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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갓일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지 정 일 1964.12.24
기능보유자 ①총모자 : 김인 (1920년 2월 16일생) 제주 제주시 도두 1동 1979번지
②양 태 : 장인자 (1940년 9월 8일생) 제주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247번지
갓은 조선시대 성인 남자들이 외출할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예복중의 하나로 원래는 햇볕, 비, 바람을 가리기 위한 실용적인 모자였으나 주로 양반의 사회적인 신분을 반영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갓은 넓은 의미로 방갓형과 패랭이형 모두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흑립·칠립·평립이라고 부르며 갓일은 갓을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갓일은 총모자, 양태, 입자로 나뉜다. 총모자는 컵을 뒤집어 놓은 듯한 갓 대우 부분을 말꼬리털 또는 목덜미털을 사용해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양태는 대나무를 머리카락보다 잘게 쪼개서 레코드판처럼 얽어내는 과정을 말하며, 입자는 총모자와 양태를 조립하면서 명주를 입히고 옻칠을 해서 제품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세 가지 과정은 서로 재료가 다르고 솜씨의 격차가 심하기 때문에 생산지를 달리하거나 따로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 민족의 의생활에서 필수품목의 하나였던 갓은 의복의 변화와 단발령 이후 점차 수요가 줄어들어 현재 통영, 예천, 제주 등지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문화재 보전차원에서 전통을 계승하고 보호하고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기능보유자로는 입자장에 정춘모, 박창영, 양태장에 장순자, 총모자장에 김인이 있다.
2.망건장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66호
지 정 일 1980.11.17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삼양동 2091번지
기능보유자 이수여(1923년 6월 1일생)
망건은 갓을 쓰기 전에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말총으로 엮어 만든 일종의 머리띠로, 고려말·조선초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망건을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망건장이라고 한다. 본래 한국에서 발달되어 중국에까지 전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고 혹은 명나라 사신에게 전래되었다고도 하나, 재료나 용도, 형태가 중국의 것과 다르다. 그러므로 망건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토착화된 뒤 말총을 재료로 사용하는 방법을 도리어 중국으로 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망건은 윗부분을 졸라매는 당(살춤), 아랫부분을 졸라매는 편자(선단), 그물처럼 얽혀져 이마부분을 감싸는 앞, 뒤통수를 싸매는 뒤로 구성된다. 이 외에도 계급을 표시하는 장식품으로 망건을 사치스럽게 꾸미기 위한 관자와 풍잠이 있다. 망건의 재료로는 말의 꼬리털이나 사람의 머리카락을 사용한다. 사람의 머리카락은 귀하게 여겨 해진 망건을 수리할 때나 쓴다. 망건을 만드는 과정은 편자짜기에서 앞뒤뜨기로 이어지며 당을 걸고 망건을 삶아서 부드럽게 한 다음 염색을 하고 조립을 한다.
망건은 매우 한국적인 의관의 일부로서 소중하게 여겨 왔는데 개화기 이후 삭발에 따라 점차 쇠퇴해 수요가 거의 없게 되었다. 망건장은 전통적인 공예기술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기능보유자로 제주도의 이수여씨가 인정되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3.탕건장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67호
지 정 일 1980.11.17
소 재 지 제주
기능보유자 김공춘(1919년 5월 2일생)
탕건은 남자들이 갓을 쓸 때 받쳐 쓰는 모자의 일종으로, 사모나 갓 대신 평상시 집안에서 쓰며 말총이나 쇠꼬리털로 만든다. 이러한 탕건을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탕건장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관직자가 평상시에 관을 대신하여 썼고, 속칭 ‘감투’라고도 하여 벼슬에 오르는 것을 일컫는 ‘감투쓴다’는 표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한국의 탕건은 중국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고구려 벽화나 고대의 관모에서 변화된 것인지 밝히기가 어렵지만, 고려시대에는 중국 송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신라의 최치원이나 고려시대 인물인 이색, 정몽주 등을 그린 고려 후기의 초상화에서 쓰고 있는 모자가 탕건모양과 같기 때문이다. 이 모양은 조선 전기까지 이어진다.
