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독재 국가민주연합전선"(UDD)은 태국의 정치적 압력단체로 왕당파 압력단체인 "태국 국민민주주의연대"(PAD: 일명-노란셔츠)에 대립하는 모임이다. 현재 UDD 회원들은 저항운동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있다. UDD의 주요 인물들에는 위라 무시까뽕(Veera Musikapong), 나따웃 사이끄어(ณัฐวุฒิ ใสยเกื้อ, Nattawut Saikua), 짜이 응파꼰(Giles Ji Ungpakorn, ใจ อึ๊งภากรณ์), 솜삭 찌암티라사꾼(Somsak Jiamtheerasakul), 차란 딧타삐차이(Charan Ditthapichai), 웽 또지라깐(Weng Tohjiirakarn) 박사, 자까폽 뻰카에(Jakraphob Penkhae), 수라차이 세단(Surachai Saedaan) 같은 사회운동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UDD 시위대는 아피싯 웻차치와(Abhisit Vejjajiva, 아비싯 웻자지와) 현 총리의 내각이 태국 군부와 관료들의 힘을 등에 업고 "부당하게" 정권을 차지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들은 태국 국회는 해산되야만 하며, 새로운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UDD는 국회 내 정당인 "프어타이 당"(For Thais Party)과 연대를 맺고 있다. 이들은 태국의 엘리트들, 즉 군부와 사법부, 기타 비선출직 관료들이 정치에 개입하여 태국의 민주주의를 갉아먹고 있다고 비판한다.(주1)
이러한 정치운동은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총리를 실각시키기 위해 일으킨 "2006년 9월 19일의 쿠테타"와 그 군사정권을 반대하면서, 2006년 12월 무렵에 최초로 출현했다.(주2) 따라서 대부분의 UDD 지지자들은 탁신 전 총리가 사면되야만 하며, 정치적 이해관계 충돌에서 기인하여 그에게 내려진 징역 2년형 역시 폐기돼야만 한다고 요구한다.
2007년 12월 23일의 총선에서 사막 순타라웻(Samak Sundaravej) 총리가 이끈 친-탁신계 정당 "국민의 힘 당"(People's Power Party)이 승리하자, UDD는 그 활동을 확대했다. 2008년 5월에 PAD(노란셔츠)가 시위와 농성에 돌입하자, UDD 역시 그에 반대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2009년 4월 UDD는 대중집회를 조직했고, 이것이 폭동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현재 UDD가 추구하는 목표는 그들이 "아마따야티빠따이"(amatayathipatai)라 부르는 지배체제를 분쇄하는 것으로, 이 체제는 귀족과 관료들이 지배하는 체제를 말한다. UDD가 즐겨 공격한 대상으로는 "추밀원"(Privy Council: 국왕자문기구) 의장 쁘렘 띠나술라논(Prem Tinasulanonda)이 있다. UDD 시위대는 아피싯 총리는 물론 쁘렘 의장도 "추밀원"에서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2007년 국민투표에서 59.3%의 지지로 통과된 <2007년 헌법> 역시 폐기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위 기간 중 탁신 전 총리는 화상전화를 통해 빈번하게 모습을 비췄다.
UDD는 종종 "반-왕정주의" 운동으로 비판을 받곤 한다. UDD의 주요 회원들은 군주제에 대해 격렬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고, 그 중 일부는 19050~1970년대에 전 "태국공산당"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정부전복을 시도했던 인물들이다. UDD는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국왕이 정치에 개입하고, 탁신 친나왓 총리를 반대했으며, 탁신을 축출한 2006년 쿠테타를 지지했다고 비난한다. 최근에는 국왕을 무시하는 구호들과 노래들이 이들의 집회무대에 등장하기도 한다. 더욱이 일부 UDD 지도자들은 탁신 전총리를 위해 UDD에 반-왕정주의를 주제로 한 공개적인 비판을 가했다 하여, "왕실모독죄"(lese-majeste: 불경죄, 혹은 대역죄)로 피소되기도 했다. 탁신 역시 화상통화에서 "국왕 폐하의 자비"를 요청한 바 있다. 이 요청은 자신의 모든 사법적 유죄에 대한 사면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PAD(노란셔츠)나 일반대중들 중 왕당파들은 UDD를 비판하고 반대한다. 하지만 UDD는 자신들이 태국의 "참된 민주주의"를 사수하기 위해 활동한다고 말한다.
