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들 안녕들 하신지요?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런저런 일로 시골집을 서너번 다녀오긴 했지만 아직도 시골가면 어머니는 굽은 허리로 밭에서 일하시고, 아버지는 아픈다리로 집앞에 기대어 서서 밭일 하러간 어머니를 혹은 오지않는 자식들을 기다리고 계실 것 같습니다.
아직 까지는 슬프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상중에 고향어르신, 선후배님들의 큰 위로에 제대로 감사의 말씀도 못드렸는데 고마운 마음 잊지 않고 있다는 말씀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선일이와 형수님이 올린 궁금한 사항에 대하여는 제가 이런 저런 문서나 인터넷자료등을 검색해 본바로는 현재 우리동네가 예전 "익산군 합선면" 땅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예전(舊) 합선면(合先面) 땅이라는 의미에서 구합선(舊合先)이라는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참고로 논산문화원에 발행한 "논산지역(論山地域)의 지명유래(地名由來),1994년12월25일" 중 구합선에 관련된 내용을 올려드리니 아래글을 참조하시면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듯합니다.
전라북도 여산군(礪山郡) 합선면(合先面)의 지역으로 이조때 관 찰사(觀察使)등 관리들이 교체하는 황화정(皇華亭)이 있었다하 여 황화정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피제면(皮 堤面)의 신리(新里) 일부와 은진군 구자곡면(九子谷面)의 무동 (武洞) 일부를 병합하여 황화정리라 하고 전라북도 익산군(益山 郡) 황화면(皇華面)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1월1일 연무읍이 승격 됨에 따라서 논산군 연무읍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황화정1, 2, 3, 4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354세대 에 1,193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현재) 자연부락 은 구합선, 길리, 반월리, 수철, 신내, 원황, 죽림동, 황화정 등 이 있다.
▶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고합제(古合堤)[못] : 구합선 방죽이라고도 하는데 안터 남동쪽 에 있는 구합선에 있는 방죽이다. 구합선(舊合先)[마을] : 안터 남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전에 전 북 여산군 합선면이었다. 구합선 방죽[못] : 구합선에 있는 방죽으로 1956년에 시설하였 다 한다. 군숫들[들] : 황화정 남동쪽에 있는 수철리 앞에 있는 마을로 월 성이라고도 한다. 길리(吉里)[마을] : 수철리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월성이라고도 한다. 반월리(半月里)[마을] : 월성이라고도 하는데 수철리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봉학마을[마을] : 황화4리를 봉학마을이라고 하는데 15년전 취락 구조 사업으로 새로 생긴 마을로 논산군수가 이름지었다고 한다. 새터[마을] : 황화2리에 있는 마을로 옛날 부자 한 사람이 아들 에게 재산을 주고 이곳에 집한채를 짓고 분가 시켰는데 그 아들 이 적적하여 여기에 오면 땅을 주겠다하여 한집 두집 늘기 시작 하여 생긴 마을이라고 한다. 선인봉(仙人峯)[산] : 구합선 뒤에 있는 산으로 풍수지리에 이 산에는 선인무수형(仙人舞袖形)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는 선녀가 가끔 내려와서 놀다가는 고장이라고 하는데 여기 명당 자리에 묘를 쓰면 천하에서 으뜸가는 학자가 나온다고 한다. 수철(水鐵)[마을] : 수철리라고도 하는데 황화정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수철리(水鐵里)[마을] : 황화정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수철이라 고도 한다. 옛날 이 마을에는 쇠점이 있었다고 한다. 신내(新內)[마을] : 안터라고 하는데 수철리 남동쪽에 있는 마을 이다. 안터[마을] : 수철리 남동쪽에 있는 새로된 마을로 산내라고도 한다. 원황(元皇)[마을] : 황화정의 원 마을이다. 월성(月星)[마을] : 수철리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마치 반달같이 되어 있는데 달과 별이 훤히 보이는 여기에선 많은 선 비와 무장이 나온다고 하여 월성(月星)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 다. 죽림동(竹林洞)[마을] : 수철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대나무가 많 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죽림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황화정(皇華亭)[마을] : 황화정동 또는 황화정리 하고도 하는데 충청도․전라도 경계로 이조때 관찰사를 영접전송하기도 하고 교 체하던 황화정이 있었다 하여 황화정이라 부른다고 한다. 황화라 는 명칭은 황화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백제시대로 추정한다. 황화정(皇華亭)[고적] : 충청, 전라도 경계에 있었던 정자로 관 찰사를 영접하고 전송하던 곳이며 신구 관찰사가 교체한 곳도 된 다. 황화정동(皇華亭洞)[마을] : 황화정 또는 황화정리라고도 하는 데 옛날 충청도와 전라도 경계 지점으로 관찰사를 영송 또는 교 체하던 황화정이 있었던 마을이다. 황화정리(皇華亭里)[마을] : 황화정 또는 황화정동이라고도 한다. 황화정비(皇華亭碑)[비] : 황화정 앞에 있던 황화정의 비로 옛 날 튼 길가에 있었으나 동래정씨(東來鄭氏)들이 자기 조상이 세 운 것이라 하여 고내리 효죽동에 옮겨 세웠다 한다. 지금은 봉곡 서원 앞에 세워져 있다.
|
|
첫댓글 자세히도 올렸네요~
잘읽어보았어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