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마라톤대회 참가하지 않겠다”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뉴욕마라톤 완주 뒤 소감 밝혀
“지금까지 내가 참가한 어떤 자전거 경주보다도 힘들었다. 그 어느 레이스에서도 지금 같은 통증과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다.”
지난 11월 5일, 랜스 암스트롱(35·미국)이 뉴욕 마라톤대회에서 처음으로 풀코스를 완주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사이클 황제’에게도 42.195km를 달리는 일은 힘겨웠던 모양이다.
걷다시피 결승점 통과
잘 알려진 대로 암스트롱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 도로일주 사이클대회)를 7연패한 인물이다. 3주간 3000km를 끊임없이 달리는 투르 드 프랑스 우승자인 암스트롱은 고환암을 이겨내고 ‘사이클 황제’ 자리에 올라 수많은 암환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인물이기도 하다. 2005년 은퇴한 그가 지난 10월 초, 마라톤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프로 사이클 선수를 그만둔 뒤 생긴 삶의 빈자리를 채우는 한편 암 연구기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그가 뉴욕 마라톤에서 입고 뛴 짙은 녹색의 반소매 티셔츠에는 ‘10//2’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이 숫자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6년 2월 10일 암 진단을 받은 날짜를 뜻한다. 그에게는 ‘시련과 극복’의 상징인 숫자를 티셔츠에 새기고 달린 것이다.
출발부터 16km 지점까지는 1980년대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이자 뉴욕 마라톤 우승자였던 알베르토 살라자르와 게르만 실버가 그의 페이스메이커로 나섰다. 그들은 구간 기록을 정해주고, 급수대에서 물컵을 가져와 전해주기도 했다. 주로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그를 응원했다. 응원하는 시민들 중에는 1999년 설립된 ‘암스트롱 암 연구재단’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Live Strong’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노란색 고무팔찌를 착용한 사람들이 많았다. 매스컴도 엘리트 선수들보다 그에게 초점을 맞췄다. 2006 뉴욕 마라톤은 그를 위한 대회 같았다. 그 또한 상당히 고무되어서 페이스메이커들은 치고 나가려는 그를 자제시켜야 할 정도였다.
16km부터 32km까지는 올림픽 첫 여자 마라톤 우승자인 조앤 베노이트와 사무엘슨 등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19km 지점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정강이 통증이 생겼고,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그가 힘들어할 때마다 페이스메이커들은 “저 앞에 뛰어가는 참가자를 응시하라”거나 “멀리 보이는 건물을 주목하라”는 등의 조언을 해주었다. 그는 잘 따랐고, 레이스는 한결 쉬워졌다. 사무엘슨은 “우리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그는 마라톤을 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브3 달성은 장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32km 이후부터는 세계육상선수권과 올림픽 5000m에서 우승하며 ‘중거리의 제왕’으로 불린 히참 엘 게루즈(모로코)가 동반자로 나섰다. 동반자에게 “너무 피곤하다. 기록은 관심이 없다”며 완전히 녹초가 되어 걷다시피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암스트롱은 골인 뒤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기록은 2시간59분36초로, 전체 참가자 중에서 8백69위였다. 마스터스 마라토너의 꿈인 서브3를 첫 도전에서 일궈냈지만, 2시간10분대 진입도 가능하다던 전문가들의 예상을 크게 벗어난 기록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어떤 자전거 경주도 오늘 내가 겪은 ‘3시간의 형벌’만큼 힘들지 않다”던 그는 “다시는 마라톤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도전에서 60만 달러의 기금을 모았는데, 이 기금은 모두 암스트롱 암 연구재단에 기부됐다.
한편 이날 뉴욕 마라톤에는 시각장애인 마라톤 세계 최고기록 보유자인 헨리 완요이케(32·케냐)도 참가했는데, 완요이케는 2시간40분14초에 결승점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