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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 2장 17절, 로마서 5장 8절, 요한일서 4장 10절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창세기 2장 17절, 새번역)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새번역)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 새번역)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동산에 두시고 특별히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습니다. 그때까지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고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에 있는 동산으로 데려가시면서 얼마나 기쁘셨을지, 창조되어진 아담은 또한 그런 인도하심이 얼마나 기뻤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습니다. 혹여 부모가 되신 분들은 이해하실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특별히 만든 공간으로 그 자녀를 데리고 갈 때의 마음 말입니다. 그런 부모의 마음보다 몇갑절은 더 기쁜 마음으로 최초의 사람 아담을 데려가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처음부터 기쁨과 사랑으로 가득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담에게 말씀하십니다. 첫 음성입니다. 첫 명령입니다. 가장 먼저 말씀하신만큼 아담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창세기 2장 16~17절, 새번역>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 구절은 어떤 의미입니까? 사실 너무 안타깝게도 이 구절을 포함하여 창세기 1,2, 3장이 잘못 해석되어지면서 많은 이단과 사이비 종교들이 탄생했기에 우리는 평소에도 외면하고 있는 구절이 창세기의 처음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잘 못 해석할까봐, 잘 못 이해할까봐 아예 읽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꼭 이 부분을 묵상하셔야 합니다. 바로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창세기'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를 통하여 모든 것의 '시작'을 우리에게 말씀 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창세기 2장 17절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고백하는 첫 구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아담에게 하신 말씀인 동시에 하나님 자신에게 하신 말씀에서 깊게 느끼게 되는 순간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명령'이라 거부감이 드는 말씀일 수 있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꿈틀거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2장 17절을 천천히 곱씹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명령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간의 '약속'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이 말씀을 아담에게 가장 먼저 하셨는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저는 이 구절을 산책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창세기 2장 17절 B, 새번역>
알고 계십니까? 아담은 아직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인지가 조금도 없습니다. 창조되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에덴에 있는 동산으로 와 있는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의 기운을 통해 생명체가 되었는데 죽음이 있고, 끝이 있던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영원한 하나님에 의해 영원히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지어진 존재였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죽음'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죽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먼저 그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막 걷기 시작한 2살배기 아이가 있습니다. 자꾸만 뜨거운 불 앞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면 그 아이의 부모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아이에게 달려가 이야기합니다. '이건 뜨거운거야. 절대 가까이 가면 안돼! 지지야! 지지!' 사실 2살배기 아이는 아직 뜨거운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부모가 알려주긴 하지만 아직 경험해본적이 없기에 '뜨겁다'는 것을 인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막아서는 부모의 말을 듣고 가지 않으면 됩니다. 가지 말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뜨거운 것에 대한 인지는 먼저 경험했던 부모가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는 만약에라도 아이가 뜨거운 것을 만지게 되면 찾아올 아픔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말해 주면서 부모 스스로도 다시금 조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알아 듣지 못하지만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그 아이를 막아 줄 수 있도록 가르쳐주어야 하고, 또 아이를 잘 보살피도록 스스로 인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왜 하나님은 '죽음'에 대한 인지조차 없는 아담에게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셨을까요? 그건 아담을 위한 가장 중요한 말씀이었기에 가르쳐야 할 이유도 있으셨지만, 하나님 스스로도 다시금 인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을 혹여라도 넘게 되면 찾아올 단절은 바로 하나님이 만드신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약속을 스스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분명한 선과 기준을 만드셨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맺어진 첫 약속이자 율법일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담은 절대 그 열매를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해 준 첫번째 말씀이자 명령을 당연히 마음에 새겼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지키면 됩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여전히 아담은 모릅니다. 결과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명령에 귀를 기울인 아담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당연합니다.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인입니다. 먹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은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너무나도 당연한 율법이자 약속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주 우리의 하나님이 숨기시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일도 많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뜻이 담긴 율법을 밝히 나타내 주셨으니, 이것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손은 길이길이 이 율법의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신명기 29장 29절, 새번역>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순종과 율법과 약속은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이 행복했던 동행은 무참히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3장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산책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중요한 것은 먹고 나서의 결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먹는 날에는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여기서 한참을 먹먹하니 멈추어서서 말씀만 뚫어지게 보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죽었습니다. 이 불순종의 결과를 통하여 분명히 죽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 있는 동산에서 쫓겨나고 이제 영원히 살지 못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만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이사야 53장 4~6절, 새번역>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죽으셨습니다. 자신이 직접 책임 지셨습니다. 아담이 먹었기에 아담을 죽이셔야 하고, 우리가 죄를 범했기에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모든 죄를 지시고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습니다. 실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음으로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악함을 지시고, 우리 대신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매를 맞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셨지만 스스로에게도 말씀하셨기에 스스로 지키셨습니다. 인간을 지은 하나님이 인간 손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을 지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랑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감사하고 감격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새번역)
너무나도 사랑했던 아담, 그리고 너무나도 사랑하는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증하신 방법이 바로 아직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시고, 말씀이신 그 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방법입니다.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책임입니다. 무엇으로 이 사랑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만이 이런 사랑을 하실 수 있습니다.
2살배기 아이가 빠르게 달려가 만지지 말라고 했던 뜨거운 것을 호기심 때문에 만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만지자마자 2살배기 아이의 표정은 어두워지고 눈물이 나기 시작하고 엉엉 울기 시작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부모가 빛의 속도로 달려옵니다. 그런데 이미 늦었습니다. 아이의 손은 뜨거운 것에 데여 버렸고,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은 화를 냅니다. 왜 그랬냐고 아이에게 호통을 칩니다. 아이는 아프기도 하고, 겁도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모는 얼른 아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안아줍니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가 빨리 낫게 해줄게' 그러면 아이는 점점 안정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아이는 인지합니다. 이제 뜨거운 것을 만지면 안되겠구나. 그런데 그 댓가가 너무 아픕니다. 손에 물집이 잡히고 당분간 닿을때마다 아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보다 더 아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입니다.
우리가 왜 순종해야 합니까? 순종 노이로제에 걸려 '순종'이라는 말만 들어도 질려 버린 우리는 어찌보면 이미 뱀의 유혹에 넘어간 상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순종이라는 녀석이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슬기롭게 만들어 줄 것만 같은 짜릿한 신세계처럼 보입니다. 아닙니다.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담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고나서 에덴에 있는 동산에서 쫓겨난 후 죽음을 맞이했을 때를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무슨 마음이 들었을까요? 그것은 분명 '후회'였을 것입니다. 그 2살배기 아이도 드디어 인지합니다. '뜨거운 것은 만지지 말아야 하는 거구나! 그리고 부모님의 말씀을 들어야겠구나!'
창세기 2장 17절은 그렇게 하나님 스스로 '사랑'에 눈이 멀었기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물론 끝까지 아담이 먹지 않았으면 더욱 좋았을 것입니다. 확실합니다. 그런데 먹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에 눈 먼 주님, 우리 하나님이 책임지셨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 새번역)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고 말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오늘 창세기 2장 17절의 산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머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조금 더 다가서려고 합니다. 헤아릴 수 없지만 알아가 보려고 합니다. 다 알 수 없겠지만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찬양합니다. 우리 함께 그 하나님의 사랑에 더 가까이, 깊게 다가서 보시지 않겠습니까? 그 사랑을 찬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신 하나님, 비교할 수 없는 크기의 사랑이지만 제 마음 전부를 다해 고백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https://www.youtube.com/watch?v=Ny5Sw5DuL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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