탕건은 우리나라의 말총이 대부분 제주도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제주도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졌다. 탕건은 홑탕건과 겹탕건, 바둑탕건으로 분류된다. 모두 형태는 같으나 겹으로 또는 2중, 3중으로 엮어 나가는 방법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 것이다. 바둑탕건은 사각무늬를 놓은 것인데, 이는 탕건이 독립된 모자 구실을 함에 따라 장식화된 것이다.
탕건장은 전통적인 공예기술로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제주도 김공춘 씨가 탕건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4.제주 칠머리영등굿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지 정 일 1980.11.17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2097
기능보유자 김윤수(1946년 7월 9일생)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시 건입동의 본향당인 칠머리당에서 하는 굿이다. 건입동은 제주도의 작은 어촌으로 주민들은 물고기와 조개를 잡거나 해녀작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마을 수호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과 요왕해신부인 두 부부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비는 굿을 했다. 부부수호신과 함께 영등신을 맞이하여 소중히 위하는 굿을 했는데, 영등신은 외눈백이섬 또는 강남천자국에서 2월 1일에 제주도에 들어와서 어부와 해녀들에게 풍요를 주고 2월 15일에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내방신이다.
당굿은 칠머리당에서 음력 2월 1일에 영등환영제와 2월 14일에 영등송별제로 한다. 주민들은 영등신이 환영제보다 성대한 송별제를 받고 이튿날인 15일에 구좌읍 우도에서 다시 송별제를 받은 뒤 떠난다고 믿는다. 따라서 환영제 때는 배의 주인이나 신앙심이 깊은 이들만 모여서 간소하게 굿을 하고, 송별제는 어업관계자와 해녀, 그밖의 신앙민들이 많이 모인 가운데 하루종일 큰굿으로 치른다.
굿날이 되면 건입동 주민 뿐 아니라 제주시내의 어부와 해녀들도 참가한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 제사에 쓰일 음식을 차려서 당으로 가져온다. 매인심방이 징과 북, 설쇠 등의 악기 장단에 맞추어 노래와 춤으로 굿을 진행한다. 굿의 순서는 모든 신을 불러 굿에 참가한 집안의 행운을 비는 초감제, 본향당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과 요왕해신부인을 불러 마을의 평안을 비는 본향듦, 용왕신과 영등신이 오시는 길을 닦아 맞이하고 어부와 해녀의 안전을 비는 요왕맞이, 마을전체의 액을 막는 도액막음, 해녀가 바다에서 잡은 것들의 씨를 다시 바다에 뿌리는 씨드림, 영등신을 배에 태워 본국으로 보내는 배방송, 처음 불러들인 모든 신들을 돌려보내는 도진으로 끝이 난다.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은 영등신에 대한 제주도 특유의 해녀신앙과 민속신앙이 담겨져 있는 굿이며, 우리나라 유일의 해녀의 굿이라는 점에서 그 특이성과 학술적 가치가 있다.
5.해녀노래
종 목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호
지 정 일 1971.08.26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852
기능보유자 안도인
해녀노래란 제주도 해녀들이 배를 타고 나가거나 들어올 때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민요를 말한다. 이 민요와 노를 젓는 동작은 밀착되어 나타나며 노동을 한결 가볍고 즐겁게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
해녀들은 일할 때 사용하는 테왁, 망사리, 빗창 등으로 장단을 치면서 부른다. 내용을 보면 일의 고됨과 일상생활을 정감있게 표현한 것으로 생업에 대한 강렬한 기백이 나타나 있고, 역동적이며 직설적인 색채가 강하다. 두 사람이 교대로 선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이여싸’등의 후렴으로 받는다. 때로는 어부가 선소리를 하고 해녀들이 뒷소리를 하기도 한다. 가창형태가 복잡해 선소리에서 나타나는 악구의 마디 수는 일정하지 않지만, 두 마디를 짝으로 하여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이어지는 선율은 일정하게 반복된다. 박자는 규칙적인 6/8박자이며, 속도는 보통빠르기에서 아주빠르기까지 일하는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연결된다.
