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포 노을은 퍼낼수록 넉넉하고
- 강진의 노래
- 최한선
무지렁이처럼 하 세월 흐는 강
늦가을 갈대꽃처럼 하얗게 흐른다
흘려보내고 또 흘려보내지만
여태 흘려보내지 못한 설움 설움
얼마나 더 흘러야 그 설움 마를까
유년 시절부터 그 강물 속에
환장하게 수장시킨 한 많은 영혼들
아마도 내 영혼 강파르게 되어야
서러운 그 흐름 멈추려는가
구강포 물밭에 터잡은 노을
퍼내어 퍼내어도 마를 줄 모르고
갈대꽃만 구름처럼 출렁거린다
서늘바람 스치듯 세속도 밀리는 곳
뻘심으로 살아온 이 땅의 사람들
조수를 벗 삼아 누웠다 일었구나
자연에 순응하며 설움도 안분으로
흙으로 빚으시고 불로 구워내신
생명의 자궁 내 고향 강진 땅
백련결사 맺은 마음 생명 살려 키우고
깜박인 고려 불심 심지 돋우었네
비취빛 지녔거든 상감은 말든가
어쩌자고 비취빛에 상감까지 겸하신고
아마도 강진에는 감각의 진화처럼
마술이 깃든 사람들이 살았나보다
남송 천자 수라상은 청자로 물이 들고
개성 임금 수라간엔 비취 하늘 푸르렀네
투박한 칠량 옹기 민초들 살리고
무위사 풍경소리 고통을 삭혔어라
백련사 다향 마음 홍진을 맑히는데
해장선사 죽장은 다산초당 자주 찾고
모란촌 동인 활동 졌던 모란 다시 피네
병영성 굳은 돌담 하멜도 혀를 찼지
하늘이 푸르러 물도 같이 맑은 곳
오이며 표교버섯 맥우 한우 참꼬막
볼거리 너무 많다 어느틈에 맛을 보나
월남사지 수인산성 청자요지 마량미항
유익거리 끝이 없어 며칠을 봐야할지
조물이 키웠는가 저 많은 유산
따뜻한 기후 탓에 물산이 넉넉한데
강진 인심 감칠맛에 새론 정이 절로 솟네
내 배가 부르니 이웃도 사촌이라
인물 자랑 돈 자랑은 다른 데서 하시제
해암 선생 일락가는 우국충정 절로 나고
오남 선생 성리학 독자 세계 일구었네
세상이 야속하고 희망이 등 돌릴 때
인정이 그립고 유년 향기 물씬커든
가벼운 차림하고 남으로 틈을 내소
아무리 퍼다 써도 넉넉한 저 노을
인심향이 무시로 도시 내음 맑히는
포근한 울 엄니 자궁 세상 편안 나루터
카페 게시글
── 모란촌 동인회의 작품
구강포 노을은 퍼낼수록 넉넉하고 - 최한선
무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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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4
21.03.22 17:5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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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글자 그대로 강진의 노래이군요. 꼼꼼히 읽다보면 은근히 재미가 붙고 교훈적인 내용이어서
옛날 중학시절(1964)에 배웠던 <정학유> 선생의 '농가 월령가'가 생각나는 분위기입니다. 참, 좋은 시(詩)에
젖을 수있어서 감사합니다. 조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