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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말랑함을 선사하는 연애보고서
- 김유철,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 문학동네, 2010.
박 현 이*
1. S의 편지
아주 소소하고 별 것 아닌 일상의 기록. 그래서 사실 이 소설이 수상작이 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고개를 한참 갸웃거렸다. 그럼에도 이 얇은 두께의 책을 다시금 뒤적이게 만든 것은 중간 갈피에 끼어있는 편지 때문이었다.
여긴 우기가 시작되고 있어.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차분하게 비 오는 거리를 감상할 수는 없어.
빗줄기가 너무 강해서 맞으면 아플 정도니까.
그래서 자카르타의 한국학교 학생들은 비가 그칠 때까지 바나나 나무 밑에서 몸을 피하곤 해.
이곳에 들어온 지 삼 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난 부유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다행히 여기 한국학교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대해주고 있어 외로움은 덜하지만.
그래도 향수를 달래기 위해 주말이면 학교 도서관 근처를 맴돌며 한국소설을 읽거나 영화관(이곳 상류층들이 이용하는 고급 영화관은 의자가 아닌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서 영화를 볼 수도 있어. 한국에서의 교사 월급으론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여기선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해)에서 한국영화를 보며 지내는 날이 많아.
너무 갑자기 떠나버렸다고 생각하겠지?
이해해달라고 하면 내가 너무 나쁜 여자가 되는 걸까?
하지만 지금 네게 아무리 설명을 한다고 해도 그건 모두 변명밖에 되지 않을 거야.
좀더 마음이 정리가 되면,
그때 모든 걸 말하고 싶어.
학교 교정엔 하와이안 무궁화가 탐스럽고 예쁘게 피었어.
365일 매일 피고 지는 꽃이라는 게 신기해.
이곳 자카르타는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밀림 한가운데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섬들과 끝없이 펼쳐진 하얀 백사장을 보고 있으면
휴가를 떠나온 것처럼 마음이 들뜨기도 하지만
그런 기분을 즐기기엔 여긴 너무 습하고 더운 것 같아.
한국은 이제 가을이 절정이겠구나.
한국의 가을하늘이 보고 싶어.
그 계절의 쓸쓸함이나 싸늘함까지도 함께 말야.
― 자카르타에서 S.(66~67면.)
S가 소설 속 주인공인 K에게 보낸 이 편지는, 올이 느슨해지고 무늬가 성글어진 양말을 익숙하게 신었을 때, 문득 구멍 사이로 비집고 나온 예상치 못한 발가락과의 대면과도 같았다. 잔잔하다 못해, 다소 빛바랜 혹은 볼품없는 우리네 일상에 생긴 갑작스런 구멍이 선사하는 것들은 무얼까.
청춘의 중심에선 갑작스런 이별 선고가 익숙했던 일상을 마구 구겨버리기에 충분히 적합할 것이다. 그만큼 흔들리기 쉽고, 무너지기 쉽다는 것은, 존재의 내면이 훨씬 더 말랑말랑하고 유연하기 때문일 테고. 아마도 이 소설의 가치를 굳이 묻는다면, 지금 막 청춘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는 갑작스런 구멍에 당황해하지 말고, 너무 오래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자신의 말랑함, 혹은 말랑할 수 있음에 감사해하라고. 그리고 이미 그 터널을 지나온 이들에게는 말랑함을 그리워하거나 상기해보라는 전언 쯤으로 답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아련한 청춘의 터널을 이미 지나온 내게 있어 S의 편지는 다소 경직된 일상에 하나의 말랑함으로 다가왔다. K처럼, 겨울을 맞이하는 길목에서부터 막연하게 봄을 그리워하던 일, 오래지 않은 언젠가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있다. 소설 속 S와 K의 첫사랑을 피워올린 ‘벚꽃’의 이미지가 그대로 현실로 낙화해 몇 장의 빛바랜 사진으로 중첩되어 상기되기도 했다. 도서관. 벚꽃 그늘. 4月 이야기. 미술관. 벚꽃길. 박물관. 아련한 떨림으로 새겨진 기억들.
2. 사라다 햄버튼, 아버지, 어머니, R 그리고 S. 인연을 매듭짓는 법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은 언뜻 보면, 급작스럽게 이별한 S와 K라는 청춘 남녀를 통해 젊은 날 첫사랑이 선사하는 몽상과 멜랑콜리,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 보이지만, 이야기의 동선을 천천히 따라가 보면, 정작 인연의 매듭짓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 K로 하여금 연인의 상실과 이별의 상처를 고통스럽게 토로하도록 만드는 대신, 책을 읽는 독자들을 이끌어 청춘의 소소한 사랑의 기록과 상실의 경험을 반추해보게끔 만든다. 작가는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그것을 유지하여 성숙한 관계로 만들어 가는데 집중해온 우리에게, 때론 인연을 갈무리하고 매듭짓는 과정이 더 중요함을 K의 일상을 통해 보여주려 한다. 이는 곧, 삶에 있어 사랑을 꽃피우는 법 못지않게 지는 과정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다소 역설적이지만 온기 담긴 조언으로 읽혔다.
