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3, 사내 이름은 장연수
제비들이 돌아 오는 춘분 지나면
남쪽에서 물고 온 아카시아 꽃잎이
동네 친구들 숨바꼭질 하던
뒷산 어귀에 달빛처럼 탐스럽게 쌓였고
꽃잎 사이 숨은 친구는 눈에 들지 않고 대신 꽃 향기에 취해
술래질 잊고 달콤한 잠에 빠져 들던
소년을 깨워준 건 늘 아카시아 향기
여기 아카시아 향기를 가진 남자가 있다
사계절 푸른 옷을 입은 껑충 걸음이
시냇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은은했지만
어릴 적 아카시아에 찔린 기억은
소년의 고향에 아련한 상처를 냈다
소년이 자라 시를 사랑하기 시작한 뒤
바이러스의 예침을 감싸주는 백신처럼
아릿한 상처는 시나브로 아물고
그 자리엔 아카시아꽃 향기가 차지했다
- 아카시아꽃 -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구시가지와 수로를 사이에 두고 펼쳐진
개발구의 셀 수 없는 공장과 빌딩을 지나
거대한 몸집 자랑하며 유달리 키가 큰
호텔이 하나 서 있다
이 개발구의 위용을 한껏 과시하려는 듯
촌도에 오성급 호텔을 지은 시정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로비에 도착한 사내와 일행은 캐리어와 서류가방을 들고 곧장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에서 고개 숙여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던 직원 중 한 명이
사내를 보고 눈을 들어 인사한다
이 호텔에는 한국 출장자들이 많이 와 카운터 직원 중 한 명은
항상 조선족 교포를 배치했다
“쟈오 환잉광린
예약 확인해 드릴까요?”
“체크인 부탁합니다.
내 이름은 장연수, 오늘 부터 이틀간 투룸 예약했습니다.”
연수와 옆에 서 있던 일행이
여권을 꺼내 건네주고
수속을 마친 두 사람
룸카드 받아 쥐고 각자 방으로 향했다
호텔방에 대강 짐을 풀어 놓고 나서
연수는 그제서야 핸드폰 전원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이곳 시간으로 오전 11시 40분
호텔에서 공장까지는 20분 남짓
12시 정각에 시작되는 점심시간은 그나마 공장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시간이었다
근무시간대엔 보이지 않던 직공들이
프레스공장
차체공장
도장공장
의장공장
엔진공장에서 마구 쏟아져 나와
식당으로 줄지어 몰려가는 광경은 그야말로 “아! 여기가 중국이구나”
하는 탄성을 자아낼 만 했지만
지금의 점심시간은 그렇지도 못하다
중국에 진출한 초창기부터 기현자동차 중국법인 생산공장은
인구 오백만의 예청시 지역경제 절반 이상을 책임졌었다
강소성내에서도 예청시 입지가 탄탄해
한국 주재원들은 어디를 가나 환영을 받았고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예청의 시정부나 세정기관, 경찰들까지도 한국주재원들의
애로사항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주고
적극 지원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현지 직공들 역시 주야 24시간을 교대로
쉼없이 일하며 다른 공장의 2배에 달하는
보수에다 각종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어
직공들은 기현자동차에 근무하는 것을 그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여기며
근무복을 훈장 삼아 예청시내를 활보하고 다녔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정반대
판매가 급감하여 기존 물량의 30%대로
떨어지며 일감이 없어지자
직공의 삼분의 일은 강제 휴직이
나머지도 3교대로 일주일씩 돌아가며 쉬면서 주간에만 일을 하다 보니
근무일수는 줄고 야근수당마저 없어져 생계가 말이 아니었다
휴직자들이나 휴식조에 속한 직공들은 거리로 내몰려 생계를 위해
일거리를 찾아야 했고
예전의 영예나 자존심을 뒤로 하고 불법 자가용택시 영업이나 대리기사,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