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민중은 힘을 가진 자에게 복종한다 그러기에 정치는 민중의 힘을 의지하고 민중은 정치를 의지한다. 정치와 민중은 서로 떠날 수 없다.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는 정치학을 전공한 자들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제부터라도 정치를 전공한 자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정치학을 전공한 자들에게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정치학을 전공한자들을 대거 내각에 등용하고 정치 일선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민주화를 위하여 정치인들을 비판하면서 새롭게 정치를 하자고 외치면서 20년을 향해 한 길로 달려왔다. 그러는 동안 정치도 변하고 대통령도 3번이나 민주화에 동참한 지도자들로 정치의 변혁을 이루어 보았다. 그런데 정치는 멀리하고 개인의 정치적인 입장 만 높이는 결과로 민중들은 날로 도탄에 빠져 신음하고 있음을 보아왔다.
이 같은 현상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민중들과 약속을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정희 시대에 철거민들의 모습을 보았는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 까지 철거민들의 모습을 계속 보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민중의 편이 되어야 할 정부에서는 철거민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가혹한 행위를 하고 있다. 추운 겨울날에 언제나 철거를 하면서 강제로 민중들을 거리로 내 몰고 있다는 점이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았다. 그 곳에 등장한 것은 폭력적인 진압이 가중된다. 과연 이 나라가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있는가?
일본이란 나라와 한번 비교를 하자면 일본은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인다고 하여 개인의 재산이나 민중들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는 국가는 어떠한 침해도 주지 않고 있다. 동경 자유대 본부 부근에서는 농민이 자유대 본부를 상대로 싸움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에서는 농민에 재산을 파괴하지 않고 활주로도 농노를 피하여 건설을 하고 그 곳에 사찰이 있는데 일본 정부에서 철거를 하려다가 일본 불교도들이 항의를 하는 바람에 철거를 하지 못하고 지금도 그 곳에 갈려면 철조망을 따라 그 절을 가고 농민의 터가 그곳에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보았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하는 모습이라는 선전을 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 박정희 시대에 폭력 깡패들이 등장하여 민중들을 무지하게 탄압을 가하던 모습이 지금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인가?
박정희를 우리는 친일파라고 말하면서 민중이 주인되는 참세상을 만들고 정권을 잡아 민중을 위하는 정부를 우리가 만들자 하여 민주화 운동에 동참을 우리가 하지 않았던가? 박정희 시대에 자행하던 마구식 철거를 지금도 자행하고 있다.
2003년 12월 20일 인권 단체와 함께 상도동 철거민들이 고공에 피신하여 있는 곳을 한 번 가 보았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의 시민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시민 혁명이란 무엇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분명히 말하지만 민중들의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되자 마자 민중들을 억압하고 탄압을 가하여 추운 엄동 설한에 거리로 내모는 행정을 하고 있다. 이런 행정은 민중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민중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대통령 선거에서 수 백억의 돈이 들어갔다는데 여기에 그 반절 만 사용하여 민중들의 터전을 마련한다면 민중이 원하는 나라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인데 민중들의 터를 빼앗은 정치는 과연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국가가 민중들의 생존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아니다. 국가는 민중들의 삶을 최대한 보장해야하며 민중들의 생존을 보장하지 않으면 국가의 소임을 다하는 정부가 아니다. 이 말을 노무현 대통령은 분명히 알기를 바라면서 상도동에 철거를 당한 민중들의 생존에 대하여 국가는 나서야 한다.
국가는 민중들의 생존에 대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 민중들을 그대로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인가? 박정희 시대에 한 번 보았던 기억을 되살리면은 그 당시에 철거민들에게는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 전쟁을 목격한 그러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것이 강제 철거를 하기위하여 폭력배를 동원하기 때문이다 전쟁 터도 그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투하한 그러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박정희의 악령이 다시 살아 난 듯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청계천에 철거민들이 이주한 성남 지역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정부의 주택 정책에 대하여 집고 넘어가야 한다. 아파트를 건립하는데 드는 비용이 얼마인가 한 평에 드는 금액을 상세히 알려야 한다.
투명한 행정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 주택 정책이 없다. 가진 것이 없으면 그저 한댓 잠을 자다가 굶어죽으면 그만인 정책이다. 거리의 노숙자를 돌볼 그무엇도 그 무슨 정책도 들어보지 못했다.
땅값이 얼마이며 건물 값이 얼마이며 자재 값이 얼마이며 인금이 얼마이며 국가가 책정한 세금이 얼마인가를 철저히 조사를 하여 국가는 국민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런데 민중들의 생존을 위한 정치를 하지 못한 것은 아파트 값의 분양 자율화다.
차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20평 30평 어떤 아파트는 80평의 아파트도 있다고 한다. 그런 아파트에 대하여 우리 민중들은 바라볼 수도 없다 우리나라 대기업을 한 번 살펴보면 정부에서 공적 자금이란 것을 주지 않으면 기업을 운영할 수도 없다. 그러나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은 모두가 국가의 소유나 다름이 없다. 모두 다 똑같이 보호해야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하면 아무리 대 기업이라고 말하여도 국가가 기업에 대하여 공적 자금을 주지 않으면 망한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아무리 민주주의를 위하여 개인의 재산을 보호한다고 말하지만 대 기업의 재산은 국가의 공유물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민중들의 삶의 터를 빼앗아 철거를 하고 있는 기업체도 국가의 소유물이다. 국가의 소유물인 동시에 민중들의 생존을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 국가가 민중들의 생존을 위하여 봉사하지 않는 국가라면 민중의 터를 빼앗을 권한이 없다.
이 같은 정치는 민중의 존재를 부정하는 정치이기에 변화 되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중의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민중의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민중의 대통령이다.
지금 철거를 하거나 철거를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곳에서는 철거를 중단하고 민중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해야 한다. 그 곳에 철거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 곳에 철거를 하고 무엇을 건립할 것인가? 그곳에 살고 있는 민중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조사를 하여 민중들의 생존에 위협이 없을 적에 철거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민주의주 정치다.
민중의 생존을 빼앗거나 민중들의 삶의 터를 버리면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는 대통령이다. 민주주의는 민중의 피를 먹고 산다고 한다 민중의 대통령을 위하여 다시금 민중들이 나설 것이니 민중들의 생존을 위하여 적극 나서야 한다.
나라가 분단이 된 상태에서 국가는 국력의 힘을 헛되지 않게 해야한다 그런데 국가의 힘을 분열하고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고 민중들의 생존에 대하여 방관한다면 국가가 그 책임이 있다.
국가는 민중들에게 국가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국가를 위하여 봉사하라는 말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민중들의 생존을 빼앗아 가는 국가를 민중들이 믿을 수 있나 절대로 믿지 못한다.
민중의 힘은 국가가 힘을 주었을 적에만 그 힘이 나온 다 지금 도 대기업이란 기업은 국가의 소유이며 공적 자금으로 운영하고 있는 기업은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기업이다
정치와 민중의 관계에 있어서 민중은 정치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다 민중이 없으면 정치도 없다 그러기에 정치에 있어서 민중의 힘은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다 민중의 힘, 민중의 존재, 민중의 외침소리, 우리는 지금 민중의 생존을 위협 당하고 있다
정치는 죽고 민중의 생존의 터도 죽고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나설 것인가 정치는 민중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노무현 대통령은 알기를 바라면서 지금 상도동에서 민중들의 터를 빼앗기고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노무현 대통령 만이 상도동 철거민들의 생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