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Lyric는 그리이스의 칠현금lyre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모든 시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좁은 의미에서의 서정시란 순수한 감정 체험을 나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언어의 의미 전달기능보다는 읽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순수시Poesie Pure와 깊은 관련이 있다. 고대에서는 서사시나 극시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서정시는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확립되어 있지 않았으나 근대에 와서 포우나 보들레르, 말라르메, 발레리 등으로 이어져 오면서 하나의 장르를 형성했다.
장르의 근저에는 따라서 인간 묘사의 일정한 형, 성격 묘사의 일정한 방법이가로놓여 있다. 만일 인간이 발전에 있어 줄거리의 도움을 빌어 완결된 성격으로서 표출하는 경우엔 우리들 앞에 서사문학(서사시)이 놓인다.
만일 그 인간이 자기 개개의 상태에 있어, 체험에 있어, 줄거리 없이 표출하려할 땐 우리들 앞에는 서정시가 놓인다.
■치모프예브 『文學理論』에서
서사시와 서정시의 차이를 밝힌 것이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서정시란 개인적인 체험에 의해서 씌어짐을 본다. 개인적인 체험이란 말을 바꿔 말하면 주관적임을 뜻한다. 시인의 눈을 통하여 관찰되는 사물, 시인의 영감에 의하여 감지되는 순간적인 감정이나 생각들이 하나의 모티브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 서정시이다. 워즈워드는 그의 『서정시집(抒情詩集)』의 서문에서 ‘모든 좋은 시는 강한감정의 자연발생적 표현이다’라고 했다. 물론 이 말에는 시의 형식화에 따른 언어의 장애같은 것을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감정의 중요성이 시에 있어서 얼마나중요한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자아에 의한 주관적인 것이 서정시라고는 하지만, 서정시를 그렇게 단순히 정의할 수는 없다. 오늘날 현대시에서의 다양성은 이루 헤일 수 없이 많기때문이다. 김용호(金容浩)는 『시문학입문(詩文學入門)』에서 ‘서정시는 그 환기(喚起)하는 감정, 정서에 따라서 감상적 서정시, 감격적 서정시, 회상적 서정시로구분’한다고 했으나 실제 서정시라고 일컬을 수 있는 종류도 다음과 같이 많다.
가요Lied, 찬미가Hymne, 오우드ode, 엘리지Elegie, 목가Idyll, 발라드Ballade, 시(譚詩)Romanze, 에피그램Epigramm, 풍자시Satir, 패러디Parodie, 칸쪼네Kanzone, 미네장Minnesang, 사상시Gedankenlyric 등이 그것이다.
가다가 만나서
길동무 되지요
날 싫다 말아라
家長님만 님이랴
오다 가다 만나도
정붙이면 님이지
■김소월 「팔베개 노래」에서
민요풍의 서정시이다. 민요풍의 작품은 노래 부르거나 읊기에 좋은 리듬을 가지고 있다. 간결하여서 외기도 쉽다. 대개 이런 가요는 집단적인 가요와 개인적인가요로 나누어지기도 하며, 또 종교적인 가요와 세속적인 가요로 만들어지기도한다. 김소월의 작품은 세속적인 가요로서 사랑노래라고 하겠다.
내 마음
주름살 많은 늙은 山의 冥想하는 얼굴을 사랑하노니
오늘은
잊고 살든 山을 찾아 내 마음 머언 길을 떠나네
山에는
그 고요한 품안에 高山植物들이 자라거니
마음이여
너는 해가 저물어 이윽고 밤이 올 때까지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좋다.
山에서
그렇게 고요한 품안을 떠나와서야 쓰겠니
■辛夕汀 「山으로 가는 마음」에서
목가풍의 시다. 일정한 짧은 시형(詩型)을 나타내는 그리스어의 에이디률리온(小形)에서 유래했다 한다. 서구에서는 한때 지나친 감상에 빠지는 흠을 낳았으나18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민중적인 힘을 회복했다. 우리나라에도 자연을 읊은시들은 옛부터 많이 있었다. 이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연과 나의 합일을 꾀하고자 하는 것이 시인인지 모른다.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하고, 관직에 있다가도 그만두면 자연에 귀의하는 것은 정신을 맑게 세척하고자 하는 우리 선인들의 슬기요 요량이었다. ‘시인은 자연의 사랑을 인생의 괴로움에 통하게 하고 인생의 괴로움을 자연의 사랑에 통하게 하는 창조적 계기를 찾는 사람’이라는 조지훈의말을 음미해 볼 만하다.
