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姨從) 형에게 보내는 홍명희의 편지
20210329
3월 29일 김유정 작가 84주기 추모제가 춘천 실레마을 김유정문학촌 김유정 생가 뜰에서 열렸다. 추모제 후반부에 김유정학회의 김유정연구단행본 봉정과 춘천거주 문인들의 작품집 봉정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김유정문학촌 촌장 이순원 소설가가 벽초 홍명희 선생의 친필편지를 소개하였다. 익명을 부탁한 어느 분이 홍명희 선생의 친필편지를 김유정문학촌에 기증하였으며 친필편지는 낭만누리 전시실에서 관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낭만누리 전시실의 '거장들의 귀환' 전시회를 잠깐 살핀 뒤 촌장실에서 소개하는 홍명희 선생의 친필편지를 보았다. 이 편지는 일본 동경에서 춘원 이광수와 함께 하숙할 때 홍명희 선생이 쓴 편지라고 한다. 충북 괴산 출신의 벽초 홍명희는 민족의 위대한 소설 '임꺽정'의 작가로서, 해방공간에서 월북하여 한동안 금기시되어 접근할 수 없었다. 그의 편지글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벽초의 초서체인 한문편지를 독해할 수가 없다. 내용을 알고 싶어 즉석에서 질문했으나 문학촌 관계자의 충분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내용이 몹시 궁금하여 안달하였지만 무지몽매한 능력과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인에게 문의하였지만 역시 어려움을 토로한다. 결국 전공자에게 친필 편지 사진을 보내 초서체를 독해(讀解)한 한문과 그 번역문을 받았다. 먹장 구름이 걷히듯 무지몽매한 두 눈에 햇빛이 비쳐 밝아져 기쁨이 넘쳤다. 해독의 글자들이 큼직큼직하게 들어온다. 발견하고 궁금해 하고 알아가는 일, 특히 앎의 길은 행복이 넘치는 일이다. 행복을 안겨준 분들, 기증자님·김유정문학촌 이순원 소설가님· 관계분들 그리고 초서 및 한문을 독해한 박정슬님께 감사드린다.
홍명희의 친필 편지 초서 및 한문 독해
洛陌霎逢,依依若一
夢,伊后經歲又經
年矣.伏詢比者炎熱,
侍體節万旺,
叔主諸度萬康,
潭府淸旺,伏禱伏禱.姨弟
身爲世波飄揚,作孤
客於殊域,万事徒傷
心而已.邨無一種好趣,而
若吾
兄主高臥林下,以古書爲
賢友,觀世事若浮雲,
恂有古賢逸士之風.弟
則俗累纏身,塵念滿腹,
未能與
兄主共此眞境眞趣,恨
亦奈何.餘万漏留續,
不備.上候.
隆熙元年八月十一日
姨弟再拜
洪命熹
此後以書相問,以補平
日之疎遠,爲竗爲竗.
서울 부근에서 잠깐 만난 것이 마치 꿈처럼 생생한데, 그 이후로 한 해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났습니다. 삼가 묻건대, 요즈음의 더위 속에서 부모 모시며 지내는 형편이 평안하신지, 숙부님의 안부도 괜찮으신지, 담양부중(潭陽府中)에서의 형편도 맑고 왕성하신지요. 엎드려 바라고 또 바랍니다.
이종제(姨從弟)인 저는 몸소 세상의 풍파에 부딪히며 외로운 나그네로 먼 길 떠나 모든 일에 다만 마음을 다치고 있을 뿐입니다. 외진 마을에서 일종의 좋은 취미도 없는데, 만약 우리 형님(편지 받는 상대)과 함께 벼슬을 그만두고 산 속에 누워 옛 책들을 어진 친구로 삼는다면, 세상일은 마치 떠다니는 구름과 같이 덧없게 보일 것이니 진실로 옛 현인과 은사(隱士)의 기풍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너저분한 세상살이에 몸을 얽매이며 속세의 잡념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 형님과 함께 참된 경지나 참된 취미를 가지지 못하니, 한스러움이 또한 어떠하겠습니까.
