하카타 인형이 유명하다.
구마모토(熊本) 큐슈(九州)의 중앙부에 위치한 구마모토(熊本)는 뭍과 바다로 큐슈의 다른 모든 현(縣)과 접하고 있는, 유리한 지리적 조건으로 큐슈관광의 중심지가 되었다.
자연환경이 빼어난 구마모토시는 동쪽으로 벳부(別府)와 서쪽으로 운젠(雲山), 나가사키(長崎)에 이르는 큐슈횡단도로, 큐슈 남부와 북부를 연결하는 교차점으로 교통의 요지이다.
시가지에는 일본 3대 성(城)의 하나인 구마모토성이 있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우리 나라를 침공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 의해 7년에 걸쳐 완성된 것이다.
또한 다분히 인공적인 조형미가 가미되어 잔디와 정원석, 소나무의 배치가 아름다운 水前寺공원과 日蓮宗의 명찰인 本妙寺의 사적 등 많은 문화재가 곳곳에 있다.
인구는 66만명. 이번 탐방에는 구마모토 외곽을 거쳐 바로 아소산으로 향하게 됩니다.
아소(阿蘇)산 큐슈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소(阿蘇)산은 세계최대의 분화구를 가진 복식 화산으로 외곽의 길이는 동서 18km, 남북 24km, 둘레 128km로 면적이 380㎢나 된다. 지금도 끊이지 않고 분연을 뿜어내고 있는 이 화산은 용암유출이나 대폭발은 없으나 중소 규모의 폭발은 자주 되풀이 되고 있다.
둘레 4km, 깊이 100m의 밑바닥에서 끓어 오르는 듯한 마그마와 검붉게 탄 암벽사이로 하늘 높이 분출하는 분연은 장관을 이루며 그것과 함께 완만한 경사로 한없이 뻗어내린 산비탈의 대초원은 제주도 한라산을 연상케 한다.
북쪽 기슭에 걸쳐 전개된 광활한 초원지대인 쿠사센리(草千里)에는 연기를 뿜어내는 웅대한 산을 배경으로 2개의 연못주위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나 말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4~11월에는 초원에서 말을 타볼 수 있으며 인공스키장에서 스키를 즐길 수도 있다.
화산박물관에는 200만년전의 대폭발로부터 그 후의 수많은 폭발과 분화, 그리고 화구 주변의 함몰, 비로 생성된 커다란 호수 등 아소 화산의 역사를, 움직이는 모형과 스크린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벳부(別府) 동경 인근의 아타미(熱海)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온천 및 관광도시다. 벳부는 동쪽으로 잔잔한 벳부만을 끼고 있으며 시내 곳곳에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온천지가 펼쳐져 있다.
벳부역 주변이 제일 번화한 온천가로 큰길을 끼고 크고 작은 여관과 기념품가게, 카바레, 오락실, 극장 등이 밀집해 있다. 벳부八湯을 비롯해 온천의 수가 3천 8백여 개에 이르러 온천열을 이용한 야채, 화훼재배가 성하다.
이곳에는 지하 250~300m에서 100℃ 전후의 열탕과 분탕이 분출하는 모습이 마치 지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지옥이라고 불리는 온천순례가 벳부 관광의 하이라이트이다.
온천의 물이 피와 같이 붉다고 해서 이름붙인 ‘血의 地獄’을 비롯하여 白池, 金龍, 鬼山, 海地獄 등 9곳이 있다. 인구는 12만 5천명.
오이타(大分) 벳부만 남쪽에 있는 오이타(大分)는 독자적인 남만 문화가 개화했던 곳으로 석불이 많아 석조미술의 보고로 일컬어지고 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전원풍경 속에 석불군이 흩어져 있으며 큐슈의 ‘작은 쿄토’(小京都)라고 하는 다케다(竹田)에는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있다.
오이타는 2차대전 때 시가지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지만 현재 천주교순교기념공원 등 30여 개의 공원이 있는 새로운 도시가 되었다. 상공업도시로 금속, 기계, 펄프제지, 석유화학공업이 성하며 인구는 43만명.
교토(京都) 천년 고도(古都)의 우아함이 숨쉬는 교토(京都)는 헤이안(平安)시대부터 메이지(明治)유신까지 천년 동안의 왕성이 있던 곳으로 역사의 도시 나라(奈良)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관광도시이다.
일본의 역사는 교토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곳을 중심으로 문화가 개화하고 발전해왔다. 이에 대한 교토 시민들의 자긍심은 아직도 대단하다.
794년부터 1869년 에도(江戶)시대 메이지 천황이 수도를 도쿄(東京)로 옮길 때까지 일본천황, 황실이 있던 곳이며 동시에 예술과 문화의 꽃을 피웠던 곳인 만큼 수세기에 걸쳐서 보존되어온 많은 절과 신사(神社)가 옛모습 그대로 살아있어 독특한 건축미도 볼 수 있다.