돈 없으면 서울 가선
용변도 못 본다
오줌통이 퉁퉁 뿔어가지고
시골로 내려오자마자
아무도 없는 들판에 서서
그걸 냅다 꺼내들고
서울 쪽에다 한바탕 싸댔다.
이런 일로 해서
들판의 잡초들은 썩 잘 자란다.
서울 가서 오줌 못 눈 시골 사람의
오줌통 뿔리는 그 힘 덕분으로
어떤 사람들은 앉아서 밥통만 탱탱 뿔린다.
가끔씩 밥통이 터져나가는 소리에
들판의 온갖 잡초들이 귀를 곤두세우곤 했다.
■金大圭 「野草」에서
풍자시Satir이다. 라틴어의 Satura(混淆)에서 온 이 말은 여러 가지 제재를 마음대로 뒤섞은 시문을 일컬었는데 특히 세속적일 뿐더러 풍속에 대한 비판이 강했으므로 풍자시가 되었다. 「야초」에 나타난 시세계도 ‘돈 없으면 서울 가서용변도 못보는’ 비정한 도시 문명을 풍자하고 있다.
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琉璃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肺血管이 찢어진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러 갔구나
■鄭芝溶 「유리창」에서
엘리지이다. 우리가 만가(挽歌), 또는 애가라고 부르는 것이 이것이다. 가까운사람의 죽음이나 인생의 허무 등을 슬퍼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엘리지의 형태는 애도lamentation, 철학적 논고philosophical, 위무consolation 단락을 가진다.정지용의 「유리창」은 어린 것을 잃고 그 슬픔을 읊은 시다. 그러나 슬픔을 슬픔자체로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안을 삭여서 한 장의 유리창으로 만들고 있다.
밤은 아시아의 감각이오 성욕이다.
아시아는 밤에 萬有愛를 느끼고 임을 포옹한다.
밤은 아시아의 식욕이다. 아시아의 봄은 밤을 먹고 생성한다.
아시아는 밤에 그 영혼의 양식을 구한다. 맹수 모양으로----밤은 아시 아의 芳醇한 술이다. 아시아는 밤에 노래하고 춤춘다.
■오상순 「아시아의 마지막 밤의 풍경」에서
사상시이다. 사상시란 ‘시는 철학의 정수다’ ‘철학은 시를 원리에까지 높인다’는 노발리스의 말처럼 심원한 사상을 시에 담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 것이다. 정서나 감정의 표현보다는 사상을 시로 표현하는 것을 주로 삼는 시라고 할수 있다. 대개 사상시의 출발은 18세기 말의 고전주의시대부터 보고 있다. 오상순의 시에서도 보듯이 사상시는 자칫하면 관념에 떨어지기 쉽다. 이런 결점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사상시의 한 영역도 우리 시단에서는 개척해 볼 만하다. 대체로우리 시는 너무 주정적인 경향이 많아서 나약한 데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서정시의 많은 종류 가운데서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쓰이는 것만열거해 보았다. 서정시란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정서나 낭만이 깃든 시만을말하지 않고 시 전체로서 쓰이는 것이다.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19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朴木月 「家庭」에서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생활시의 한 패턴이다. 시인에 따라 의식을 중요시할 수도 있고, 상징이나 이미지에 비중을 더 두기도 하는 것이 현대시이다.
나. 敍事詩
신들이나 영웅들의 일화를 운문체로 장중하고 웅대하게 서술한 장시(長詩)를서사시Epic라 한다. 서정시가 주관적인 데 반해 서사시는 객관적이다. Epic은 그리스어의 ‘언어’라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사시를 일컬어 희곡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희곡보다 그 영역이 넓고, 많은 사건을 구성할 수 있으며, 시간상으로는 과거에속하는 일이나 사건을 다루는 것이 서사시이다.
서사시는 원시적 서사시primitive epic와 문학적 서사시literary epic로 나눈다.
원시적 서사시를 민족 서사시, 영웅적 서사시란 말로, 문학적 서사시는 창작적 서사시, 예술적 서사시라 일컫기도 한다. 원시적 서사시는 대개 영웅들의 일화나 전설이 구전되어 오다가 마지막에 하나의 서사시 형태로 굳어 버린 것이 많다. 거의가 민족 집단적인 배경 아래서 만들어 졌으므로 작자미상이 많다. 그 대표적인것이 호머Homer의 『일리아드iias』와 『오딧세이odysseia』라 하겠다. 이들 서사시는 오래도록 전승되어 오던 신화 속에 나오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지, 호머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창작적 독창성이 없다는 게 평론가들의 이야기이다. 중세의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Das Nibelungen Lied』 『롤랑의 노래LaChanson de Rolund』도 같은 성격의 것이다.