남은 만 가지의 빠진 이야기는 다음 편지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만 줄이며 편지를 올립니다.
융희원년 8월 11일
이종제(姨從弟) 홍명희 올림
이후부터는 편지로 서로 문안하여, 평소의 소원함을 보완하고자 하니 묘한 계책이 될 것입니다.
1. 수정본
벽초 홍명희가 일본 유학 중이던
만 19세 때 이종 형에게 보낸 편지
洛陌霎逢依依若一夢(낙맥삽봉의의약일몽),
伊后經歲又經年矣(이후경세후경연의).
伏詢比者炎熱(복순비자염열),
侍體節万旺(시체절만왕),
叔主諸度萬康(숙주제도만강),
潭座淸旺(담좌청왕),
伏禱伏禱(복도복도).
姨弟身爲世波飄揚(이제신위세파표양),
作孤客於殊域(작고객어수역),
万事徒傷心而已(만사도상심이이).
頓無一種好趣(돈무일종호취),
而若吾兄主高臥林下(이약오형주고와림하),
以古書爲賢友(이고서위현우),
觀世事若浮雲(관세사양부운),
恂有古賢逸士之風(순유고현일사지풍).
弟則俗累纏身(제축속루전신),
塵念滿腹(진념만복),
未能與兄主共此眞境眞趣(미능여형주공차진경진취),
恨亦奈何(한역내하),
餘万漏留續不備(여만루류속불비).
不備上候(불비상후).
隆熙元年八月十一日(융희원년 8월 11일).
姨弟(이제) 洪命熹(홍명희) 再拜(재배)
洪命熹(홍명희)
此後以書相問(차후이서상문),
以補平日之疎遠(이보평일지소원),
爲竗爲竗(위묘위묘).
서울 부근에서 잠깐 만난 것이 꿈처럼 아련한데,
그때부터 한 해가 지나고 한 해가 더 지났습니다.
삼가 여쭙건대, 더위가 한창인 이즈음
부모님 모시며 지내느라 평안하신지,
숙부님 건강도 괜찮으신지,
집안 모두 무탈하신지요.
(그러하기를) 엎드려 바라고 또 바랍니다.
이종제(姨從弟)인 저는 세상의 풍파에 휩쓸리며
외로운 나그네로 멀리 떠나와
하는 일마다 마음을 다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럴듯한 취미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만약 형님과 함께처럼 높은 관직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산속에 들어 고고하게 산 속에 누워
옛 책들을 어진 친구로 삼는다면
세상일은 떠다니는 구름처럼 덧없게 보일 것이니,
진실로 옛 현인과 은사(隱士)의 기풍이 있을 테지요.
하지만 이 아우는 너저분한 세상살이에 몸은 매이고
마음은 속세의 잡념으로 가득해
형님만큼의과 함께 참된 경지나 취미를 가지지 못하니
한스러움이 또한 어떠하겠습니까.
못 다한 많은 이야기들은 다음 편지에 쓰겠습니다.
이만 줄이며 편지를 올립니다.
융희 원년(1907) 8월 11일
이종제(姨從弟) 홍명희 거듭 머리 숙이며 올림
홍명희 올림
이후로는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물어
평소의 소원함을 보완한다면
참으로 묘한 계책이 되겠지요.
2.김유정문학촌 소식지, 2021 여름호
벽초 홍명희가 일본 유학 중이던
만 19세 때 이종 형에게 보낸 편지
洛陌霎逢依依若一夢(낙맥삽봉의의약일몽),
伊后經歲又經年矣(이후경세후경연의).
伏詢比者炎熱(복순비자염열),
侍體節万旺(시체절만왕),
叔主諸度萬康(숙주제도만강),
潭座淸旺(담좌청왕),
伏禱伏禱(복도복도).
姨弟身爲世波飄揚(이제신위세파표양),
作孤客於殊域(작고객어수역),
万事徒傷心而已(만사도상심이이).