해녀노래는 어업요 중에서 가장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민요로 제주도에 사는 예능보유자인 안도인 씨와 보유단체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6.영감놀이
종 목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2호
지 정 일 1971.08.26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826
기능보유자 이중춘(1933년 5월 3일생)
영감이란 도깨비의 제주도말인 도채비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영감놀이는 제주도의 무당굿 중 놀이굿의 한 종류로 도깨비신에 대한 굿인 동시에 가면놀이이며, 물고기가 많이 잡히길 기원하거나 병이 낫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행해진다.
영감놀이는 마당에 제삿상을 차린 후 밤에 행해진다. 제삿상 위에는 돼지머리, 수수떡, 소주 따위의 영감신이 즐겨먹는 음식을 차린다. 한 사람이 나와 영감신에게 굿하는 시간과 이유, 그리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알린 후 영감신을 부르면, 종이로 된 도깨비탈과 헌 도포, 헌 짚신, 헌 갓, 곰방대로 분장한 무당 두 사람이 들어온다.
영감신은 해학적인 대화와 경망스런 행동으로 한바탕 수선을 떨면서 제삿상의 음식들을 대접받는다. 이 때 아픈 사람을 마당에 앉혀 돗자리로 환자의 몸을 두르고 푸닥거리를 한다. 푸닥거리가 끝난 뒤 제물을 실은 짚배를 바다 멀리 띄워 보낸다.
이 놀이는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종합예술제라는 점에서 민중의식을 엿볼 수 있으며, 또한 연극의 시작점을 찾아 볼 수 있는 가면극으로서 그 가치가 높다.
7.송당리 마을제
종 목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5호
지 정 일 1986.04.10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기능보유자 송당리마을제 보존회
송당리 마을제는 제주도 여러 마을의 당신들의 원조인 벡주또마누라신에게 제사를 지내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마을단위의 제사이다. 매년 음력 1월 13일·2월 13일·7월 13일·10월 13일에 행하여진다.
벡주또마누라신은 서울 남산 송악산에서 태어나 다섯 곡식의 씨앗을 가지고 제주도에 온 산육·농경의 여신으로 한라산에서 솟아난 수렵·목축의 남신인 소로소천국과 결혼하여 아들 8명과 딸 28명을 낳았는데, 그 자손들이 고루 뻗어 제주도 전 지역 368개 마을의 당신이 되었다고 한다.
마을제는 마을사람들이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신문을 열어 달라고 비는 궷문열림으로 시작된다. 굿하는 장소와 시간을 고하고, 굿하는 이유와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알리는 초감제와 신궁문을 여는 군문열림, 그리고 신이 내려오는 길이 깨끗하도록 나쁜 기운을 없애는 새도림을 한 후에 옥황상제와 벡주또마누라신을 초청하는 신청궤를 행한다. 맞이한 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춤과 노래를 하는 풍니놀이와 마을의 운수를 점쳐보는 도산받음을 하고, 마을의 액운을 막고 행운을 비는 액막음과 마지막으로 초청해 온 신들을 돌려보내는 도진의 순서로 진행된다.
송당리는 ‘당신앙의 뿌리’가 되는 성스러운 장소로써 송당리 마을제는 제주도에서 행해지는 마을제 가운데 대표라 할 수 있다.
8.납읍리 마을제
종 목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6호
지 정 일 1986.04.10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기능보유자 납읍리마을제 보존회
납읍리 마을제는 홍역신인 서신, 마을 수호신인 토신, 손님신인 포신에게 제사를 지내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마을단위의 제사이다.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오다가 30여 년 전부터는 봄에만 지내고 있다.
제사는 제물을 제삿상에 올리는 전폐례로 시작된다. 술을 올리고 절하는 초헌례와 축문을 읽는 독축, 다시 술을 올리고 절하는 아헌례를 행한 후에 마지막으로 술을 올리고 절하는 종헌례를 거쳐 제삿상의 그릇들을 물리는 철변두와 향을 피우는 그릇과 위패를 물리는 망료위(望燎位)의 순서로, 유교적 제사방법에 따라 이루어진다. 제사가 끝나면 제물로 썼던 돼지를 잡아 제사관들과 참가자들이 나누어 먹는다.