교토가 가장 발달했던 시기는 12세기 말까지며 6세기 한반도를 통해서 전래된 불교문화의 영향이 크다. 10~11세기에는 당시 궁중의 주요 관직을 독차지하고 있던 후지와라(藤原) 일족이 실질적인 지배자가 됨에 따라 현란한 귀족문화가 꽃피웠다.
이 시대는 당나라의 멸망과 한반도의 혼란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던 대륙문화 대신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가 형성되게 되었다.
그 후 鎌倉 - 室町 - 江戶시대에 이르기까지 각시대별로 조각, 공예, 일본식 정원, 건축, 회화, 다도(茶道), 도예의 문화를 꽃피워왔다. 그때문에 「源氏物語」 등 이곳을 배경으로 한 고전이 많으며 현재 시내 곳곳에 남아있는 많은 역사적인 건물과 미술품 등 도시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 때문에 지금도 관광객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인구는 146만명.
나라(奈良) 나라는 서기 794년 교토(京都)로 천도 할 때까지 우리 나라 삼국시대의 문화를 받아들여 일본 최초의 국가를 세웠던 곳이다. 그래서 「국가」를 뜻하는 우리말 ‘나라’가 이곳의 지명이 된 것이다.
이러한 뜻과 함께 나라는 일본 고대사의 시작과 건국신화의 무대이기도 하며 최초국가 형태인 야마토(大和)정권이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끼고 석기시대부터의 유적이나 궁적(宮跡), 고대 분묘와 찬란한 불교문화와 귀중한 예술품이 많이 산재되어 있어 도시자체가 마치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나라 시내 동쪽 일대에는 5.25㎢ 규모의 나라공원이 있는데 그 안에는 興福寺, 東大寺, 春日大寺, 若草山 등 나라의 대부분의 명소가 펼쳐져 있다.
나라국립박물관은 일본식 건물로 된 본관과 서양식 별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대 미술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며, 특히 불교미술품으로 유명하다.
대불(大佛)로 알려진 도다이지(東大寺)는 거대한 대불전(大佛殿)을 비롯한 국보급 건축물과 불상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불교문화의 대표적인 사원이다.
또한 호류지(法隆寺)에는 고구려의 담징이 그렸다는 금당벽화는 소실되었지만 중문, 탑, 종루 등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먹, 녹각제품이 이곳의 특산품이며 인구는 37만명.
아스카(飛鳥) 아스카는 일본의 고향이라고 한다. 6∼7세기 한반도를 비롯한 대륙으로부터 불교를 비롯한 여러 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의 문화를 꽃피웠던 고장으로 고문화(古文化)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아스카를 방문하기 전에 한일 고대사를 이해하고 가면 훨씬 더 인상적일 것이다.
조용히 펼쳐져 있는 아스카평원의 곳곳에 남아있는 궁적(宮跡), 절터, 고분(古墳), 건조물 등이 지금도 옛날의 영화를 안고 낭만의 세계로 유혹하는 듯하다.
대표적인 유물로서는 이시부타이(石舞臺), 다카마쓰 고분(高松塚), 아스카지(飛鳥寺) 등이 있다. 아스카의 역사적 풍토와 문화재의 보존 활용을 위하여 1975년 개관한 국립 아스카 자료관은 일본에 불교가 전해진 6세기부터 나라로 수도가 옮겨진 8세기 초까지의 아스카와 만엽집(萬葉集), 아스카의 궁(宮), 돌(石), 고분(古墳), 사찰, 다카마쓰 고분(高松塚) 출토품을 비롯하여 아스카지(飛鳥寺) 탑과 궁터, 절터의 출토품을 전시하고 있어 아스카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곳이다.
1972년 대나무 숲속에서 발견된 다카마쓰 고분(高松塚)은 석곽의 내부에 채색을 한 아름다운 벽화가 발견되어 일약 유명해졌다. 지름 18m, 높이 5m 정도의 원분(圓墳)으로 7∼8세기의 고분으로 추정된다. 벽화는 극채색으로 종자(從者), 사신(四神), 해, 달, 별을 그려놓았다.
오사카(大阪) 4세기 한반도의 대륙문화가 들어온 관문이 되었던 이곳은 그후 고대 일본의 중심도시로 번성해오면서 도시상인의 왕성한 에너지로 경제적 발전을 거듭해왔다. 도쿄에 버금가는 대도시로 ‘정치의 도쿄, 경제의 오사카’라고 불리울 만큼 일본 제1의 상업도시이기도 하다.
일찍부터 수로와 운하가 발달해 23만톤급의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항만이 있고 근교에는 간사이 국제공항이 있어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사카시는 2백 59만의 인구가 상주하고 있으며 4계절이 뚜렷한 온후한 날씨이다. 오사카 남쪽의 번화가를 동서로 흐르고 있는 도톤보리가와(道頓堀川)의 야경은 오사카를 상징하는 풍경의 하나이다.
오사카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쌓았는데 당시 성의 크기는 현재의 규모보다 5배나 되었으나 전란으로 소실되고 그후 도쿠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이 재건한 것이 오늘날의 오사카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