2. PAD의 반대자로서의 UDD : 2008년 PAD와의 충돌
2006년 쿠테타 이래로 UDD 지지자들은 PAD에 대한 안티 세력이 되었다. 이들은 PAD가 쿠테타를 지지했다고 비난한다. 2008년 7월 우돈타니(อุดรธานี, Udorn Thani)에서의 충돌에서 볼 수 있듯이, 양측간의 충돌은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당시 붉은셔츠를 입은 UDD 지지자들이 집회 중인 PAD 시위대를 공격했고, 몇몇 PAD 시위자들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탁신의 지지기반인 치앙마이(Chiangmai)에서 개최된 PAD 집회도 난장판이 되었다.
2008년 9월 2일 새벽, 사남루앙(Sanamluang)에서 집회 중이던 UDD 시위대는 이동을 시작해 "막까완 랑산 대교"(Makkhawan Rangsan Bridge)에서 집회 중이던 PAD 시위대를 공격했다. 이 충돌로 양측에서 부상자가 발생했고, UDD측 시위자 한 사람이 사망했다. 또한 이 사건으로 방콕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주3) 군대에 진압명령이 떨어졌지만 시위진압을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대중들은 UDD를 PAD의 적대적 그룹으로 인식하였다. 노랑-빨강의 "양극단적" 싸움은 이후 많은 상처들을 남겼다.
3. 2009년 소요
(사진: Guardian) 방콕 시내에서 군대와 대치 중인 시위대.
2009년 4월 초, UDD의 시위가 시작됐다. UDD 및 친-탁신계 정당 "프어타이 당"(Puea Thai Party)은 4월 8일에 주요한 집회를 개최했다. 이 집회에서 이들은 아피싯 총리의 사임, 국회해산, 새로운 총선 실시를 주장했다. 또한 자신들이 "아마따야티빠따이"(Amatayathipatai)라 부르는 "배후에 숨은" 권력자들을 공격해댔다. 이러한 이들에는 쁘렘 띠나술라논 추밀원 의장과 군부 내의 인사들이 포함된다.
UDD는 또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에 대해 국왕의 사면령을 요구했다. 이후 시위가 "승리의 탑" 같은 시내 중심가로 퍼져나가면서, 근처 주요 병원들의 출입이 봉쇄됐다. 또한 택시 기사들이 교통정체를 유발하기 위해 주요 대로변에 차량들을 방치함으로써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4. 파타야
2009년 3월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는 비디오 방송을 통해, 추밀원 의장 쁘렘 띤술라논(Prem Tinsulanonda) 장군이 2006년 쿠테타를 입안했고, 여타 "추밀원" 위원들인 수라윳 쭐라논(Surayud Chulanont) 및 찬차이 리킷찟타(Chanchai Likhitjittha)가 군부 및 PAD와 공모해 아피싯 웻차치와(Abhisit Vejjajiva)를 총리에 앉히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아피싯은 이를 부인했지만, 4월 초가 되자 수많은 시위대가 방콕에서 쏟아져나와 아피싯의 사임를 요구했고, 쁘렘 띤술라논과 수라윳 쭐라논, 그리고 찬차이 리킷찟타에 대해서는 "추밀원"에서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주4) 탁신은 종종 "전화연설을 통해" 등장하여, 아피싯 내각을 지탱해주는 이 명백한 귀족주의적 압력 --- "코네 암맛"(Khone Ammat): 귀족적인 배후 --- 을 "분쇄할 국민혁명"을 주창했다.
붉은셔츠를 입은 UDD가 주도한 이 시위는 아세안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던 파타야(Pattaya)까지 확산됐다. 여명이 오기 전에 택시 기사들이 자신의 차량을 몰고 UDD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파타야를 향했다. 주요 도로들은 차단됐고, 곳곳에서 UDD와 진한 파랑 셔츠를 입은 친정부 시위대가 충돌했다. 오후가 되자 시위대는 정상회담장으로 향했다. 푸른셔츠들이 UDD 시위대에 폭탄을 투척했다는 보고도 들어왔다.(주5) 보안군이 시위대 저지에 실패하면서, 결국 시위대가 회담장인 호텔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이 시위로 결국 아세안 정상회담은 취소됐고, 보안군은 해군 함정과 헬기를 동원해 각국 지도자들을 호텔로부터 피신시켰다. 4월 11일 아피싯 총리는 파타야 및 촌부리(Chonburi)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마침내 오후부터 시위는 중단되었다.