납읍리 마을제는 남자들이 행하는 유교적 마을제인 포제와 여성들이 행하는 무속 마을제인 당굿이 병존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9.정동벌립장
종 목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8호
지 정 일 1986.04.10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1517
기능보유자 홍달표('31.12.9)
정동벌립은 농부들이 쓰는 모자의 한 종류로 제주도 고유의 것이다. 패랭이와 비슷한 모양으로 비를 피하거나 햇빛을 막기 위하여 써 왔었다.
정동벌립의 제작은 북제주군 한림읍 귀덕 1리 성로동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정동벌립이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어찌하여 귀덕 1리에서만 집중적으로 전승되어 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정동벌립은 크게 절벤, 망, 천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외에도 맨처음 시작되는 가마귀방석 및 절벤과 망 사이, 망과 천 사이의 사갑바위 등이 있다. 정동벌립의 재료는 제주도 일원, 특히 산간에서 자라는 정동(댕댕이덩굴)을 쓴다. 작업공정은 크게 세 과정으로 나누어지는데, 제 1과정은 가마귀방석에서 절벤을 만드는 과정이고, 제 2과정은 절벤에서 망을 만드는 과정이며, 제 3과정은 망에서 천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렇게 하여 겯는 일이 마무리되는데, 정동벌립 하나를 겯는데 보통 4∼5일이 걸린다. 종류는 양태나 탕건처럼 뚜렷한 구분이 없으며, 단지 도리수의 차이에 따라 상질·중질·하질로 나누어진다.
정동벌립은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보전되고 있으며, 기능보유자로 홍달표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10.멸치후리는 노래
종 목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0호
지 정 일 1986.04.10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구좌읍 동김녕리 1667-8
기능보유자 김경생(1929년 7월 18일생)
멸치후리는 노래란 제주도의 해안마을에서 여럿이 그물로 멸치를 후리면서 부르는 민요를 말하며, 멜후림소리라고도 하는데 멜이란 멸치의 제주도 말이다. 멸치후리기는 먼바다에서 그물로 멸치떼를 후린 후 모래가 깔린 해안가로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끌어당기는 작업이므로 단결된 힘을 돋우기 위해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이 민요는 한 사람의 선소리꾼이 노래를 이끌어가고, 그물을 당기는 사람들은 동작에 맞추어 후렴구를 부르는 선후창형식이다. 악곡구조는 두마디 선소리와 두마디 후렴으로 되어 있는데, 선소리와 후렴의 선율은 서로 다르며, 늦은 굿거리장단이나 중중모리장단으로 부른다. 가락이 안정되고, 강세처리도 박절구조에 따라 비교적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거의 변함없이 동일악구를 반복하면서 전개된다. 소리의 구성음은 도·레·미·솔로 되어 있고, 레로 끝마쳐서 씩씩한 느낌을 준다.
멸치후리는 노래는 어업노동요로, 멸치를 후릴 때 그물을 잡아당기는 동작과 밀착되어 있는데 1960년 이후 멸치후리기가 자취를 감추게 됨에 따라 일과 분리된 민요전승자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11.고분양태
종 목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2호
지 정 일 1998.04.08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삼양2동 2079
기능보유자 강경생
고분양태는 사라져가는 전통관모공예의 하나로 양태(갓에서 챙부분)중의 최고급이다. 고분양태의 재료는 날대와 빗대 등 대오리 등을 엮어서 만드는데, 기능이 복합적이다. 고분양태는 전통적인 관모공예로 대표적인 무형문화재이다.
12.제주큰굿
종 목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3호
지 정 일 2001.08.16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826
기능보유자 이중춘
제주 큰굿은 ‘두이레 열나흘 굿’ 혹은 ‘차례차례 제 차례 굿’으로 굿을 하는 기간, 규모면에서 가장 큰 종합적인 연희이다. 이는 무당집에서 하는 ‘신굿’과 일반적인 가정에서 행하는 ‘큰굿’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굿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고, 제주도 사람들의 인생관, 우주관, 자연관을 비롯한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굿의 춤, 노래와 사설 모두가 문화재적 가치가 높고, 특히 사설은 중세어연구를 위한 국문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4대째 무업으로 잇고 있는 이중춘은 16세부터 굿법을 배우기 시작하여 지금은 영감놀이를 비롯한 여러 큰굿을 주관하며 제주 큰굿의 원형보존과 전승에 힘쓰고 있다.
