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마법에 걸린 개구리 왕자(공주)이야기가 서로 다른 버전으로 널리 퍼져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영국판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아름답지만 도도한 공주가 귀한 물건(반지나 보석이 달린 귀걸이나 공)을 우물이나 깊은 연못에 빠뜨린다. 그때 말하는 개구리가 나타나 보물을 되찾아오면 키스해달라고 한다. 생각만 해도 싫지만 보물을 찾고 싶은 마음에 공주가 승락한다. 개구리는 기꺼이 물에 뛰어들어 보물을 찾아오고 어쩔 수 없이 공주는 개구리에게 키스한다. 공주가 키스하는 순간 개구리가 잘생긴 왕자로 바뀌고 둘은 결혼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
재밌는 것은 독일어판이다. 부주의하고 도도한 공주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키스해달라는 개구리의 성가신 요구에 화를 내며 역겨워한다. 개구리를 죽일 작정으로 있는 힘을 다해 벽에 던졌는데, 그 충격으로 왕자로 바뀐다. 공주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개구리 왕자와 도도한 공주는 결혼한다. 영국판과 달리 독일어판에선 둘이 행복하게 살았는지 어땠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제레미 테일러는 영국판과 독일어판이 다른 이유를 사회 문화적인 차이에서 찾았다.
앵글로색슨 문화 전통은 터무니없는 약속이라도 로맨틱한 만남에서는 최소한 지키려고 노력하는 반면, 독일 문화권에선 여성의 일관성 없음은 예상되는 일로, 로맨틱한 끌림은 일종의 광기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특히 영국과 독일 버전 모두에서 공주가 천성적으로 부주의하고 도도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건 영국과 독일사회 안에서 경제적, 정서적으로 종속된 여성의 지위를 암시한다. 두 버전 모두 공주가 직접 옷을 벗고 보물을 찾으러 뛰어들 가능성은 배제한다.
러시아에선 공주와 왕자의 역할이 바뀐 이야기로, 슬라브어권에선 왕자가 마법에 걸린 개구리 공주와 강제로 결혼하게 된다. 특히 러시아판에선 개구리 공주의 신분이 낮아서 온갖 가혹하고 잔인한 시험을 겪는다. 태국판은 마법에 걸린 공주가 키작은 흑인(니그리토)로 변한 왕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부적절한 결혼으로 왕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공주는 국외로 추방당한다. 시간이 흘러 공주는 하층민들의 삶을 직접 배우며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고, 자비심을 갖게 된다는 내용으로 진일보한다.
마법에 걸린 개구리 이야기는 이처럼 각각의 문화권에서 조금씩 다르게 변형되었지만, 기본적인 원형의 메시지가 있다.
모든 개인과 사회 안에서 가장 폄하되고 혐오하며 억눌린 측면인 개구리에게 키스해야한다는 것.
그동안 무시하고 경멸하고 억눌렀던 생물체나 상황, 내면의 그림자 안에 숨은 신성, 황금을 끌어안으라는 말이다.
개인과 사회 모두 끔찍하고 지저분하며 골치아픈 개구리 같은 그림자 요소가 있다.
대부분의 개인과 사회는 이 그림자를 결핍과 방해요소로 보고, 그림자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보이지 않게 꼭꼭 숨기거나 무시한다. 개인적 측면에서는 돈 이야기, 몸과 성에 관한 이야기, 트라우마 이야기, 세상의 성공이 아닌 내적 목소리를 따라사는 삶은 모르는 척하거나 감춰버리는 개구리다.
이 개구리에게 키스하는 사람에겐 좀스럽거나 음탕하며 사적인 걸 토로하는 사람이나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란 딱지를 붙인다. 사회적 측면은 친족성폭력 생존자나 성소수자들, 노숙인이나 장애인, 장애인과 노인의 성, 성매매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해당할 것이다.
개인과 사회가 건강하고 온전해지려면, 정신과 사회를 통틀어 가장 저급하고 혐오하는 요소들에 담긴 뛰어난 가치를 인식해야만 한다는 제레미 테일러의 호소를 의미있게 들어야한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마법에 걸린 개구리가 되찾은 "잃어버린 보물"은 사실 우리 정신의 수치스럽고 보기싫다며 방치하고 가린 부분과 사회가 무시하고 경멸하며 억압했던 존재들에게서 발견되는 것이 아닐까?
참고: 제레미 테일러<살아있는 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