5. 방콕의 시위
2009년 4월 8일 집회에는 UDD 회원과 탁신 전 총리 지지자 등 10만명이 운집했다. 이들은 처음에 정부청사로 모였고, 밤이 되면서 "로얄플라자"(Royal Plaza) 주변으로 몰려들었다.(주6)
(사진) 시위진압을 위해 대기중인 군인들.
[출처] http://teakdoor.com/thailand-and-asia-news/ 55446-thailand-udd-rally-against-govt-aug.html
파타야 소요사태 이후 정부는 방콕과 수도권에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아피싯 총리가 비상사태 선포 연설문을 준비 중이던 내무부 청사 앞에서 최초의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UDD 지지자들은 내무부 입구를 봉쇄하고 청사 안으로 몰려들었다. 수백명의 시위대가 총리와 그 장관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아피싯 총리의 비서진 및 경호원들이 부상했다. 오후 늦게 군 장갑차들이 방콕 시내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시위대들은 장갑차를 탈취하거나 분산시키려 시도했다. 하지만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보다 많은 군 병력이 시내로 들어왔다.
태국 신년인 송깐(Songkran)을 맞이하여 일주일간의 연휴가 시작되자, 파타야 소요 및 UDD 지도자들의 구속 이후 최대의 시위가 방콕에서 벌어졌다. 시위대는 방콕 중심지 몇 곳에서 지역을 통제하기 위해 차량과 버스를 배치했고, 한 곳에서는 가스 운반차를 배치하기도 했다. 시위대 본진은 "승리의 탑" 주변을 장악했고, 그외 시내 주요 도로를 이들이 차단했다.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시위대, 그리고 일반 시민들 간에도 싸움이 벌어졌다. 쁘렘 의장의 자택 근처에서 벌어진 시위에서는, PAD 지지자가 UPP 시위대 속으로 차량을 몰고 돌진했다 도망가기도 했다.(주7) 긴장이 고조되자 아피싯 총리는 방콕 및 수도권 인근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들 시위대를 "국가의 적"이라 비난했다.(주8) 아피싯 총리는 또한 정부가 텔레비전 방송을 검열하라는 총리령도 선포했다.(주9) 이 충돌이 있기 직전 탁신 전 총리는 "D-스테이션 텔레비전"(D-Station television broadcast)에 모습을 보이고, 푸미폰 국왕이 이 사태에 개입해 사건을 종식할 것을 요구했다.(주10)
4월 13일 월요일 여명을 기해, 완전무장을 한 태국 군대가 자동소총으로 최루탄을 발사하면서, 방콕 중심지 "승리의 탑" 근처의 딘뎅(Din Daeng) 교차로에서부터 진압을 시작했다. 이 진압작전으로 최소 70명 이상이 부상했다.(주11)(주12) 육군은 후에 실탄은 공중을 향해서만 발포했고, 시위대에는 고무탄 사격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군대의 사격이 시위대를 향해 직격탄을 발사한 몇몇 사례들이 있었음을 확인했다.(주13) UDD는 군대가 공격할 때 시위대들이 실탄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주14)(주15) 하지만 후에 군은 그 부상이 육군의 정규소총인 M-16에 의한 상처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 AFP] 불타는 버스
같은 날(월요일) 아피싯 총리는 UDD에 동조하는 위성뉴스 채널 "D-스테이션"을 차단하라고 명령했는데, 바로 그 시간에 D-스테이션은 이 날의 충돌을 방송하고 있었다. 몇몇 UDD 커뮤니티의 라디오 방송국들도 폐쇄됐고, UDD 지지자가 아닌가 하는 혐의로 조사도 받았다.(주16) 탁신 전 총리 및 13인의 시위 지도부에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됐고, 방콕 시내 곳곳에서 폭력적 충돌이 이어졌다. 2009년 4월 14일 시위 지도자 대부분이 경찰에 자진출두했고, 폭력은 종식되었다.(주17) 정부청사 주변의 주요 시위장소를 군대가 점거하자, 시위대는 시위 중단에 동의했다.
정부측은 시위대에 대해 평화적 대우를 할 것을 약속하고, 지방에서 상경한 이들의 귀향을 위해 무료 교통편도 제공했다. 정오 무렵에 이 시위는 "공식적이고" 평화적으로 종료됐다.
