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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나무의 지혜
고지대에 빼곡이 자라는 나무들은 바이올린 제작자에게 가히 은총입니다. 이런 곳에 곧추선 가문비나무는 아주 위쪽에만 가지가 나 있습니다. 밑둥에서부터 40~50미터까지는 가지 하나없이 줄기만 죽 뻗었지요. 바이올린의 공명판으로 사용하기에 이보다 좋은 나무는 없습니다.
저지대에서 몇 년 만에 서둘러 자란 나무는 고지대에서 2~3백년 넘는 세월 동안 서서히 자란 가문비나무와 견줄 것이 못 됩니다. 저지대의 온화한 기후 속에서 빨리 큰 나무는 세포벽이 그리 단단하지 않습니다. 이런 나무는 나이테의 폭이 넓고, 늦가을가지 계속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냅니다. 늦여름과 가을에 만들어지는 부분을 ‘추재(Late wood)'라고 하는데 추재 비율이 높은 나무는 세포벽이 두껍고 섬유가 짧습니다. 또 줄기 아랫부분까지 가지가 무성하지요. 이런 나무로 바이올린을 만들면 매력적인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울림의 진수가 생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산의 거장들은 다릅니다. 고지대의 가문비나무들은 천천히 자라면서 아래쪽 가지들을 스스로 떨굽니다. 어두운 산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쪽 가지들은 빛을 향해 위로 뻗어 오르고, 빛이 닿지 않는 아래쪽 가지들은 떨어져 나가지요. 바이올린 만들기에 딱 좋은 ‘가지 없는 목재’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수목 한계선 바로 아래의 척박한 환경은 가문비나무가 생존하는 데는 고난이지만, 울림에는 축복입니다. 메마른 땅이라는 위기를 통해 나무들이 아주 단단해지니까요. 바로 이런 목재가 울림의 소명을 받습니다.
DAY1
인생은 선택의 정글을 헤쳐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끊입없이 결정해야 합니다. 고지대의 가문비나무에서 우리는 귀한 지혜를 봅니다. 가문비나무는 어둠 속에 놓인 마르고 죽은 가지를 스스로 떨굽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죽은 것을 떨쳐 낸 자리에서 울림의 진수가 생겨납니다. 나이테가 촘촘하고, 잔가지가 없고, 섬유가 긴 나무, 그것은 언젠가 바이올린이 되어 아름답게 울릴 질 좋은 목재입니다.
DAY2
가문비나무는 우리에게 죽은 것을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옳지 않은 것과 헤어지라고 말합니다. 빛을 가리는 모든 행동과 결별하라고 이릅니다. 이는 곧 솔직함, 진정성, 정의, 자비, 화해가 없는 모든 일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울림이 있는 삶에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지요. 살아가면서 어떤 부분과 결별해야하는지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힘과 가치를 앗아가는 죽은 가지를 알아봅니다.
DAY3
노래하는 나무는 자기 생명에 해로운 것을 버립니다. 희생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죄짓지 않는 쪽을 택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죄를 지을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는 해로운 것을 버릴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DAY4
강한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해도 그 모든 것을 취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좋은 울림이 탄생합니다. 생명의 진수가 생겨납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삶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지는 삶보다 제한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더디겠지만, 그만큼 더 진실 되고 아름다워집니다.
성서는 마음의 가난을 칭찬합니다. 마음이 가난해진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강한 사람에게는 울림을 방해하는 것을 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DAY5
하느님의 뜻을 좇는 사람은 언뜻 보기에 늘 손해보고 더 가난해지는 쪽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성서가 칭찬한 가난은 많은 선택지 중에서 자신의 소명에 해가 되는 쪽을 포기하는 것이니까요.
DAY6
어렵다고 모두 해가 되는 것이 아니고, 쉬운 것이 모두 축복은 아닙니다. 기름진 땅, 저지대의 온화한 기후에서 나무들은 빠르게 쑥쑥 자랍니다. 우리가 복으로 여기는 풍요로움도 종종 그렇습니다. 풍요로운 땅에서 나무는 기름지고 빠르게 자랍니다. 하지만 울림에는 부적합하지요.
‘노예가 아니라 봉사자로’
나에게는 음악가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나는 음악가에게 완벽주의가 얼마나 커다란 유혹이며 부담인지 잘 압니다. 아마도 음이 한번 악기를 떠나면 더는 주워 담거나 무마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소프라노 친구가 말했습니다.
“난 무대에 서면 일단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런 생각이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했지. 하지만 이제 현재의 미완성 상태를 받아들일 수 있어. 당장 완벽하지 않아도 완성을 향해 성장해 가야 한다는 걸 알았거든.” 옆에 있던 오보에 주자가 덧붙였습니다.
