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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자(누가복음 18:1-8)
지난주 우리는 디모데의 가정을 살펴보면서 **“믿음은 가정을 통해 이어집니다”**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외조모 로이스에게 있었던 믿음이 어머니 유니게에게 이어졌고, 그 믿음이 다시 디모데에게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녀와 손주들에게 믿음을 이어 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말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삶으로 보여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133기도대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시간을 정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항상기도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1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항상”**입니다.
말 그대로 “항상”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쁠 때도 기도하고, 슬플 때도 기도하고, 평안할 때도 기도하고,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기도하고, 응답을 받았을 때도 기도하고,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기도하라는 것..
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항상 기도한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치지 말고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형편이 좋아지면 하나님보다 형편을 바라보게됩니다.
어려움이 찾아오면 하나님보다 문제를 더 크게 바라보기 쉽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도하라.” 기도하면서 우리의 시선을 문제에서 하나님께로 다시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한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응답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길이 막혀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내 손을 놓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는 말씀..
그리고 그 뒤에 아주 중요한 말씀을 붙이셨습니다. “낙심하지 말아라...”
왜 기도를 말씀하시면서 낙심을 함께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기도하는 사람에게도 낙심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기도했는데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했는데 자녀가 변하지 않습니다.
가정을 위해 기도했는데 문제가 계속됩니다.
한 영혼을 위해 기도했는데 아직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병을 놓고 기도했는데 여전히 아픕니다.
성도 여러분, 낙심은 언제 찾아올까요?
문제가 크기 때문에만 찾아올까요? 아닙니다. 기다림이 길어질 때 찾아옵니다.
우리는 때로 넘어지고, 무너지고, 좌절과 절망속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힘들 수 있습니다. 지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기도할 말조차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힘들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눈물이 나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응답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이고, 이것이 믿음입니다.
응답이 늦어져도 기도를 놓지 마십시오.
기다림이 길어져도 하나님을 놓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그러면... 낙심이 찾아올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다시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133기도대행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30분이라는 시간을 채우는 것만이 아닙니다.
매일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어제 기도했어도 오늘 다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응답이 없어 보여도.. 다시 자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가족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것입니다.
전도 대상자의 이름을 다시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어제 133기도대행진의 본문이.. 욥1:4-5절.. 욥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욥기 1장 5절 후반부를 보면 욥은 자녀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욥 1: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그래서 욥은 자녀들의 수대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아주 인상적인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저는 여기서 마음에 와닿는 말씀이 **‘항상’**입니다.
욥은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날에도 자녀들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렸습니다.
이것이 욥의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문제가 생기면 기도합니다.
자녀가 어려움을 만나면 기도하고,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기도하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기도하고, 길이 막히면 그때 간절히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욥은..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욥기에는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말씀을 연결해 보면 이런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는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 사용하는 비상벨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성도의 일상입니다.”
마치 우리가 집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매일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슨 큰일이 생겨서 인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날마다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어제도 기도했고 오늘도 기도하며, 응답이 아직 보이지 않아도 내일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기도한다’는 것은 하루 종일 무릎을 꿇고 있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을 향하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항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판토테’입니다. 모든 때에, 어떤 상황에서도라는 뜻입니다. 좋은 때에도 기도하고, 어려울 때에도 기도하며, 응답이 보여도 기도하고, 아직 보이지 않아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형편과 때에도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욥은 자신이 붙잡을 수 없는 자녀들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내가 붙잡을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
그리고 응답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계속 바라보는 것,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그것이 ‘항상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살전 5:16-18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런데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우리의 마음을 붙잡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5절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무슨 말입니까? 도시에 한 과부가 있습니다.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달라고 찾아옵니다.
그런데... “불의한 재판관은 이 과부 때문에 자신이 번거롭다고 말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과부가 한 번 찾아왔다가 돌아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번 부탁했는데 거절당했다고 포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찾아갔습니다. 거절당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또 찾아 갑니다.
“내 원한을 풀어 주십시오.” “내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
오늘도 찾아가고 내일도 찾아가고 또다시 찾아갔습니다.