13.제주 불교의식
종 목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5호
지 정 일 2002.05.08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애월읍 시엄리 1068
기능보유자 문명구(법명 성천)
제주도의 불교의식은 부처님께 드리는 음성공양과 재공양의 측면에서 육지부의 지역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음성공양인 범음 곧 범패는 불교의식 중에서 재를 올리기 위해 부처님께 바치는 음악으로, 인간의 염원을 부처님께 전달하는데 사용된 현재까지 전하는 의식요이다.
불교적인 용어로 재라는 것은 죽은 자를 위한 영혼 천도를 위해 올리거나, 복을 받기 위해,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 무운을 위해 올리는 의식으로 불교적 예배의식을 말한다.
이러한 불교 의례중 주로 상주권공재, 시왕각배재, 생전예수재, 수륙재, 영산재의 의식을 행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일반적으로 범패라고 하며, 행해지는 각 재는 그 규모나 성격상에서 공통적인 부분도 있지만 약간은 다르다.
상주권공재는 죽은 자의 천도와 극락 왕생을 드리는 재로서 보통 하루가 걸리며 가장 규모가 작은 재이다. 49재, 혹은 소상, 대상에서 치러지고 있다.
시왕각배재는 저승을 관장하는 열 시왕에게 올리는 의례인데, 천도재나, 예수재, 영산재에서도 행해진다.
예수재는 윤년이 든 해에 치러지는 의식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수륙재는 물에 빠져 죽은 영혼을 위무 공양하거나, 절에서 강이나 바다로 나가서 방생재를 하면서 드리는 재이다.
영산재는 국가 단위의 큰 조직체를 위해 혹은 군인들의 무운장구를 위해서 올리는 재로써 규모가 가장 크며, 보통은 3일간에 걸쳐서 치러진다. 이러한 재에 따라서 불려지는 노래들이 고정되는 것은 아니고 영산재에서 불려지는 음악이 각 재에서 불려지고, 영산재는 위의 네재에서 불려지는 음악들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범패의 전래는 한 본토인 경우는 「삼국유사」월명사 조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불교가 전래되면서 의식을 진행하는 음악으로 자리했던 것이다. 제주도인 경우도 불교의 전래와 같이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일본의 도라악이 제주 불교음악이라고 하는 설이 이를 반증해 주고 있다.
그래서 불교의례 중 범음과 재 공양의 측면은 제주도 문화중 불교문화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많은 민중들의 호응을 얻고, 대를 이어 구전되어 내려온 한 문화형태라고 할 수 있다.
즉 제주불교의식은 제주에 불교가 유입, 전승되면서 제주의 전통문화와 연계되어 육지 지방과는 차별되는 특징이 있다. 즉 제주불교 세시의례 중 칠성제와 산신제가 육지지방에 비해 성대히 진행되고 있다. 이는 제주의 무속의례 중 산신제와 칠성제가 불교의례와 연계되어 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육지지방에 비해 제주도의 불교의식은 사자천도의례가 중시되어 더욱 장엄하게 진행되고 있고, 천도재인 49재시에도 육지지방에서 소멸된 시왕각배를 시왕각청으로 순당하고 있고, 생전예수재의 경우에도 욕불(관불)의식이 전승되고 있다
불교의식 음악인 안채비 소리는 태징, 목탁, 북을 치면서 염불하는데, 육지지방에 비해 매우 느린 편이며, 제주지방의 토리를 가지고 있다. 또한 화청(회심곡)도 불교의 회심곡을 변이시켜 육지지방에서 불려지는 소리와는 다른 제주적인 토리로 불리워지고 있다.