“불만족도 중요해. 그런 마음이 나를 계속 발전하게 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지나쳐 완벽주의를 고집하게 되면 오히려 발전에 제동을 걸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몰려오니까.”
순회 연주를 하던 피아니스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바흐를 나처럼 연주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어. 내 연주에는 늘 열등감이 서려 있었지. 그건 건설적인 불만족이 아니야.”
완벽을 향한 노력은 분명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완벽주의로 변하면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완벽주의자는 미완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발전과 성장은 언제나 이런 중간 과정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잠정적인 상태 없이는 그 누구도 발전해 나갈 수 없습니다. 완벽주의자는 그가 손대는 일마다 생명을 앗아갑니다. 뭔가가 성숙하도록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늘 심기가 불편합니다.
DAY1
혹시 당신은 재능의 노예로 살고 있지 않은가요? 재능의 노예에서 벗어나야만 완벽주의의 부담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재능의 노예가 되면 자신을 성과로만 판단합니다.
‘이만저만하게 해야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 나는 내 재능의 대가로 먹고사는 거라고.’
노예는 자기 재능 뒤에 늘 성공과 갈채가 따르기를 기대합니다. 성공과 갈채라는 마취제가 떨어지면, 자기를 무가치하게 여기며 내적 생기를 잃고 영적 침체에 빠집니다. 그러나 봉사자로 사는 사람은 다른 원천에서 힘을 얻습니다. 그가 무엇을 하든 그것은 소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재능을 받았지만 그 재능은 자기를 높이고 스스로 비중 있는 사람이 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가 받은 사랑에 응답하라고 주어진 것이지요.
DAY2
봉사자는 감사할 줄 알며 자신의 유한성과 소명을 압니다. 하지만 재능의 노예로 사는 사람은 재능을 통해 자꾸만 자기를 확인하려 합니다. 이는 자기 자신 회에 다른 목표를 알지 못하는 노예의 삶입니다. 자기 자신이 목표가 되면 스스로 살고자 발버둥치지만, 손을 펴서 하늘이 내리는 것을 받지 못합니다. 소명을 모르는 삶에서 재능은 오히려 존재를 갉아먹습니다. 노예가 아니라 봉사자가 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재능이 당신을 착취할 것입니다.
DAY3
재능에 집착하느라 소명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재능의 노예가 아니라, 봉사자로 부름 받았으니까요. 봉사자로 살 때만 재능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소명을 받은 봉사자는 위로부터 받은 권위를 가집니다. 재능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만 있을 뿐입니다.
DAY4
노예는 대가를 계산합니다. 그러나 봉사자는 자기 자신을 선물합니다. 그는 자비롭고 자유롭습니다. 이익과 보상을 바라고 자신을 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DAY5
충만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을 통해 무엇이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행복은 신이 우리를 나무삼아 좋은 것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늘과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 행복의 본질입니다.
DAY6
완벽하고자 하는 사람은 차갑습니다. 완벽한 모양을 갖춘 바이올린이 꼭 좋은 울림을 내지는 않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수하지 않고 비난할 것 없는 사람이 울림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울림은 자기 삶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때 생깁니다.
은혜의 선물
작업실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강렬하게 공간을 채우는 바이올린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미하엘은 외형까지도 아주 우아한 이 1712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무척 조심스럽고 수줍게 연주했습니다. 그가 내게 악기를 선보이려고 고른 곡은 바흐의 <샤콘>이었습니다. 첫 화음을 내자마자 이미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따뜻함과 부드러운 호흡, 풍만감과 광채가 공간을 가득 채웠습니다. 숙련되지 않는 귀로도 분별할 수 있을 정도였지요. 나는 강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하느님의 임재와 은총을 그토록 강하게 느낀 적은 드물었습니다.
은혜 또는 은총이라는 말은 신약성서에 ‘카리스(charis)'라고 나옵니다. ’카리스마(charisma)'는 은혜의 선물을 뜻합니다. 또 카리스라는 말은 우아한 아름다움을 뜻하기도 합니다. 시편 45:2절에 ‘카리스마를 입슬에 머금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때의 카리스는 은혜를 뜻하기도 하지만, 아름다움을 입술에 머금었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습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카리스마를 지녔습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는 자기가 제작한 악기에 싸인할 때 마다 쪽지에 십자가를 그리고 그 아래 ‘AS'라고 서명했습니다. 그는 작품을 제작할 때마다 자신을 십자가 아래 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든 바이올린이 내는 울림은 마치 음의 구름 속을 거니는 듯 느껴집니다. 부드러움과 힘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명장 주세페 과르니에리 델 제수의 바이올린은 그와 다릅니다. 과르니에리의 바이올린은 막 내린 눈과 같습니다. 그 울림에서는 소복소복 내린 눈을 발로 밟을 때의 느낌이 납니다. 포만감이 느껴지고, 사각거리고, 만족스러운 느낌이지요. 과르니에리의 음은 진하고 어둡고, 압축할 수 있으며, 깊은 곳에서 불그레한 울림을 냅니다. 과르니에리는 도전하고 투쟁해야하는 바이올린입니다.