소설은 실연당한 이십대 방사선 기사가 주인 없는 도둑고양이를 길들여 가족으로 맞으며 이별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해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 가지를 이루면서 전개된다. 그리고 K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곁가지를 이룬다. 일방적인 이별과 실연의 아픔으로 직장마저 그만 두고, 폐인처럼 지내던 K에게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든다.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아닌, 낯선 고양이 한 마리와 동거하게 된 K는 제일 먼저 고양이에게 ‘사라다 햄버튼’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이름에 담긴 사연인 즉, 고양이가 게맛살과 삶은 계란을 넣어 만든 샐러드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모습과 설기현이 공격수로 뛰었던 울버햄튼의 축구경기를 보면서 두 단어를 조합해 아무렇게나 붙인 이름이 사라다 햄버튼이다. 그러나 사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샐러드보다는 사라다가, 햄튼보단 햄버튼이 발음하기가 더 편해서”(14면)라는 K의 변명 속에는 그만의 인연을 맺는 방식이 녹아 있다. “내가 사라다 햄버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비로소 녀석은 내곁에 머물러 있는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14면)라는 김춘수의 시를 패러디한 K의 고백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명명법은 유방암선고를 받고 죽은 어머니, 캐나다로 이민 간 목수 새아버지, 불현듯 등장한 친아버지, 그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자카르타로 떠난 여자친구 S, 바에서 우연히 알게 된 여대생 R과의 인연을 명명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K는 어찌 보면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일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 주변인물과 굳이 의미심장하게 소통하려들지 않는다. 아마 K가 죽은 어머니와 조금 더 깊게 소통하려 했다면, 어머니는 암에 걸려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르고, 새아버지와 함께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그는 캐나다로 이민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바에서 만난 아르바이트생 R 역시, 그녀의 고민을 K가 귀기울여 들어주려 했다면 보다 깊은 관계로 발전했을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자카르타로 떠난 S와의 인연도 그녀와의 소중한 관계에 몰두하여 그녀의 고민을 함께 나누었더라면, S 역시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인연을 맺고 유지하는 것에 서툰 K에게 있어, 남겨진 고양이를 통해 홀로 풀어야할 숙제는 아마도 이별을 인정하고 인연을 갈무리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은 고독과 상실에 대한 서정적 기록이기보다는 인연을 매듭짓고 자신의 일상을 새롭게 재조명해보는 과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삶의 지혜를 터득해가는 성장담의 진솔한 기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에서 늘 마주할 수 있는 소소한 기록이지만, 작가가 인연과 사랑에 철저하게 실패한 가련한 이십대 청춘의 절망과 좌절을 구구절절 묘사하지 않고, 인연을 거두는 법에 대해 담백하게 이야기하는 법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K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 후에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이 맺었던, 혹은 맺고 있는 인연과 그것이 갖는 정체성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다. 인연을 지속해가는 데 많은 지혜가 필요하듯, 인연을 매듭짓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데에는 더 많은 지혜가 필요함을 소설은 독자에게 귀띔한다.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은 우리의 일상을 더욱 단단하면서도 때로 말랑하게 해줄 수 있는 진정한 힘은 사랑하는 대상과의 관계가 품는 속성이 기쁨과 희열, 행복을 선사하는 이면에 배신과 슬픔, 고통, 상실의 감정을 품고 있음을 이해하고 때로 이를 서서히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으며, 결국 이것이 존재에 대한 예의와 자신의 삶의 지혜임을 깨닫게 하는 연애 보고서이다.
3. P.S. 또 다른 S 혹은 K의 답장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 막 청춘의 중심을 통과하고 있는 독자들의 속내가 궁금했다. K와 같은 세대의 정서로 사랑을 앓고 있는 그들에게 S의 이별편지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호기심 반, 훔쳐보기 반, 부러움을 조금 믹스해 그들의 마음을 인터뷰했다.
S야,
네 말대로 여기는 청렴한 가을 하늘이 높게 떠있고 교정 내에는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어 시간이 흘러가는 걸 알 수가 있단다. 계절은 바뀌었지만 우리 처음 만난 흐드러지게 핀 하얀 벚꽃나무 아래 너의 모습이 아직도 선해. 사진 한 장 찍어달라는 너의 그 음성과 카메라 액정 가운데 있는 너의 모습까지도.
