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페라 속 유럽문화사>
베르디 <리골레토>의 궁정광대와 권력자 비판
작곡: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
원작: 빅토르 위고의 희곡 <환락의 왕 Le Roi s’amuse>(1832년 초연)
대본: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이탈리아어)
초연: 1851년 3월 11일, 이탈리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배경: 17세기 이탈리아 만토바(원작에서는 16세기 프랑스)
<주요 등장인물>
리골레토(Rigoletto. 바리톤): 궁정광대
만토바 공작(Duca. 테너): 젊은 바람둥이 공작
질다(Gilda. 소프라노): 리골레토의 딸
마달레나(Maddalena. 메조 소프라노): 스파라푸칠레의 여동생
스파라푸칠레(Sparafucile. 베이스): 청부살인업자
조반나, 몬테로네 백작, 체프라노 백작/백작부인, 마룰로, 공작의 시동 등
<주요 아리아와 중창>
1) 만토바 공작의 아리아
‘Questa o quella’(이 여자나 저 여자나)
2) 리골레토와 질다의 이중창
‘Figlia!... Mio Padre!’(내 딸아!... 아버지!)
3) 만토바 공작과 질다의 이중창
‘E il sol dell'anima’(사랑은 영혼의 태양)
4) 질다의 아리아
‘Caro nome’(사랑스런 그 이름)
5) 리골레토의 아리아
‘Cortigiani, vil razza dannata’(가신들, 이 천벌을 받을 놈들아)
6) 질다와 리골레토의 이중창
‘Tutte le festa al tempio’(성당에 갈 때마다)...‘Si, vendetta’(그래, 복수다!)
7) 만토바 공작의 아리아
‘La donna e mobile’(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여자의 마음’)
8) 공작, 마달레나, 질다, 리골레토의 4중창
‘Bella Figlia dell'amore’(사랑이 낳은 아름다운 딸이여)
9) 질다와 리골레토의 이중창
‘V'ho ingannato...’(아버지를 속였어요...)
<줄거리>
1막 1장 만토바 궁정
화려한 파티가 열린 만토바 공작의 궁정. 젊은 바람둥이 공작은 새로 유혹하려고 점찍어놓은 처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체프라노 백작의 젊은 아내에게 눈독을 들이며 ‘이 여자나 저 여자나'를 노래한다. “정절이나 신의란 마음을 구속하는 독재자”라며, 예쁘고 매력 있는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마음이 끌린다는 바람둥이다운 아리아다. 자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기 아내에게 수작을 거는 공작을 보고 분노하는 체프라노 백작. 궁정광대 리골레토는 그런 백작을 조롱한다.
그때, 늙은 몬테로네 백작이 나타나 공작에게 복수를 맹세한다. 공작이 자기
딸을 농락했기 때문이다. 딸의 정조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냐며 리골레토가 몬테로네 백작을 웃음거리로 만들자, 격노한 백작은 공작을 비난하면서 리골레토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파티 손님들은 무서운 저주에 놀라고 리골레토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을 느낀다.
1막 2장 집으로 가는 길
저주를 곱씹으며 딸 질다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가던 리골레토는 거리에서 살인청부업자 스파라푸칠레와 마주친다. 스파라푸칠레는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자기를 찾아오라고 말한다. 살인청부의 조건을 묻고 나서 리골레토는 자조적인 말투로 ‘우리 둘은 똑같다(Pari siamo)’를 노래한다. 살인청부업자는 칼로, 자신은 혀로 사람을 죽인다는 내용이다.
집에 들른 리골레토는 딸 질다와 반갑게 재회한다. 아버지가 외출을 허락하지 않아 갇혀 살다시피 하는 질다는 그에게 세상 떠난 어머니 얘기를 물어본다. 리골레토는 ‘천사 같이 아름답고 선량했지만 일찍 하늘나라로 가버린’ 아내 이야기를 들려준다. 리골레토는 하녀 조반나에게 질다를 잘 보호하라며 다시 외출하고, 평범한 젊은이로 위장한 채 그 모습을 숨어 지켜보던 공작은 조반나를 매수해놓고 질다 앞에 나타나 격정적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그가 성당 오가는 길에 늘 보던 젊은이임을 알고 질다는 기뻐한다. 자신도 그에게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공작은 자신의 이름을 괄티에르 말데라고 거짓으로 소개하며 가난한 대학생이라고 말해 질다의 환심을 산다. 그가 떠난 뒤 질다는 첫사랑의 설렘에 취해 ‘사랑스런 그 이름’을 노래한다.
한편 리골레토를 미워하는 궁정 가신들은 질다가 리골레토의 숨겨둔 애인인 줄 알고 그녀를 납치한다. 공작을 위해 체프라노 백작부인을 납치하는 줄로만 알고 이에 가담했던 리골레토는 딸 질다가 순식간에 가신들에게 끌려간 뒤,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고 경악하며 몬테로네의 저주를 떠올린다.
