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던 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요13:23).
세베대의 둘째 아들로 야고보와 형제 관계이며, 그 이름의 뜻은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시다”입니다.
요한복음과 요한1서, 요한2서, 요한3서, 요한계시록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요한의 상징은 독수리인데, 그 이유는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구속사역만 기술한 반면, 그의 저서 요한복음에는 예수에 관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을 주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인간의 탈을 쓰고 온 것이지 인간이 아니다.’라는 이단자 마르키온의 주장인 가현설을 반박하기 위해서 예수의 죽음을 자세히 묘사하는 등 인성도 강조하였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요한의 행적을 살펴보면,
초기에는 형인 야고보와 함께 가버나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와 더불어 어부로서 생활을 연명해 나갔습니다.
어느 날 게네사렛 호수에서 배를 타고 그물을 손질하다가 우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의 부름을 받고 배와 그물들을 남겨둔 채 그를 따라 나서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마 4:21~42).
하루는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예수님의 나라(예수의 제자들은 로마제국의 영향으로 예수가 혁명을 일으켜 예수제국을 세울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에서 자기의 두 아들들(야고보와 요한)을 각각 예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마실 잔을 마실 수 있으며, 자신이 받을 고통의 세례도 받을 수 있겠느냐며 묻자 그들은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의 잔을 나누어줄 수는 있지만 하늘나라의 영예로운 자리에 앉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미리 마련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줄 수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요한과 야고보 형제와 다를 게 없었던 다른 사도들은 이 형제의 야심을 불쾌히 여겼으며,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 20:26~28)라고 훈계하여 제자들이 섬김을 실천함으로써 로마제국의 영향으로 제자들의 마음속에 생긴 신분 상승 욕구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또한 두 형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 자신들을 영접하지 않은 불친절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내며 저들에게 하늘에서 불을 내려 벌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는 사람을 살리려 온 것이지, 멸하려 온 것이 아니라면서 되려 두 사람을 크게 꾸짖으셨습니다(눅9:54).
이처럼 과격한 성격 때문에 예수님은 요한과 야고보 형제를 ‘천둥의 아들’이라는 뜻의 보아너게(Boanerges)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지만(막3:17),
요한은 야이로의 죽은 딸을 되살리는 기적, 변화산에서의 변모,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와 같이 예수의 중요한 행적마다 제자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임종하기 직전에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던 마리아와 요한을 보고 먼저 마리아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고, 요한에게는 “이 분이 너의 어머니이시다”하고 말하며,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였습니다(요19:26~27).
이때부터 요한은 임종 때까지 평생 마리아를 곁에서 모시고 섬기게 됩니다.
예수께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 후 막달라 마리아부터 예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사도들 중 가장 먼저 예수의 빈 무덤으로 달려갔으며, 뒤따라오는 베드로를 기다려서 그가 먼저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제야 요한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도 차례대로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었으며(요20:1~5), 디베랴 호숫가에서 부활한 예수를 제일 먼저 알아보았습니다(요:21:7).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행3:1)과 사마리아(행8:14)에서 전도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러한 요한을 바울은 야고보, 베드로와 함께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습니다(갈2:9).
전승에 의하면 A.D.44년에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박해를 피해 소아시아로 피신했으며, 그 곳의 일곱 교회, 즉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및 라오디게아 교회를 지도했다고 합니다.
A.D.95년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 때 요한은 군병들에게 붙잡혀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는데, 그 곳에서 요한계시록을 저술하다가, A.D.96년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되자 사면 받아 에베소로 귀환하여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을 저술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너무 노쇠하여 제대로 설교를 할 수 없어 항상 성도들에게 부축을 받았다고 합니다. 요한은 항상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매일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에 대해 성도들이 불평을 하자 요한은 “사랑은 그리스도 교회의 기초요, 사랑만 있으면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A.D.100년경에 90살의 나이에 사도들 중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았다고 전해집니다.
첫댓글 이 정도면...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