바로 여기에 1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과부에게는 얼마든지 낙심할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상대가 누구인가요?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판관입니다.
과부의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줄 마음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거절당했지만 다시 찾아갔습니다.
상황이 바뀌지 않았지만 또 찾아갔습니다.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계속 찾아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낙심하지 않는 기도입니다.>
저는 이 과부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좀 번거로운 사람이 되어도 좋겠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귀찮아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정반대의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불의한 재판관조차 끈질기게 찾아오는 과부의 호소를 결국 들어주었다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찌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시겠습니까?
그래서 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말씀이 **“하물며 하나님께서”**입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계속되는 간청을 들어주었다면,
하물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밤낮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7절은 질문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은 강력한 약속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하물며’라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들어주었는데, 하물며 너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어찌 듣지 않으시겠느냐?”
재판관에게 과부는 귀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우리는 택하신 자녀입니다.
재판관은 마지못해 들어주었지만,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래서 응답이 늦어질 때 우리가 붙잡아야 할 말씀은 이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하물며’는 낙심한 우리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나는 네 기도를 듣고 있다. 나는 너를 잊지 않았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다시 기도하여라.”
그런데 7절을 보면 또 하나 마음을 붙잡는 표현이 있습니다. “밤낮 부르짖는..” 말입니다.
1절에서는 “항상 기도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절에서는 과부가 계속 찾아오니까 “나를 번거롭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7절에서는 “밤낮 부르짖는”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끈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응답이 보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녀를 위해 오래 기도했는데 아직 변화가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듣고 계십니다.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몇 년을 기도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듣고 계십니다.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입니까? 하나님께서 듣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응답이 보이지 않아도 ‘하물며 하나님께서’를 믿고 다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33기도대행진을 하면서 응답이 빨리 보이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밤낮 부르짖으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응답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듣고 계십니다.
기다림이 길어져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몸의 모세혈관의 길이가? (동맥·정맥·모세혈관)모두 이어 놓으면 약 10만 km 정도”
우리가 늘 마시는 물을 어느 액체보다 점도가 낮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느 액체보다 끈적거림이 적다는 것입니다.
만일 물이 끈적끈적하고 걸쭉하다면 물이 주성분으로 되어있는 피가 10만 킬로미터가 넘는 몸 안의 모세혈관을 흘러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을 많이 마실수록 피의 점도가 물처럼 묽게 되어 혈관을 잘 흐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피가 제대로 흐르지 못하면 영양분과 노폐물을 운반하는데 지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도의 원리와도 같습니다. 어떤 이유든 기도의 통로가 막히면 안 됩니다.
상한 감정이 기도를 막을 수도 있고 누구와 다투고 남은 감정의 불순물이 기도를 막을 수도, 숨겨둔 죄가 기도를 막을 수도 있고 의외의 고통이나 실패가 기도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미세한 혈관들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심장이 계속 피를 보내야 몸의 각 부분이 살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 주는 생명의 통로와 같습니다.
날마다 막히지 않는 기도로 쉬지말고 기도하며 나가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한다고 모든 문제가 금방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했는데도 자녀가 아직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족의 구원을 위해 오래 기도했지만 아직 응답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지치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라.”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었는데,
하물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찌 우리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응답이 보이지 않아도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어제 불렀던 자녀의 이름을 오늘 다시 부르십시오.
아직 돌아오지 않은 가족의 이름을 다시 하나님께 올려드리십시오.
포기하고 싶었던 그 영혼을 위해 다시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세요. 눈물이 나도 기도하십시오. 길이 보이지 않아도 기도하십시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다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마음에 이 말씀 하나를 붙잡으십시오.
“하물며 하나님께서!”
나보다 내 자녀를 더 사랑하시고, 나보다 내 가정을 더 잘 아시며, 내가 흘리는 눈물과 밤낮의 부르짖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때에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133기도대행진을 걸어가는 동안 기도를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기도하는 사람,
낙심하지 않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선하심의 역사가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