2막 만토바 공작의 궁정
질다의 집에 다녀오자마자 금방 그녀가 사라져버려 마음이 안타까워진 공작은 ‘그녀의 눈물이 보이는 듯해(Parmi veder le lagrime)’를 간절하게 부른다. 그때 가신들이 리골레토의 애인을 납치해왔다고 보고하자 공작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질다를 데려다놓은 방으로 들어간다. 곧 리골레토가 광대 차림으로 궁정 홀에 나타난다.
가신들은 리골레토의 눈치를 살피지만, 리골레토는 일부러 쾌활한 척한다. 그때 시동이 와서 공작부인이 공작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알리자 가신들은 엉뚱한 핑계를 대며 시동을 돌려보낸다. 그러자 리골레토는 질다가 공작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공작의 방으로 들어가려 한다. 가신들의 방해를 받자 리골레토는 분노를 폭발시키지만, 곧 태도를 바꿔 딸을 돌려달라고 가신들에게 절절하게 호소한다. 여기서 <리골레토> 최고의 명장면인 ‘가신들, 이 천벌을 받을 놈들아’가 펼쳐진다.
그때 공작에게 겁탈 당한 질다가 방에서 달려나와 아버지와 처절하게 대면한다. 가신들을 다 쫓아내고 질다와 단둘이 있게 된 리골레토는 딸의 고백을 듣는다. ‘일요일마다 성당에서(Tutte le feste al tempio)’라는 노래로 질다는 성당에서 알게 된 청년이 바로 공작이었음을 털어놓는다.
그때 마침 감옥으로 끌려가던 몬테로네 백작이 벽에 걸린 공작의 초상화를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복수를 맹세한다. 리골레토는 ‘그 복수는 내가 하겠다’고 외치며 질다와 함께 격렬한 2중창을 부른다. 그러나 질다는 복수를 잊고 공작을 용서하라고 아버지에게 간청한다.
3막 강가의 술집
밤이 되자 리골레토는 강가에 있는 스파라푸칠레의 술집 겸 여관 앞으로 질다를 데려와 안을 들여다보게 한다. 곧 공작이 사냥꾼 차림으로 술집에 들어와 살인청부업자에게 술과 방 하나를 주문하고는 ‘여자의 마음’을 호쾌하게 부른다. 그리고 스파라푸칠레의 여동생인 마달레나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공작이 자기에게 한 것과 똑같이 마달레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을 듣고 질다는 절망에 빠지고, 리골레토는 공작이 원래 저런 인간이라며 딸의 단념을 촉구한다. 이 부분이 유명한 4중창 ‘아름다운 사랑의 딸이여’다. 리골레토는 질다에게 당장 남장을 하고 다른 도시로 떠나라면서, 자신은 복수가 끝나면 뒤따라가겠노라고 말한다.
리골레토의 의뢰로 선금을 받은 스파라푸칠레는 술에 취해 잠이 든 공작을 죽이려 하지만, 공작에게 반해버린 마달레나는 그를 살려달라고 오빠에게 애걸한다. 스파라푸칠레는 살인청부업자의 도의에 어긋난다며 동생의 청을 거절하지만, 만일 폭풍우가 요란한 오늘 자정 전에 누군가가 찾아오면 그를 대신 죽이겠다고 말한다. 남장을 한 뒤 공작의 일이 궁금해 다시 이 술집을 찾아온 질다는 문밖에서 그 말을 듣고는 공작 대신 목숨을 바치겠다고 결심한 채 문을 두드린다. 스파라푸칠레 남매는 요란한 천둥번개 속에 질다를 칼로 찔러 죽인다.
공작의 시체를 찾으러 다시 온 리골레토에게 스파라푸칠레는 질다가 들어있는 자루를 내주며 강에 가서 버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람결에 공작의 노랫소리를 들은 리골레토는 놀라 자루를 열어본다. 공작이 아닌 자기 딸을 자루에서 발견한 아버지는 울부짖으며 질다에게 죽지 말라고 애원하지만, 질다는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며 숨을 거둔다. 리골레토는 다시금 몬테로네의 저주를 떠올리며 딸의 시신 앞에서 통곡한다.
<감상 포인트>
1) 창작 배경: 1850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이 베르디에게 새 오페라를 의뢰했다. 당시 이미 오페라 작곡가로 명성을 굳힌 베르디는 소재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에르나니>, <포스카리 부자>, <맥베스>, <해적>, <스티펠리오>를 함께 작업한 대본작가 피아베에게 알렉상드르 뒤마 1세의 특정 희곡을 검토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 작품에 극적인 강렬함이 부족하다고 여긴 베르디는 곧 빅토르 위고의 <환락의 왕>을 고려한다. 이 작품의 엄청난 극적 파워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와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희곡작품의 하나"라고 베르디는 위고의 이 작품을 극찬했다.
