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이자 사단법인 시민건강연구소장을 통해 2시간 동안 줌 강의를 들었다. "보건의료정책과 돌봄" 강의에서 한국의 의료정책이 자본주의와 얼마나 긴밀히 밀착돼 있는지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의료적 돌봄이 어떻게 상품화되는 동시에 배제되는지. 이렇게까지 의료가 시장화, 상품화돼 있다니. 진료를 받더라도 의사 앞에서 돈이 오고가지 않고 데스크와 원무과라는 행정시스템으로 접수가 되고 지불이 되니 의료의 시장성과 상품성을 잘 실감하지 못한다. 아니 의도적으로 그런 병원 시스템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동네로 이사가면 가장 먼저 불편을 겪고 고민을 하는 부분이 좋은 병원을 찾는 일이다. 친절하고 숙련된 의료를 원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가 근처에 좋은 의료기기를 갖추고 명의를 모신 대형 병원이나 대학병원이 있는지도 이사할 동네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부상한다.
강의 중에 보건의료가 위축되고 주변화된 이유가 인상적이었다.
첫째, 의료에서 기술의 강도가 갈수록 강해져서 기술의존적이 되는 것이 보건의료를 위축시키고 주변화한다.
뼈를 보이게 하는 뢴트겐이나 조현병치료제로 유명해진 클로르프로마진 등의 기술 발전 등이 그 예이다.
둘째, 생산체제의 변화다.
병원의 대형화, 공장화 즉 산업화, 시장화가 보건 의료를 위축시키고 주변화한다.
셋째, 의료보장의 제도화를 들었다.
의료보장 자체가 병원의 수입을 보장하는 제도다. 즉 돈이 되는 것을 생산하는 의료의 상품화와 의료시장을 조성한다.
넷째, 정치,경제구조와 보건의료의 통합성이 강화되었다.
복지국가로 갈수록 신자유주의 자본 축적의 형태로 의료와 정치, 경제구조는 더욱 밀착하고 상호협력한다.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돌봄의 권력관계에서 불리한 것들과 가속화되는 것들이다.
노동집약적이고 지역사회기반을 둔 것, 대량생산이 안 되는 맞춤형, 민주주의, 인권, 위험, 품위나 개인의 자긍심 같은 비가시적인 것들은 돌봄의 권력관계에서 불리한 요소들로 작동한다. 반대로 돌봄의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가속화되는 것은 기계화되고 대도시에 기반한 것, 대량 생산되고 자동화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주목한 것은 돌봄이 굉장히 유력한 시장, 주류로 부상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것과 관련해 공동체 원리와 지역사회 담론 역시 가속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본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먼저는 자기돌봄인 자조, 둘째는 상호돌봄인 호조, 셋째는 지역사회 돌봄인 공조, 마지막으로 국가돌봄인 공조로 가는 형태로 한국도 가야하지 않겠냐는 조심스런 제안이었다.
돌봄이 상품화되면서도 동시에 배제되는 권력관계가 무서운 시장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의미있고, 생각하게 하는 강의였다. 국가나 경제 책임자들을 설득하기보다 국민이 사회적 힘을 기르고, 그 힘으로 국가를 압박하고 좋은 보건의료정책을 요구하는 방식이 유효하다는 대안제시도 안타깝지만 새겨야 할 부분이었다. 갈수록 가난하고 아픈 사람이 잘 살고 잘 아플 수 있는 사회와는 멀어지는 것 같아 답답하고 힘이 빠진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이미 의료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있다는 사실이 참담하기만 하다. 공공의료, 보건의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줄 알았던 코로나국면의 돌봄 논의도 구체화되는 것 없이 금방 시들해지고 본격적인 시도도 잘 보이지 않는다. 시민 주도의 커뮤니티 케어와 돌봄협동조합 같은 의료적 대안들이 곳곳에서 가시화되고, 국가 정책도 보건의료를 강화하는 전향적인 방향 전환이 일어나도록 체계화되고 지속적인 시민운동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 돌봄 담론에 관심있는 분들은 아직 9개 강의가 남아있으니, 주최인 다른몸들로 문의하거나 구글폼으로 신청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