14.제주농요
종 목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6호
지 정 일 2002.05.08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건입동 1044-6
기능보유자 이명숙
제주 지역에서 불리는 대표적인 밭일노래이다. 제주 지역은 화산회토의 자연 환경이 말해 주듯 밭일과 관련한 민요들이 많이 불렸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제주농요는 「밧 리는 소리」·「진사대 소리」·「타작질 소리」 등 세 수이며, 기능 보유자는 이명숙(여)이다.
제주농요는 밭농사가 지배적이었던 제주 지역의 일상적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불렸던 삶의 소리, 특히 노동 문화를 대표하는 노래로서 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5.진사대소리
종 목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7호
지 정 일 2005.10.05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1589
기능보유자 진선자
사대소리는 제주도에서 불려지는 김매는 소리의 한 종류로 밭에서 김을 매면서 불려지기에 밭 내는 소리라고도 한다. 가락의 빠름과 느림에 따라 쪼른사대(자진사대소리)와 진사대 (긴 사대소리)로 나뉜다. 김매는 작업에서 불려지는 노래로는 제주도 전역에서 널리 불려지는 사대소리 외에 특정지역에서 부르는 노래로 아웨기,홍애기,더럼소리,상사소리,담불소리 등이 있으나, 이는 김매는 작업에서 다른 노래의 가악을 차용하여 김매는 노래 시설을 얹어서 부르기에 가락이 사대소리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사대소리 중 긴 사대소리는 여성들이 수눌음으로 함께 일을 하면서 목청을 길게 빼면서 느리게 불려지기에 상당한 가창 능력을 필요로 한다. 자진 사대소리는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제주도 해안마을에 널리 불려지는데,긴 사대소리는 특히 애월읍지역,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조사된 바에 의하면 장전리, 광령리, 용홍하, 소길리를 중심으로 독특한 창법으로 불려지고 있다. 자진 사대소리는 한 사람이 선로리를 부르면 여럿이“어긴여랑 사대로구나”와 같은 후렴을 받아 부르는 선후탕 방식 또는 여럿이 선소리를 돌려 부르는 교환창 방식이 주를 이루나, 긴 사대소리는 노래를 부르는 리더가 선창하면 여럿이 이러서 같은 가락을 부르는 제창과 유사한 창법으로 부른다. 따라서 특별한 후렴구가 긴 사대소리에는 없으며, 독창으로도 불리나 제창 방식으로 불려지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 노래는 사설과 가락에 대한 공감대가 김매는 작업에 참여한 여성들간에 널리 형성되어야 있어야 전승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 노래이다.
긴사대 소리는 단락 중간에 길게 빼는 목청과 굽이를 꺾는 창법을 요구하는 보통 사람들이 부르기에 까다로운 노래다. 그런데 진선자씨는 목청이 곱고 낭랑할뿐만 아니라 60세로 연세도 많지 않아 긴 사대소리를 숨차해 하지 않고 유장하게 부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을 하면서 긴 사대소리 등 다양한 종류의 민요를 부모와 동네 어른들로부터 체득한 전승자임을 확인할수 있었다. 특히 주위 사람들로부터 민요가창 능력을 인정을 받으면서 민요 전수에 대한 강한 긍지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자신이 부를 수 있는 민요를 젊은 사람들에게 전수시키고자 하는 데도 남다른 의욕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 큰 호응은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긴 사대소리 조사에서도 진선자 씨 혼자서 부르는 것을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앞으로 진선자 씨와 성장기에 함께 긴 사대소리를 부렀던 어느 정도 가창능력과 의욕을 가진 분들과 함께 애월 긴 사대소리의 전수를 위한 팀원 구성과 이 노래 의 독특한 창법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뒤까른다면 애월 긴 사대소리가 지난 무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정립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16.귀리겉보리 농사일소리
종 목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8호
지 정 일 2007.02.28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애월읍 하귀2리1893-1
기능보유자 귀리겉보리 농사일소리 보존회
겉보리 농사일과 관련된 노동요로 다른 지역에서 전승되는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한 농업노동요이다.
특히 마소와 인간이 함께 노동의 결실을 추구하는 협동과 화합의 노래로 육지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유독 제주도에서만 전승되는 노래라는 점에서 무형문화재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