문학적 서사시는 작가가 분명하고, 같은 영웅들의 생애를 읊었다 할지라도 예술의식이 뚜렷하고 창작성이 깃든 것이라고 하겠다. 밀턴의 『실락원Paradiselost』, 단테의 『신곡Pivina Commedia』,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스Aeneis』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사시의 형성은 12, 13세기에 되었다.
오세문(吳世文)의 『역대가(歷代歌)』,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東明王)』,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記)』가 모두 이 시대에 창작된 것이다. 이것은‘13세기의 우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대로 서구에 있어서도 12■13세기에 민족영웅의 설화가 서사시로 작품화되었다. 게르만족의 영웅 ‘지그프리드’를 작품화한 『니벨룽겐의 노래』는 1204년 오스트리아의 도나우강변에서 씌어졌다고한다.이보다 앞서 11세기에는 프랑스의 서사시 『롤랑의 노래』가 이미 문학화되었고, 12세기에는 바바리아에서 로오다 왕의 영웅 서사시가 나오게 되는 등 저쪽에서 민족적 자각에 의해 민족영웅의 사적을 노래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도오세문■이규보■이승휴 같은 시인들이 영웅 및 역사적 사적을 노래했던 것이다.
■張德順 『韓國文學史』에서
12■13세기에 들어와서야 ‘민족적 자각’에서 서사시가 발달되었던 것을 알수 있다.
하늘을 가리켜 龍을 내리어
지름길로 쫓아 海宮에 다달으니
河伯이 말하기를
婚姻은 大事라
媒贄에도 有法한데
어찌하여 그대는 그토록 방자한고
그대가 天子라면
神異한 變術을 시험해 봅시다.
긴 물결 파도 속에
河伯이 잉어 되니
王은 물개 되어
한 발자국도 못 가서 즉시 잡아내네.
두 날개를 만들어 꿩 되어 날아가자
王은 一變하여 신응 되어 쫓아가니
그 큰 매를 어찌 막을 수 있을까.
저가 사슴 되어 앞으로 달아난다면
이쪽은 한 마리 늑대 되어 움직인다.
해모수 神人임을 河伯이 인정하고
酒席을 베풀고 잔치하여 즐기네
■이규보 『동명왕』 李慧淳 譯에서
우리의 건국신화에서 그 소재를 따다가 읊은 서사시이다. 그 스케일이 웅대하고 신이(神異)한 일들이 그 소재로 되어 있다. 서사시가 대개 가지는 성격처럼 『동명왕』에서도 어떤 음모로 영웅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운명과 뛰어난 자질에 의하여 인물이 태어남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와 마찬가지로 구전되어 오던 신화나 설화를 옮겨놨을 뿐 그독창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이 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서사시에서 무엇보다도 부러워할 것은, 인물의 개인적 가치가 완전히보전되어 있다는 점과, 또 개인과 사회 또는 인물과 시대가 같은 신념에 통일되어 있다는 점이다.
■崔載瑞 「서사시, 로만스, 소설」에서
고대 서사시는 인물 중심의 서사시이기는 하되 한 개인성보다는 민족전체의 집단성으로 통일된 감정에 의하여 창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서사시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일종의 영웅 이야기로만 취급되었던 서사시가 시민적 서사시로 탈바꿈하는 데 있다. 근대 시민사회가 형성됨에 따라 자아에 눈뜨게되고 서사시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소시민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 근대시에서 최초의 서사시는 유엽(柳葉)의 「소녀의 죽음」을 꼽고 있다.
一千九百三十三年
地殼이 얼기 始作하든 첫날,
내집에 오는 길 電車에서 나는
메우 沈着한 少女를 만낫서라
초생달 갓흔 그의 두 눈섭은
가장 아름다워 그린듯 하고
葡萄酒 빗갓흔 그의 입술은
달콤하게도 붉었섯다.
그러나 도람직하고 귀여운 그 얼골에는
맛지 않는 근심빗이 떠도라 잇고,
웬 셈인지 힘을 일코 떠보는 두 눈가에는
桃紅色의 어린빗이 떠도라라.