이후 얼마 안 있어 아피싯 총리는 탁신 전 총리의 일반여권을 말소시켰는데, 그가 가진 외교여권에 대해서는 이미 취임 직후에 말소시킨 바 있었다. 이와 함께 수십명의 시위 지도자들에 대해 구속영장도 발부했다.(주18)
6. 부상, 사망, 피해
정부측 통계에 따르면 이 소요에서 120명 이상의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고, 그 대부분은 UDD 시위자들이었다.(주19) 또한 비록 군에서는 육군의 정규소총에 의한 부상이 아니라 했지만, UDD 회원 중 최소 1명은 딘뎅 교차로 진압 때 총상을 입었다.
T-셔츠 전쟁의 혼돈 속에서...
[사진출처] preapism.com/ 2009/05/13/thailands-shirt- wars/
UDD 측 발표에 따르면 6명의 시위자들이 사망했고, 그 사체를 군인들이 수거한 후 유기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군은 이를 부인했다.(주20) 사망한 UDD 회원 2명의 사체가 짜오 프라야(Chao Phraya, 짜오 파야) 강에서 발견됐다. 이들의 손은 뒤로 묶여져 있었고 신체에는 심하게 구타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찰은 이들이 정치적 이유로 살해된 것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주21)
아피싯 총리의 보좌관 사띳 웡논떼이(Satit Wongnontaey)는, 붉은셔츠 시위대들이 남 렝 시장(Nang Lerng Market)의 주택가에서,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총을 발사해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했다고 주장했다.(주22) 방콕광역시청은 재산피해가 약 30만 달러(1억 바트) 정도로 버스 31대가 파괴되거나 불탔다고 발표했다.(주23) 하지만 "태국 관광산업연맹"(Federation of Thai Tourism Industry)은 관광산업에서 입은 손실이 최대 2,000억 바트(70억 달러)에 이르고, 257,000명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추산했다.(주24)
첫댓글 참, 결론이 안 서네여... 지도자들과 이념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듯 합니다.. 대체로 노란셔츠들보다는 좀 더 젊고.. 모 그런 것 같은데.. 이 게시물 상에서는 단지 민주주의를 신봉한다 정도이고... 그러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문화적 능력은 여전히 따라 주질 않는듯도 하고 말이죠...
일단은 이 시위도 만만찮게 격렬했지만, 노란셔츠들이 수완나품 국제공항 점거했을 때랑 비교하면, 사후 처리과정이 조금 형평성이 다르단 점은 눈에 들어오는구만요... 노란셔츠 점거 때(2008년)는 친-탁신 정부였고... 이 시위 때는 아비싯 정부(반-탁신)인데,... 군대도 아주 신속하게 움직여주누만요... 구속비율도 높은 것 같고 말이죠.... 가디언지는 최초 교차로 진압에서 2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 새총과 칼은 노란셔츠들도 사용합니다... 붉은셔츠들이 더 과격할 것이란 오해는 마시길... 하여간 양쪽 다 만만찮게 과격하구만요...
어찌되었든 결국 이 싸움은 탁신 씨 하고 푸미폰 씨 싸움이네요... 다만 탁신 씨는 직접 상징이자 싸움 지휘도 하는 장수이고... 푸미폰 씨는 상징적으로 존재함으로써 그 밑의 장수들을 먹여살리는 형상인데... (물론 그 장수들이 먹고살면 자기 자신도 더불어 평안하고 ...)... 만일 푸미폰 씨가 사라지면 ... ??? 참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가 지구상에 많지 않을듯 합니다.... 캄보디아의 전쟁은 복잡은 했어도 전선의 경계는 있는 것이었는데 반해(물론 전선의 경계가 수시로 바뀌긴 하지만요), 이건 전선 자체가 좀 모호하구만요....
인도차이나 정치를 보니... 우리는 박정희, 전두환 식의 독재만 알고 있었는데,,, 동남아식 독재라는 게... 캄보디아도... 태국도... 아주 개성을 가지고 광범위하면서... 복잡한 독재구만요... 기득권층이 구조적으로 안 바뀐다는 걸 기준으로 하자면... 이것도 독재는 독재인 것 같은데 말이죠....
하여간 이걸로 당분간 태국에 대한 더 깊이있는 공부는 삼가하고... 다시 우리 본연의 캄보디아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현 태국의 사태를 막연하게 뉴스에서 간단하게 소개하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핵심을 파악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