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일-인천국제공항에서 파리로(2011년7월 16일)
연선생님,
체크인하고 비행기에 올라 비행기 표를 보니 탑승 시간이 00:00이었습니다.
또 출발 시간은 00:50이었습니다.
00시00분이 실제로 존재하고,
또 그 위에서 어떤 일이 실행이 된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0시 50분은 옛날 유행가 가사 내용이라 혼자 흥얼거리며 웃었습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다보니 갑자기 여행이 재미가 있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여행은 여행 자체를 즐기는 것보다는
뭔가를 얻기 위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여행 경비가 아까워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마에 잔뜩 주름을 잡고 카메라를 따발총처럼 휘두르며,
허둥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갑자기 언젠가 읽었던 책의 구절이 생각나네요.
“재물과 명성은 많이 쌓을수록 허망해진다.
반드시 잃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래 산 사람도 그 재물과 명성을 200년 이상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정말 이번 산티아고 순례에서는 과거의 그런 여행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습니다.
아마 820km를 날마다 걸어야 하는 여행이니까
조금은 다른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체크인 하면서 배낭의 무게를 보니 8kg이나 되었습니다.
도보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배낭의 무게인데,
아무래도 배낭이 너무 무거운 것 같았습니다.
땅 끝에서 파주 전망대까지 도보여행을 하면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도 지금처럼 처음 배낭의 무게가 8kg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다음날 발과 다리가 너무 아파서 도보여행을 포기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배낭을 버리고 맨몸으로 걸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어,
길가에 배낭을 던져 놓고 걸어 보았습니다.
정말이지 발과 다리가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낭을 매고 가는 이유가 도보여행을 잘하기 위해서인데,
배낭이 방해가 된다면 배낭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것도 한 두 시간만 걸어도 마을이 나오는 대한민국에서 하는 여행인데,
설마 배낭을 버린다고 굶어 죽기야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마침 다음 마을 우체국이 있어서 짐을 거의 다 보내고 나니
배낭 무게가 3kg로 줄었습니다.
그 때야 비로소 제대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배낭이 가벼우니 콧노래를 부르며 하루 종일 걸어도 힘이 드는 줄 몰랐습니다.
한비야님의 ‘눈썹도 떼고 가라.’는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8kg이 된 것은,
당시 국토종단 도보여행은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걸었기 때문이었지만,
이번 여행은 아침에 6시 정도에 출발해서 오후 1시 정도까지만 걸으면 되기 때문에,
조금 무거워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더구나 외국이라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을 한 두 개 더 넣다보니
무게가 8kg이나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요.
<산티아고 도보여행 때 매고 간 배낭(8kg)-배경은 오리손 알베르게>
제 도보여행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저에게 3kg 이상의 짐은 분명히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
어쩌면 짐 때문에 산티아고 순례를 실패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에 대한 안내 책자들에는
거의 다 10kg 정도의 배낭 무게면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잘못된 정보가 제 마음을 현혹시켜서 짐이 많아진 것 같았습니다.
사실 한국 사람의 체형으로 볼 때 그것은 잘못된 정보였습니다.
물론 운동으로 단련된 젊은 사람 사람들이야 10키로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4,50대 사람들이나 여자들에게 10키로의 배낭은
곧 무릎의 관절과 다리 및 발목의 관절을 못 쓰게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연선생님의 강인한 체력이면 10kg정도는 별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일반적으로 주말에 한 번씩이라도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8kg의 배낭 무게를 그리 크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등산을 꽤 많이 해보았지만,
여러 날을 하루 종일 걷는 것은 등산을 하는 것 하고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처음 며칠은 자신의 감당할 수 없는 배낭의 무게도
그리 무겁게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 볼 때 일주일 이상을 하루 종일 계속 걸으면,
무릎과 발에 분명히 무리가 오게 될 것입니다.
연선생님도 다음에 산티아고 순례를 하실 때 배낭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
보도여행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네요.
500명에 가까운 승객을 태운 무거운 쇳덩어리가 가볍게 하늘로 치솟아 올랐습니다.
이것은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묘한 기분입니다.
드디어 비행기를 탔고 내일이면 파리에 도착하고 모래면 생장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두렵고 떨리는 기쁨이 가슴에 잔잔하게 스미어 있습니다.
오래 수련한 화가가 하얀 백지 위에 첫 붓 자국을 막 시작하려는 것 같은 마음입니다.
아마 820km라는 먼 길을 걷는 동안 스페인 북부 아름다운 들녘과
그 곳에 깃들어 있는 중세의 향기에 흠뻑 젖어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 아닌가합니다.
그리고 이번 순례에서 제가 얻고자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오래 걷는’ 내내 ‘오래 참는 것’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그냥 ‘참는 것’이 아니라 ‘오래 참는 것’입니다.