당시 북 이탈리아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검열이 철저했기 때문에 베르디는 피아베에게 편지를 써 "온 도시를 뒤져서라도 이 원작을 오페라화할 수 있게 검열당국의 승인을 얻어줄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인물을 찾아내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베르디와 피아베, 그리고 "승인을 얻는 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 베네치아 극장장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순진했다고 할 수 있다. 검열당국은 50년 동안 상연금지 처분을 받은 위고의 이 도발적인 작품을 결코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2) 위고의 원작: <리골레토>는 베르디의 여러 걸작 오페라 가운데서도 가장 사회비판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16세기 프랑스 왕이었던 프랑수아 1세를 주인공으로 권력자의 부도덕성과 횡포를 고발한 빅토르 위고의 원작 드라마 <환락의 왕 Le Roi s'amuse>은 군주와 귀족들이 벌 받을 위험 없이 온갖 방탕하고 못된 짓을 저지르는 신분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었다. 궁정의 곱추 광대 트리불레가 왕을 죽이려 하는 전복적인 설정 때문에 1832년 프랑스 초연 당일 귀족과 평민 관객의 격한 충돌을 불러온 작품이다.
3) 사회비판의 약화: 원작에서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대본가 피아베가 미리 다 삭제했는데도, 검열 당국은 이 대본에 ‘혁명적’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당연히 상연 허가는 받을 수 없었다. 고민하던 베르디는 대본가와 함께 원작의 무대를 바꾸기로 했다. 프랑스 궁정은 이탈리아 만토바 궁정으로 둔갑했다. 어디선가 대가 끊겨 베르디 시대에는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게 된 이 만토바 공작의 가문이 베르디 오페라 무대에 오른 것이다. 실재하지도 않는 이 공작을 비난하는 일에 대해서는 검열관들도 별 말이 없었다. 베르디는 오페라의 제목도 원래 ‘저주(La Maledizione)’라고 붙였지만 검열 당국과의 마찰 때문에 결국 ‘리골레토’로 바꿔야 했다.
위고의 원작에 담긴 날카로운 사회비판을 베르디의 오페라는 구구절절이 담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오페라의 탁월한 극적 효과는, 긴 대사 없이도 오페라로 사회비판극이 가능함을 충분히 보여준다. 자신의 이 희곡이 오페라로 작곡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원작자 빅토르 위고까지도 <리골레토> 3막에 나오는 4중창을 보고 나서는 “내 연극에서도 오페라처럼 네 명이 동시에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효과적일까”라는 말로 감탄을 표했다고 한다.
4) 음악적 특성: <리골레토>는 도니체티와 벨리니의 ‘벨칸토 오페라’(서정적인 선율과 가수의 목소리 기교가 핵심을 이룬 오페라)를 계승했던 베르디의 초기 오페라 끝 부분에 해당하는 작품이면서,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와 함께 ‘베르디 중기의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오페라이기도 하다. 음악적인 면에서 볼 때 실제로 <리골레토>는 벨칸토적 선율미가 넘치는 동시에, 벨칸토 오페라에서 흔히 부족하게 느껴지는 드라마틱한 설득력을 함께 지니고 있다.
5) 경박한 테너, 순수한 소프라노, 극적인 바리톤: 베르디의 여러 오페라가 그러하듯 <리골레토>에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세 명의 핵심인물이 있다. 테너 주인공인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에게 베르디는 경쾌하고 표피적인 음악을 만들어 주었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서 주인공인 ‘돈 조반니’의 노래들이 그러하듯, 공작의 아리아들은 유려하고 매혹적이지만 별 깊이가 없다. 소프라노 주인공인 10대 처녀 질다는 세상과 단절되어 새장에 갇혀 사는 듯한 그의 삶에 걸맞게 순수하고 단조롭지만, 공작과의 사랑을 경험하고 난 뒤로 아버지 리골레토와 함께 부르는 2중창은 질다의 달라진 성격을 보여준다. 따라서 질다 역의 소프라노는 벨칸토 스타일의 아리아 ‘사랑스런 그 이름Caro nome’와 격정적이고 극적인 복수의 이중창을 동시에 다 제대로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젊고 매력 있는 소프라노와 테너에 가려져 바리톤 주인공 리골레토의 비중이 약해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 오페라의 타이틀 롤인 리골레토는 이 격정의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는 존재인 동시에 음악적으로도 가장 깊이 있고 에너지 넘치는 가창을 들려줄 배역이기 때문이다.
<추천 영상물>(리골레토-질다-만토바 공작)
1) (Blu-ray) 블라디미르 스토야노프/멜리사 프티/스티븐 코스텔로 등, 엔리케 마촐라 지휘,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립 슈퇼츨 연출, 2019년 브레겐츠 페스티벌 공연 실황(한글자막)
2) (DVD) 젤리코 루치치/디아나 담라우/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등, 파비오 루이지 지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및 드레스덴 국립오페라 합창단, 니콜라우스 렌호프 연출, 2008년 공연 실황(한글자막)
3) (DVD) 젤리코 루치치/디아나 담라우/표트르 베찰라 등, 미켈레 마리오티 지휘, 뉴욕 메트로폴리탄극장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마이클 메이어 연출, 2013년 공연 실황(한글자막)
(음악평론가 이용숙 rosina@chol.com)
첫댓글 빠르게
내용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카페에 들어와
내용 읽고 그 음악을 듣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오페라곡들을
같이 링크를 걸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애요
저 같이 게으른 회원들을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