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물어서 바기오(Baguio)행 버스가 도착하는 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고속버스 터미널과 비슷하네요. 그리고
버스들도 한결같이 깨끗한 편이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바기오 행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사실 바기오에서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CS Host의 집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카우치서핑(www.couchsurfing.org)은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자신의 집을 숙소로 제공하고 문화교류를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뭐 말 그대로 꼭 방이
아니어도 괜찮고 ‘카우치’든 마룻바닥이든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서로 서로 온라인상에서 만나서 오프라인에서 서로가 가진 자원을 나누는 프로그램이죠. 그동안 한번 해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우연히 연락이 닿아서 Shila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머니의 집에 머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버스에 올라타서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쓰고 있던 썬글라스를 벗고 일반 안경을 쓰려고 안경
케이스를 열었는데 안경이 없는 겁니다! 제가 뭔가 물건을 놓고 온 경우가 제법 많아서 꼼꼼히 챙긴다고
챙겼는데 방 어느 구석엔가 안경을 두고 온 모양입니다. 후다닥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안경은 새로 맞추려면 최소 3만원 정도 들 겁니다. 할 수 없이 숙소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짐을 메고 큰 길로 나가서 7페소짜리 지프니(대중교통수단으로 일종의 버스 같은 역할)를 타고 필즈애비뉴 근처까지
가서 남은 1km 정도를 걸어서 숙소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숙소로 돌아왔더니 진이 완전히 빠져 버렸습니다. 다행히 안경은
수건 더미 속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잃어버렸다면 썬글라스를 포함해서 3번째 안경을 잃어버리는 셈이 될 뻔 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이미 다시 버스터미널로 돌아가서 6시간 걸리는
바기오까지 여행을 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되면 해가 진 후에 도착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호스트인 Shila 아주머니도 저를 맞기 위해 밤에 움직여야
하고 여러가지로 난감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할 수 없이 이 곳에 하루 더 묵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쓰던 방을 아무도 아직 예약하거나 차지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Shila아주머니에게
메일로 상황을 설명하고 앙헬레스에 하루 더 머물기로 낙찰되었습니다. 이 편안함과 안락함에 너무 익숙해
지면 곤란한데…
오후에는 숙소에서 인터넷을 하면서 지친 몸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다시 밥을 먹으러 나간 김에 오늘은 혼자서 이 곳을 구석구석 돌아보기로 작정했지요. 이틀간 Bar Hopping을 하면서 그냥 S를 따라다니기만 했기 때문에
오늘은 그냥 혼자서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메인 스트리트에서는 혼자 걸어가는 남정네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여기
저기서 ‘오빠~!’를 외치는 외침에 또 수줍음 많은 저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이곳 저곳 둘러 보리라는 처음 결심과는 반대로 서둘러 종종걸음으로 그 거리를 빠져나갔습니다.
필즈애비뉴에서 갈라지는 골목 골목에도 여러 종류의 Bar들이 있습니다. 고고바외에도 그냥 술마시는 곳도 있고 그런 곳에도 비비에(아가씨들을
이렇게 부르더군요)들이 앉아 있습니다. 이런 곳들에도 눈길을
주기만 하면 불러대는 통에 참 불편하더군요. 역시 이런데서 잘 노는 사람은 따로 있나 봅니다. 같은 골목을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기만 했더니 ‘왜 왔다 갔다
하냐~’고 묻는 친구까지 있었습니다. 흐흐

완전 다른 세계 앙헬레스.. 필리핀은 참 특이한 곳인 것 같습니다. 내일은 여기서 떠나서 이제 여행을 시작해야 하겠죠. 꼭 그래야 합니다. 너무 편해서 계속 게을러지니 큰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