연선생님이 들으면 어린애 같이 별스런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말입니다.
사실 참는다는 것이 우리의 삶과 또 삶의 행복과 크게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저의 일천한 삶의 경험에서 볼 때,
참는 것은 평온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래 참는 것 하나만 잘해도 생활의 작은 행복들은 아주 쉽게
접할 수 있고 또 생각지도 못했던 큰 행운이 온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는다는 것이 연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쉬운 일이 아니지요.
미리 마음을 수련하여 단련해 놓지 않으면
현실의 대인관계에서 제대로 실천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목숨을 걸고 오래 참아 내지 않으면,
목적한 바를 제대로 해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참는 것을 고통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참으면 몸에 병이 된다.’는 말을 흔히들 합니다.
물론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참지 않고 상대에게 화를 뿜어낸 후에는,
더 큰 화가 자신에 다가와 나중에는 참아서 생긴 고통보다는
훨씬 큰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 아니겠는지요.
참는다는 것을 조금 다른 측면의 말로 바꾸어 표현하면
‘절제’라는 말이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주 삼라만상의 생성은 우주 기운의 절제에 의해 생성된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나의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 우주는 그 기운에
수많은 절제의 과정을 거치게 하는 것 같아요.
장미 나무의 뿌리와 줄기 그리고 잎이라는 형태가 바로 에너지의 절제이고,
그런 수많은 에너지의 절제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장미꽃이라는 아름다운 결정체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요.
아마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오욕칠정의 에너지도,
절제 없이는 한 순간의 기쁨이나 행복도 보존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참는 것’과 관련된 말이나 글들은, 어느 종교의 경전에서나,
가장 강하게 강조하는 경문 중에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도 참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이 많지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타면자건(唾面自乾)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당나라 때 ‘누사덕’이라는 사람이 한 말로,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결코 상관하지 말고 마를 때까지 참는다.’는 뜻이지요.
현재까지도 중국 상인들이 좋아하는 격언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세 번 참으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도 있지요.
마지막으로 큰 바람이 있다면,
에크하르트 툴레님이 ‘NOW’’에서 말한 것처럼,
‘환경적 에고’에서 벗어나 진정한 ‘참 자아’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카페지기 소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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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simple Tip
배낭의 무게에 대해 정리를 해 보면,
도보여행에서 모든 사람은 현재 자신의 체력 상황에 따라
자신만의 적정 배낭 무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적정량에서 1키로만 무거워도 무릎과 발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걸을 때 입고 있는 옷이나 신발의 무게도 같은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옷이나 신발도 최대한 가벼운 것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배낭 무게에 대한 한국 사람의 체형에 맞는 나이별 구분은,
2,30대 건강한 남자 - 10kg 이하
2,30대 건강한 여자 - 7kg 이하
4,50대 건강한 남자 - 5kg 이하
4,50대 건강한 여자 - 3kg 이하
60대 이후 남녀 - 3kg 이하 권장
Good Idia - 빈 가방을 폼 나게 매고 지갑만 가지고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어디든 다 사람 사는 곳이니까요.
첫댓글 화 내는 법을 몰랐던 길치님은 순수한 영혼을 가지신 분이시군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글이 숨어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인천 공항으로 바뀐 뒤 인천 공항을 이용해보질 않아서...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헤헤헤~~~
하아~ 3kg 내외로... 무엇보담 젤 중요하네요..
존경스럽습니다. 어느 소설가도 이길을 걷고 책을 내서 지금 읽고있는데 참 아름다우세요
늦게사 보게 되네요. 정말 좋은 글입니다. 계속 읽을께요. 60대지만 언젠가 3킬로 베낭을 메고 산티아고로 갈 사람입니다.^^
이길을 준비하고 있는육학년 몇반입니다. 생생한 체험의 글 ..실감나게 읽기를 시작했어요.하루에 하나씩... 읽을겁니다.이제라도 읽을수 있음에
감사하고있어요.
배낭의 무게3kg ... 새겨들을께요
몇 년 전의 글이지만 열심히 읽겠습니다
산티아고길에 변함이 없을 테니까요.
배낭의 무게......
3kg
기억하겠습니다^^
제가 배운 물리시간에서 운동에너지 위에서 아래로 자유낙하시 에너지 MGH안닌가요?
중량*9.8(중력가속도)*높이 그래서 10kg*9.8*0.1(걸을때 발의 높이) +9.8kg. 매걸음 띨때마다 발바닥, 무릎, 발목등 관절에 추가로 부하를 받는것이죠.
그래서 빨리 지치는것 같읍니다.
제가 게산한것이 맞는것입니까?
글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