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에 대하여 - <해롤드와 모드> 리뷰 부제:이것은 리뷰인가, 에세이인가. 혹은 둘 다인가.
정말 보고픈 영화는 신기하게 어떻게든 보게 된다. 기독교변증가이자 저자인 C.S.루이스의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를 담은 <쉐도우 랜드>나 소름돋게 신비한 바이올린 주제곡이 흐르는 <레드 바이올린>을 보게 된 건 모두 우연찮은 기회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71년 상영작, 할 애쉬비 감독의 <해롤드와 모드>를 볼 수 있게 되리란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영화의 전당에서 70년대 영화 특별전 팜플릿을 보다가 이 영화 제목을 발견했을 때의 전율이란!
<해롤드와 모드>를 처음 알게 된 건 한 모티브 책에서 소개된 줄거리를 통해서였다. 콜린 히긴스가 시험용으로 쓴 20분짜리 시나리오였던 이 이야기는 곧장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만들어졌다. 부산에 살다 보니 연극으로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다. 나는 줄거리 전달 위주의 문장에도 감지덕지하며 번역된 소설 <19 그리고 80>을 사서 애지중지했다.
이 이야기는 19세 소년과 80세 할머니의 러브스토리다.(이제부터 스포일러가 있을 예정이다.) 해롤드는 뛰어난 솜씨로 목 매달린 척, 수영장에서 익사한 척, 온 몸이 불에 탄 척, 온갖 자살 자작극을 벌여 어른을 놀라게 하는 소년이다. 그는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장에 방문하는 취미가 있는데, 거기서 자신과 같은 방문객 할머니 모드를 만나 친해진다. 이 할머니는 그와 반대로 매우 적극적으로 삶을 향유한다. 요리를 하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고, 인류를 친구로 느끼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가끔 남의 차를 훔쳐 타거나 공유지의 병든 나무를 맘대로 숲에 옮겨 심는 짓도 하지만.
해롤드는 모드를 통해 삶의 기쁨에 대해 점차 알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80세의 생일에 자신의 의지로 삶을 마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그대로 실행하고 만다. 해롤드는 병원 대합실에서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리지만, 돌아오는 건 사망 소식뿐이다. 그는 슬픔에 넋이 나간 듯이 차를 몰고 해안 벼랑길을 질주한다. 벼랑 끝을 향해 가면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결국 차는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져 불길에 휩싸인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벼랑 위에서 해롤드가 그 자동차를 내려다보며 서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마지막 자살 자작극이었을 것이다. 그는 등에 짊어진 악기 벤조를 끌어내어 모드가 가르쳐 준대로 연주하며 노래한다. 내가 이 이야기에 반한 건 이 매혹적인 결말의 영향이 컸다. 슬픔과 감동이 함께하는 결말.
그러나 나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던 미주언니는 감동이 너무 컸던 모양이다. 죽은 줄만 알았던 주인공이 벼랑 위에 나타나선 느닷없이 발랄한 노래를 부르는 것에 참기 힘든 웃음이 터진 것이다. 그 웃음에 전염된 나도 고개를 숙이고 큭큭 댔다. 관객이 많진 않았지만 다들 우리를 흘깃 쳐다보며 내려갔다. 자신들의 감상을 미친 웃음으로 방해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지만, 웃음소리가 잘 참아지지 않아 죽을 맛이었다. 우리는 본의 아니게 한참 후에 극장을 나왔고, 나와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 중에도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내 기억 속 감동적 결말은 다시없을 코미디로 거듭나게 되었다. 대신 영화로 보아서 큰 감동이 된 부분은 다른 데 있었다. 해롤드와 모드가 꽃밭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모드는 만약 꽃이 될 수 있다면 해바라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해롤드에게 어떤 꽃이 되고 싶으냐고 물어본다. 해롤드는 잘 모르겠다고 하다가 하얀 들국화꽃의 무리를 보고는 저 꽃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왜냐고 물으니 하는 대답이 걸작이다. “모두 똑같이 생겼으니까요”
그러자 모드는 그를 꽃들 가까이 이끌고 가서 항변한다. “이 꽃들은 똑같지 않아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꽃은 더 작고, 어떤 꽃은 더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지 몰라요.”
그녀는 그런 이야기들을 계속하더니 슬픈 눈빛으로 한 마디를 덧붙인다. “사람들이 자신의 특별함을 모르는 건 세상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이지요.”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저기 스크린 너머에. 그런 생각에 눈물이 났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어떤 분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좀 모자란 것이 사실이라는 이야기를 아주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건 보통 스스로 마음속으로 하는 말이거나, 다른 사람을 평가하면서 하는 말이 아닌가? 자기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이기라도 한 듯이 그렇게 말하면...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냥 마음이 아프다.
신은 자신의 손으로 만든 피조물 하나하나를 다 사랑할 것이다. 들꽃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이라면 몇 배로 더 사랑할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성경 인물 중 야곱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야곱은 아름다운 라헬을 특별히 더 사랑했다. 그러나 신은 사랑받지 못한 레아의 아들 유다의 족보에서 메시야가 태어나게 하였다.
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은 다 창조한 그. 티 하나 없이 푸르른 하늘과 깊이를 알 수 없이 적막한 밤 하늘을 만든 그. 3월의 개나리와 4월의 벚꽃과 5월의 장미를 빚어 꽃피운 그. 나도 그가 보는 것을 보고 싶다.
들꽃 언덕에서 -유안진
들꽃 언덕에서 깨달았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것을 그래서 들꽃 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그래서 하늘의 눈금과 땅의 눈금은 언제나 다르고 달라야 하는 것도 들꽃 언덕에서 깨달았다.
첫댓글 정말 오랜 만에 럽투르니에의 글을 보네. 반갑고 고마워요^^
앞으로 종종 올릴게요오^^
나는 영화는 못 보고, 소설은 읽었어요. 유명한 연극 연출가인 이성규 선생님을 모시고, 청소년인문학교에서 전문가와의 만남도 했었지요. 그런데 남는 것은 노파와 소년의 사랑 이야기이니, 내가 책을 읽기는 읽은 건가? 에고....
영화가 소설보다 훨씬 좋더라구요ㅎ
호, 그래요? 언젠가 시간 내서 봐야겠는걸.
그나저나 글 솜씨가 녹슬지 않았군요.
앗 감사합니다 어떤 계기로 다시 쓰게 됐는데
녹슬지 않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쓸려고 해요~^^
나도 그가 보는 것을 보고 싶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공산당 박수, 짝 짝 짝 ^^
감사합니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