그러나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은 이와 다릅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싸워서는 안 됩니다. 싸우면 거칠고 나쁜 소리가 납니다. 언제나 악기와 하나 되어, 음을 하나하나 얻어 나가야 합니다. 몰아 붙이고 권력을 행사하려 하면 실패하고 맙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하다보면 스스로 악기가 되어 연주하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DAY1
영혼을 어루만지는 악기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내는 음에는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그런 악기는 듣는 이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합니다. 그런 악기들은 억지 부리지 않고 의기양양해 하지 않습니다. 천박하지 않으며, 음색 조절 범위가 넓습니다. 이런 악기들은 우리의 마음을 얻고자 합니다.
삶의 원칙
나는 내 삶의 원칙을 다음 열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하나. 하느님의 인도를 받을 것.
둘. 내 삶이 곧 하느님을 향한 예배임을 명심할 것.
셋. 욕심으로 이루고자 하는 일들을 내려놓을 것.
억지로 집착하는 것은 욕심일 뿐,
의미있고 중요한 일들은 자연스럽게 오는 것이니.
넷. 분명한 일을 행하는 데 게으르지 말 것.
다섯.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지 말고
하느님의 지혜에 놀랄 준비가 되어있을 것.
여섯. 하느님 앞에서 나의 길을 책임질 것.
모든 것을 도덕적 잣대로 판단하지 말고 나와 동료의 죄를 용서할 것.
일곱. 마음이 깨끗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볼 수 있으니 악감정을 멀리할 것.
경탄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흥분하지 말 것.
지속적인 기도를 통해 영혼의 고요를 유지할 것.
여덟. 하느님의 신비와 친밀함을 경외할 것. 이웃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길 것.
아홉. 걱정하는 대신 기도할 것. 걱정거리를 하느님 안에 내려놓을 것.
열. 떠벌리거나 거짓말하거나, 미움이나 날카로움이 묻은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말 것.
좋지 않은 소리를 듣더라도 그것을 계속 전달하지 말고 하느님께 맡길 것.
DAY6
깨달은 것을 실천하는 데는 순종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순종없이는 모든 개달음이 공허할 뿐입니다. 깨달음을 행하기 시작하면 더 많은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은 일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미 깨달은 것 마저 잃을 것입니다. 유대의 랍비 힐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동보다 지혜가 많은 사람은 가지 많고 뿌리 얕은 나무와 같아서 바람이 불면 뿌리가 뽑혀 쓰러지고 만다.’
마틴 슐레스케
196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 학교로 손꼽히는 독일 미텐발트 국립 바이올린제작학교를 졸업하고, 뮐러-BBM 음향기술컨설팅회사 소속 바이올린 제작 연구소에서 공부했다. 이어 뮌헨응용학문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바이올린 장인 페터 에르벤의 작업실에서 일하다가 1996년 함부르크에서 바이올린 마이스터 시험을 통과했다. 현재 뮌헨에서 바이올린 제작 아틀리에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해마다 약 20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만들어 낸다. 세계 순회 연주를 하는 솔리스트들과 유명 오케스트라의 수석 주자들이 마틴 슐레스케의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 (부제 - 아름다운 울림을 위한 마음 조율)
독일의 바이올린 장인 마틴 슐레스케가
작업장에서 길어 올린 365개의 맑은 생각과
세계적인 사진작가 도나타 벤더스가 찍은
52장의 인상적인 사진이 만나
한 권의 아름다운 명상 책을 빚어냈다.
마틴 슐레스케의 바이올린 제작 과정은
그 자체로서 예술이자, 소명이며, 인생의 비유다.
여기에 바이올린 탄생 과정의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이
저자의 깊이 있는 문장들과 어우러져
독자의 가슴에 잔잔한 울림으로 와 닿는다.
김정식 곡 눈물2.44.mp3
첫댓글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을 위해 준비되어진 가문비나무를 찾아내
최상의 아름다운 소리를 품은 바이올린을 만드는...
가문비나무도 마틴 슐레스케도 세상에 보내신 특별한 선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