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경문(南景文) - 의랑공 6세
▲ 충경공(忠景公) 남재(南在)의 장자 – 남경문(南景文)
남경문(南景文, 1370년~1395년) 조선 전기 무신으로, 본관은 의령(宜寜)이다. 조부는 고려 밀직부사를 지냈으며 조선개국으로 익대보조찬화공신으로 보국숭록대부 문하시중(門下侍中)에 특진되었다. 의령부원군(宜寧府院君)에 봉해졌으며 경렬(敬烈)의 시호를 받으신 남을번(南乙番)이며 조모는 계림최씨 참의 최강의 딸이다. 부친은 조선개국 1등공신이며 영의정을 지냈고 충경(忠景)의 시호를 받은 남재(南在)이고 모친은 변한국 대부인 파평윤씨(坡平尹氏) 정후공 윤호(尹虎)의 딸이다.
배위는 온양방씨(溫陽方氏) 고려 중서성 사인(舍人) 방순(方恂)의 딸(장녀)이다. 어머니 온양방씨(溫陽方氏)는 이종 4촌간이다.『목은문고』
남경문은 충경공의 장남로 태어나 태종조에 병조의랑을 지냈으나 불행히 26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그 사적이 남은 것이 거의 없다. 다만 세종 실록에 공의 병환에 대한 기록이 있어 생전에 이 병으로 크게 시달리셨음을 알 수 있다. 공의 기일은 음력 6월 16일이며 묘소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산3-8 선산에 모셔져 계시다.
의랑공(議郞公) 남경문(南景文)의 묘소
◆ 남경문(南景文)의 가계도
◈ 조부 : 의령부원군(宜寧府院君) 남을번(南乙番)
◈ 조모 : 부인최씨 계림최씨 참의 최강의 딸
◼ 부 : 의령부원군(宜寧府院君) 남재(南在), 개국공신, 영의정
◼ 모 : 변한국 대부인 파평윤씨(坡平尹氏) 정후공 윤호(尹虎)의 딸
장남 : 남경문(南景文) 병조의랑
부인 : 온양방씨(溫陽方氏) 고려 중서성 사인(舍人) 방순(方恂)의 딸(장녀)
- 장남 : 남지(南智) 좌의정 충간
- 며느리 : 전의이씨(全義李氏) 부정 이문간의 딸
- 장남 : 남윤 감사공
- 차남 : 남칭 부정공
- 3남 : 남구 간사공
- 4남 : 남휴 별좌공
- 5남 : 남의 참판공
- 6남 : 남동(무후)
- 차남 : 남간(南簡) 예문관직제학
- 며느리 : 운봉 박씨(雲峰 朴氏) 이조판서 충숙공 박신(朴信)의 딸
- 장남 : 남준 감찰공
- 차남 : 남척 목사공
- 3남 : 충의위 남건 군수공
- 4남 : 남급 군수공
- 3남 : 의산위 남휘(南暉) 부마
- 며느리 : 정선공주 <태종의 4녀>
- 장남 : 남빈 부사공
- 차남 : 남붕 소간공
- 3남 : 남동(무후)
- 4남 : 남흡(절손)
◆ 세종실록에 기록된 남경문(南景文)
1433년(세종 15년) 6월 14일 임금이 안숭선에게 임영 대군의 부인 남씨를 내어보낼 것에 관해 전교하다.
황희 등이 아뢰기를,
"부부는 일생을 같이하는 사람인데 이와 같은 몹쓸 병이 있는 사람을 어찌 대군의 배필로 삼겠습니까. 그 아비 남지가 애초에 계달하지 아니하였으니, 죄가 작지 아니하오나 추론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 조부 경문(景文)이 미친 병이 있었고, 남지의 장인 이문알(李文斡)의 친족에도 이 병이 있었으니, 속히 내어보내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 하니, 임금이 "내가 다시 생각하겠다." 하였다.
■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숯골의 의령남씨 세거지
조선 초의 개국공신이며 영의정을 역임한 남재(南在 : 1351~1419)의 자손이 수정구 태평동 숯골에 세거하였다. 태평동 남씨촌은 임진왜란 무렵 의령남씨들이 마을을 이루기 시작하였는데, 광주이씨, 안동권씨, 순흥안씨 등이 사는 마을에 비하여 세도가 컸으므로 남씨들이 모여서 사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숯골의 지명도 조선조 효종 때 남칭(南稱)의 7대손 남연(南淵 : 1650~1728)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가 조상을 정성으로 섬기고 효성이 지극하여 세상의 칭송이 자자했으므로, 그의 아호가 탄수(炭叟)인지라 그의 호를 따서 탄수가 사는 탄골로 불리다가 숯골로 변했다고도 한다.
남경문(南景文)의 후손이 탄리를 본거지로 하여 살면서 번성하고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으며, 후에 숯골에서 복정동에 이주하여 살았다. 사송동의 남경문 6세손인 순흥부사 남오훈(南五熏: 1643~1719)이 광주 직리에서 살았고, 남오훈의 3남 동중추 남연명(南衍明: 1706~1774)이 사송동으로 분가하여 세거하다가 근래 이사하였는데, 양지동 남성우(南星祐: 1934년생)는 남연명의 8대손이다.
수정구 태평동 탄리는 숯골이라고 하는데 의령남씨의 집성촌이다. 남재의 아들 남경문은 숯골에 거주하면서 의성군 남지(南智), 예문관직제학 남간(南簡), 태종의 부마 남휘(南暉) 등 세 아들을 두었는데, 남지의 둘째아들 내첨사부정 남칭의 후손이 세거함으로써 대체로 부정공파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 남경문(南景文) 묘소위치
의령남씨 남경문, 의랑공 남경문, 의령남씨 남재, 탄리, 의령남씨 세거지, 의령남씨 집성촌, 태평동 숯골, 의령부원군 남재
병조의랑 남경문, 의령남씨 남을번, 온양방씨 방순
<참고문헌>
의령남씨 족보
세종실록
목은문고
의령남씨 부정공파종중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