頓無一種好趣(돈무일종호취),
而若吾兄主高臥林下(이약오형주고와림하),
以古書爲賢友(이고서위현우),
觀世事若浮雲(관세사양부운),
恂有古賢逸士之風(순유고현일사지풍).
弟則俗累纏身(제축속루전신),
塵念滿腹(진념만복),
未能與兄主共此眞境眞趣(미능여형주공차진경진취),
恨亦奈何(한역내하),
餘万漏留續(여만루류속).
不備上候(불비상후).
隆熙元年八月十一日(융희원년 8월 11일).
姨弟(이제) 再拜(재배)
洪命熹(홍명희)
此後以書相問(차후이서상문),
以補平日之疎遠(이보평일지소원),
爲竗爲竗(위묘위묘).
서울 부근에서 잠깐 만난 것이 꿈처럼 아련한데,
그때부터 한 해가 지나고 한 해가 더 지났습니다.
삼가 여쭙건대, 더위가 한창인 이즈음
부모님 모시며 지내느라 평안하신지,
숙부님 건강도 괜찮으신지,
집안 모두 무탈하신지요.
(그러하기를) 엎드려 바라고 또 바랍니다.
이종제(姨從弟)인 저는 세상의 풍파에 휩쓸리며
외로운 나그네로 멀리 떠나와
하는 일마다 마음을 다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럴듯한 취미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만약 형님처럼 고고하게 산 속에 누워
옛 책들을 어진 친구로 삼는다면
세상일은 떠다니는 구름처럼 덧없게 보일 것이니,
진실로 옛 현인과 은사(隱士)의 기풍이 있을 테지요.
하지만 이 아우는 너저분한 세상살이에 몸은 매이고
마음은 속세의 잡념으로 가득해
형님만큼의 참된 경지나 취미를 가지지 못하니
한스러움이 또한 어떠하겠습니까.
못 다한 많은 이야기들은 다음 편지에 쓰겠습니다.
이만 줄이며 편지를 올립니다.
융희 원년(1907) 8월 11일
이종제(姨從弟) 거듭 머리 숙이며
홍명희 올림
이후로는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물어
평소의 소원함을 보완한다면
참으로 묘한 계책이 되겠지요.
첫댓글 대모산 선생님 안녕하세요?
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입니다.
저희도 추모제 때 홍명희 선생의 귀한 서한을 기증받고, 내용에 대해 참으로 궁금해 하던 차에 이곳 카페를 검색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박정슬 선생님께 의뢰하여 풀어주신 내용을 보고 저희도 비로소 이 편지의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김유정문학촌 소식지 여름호에 이 귀한 서한도 공개하고, 내용도 공개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박정슬 선생님께 따로 번역 내용의 사용 허락과 함께, 박정슬 선생님이 허락하신다면 거기에 대해 소정의 교료도 함께 지불해야 하는데 저희로서는 대모산 선생님께서 그 일을 중간에 알아봐주시고 연락해주실 수 있는지 여쭙고자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순원 작가님,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날 선생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어서 저는 몹시 기뻤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헌사도 동영상으로 찍고 선생님 뒤를 따라가서 벽초의 친필편지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책없는 짓을 했습니다. 혹 문학촌에 피해를 끼치는 일이 아닐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이 우쭐거려지는 것을 숨길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 바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귀한 자료를 스크랩하여 한국작가포럼 분들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https://cafe.daum.net/chun-jak/Brve/35
여기에 가면 소설가 하창수 선생님이 대모산 선생님께 남기신 감사 댓글을 볼 수 있습니다.
댓글의 복사가 되지 않아 주소를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은비령님^^
봄날의 소식들에 행복해 합니다.
손님은 읽기가 되지 않아
카페에 가입하여
승인 대기 중입니다.
원글이 회원들만 읽을 수 있는 글이어서 옮긴 춘천작가회의에서도 춘천작가회의 회원들만 볼 수 있는가 봅니다.
하창수 작가님이 카페지기여서 저도 지금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은비령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