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그 중심에 농업이 있어야 한다는 확신으로 유기농업을 시작한 지 2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세월 속에 그야말로 수많은 인연과 인연이 모였고 그만큼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도농 간 유기농산물 직거래, 그에 이은 생협운동으로 갈 수 있는 바탕은 지역 유기농업생산자들이 존재하고 있어서였습니다. 저는 우리쌀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을 통해 우리 쌀, 우리 농업을 지키는 일의 지역적 과제로 우리 농산물 더 나아가 친환경농산물로 학교급식을 해야 한다는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 중반부터 전북정농영농조합법인 일에 참여하면서 지역에서 생산하는 유기농산물을 지역 학교에 공급할 수 있다는 부푼 희망을 가졌습니다. 이후 2년의 시간 동안 학교급식을 하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를 짧게나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친환경농산물 특히, 친환경 쌀 급식은 우리 아이의 건강을 지키고 지역농업을 살리는 핵심 이었고 그 호소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우리 전북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조례는 조례로서 법적 의미만 가질 뿐, 실제 진행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지역 유기농산물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어떠한 경로로 공급할 것인가? 지역 학교에 책임자들을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설득해 들어갈 것인가? 이런 현실문제들을 고민하면서 정부가 지원하는 소비자 밀착형 직판장 지원금, 각 지역 생협출자 및 보증금, 지역 생산자 공동 출자금, 조합원 출자금, 조합이사 출자 및 보증금 등 힘이 모아져 김제 봉남면에 법인 정농물류가 설립됩니다. 영농법인 판로의 기본바탕은 지역생협이었고 2005년 하반기부터 학교급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주지역 유치원과 전북지역 친환경 시범학교 20학교 가운데 10개 학교를 전북정농에서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급식은 1년이 채 되지 못한 지난 6월말 방학을 보름 정도 앞두고 전북정농은 스스로 학교급식사업을 접게 됩니다.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학교급식 공급은 전혀 달랐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생협들과의 관계에 익숙해진 저를 비롯한 실무진들은 급식 공급 이후 점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자꾸만 들었습니다. 몇 가지 문제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생산측면에서 보면 생협이든 학교급식이든 유통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필요할 때 제때 공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생산조합원들로부터 나오는 것은 과잉 생산량의 쌀을 비롯하여 양파, 마늘, 감자, 고추 등입니다. 그나마 저장성이 있어 물류센타에서 소포장해서 나가긴 하지만 생산량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규모의 소비량이다 보니 재고손실이 알게 모르게 쌓여갔습니다. 장사로 치면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장사였습니다. 실제 학교급식을 통해서 영농법인 경영은 더 어려워졌고 결국, 농가들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채소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움이 뒤따랐습니다.
식재료 공급을 하다 보니 결국 현실적인 과제는 엄격한 선별, 예를 들면 일반 농산물의 ‘때깔좋음’에 익숙해진 담당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그 분들 입장에서는 당연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너무나 지나친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난 6월 공급한 방울토마토가 선별이 제대로 되지 않고 크기가 고르지 못하다 해서 반품당한 후 두 시간 내에 대전에서 장성에서 다시 물량을 수급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러고도 결국 우리가 적잖은 피해를 보는 상황이었지만 담당 행정실장에게 야단을 맞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학교 측에게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음을 알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쨌든 지역에서 실제 농사짓는 농민이 직접 학교를 방문하고 또 바람직한 학교급식 직거래 방식의 모델을 찾아내고 실천하는 데 경험은 제대로 한 셈입니다.
또 친환경 급식 전환으로 올라가는 차액분을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듯이 무상급식으로 가고 차액분을 정부나 기초단체가 모두 부담하거나, 두 주체가 나누어 부담하면 가난한 학부모들의 부담은 없어집니다.
우선 학교급식을 통해 섭취하는 음식 중 가장 무게가 많다고 할 수 있는 쌀부터 친환경으로 하자면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학교급식에서 친환경 쌀을 사용하는 데 가장 걸리는 부분은 역시 가격입니다. 특히 쌀은 정부가 일반미 시중가의 반값으로 공급하고 있는데 이를 친환경쌀로 바꾸고자 할 경우 가격은 훨씬 높아집니다. 그런데 정부가 일반미를 수매해서 그 반값만 받고 학교급식에 공급하듯이 친환경 쌀도 정부가 일반미 가격으로 수매해서 기초지자체에 공급하면 지자체나 학부모는 일반미와 친환경쌀과 지자체나 학부모의 부담은 일반미 가격과의 차액 정도로 줄어듭니다. 현재 쌀 20kg의 가격은 무농약이 약 6만원이고, 일반미의 가격은 약 4만원입니다.
현재 정부는 가을에 4만원에 사서 학교에 약 2만원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부가 지자체와 협력하여 정부가 일반쌀에 내던 2만원을 그대로 내고 지자체가 2만원만 내는 것을 합해 친환경쌀도 수매하면 됩니다. 정부 돈이 더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수매와 관련된 정부 규정을 바꾸어 그 협력관계를 만들어내면 될 일인데 그 정도도 못하고 있는 정부의 무능이 답답합니다. 이렇게만 되면 친환경쌀로 학교급식을 실시할 기초 지자체들이 많이 늘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학교 급식의 중요성은 여ㆍ야를 떠나서, 보수ㆍ진보를 떠나서, 모든 시민단체들이 동의를 했기 때문에 조례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친환경 농산물의 바른 생산과 바른 유통 방식에 대한 지역에서의 소통은 쉽지 않았습니다. 생산, 유통, 소비에 있어서 지역물류통합과 학교급식지원센터를 통한 식재료 공급의 실험을 누군가는 계속 해야 될 일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업은 제가 할 일이 아니었음 또한 느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4년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나는 변산유기농장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지난 6월 만난 차흥도 목사님이 저보고 “농사꾼이 농사 안 짓고 외도해서 이렇게 어려워진 거야”하시더군요. 그 말이 맞다 싶었습니다.
내 농장을 미처 돌보지 못하고 보낸 지난 4년 간의 일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괴롭기만 합니다. 긴 장마가 끝난 지금, 논밭에는 늙은 농부들이 농약 치는 냄새로 진동합니다. 저 역시 2천평의 유기농 밭을 보니 한숨과 눈물만이 납니다. 돌보지 못하는 밭에는 온통 풀밭이 되어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풀밭을 보고 “저 집은 유기농 해가지고 돈을 많이 벌어서 인자는 풀밭 만들어 놓아도 괜찮다”, 한마디씩 했답니다. 제초제 한번 뿌리고 화학비료 뿌려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내 한 몸은 편해질텐데…,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힘도 용기도 뭐도 없습니다. 앞으로 저 농장을 누가 가꿀 것인가? 누가 퇴비를 내고 씨를 뿌리고 풀을 맬 것인가? 온통 풀밭이 된 밭을 바라보면서 또 한 번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한미FTA 반대를 위해 지금도 우리 농민형제들은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실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그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용기 잃지 말아야 할 텐데, 갈수록 어렵다는 생각, 한살림 가족 여러분도 들겠지요. 긴 숨을 쉬어 봅니다. 저도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담할 수 없습니다만 처음 시작했던 유기농 농사꾼 그 자리에 서서 말이죠.
첫댓글 농민은 생산에 전념하고 시민단체는 감시기구로 남아야지 잿밥에 관심이 있으니 바로될리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