네가 떠난 그 날. 나는 사막 한 가운데 홀로 떨어진 듯한, 그 황량함과 무미건조함을 잊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어. 끝없이 펼쳐 있는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처럼, 니 편지가 그래. 우기가 시작된 자카르타에서의 삶이 어떨지 궁금했는데… 너의 말처럼 선생님이 되어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걸 보고 안심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타지에서 아프지 않고 잘 지내고는 있을까, 밥은 잘 먹고 다니고는 있는지…
나는 지금 사라다 햄버튼이라는 고양이를 기르고 있어. 장동건을 닮은 아주 잘생긴 고양이야. 이름이 참 특이하지? 먹다 남은 샐러드를 한 번에 먹어치워서 사라다, 그 녀석을 첨 보았을 때 설기현의 울버햄튼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햄버튼이란 단어가 떠올랐어. 그래서 녀석 이름을 그렇게 지었지. 나의 마음 한켠을 채워주고 있는 고마운 친구라고 해야 하나? 나에게 다가와서 자기 몸을 비비거나 내 품으로 들어와 자곤 해. 그만큼 내 마음에 위로가 되어주고 있어 그나마 잘 생활하고 있지만… 그래도 네가 생각날 때면 니가 있던 그 자리를 채워주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어.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편지를 읽었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위안을 얻기 위해서였을까. 아직 네가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 왜 떠나야만 했는지 너무나 궁금하고 알고 싶지만, 시간이 지나면 굳이 설명해 주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면 우리는 아직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증거일 테니까. 아직 내 기억 한켠에 소중히 자리잡고 있는 너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은 마음뿐이야. 내 마음도 그쪽 자카르타에 있는 하와이안 무궁화처럼 365일 매일 함께 너를 생각하고 있어. 직접적으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는 못하지만, 이렇게 메일로 너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너무나 기쁘고 행복해.
보고 싶다.
― K가.
P.S. 장동건 닮은 잘 생긴 사라다 햄버튼 고양이의 사진도 첨부해서 보낼게.1)
K에게
오늘은 자카르타의 뜨거운 땅을 식혀줄 굵은 빗줄기가 마구 쏟아지던 날이었어. 마구 쏟아지는 빗줄기와 함께 얼룩진 내 머릿속도 깨끗하게 씻겨진 듯 해.
비를 피해 들어간 바나나 나무 밑에서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우리가 손잡고 함께 걸었던 벚꽃길이 생각났어. 너와 함께 했던 기억들은 가끔 나를 불쑥불쑥 찾아오곤 해.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
나는 항상 꿈꿔오던 자카르타의 한국어 교사를 모집한다는 공지를 읽고 나서 지원서를 쓰며 며칠 밤을 꼬박 새웠어. 완성된 지원서를 학생과에 제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벚꽃 나들이에 올랐지. 그때 네가 나에게 불쑥 다가왔어. 그렇게 우리 둘의 인연은 시작되었지.
내가 아닌 우리의 시간 속에 살고 있던 나에게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어. 그 편지는 자카르타의 한국어 교사로 채용되었다는 합격통지서였어. 나는 너와 함께 하는 달콤한 시간과 자카르타의 한국어 교사라는 나의 꿈 사이에서 갈등했고, 한 통의 편지와 함께 다시 타오른 내 맘속에서 불씨를 꺼트릴 수가 없었어. 너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나를 보내고 슬퍼할 네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서 아무 말 없이 한국을 떠나와 버렸지. 너에게 미리 알렸어야 했는데 나의 비겁한 선택이 우리 모두를 아프게 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을래. 다만 나의 선택 뒤에 찾아온 이별의 상처가 헛되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으로써 너에게 용서를 빌게. 가끔 다시 따뜻하고 아늑한 한국의 생활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어.
나에게 너와의 추억은 외로운 자카르타에서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어. 좋은 추억을 선물해주어서 너무 고마워.
비록 지금은 쓰디쓴 이별이지만 이러한 헤어짐이 멋진 술안주가 되는 만남의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어. 올 봄 황사의 얼룩과 함께 떨어지는 벚꽃이 새 하얀 봉오리로 내년에 다시 피어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잖아.
이 편지와 함께 복잡한 네 머릿속이 깨끗해지길 바라. 부디 이별의 아픔의 딛고 일어나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길 기도할게.
― 우리의 아름다운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S가.2)
* 대전 출생, 충남대 문학박사과정 수료, 문학평론가, April-hi@hanmail.net
1)대학교 교양수업을 진행하면서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을 중심으로 소설을 재구성하여 S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직접 써보도록 했다.(수업을 수강하는 80여 명의 수강생들에게 낸 과제였으나 본 글에는 청춘을 대변하는 남학생과 여학생 각각 한 편의 편지를 실어본다) 이 편지는 소설 속 주인공 K로 분한 25세 남학생의 온라인상의 편지글 전문을 인용한 것이다.
2)바로 앞서 인용한 남학생의 글을 다시 수업을 수강하는 여학생에게 온라인상으로 보낸 후, 그에 대한 답장을 직접 소설 속의 S가 되어 써보도록 하였다. 이 편지는 23세 여학생의 편지글 전문을 인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