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이다’와 ‘늘리다’

[조성식]

☑ 우리말 편지 Ⅱ

☑ ‘다른 말’과 ‘틀린 말’ 5

‘늘이다’와 ‘늘리다’

억새로 유명한 장흥의 천관산 아래에 있는 작은 산골 마을 오산에는 명절이 아니라도 엿을 고는 달큼한 내음이 천지를 진동하는 날이 많습니다. 마을의 할머니들이 닷새마다 한 번씩 열리는 읍내의 장에 내다 팔 엿을 고기 때문이지요.

“꼬두밥 쪄서, 식혜물 짜고, 나무 때서, 가마솥에 조리고……”, 이것이 오산 마을의 엿 만들기 공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갈색의 물엿에 해당하는 조청이 탄생하기고 하고, 그 다음 계속해서 가마솥에 조리는 과정을 거쳐 검붉은 빛깔의 단단한 엿이 만들어지기도 하니, 그것을 가리켜 ‘갱엿’이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전라도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엿을 만드는 방법에 차이가 있어, 담양의 창평에서는 예로부터 ‘갱엿’이 아닌 ‘흰엿’을 주로 만들어서 나라님께 진상하는 일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갱엿’과 ‘흰엿’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갱엿’이 검붉은 빛깔을 띤다고 했으니, 흰색 빛을 띠는 ‘흰엿’하고는 우선 그 빛깔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두 엿은 맛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갱엿’은 엿물을 계속해서 조리다가 흐르지 않을 정도로 걸쭉해지면, 그것을 차게 식혀 단단하게 굳도록 해서 만든다고 한다면, ‘흰엿’은 걸쭉해진 엿물이 굳기 전에 일명 ‘엿 새기기’ 혹은 ‘바람 쐬기’를 한 후 손가락 굵기로 길게 ‘늘여서’ 만듭니다. 그 결과 ‘갱엿’은 입안에 넣고 오래오래 녹여서 먹어야 하는 단단하면서 끈적이는 맛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하여 가끔은 이가 빠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먹어야 한다면, ‘흰엿’은 그 맛이 상당히 부드럽고 바삭해서 한 입 깨물면 아자작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지요.

문제는 ‘흰엿’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엿가락 늘이기’ 작업이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어서 오늘날 엿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젊은이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엿가락 늘이기’를 ‘엿가락 늘리기’라고 잘못 쓰는 국어 화자들도 적지 않은 것 같으니 엿을 고는 일은 여러 모로 어려운 일인 듯합니다. 우선 다음 예들을 보기로 하시지요.

⑴ㄱ. 모차렐라 치즈는 숙성 과정 없이, 만들어진 고체 덩어리를 뜨거운 물에 넣어서 밀가루 반죽하듯이 또는 엿가락 *늘리듯이 스트레칭을 해서 만든 치즈입니다.

ㄴ. 고소득층 자녀, 건강보험 지원받는 키 *늘리기 진료 독식.

ㄷ. 드라이버 비거리 *늘리는 연습법 부탁합니다.

위의 예에서 쓰인 ‘*늘리듯이, *늘리기, *늘리는’은 ‘늘리다’의 활용형들로서 맥락상 모두 잘못 쓰인 활용형들입니다. 즉, 이러한 맥락에서는 ‘늘이다’의 활용형인 ‘늘이듯이, 늘이기, 늘이는’을 각각 써야 올바른 활용형이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례는 우리말 동사 ‘늘이다’와 ‘늘리다’가 맥락에 따라 구별해서 써야 하는 단어라는 것을 잘 말하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단어는 어떠한 의미를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요?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제시하는 두 단어의 의미입니다.

단어	의미	용례
늘이다	1) 본디보다 더 길게 하다.	고무줄을 늘이다/바짓단을 늘이다/엿가락을 늘이다
	2) 선 따위를 연장하여 계속 긋다.	선분 ㄱㄴ을 늘이면 다른 선분과 만나게 된다.
늘리다	물체의 넓이, 부피 따위를 본디보다 커지게 하다.	주차장의 규모를 늘리다/우리는 넓은 평수로 늘려 이사했다.

⑵ㄱ. 윗몸일으키기 횟수 늘리는 방법은 없나요?

ㄴ. 시험 시간을 10분 정도 늘려야 합니다.

ㄷ. 적군은 세력을 늘린 후 다시 침범하였다.

ㄹ. 실력을 좀 더 늘려서 다음에 다시 도전해 보렴.

ㅁ. 그 집은 알뜰한 며느리가 들어오더니 금세 재산을 늘려 부자가 되었다.

이러한 의미와 용례에 따르면, ‘늘이다’는 주로 ‘길이’와 관련되는 단어라고 한다면, ‘늘리다’는 ‘넓이’나 ‘부피’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 단어의 구별은 1차적으로 이러한 기본적 의미 차이를 바탕으로 하면 큰 문제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늘리다’는 위의 표에 제시한 기본 의미 외에, ‘수’나 ‘시간’, ‘분량’ ‘세력’, ‘능력’, ‘살림’ 등을 더 늘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니, 이에 대해서도 눈여겨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다음이 그 예들입니다.

  다른말과 틀린말 5(늘이다와 늘리다).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