■유엽 「소녀의 죽음」에서
이 작품의 줄거리는 시인이 신문에 실린 임신한 여인의 자살 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아, 그것을 다시 전차칸에서 만난 소녀와 결부시켜 온갖 생각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한 평범한 소시민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있다. 그 후 서사시의 맥을 잇는 작품으로는 김동환(金東煥)의 『국경(國境)의 밤』을 손꼽을 수 있다.
이 시는 3부 72장, 980행에 달하는 서사시이다. 주인공으로는 순이(順伊)라는여자와 그 상대역인 남자가 등장한다.
김용직(金容稷)은 『한국근대시사(韓國近代詩史)』에서 다음과 같이 이 작품을평가하고 있다.
『국경의 밤』은 그와 같이 영웅이 사라진 연대에 그것도 우리 주변에서 씌어진 것이다. 거기에 신성한 그림자를 던지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한 발자국 물러서서 생각하면 이 무렵 국경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그 생활자체가 우리에게는 깊은 관심의 대상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근대 서사시에서 영웅의 개념은 이런 것으로 대체되어도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서사시의 한 속성은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는 데 있는 것이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빚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집단■종족■사회의 충격에 있다. 그리고 『국경의 밤』에는 그 가능성이 보인다.
그 후 우리나라의 서사시는 김용호의 『남해찬가(南海讚歌)』, 신동엽(申東曄)의 『금강(錦江)』, 장효문(張孝文)의 『전봉준(全琫準)』과 문예진흥원이 펴낸 『민족문학대계(民族文學大系)』 속에 김종해(金鍾海)의 『천노(賤奴), 일어서다』등 많은 작품이 실려 있다.
오늘날에는 서사시보다는 장시의 형태가 더 많이 시도되고 있다. 이것과 다른것으로는 연작시라는 것도 있다. 장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엘리어트의 『황무지The Waste Land』가 있다. 이는 433행으로 되어 있는데 그의 스승 에즈라 파운드에게 바친 시이다. 20세기의 문명을 비판한 것으로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황폐한 정신 상황을 진단하고 있다. 장시는 서사시처럼 반드시 등장인물이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연대기의 형식에서 탈피하여 어떤 의식의 흐름을 시화(詩化)하여도 충분하다. 또 연작시라는 것도 단시(短詩) 형식으로 창작되지만 하나의소재로서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다. 극 시
극시는 서정시■서사시와 더불어 시의 3대 장르의 하나이다. 극시란 사전적 의미로 보면 극의 형식을 따오거나 극적인 수법을 사용하여 만든 시라고 하겠다.그러므로 극시란 희곡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겠다.
극시Dramatic poetry는 무대에서 상연해서 극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것과그렇지 못하고 글로서 읽기에 적합한 것이 있다. 전자는 시극poetic drama이라고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처럼 글로서 읽기에 적당한 극시를 일명 Closet drama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대개 너무나 정교한 시적 요소가 강해서 무대에서 상연하기에 곤란한 것이다.
■崔昌鎬 『英詩槪論』에서
극시와 시극의 차이점은 무대 상연과 상관있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오늘날에 와서는 시극이나 극시를 같은 뜻으로 쓰고 있다. 또 우리들에게 극시보다 시극이란 말이 더 자주 쓰이고 친근하다.
극시의 연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극시를 비극■희극■희비극으로 나누고 있다. 그렇다면 고대에 운문으로 쓴 극들이 다 극시라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를 시인이라고 부른 것도 그가 운문으로 희곡을썼기 때문이다. 문학이 운문과 산문으로 갈라지고, 근대에 와서는 산문 위주의 문학이 됨에 따라 극시도 희곡이란 이름으로 바꿔지게 되었다. 그런데 희곡이 가지는 산문성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에발생한 표현주의 연극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표현주의 연극이란 산문 대신에 시로, 무대에서 시정신을 찾자는 연극이다. 사실주의 연극에 대한 반동으로 생긴 연극이다. 이런 연극이 시극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시극으로는 예이츠W.B.Yeats의 『연옥』purgatory, 엘리어트의 『칵테일 파티』Cocktail party 등을 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시극 운동은 「시극동인회(詩劇同人會)」로부터 시작된다. 1963년에 만들어진 동인 단체로서 박용구(朴容九)■고원(高遠)■장호(章湖)■최재복(崔載福)■김정옥(金正鈺)■홍윤숙(洪允淑) 등이 그 중심이 되었다. 이 단체는 시극의 연구 및 창작 공연을 목적으로 삼고 제1회 공연은 장호의 『바다가 없는 항구』를, 그 밖에 무용시나 무대시 등을 다양하게 선보이기도 했다. 그후 시극 운동이 단절되는가 싶더니 중견시인들로 형성된 「현대시를 위한 실험무대」라는동인 단체가 1979년에 생겼다. 이 동인들은 정진규■이탄(李炭)■김종해■이근배(李根培)■허영자(許英子)■김후란(金后蘭)■이건청(李健淸)■강우식으로, 제1회공연은 정진규 시극 『빛이여 ,빛이여』를, 제2회는 강우식의 『벌거숭이 방문』을, 제3회는 이근배의 『처음부터 하나가 아니었던 두 개의 섬』을, 제4회 김후란의 『비단길의 노래』를, 제5회에는 이건청의 『폐항(廢港)의 밤』등 매년 한 번씩 시극을 무대로 올리는 왕성한 의욕을 보여주고 있다. 그밖에도 시극에 관심을가진 박제천의 『판각사(板刻師)의 노래』 『새타니』 등이 공연되기도 했다.
「현대시를 위한 실험무대」 동인은 본격적인 시극운동을 처음으로 시도했을뿐만 아니라 시극에 대한 이론을 다지기 위해서 1981년 9월 22일에는 ‘시극운동의 가능성과 전망’이란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이때 발표자 이탄은 「시와 시극」에서 다음과 같이 시극을 말하고 있다.
시극은 고대 극시나 셰익스피어극과는 엄연히 구별되어져야 한다. 극시는 보편적으로 어제의 일을 오늘의 무대에 올림을 중요시하고 운문을 사용하였다. 무대위의 인물들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하는 시로 평가되고, 시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현대의 시극은 고대의 극시와 다를 뿐만 아니라, 연극의 일반 작품에서도 시적요소가 두드러진 경우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시극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극은 시와 극 쪽에서 공존하는 것이고, 따라서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탄 「시와 시극」에서
시극이 독립된 장르로서 정착하기에는 아직도 멀다. 그 까닭은 확실한 문학이론이 극시나 시극 쪽 어디에도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극은 무대상연을전제로 할 때 연극 쪽에 유능한 연출가가 있어야 한다. 이 연출가의 시에 대한이해가 어느 정도이냐에 시극의 성공 여부가 가려지게 마련이다. 연출가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생소한 분야이므로 연극 쪽에 더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시인도마찬가지다. 연극이 가지는 드라마트루기나 극장적인 장면 등에 아무래도 서툴기마련이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몇몇 의욕적인 시인과 연출가에 의해서 시극의 실험무대가 어느 나라보다도 활발하게 상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꿈을 꾸었으면
비록 토막꿈이더라도
그 꿈을 버리지 말고
꿈을 맞춰봅시다.
꿈이 추워 해도
옷을 입히지는 마세요.
꿈은 언제나
벌거숭이니까요.
내 꿈이 아니라고
꿈을 쫓지는 마세요.
우리의 삶이 다르듯이
꿈은 다 같을 수 없잖아요.
모두들
꿈을 꾸었으면
비록 토막꿈이라도
꿈을 맞춰보세요.
■강우식 『벌거숭이 방문』에서
이영걸(李永傑)은 『한국연극(韓國演劇)』에 「시극의 가능성과 전망」이란 글을 쓰면서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우리 시극의 경우에는 대체로 일정한 리듬을 지닌 회화체(會話體)의 가락에 의존해야 할 것 같다. 자연스런 대화를 이용하면서도 곳곳에 강렬한 정서를 표현하는 두드러진 리듬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낱말의 되풀이나 조화로운 배열을 통해얻어진다. 또 사건의 전개를 통해 나타나는 언어의 상징성이 풍부한 비유가 있어야 한다. 『벌거숭이 방문』은 이러한 요소들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게다가 연출가는 곳곳에 염불조와 범패조를 활용함으로써 대사가 지닌 리듬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시극의 중요 요소로써 리듬을 강조하고 있다. 시극에서의 리듬은 연극이 가지는 효과와 어울려서 더욱 강렬한 인상을 지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극시(상연될 수 없는)의 개념은 오늘날 하나의 이름만 있을 뿐이지 별로 소용이 없게 되었다. 그대신 시극은 아직도 뜻있는 몇몇 시인에 의해 시도되고 있다.한국적인 시극의 방향 같은 것도 한번쯤 생각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