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죽학리
(竹鶴里) |
죽림 무학 괴목 선암사 |
죽림 죽과 무학의 학을 합쳐 된 이름 |
2 |
죽림(竹林)
(대숲골) |
- |
주변이 대나무가 숲을 이루어 대숲골이라 하였으나 죽림으로 바뀜 |
3 |
봉 터 |
죽림마을의 터의 명칭 |
봉황새의 터 |
4 |
봉채(鳳砦) |
죽림마을 앞산 |
봉은 대나무를 먹고 살기에 대나무가 많아 봉이 사는 산채라는 뜻 |
5 |
봉명재
(鳳命齋) |
죽림에 있었던 서당의 이름, 현재 학교 뒤편의 좌측이 서당이 있었던 곳 |
이 고장에서는 가장 큰 서당으로 알려짐 |
6 |
뒷골 |
죽림마을 뒤 안골의 앞쪽 |
마을의 뒷 골짜기 |
7 |
안골 |
죽림 좌측 안(북서)쪽 골짜기 |
뒷골의 안쪽 |
8 |
서당까끔 |
마을과 큰너머골의 경계를 이루며 도로까지 뻗어 내린 마을 좌(서)측을 감싸고 있는 산 (초등학교 서편) |
마을 옆(좌) 산비탈 쪽에 서당이 있었다고 함. (까끔은 산의 방언) |
9 |
요랭이골 |
죽림건너편 골짜기 -?- |
-?- |
10 |
몰랑뜰(들) |
무학입구 선암천(노디)건너 좌우 논다랑이 |
몰랑아래 있는 들 (현재 용궁가든과 조은산장 부근) |
11 |
장몰랑 |
괴목 북쪽(지계골 뒤)에서 죽림 안골 뒤편으로 길게 뻗어 내려 솟은 봉우리 |
길게 뻗어 내린 산마루(몬당 먼뎅이와 같이 봉우리의 명칭이 없거나 단어의 뒤에 붙여 높은 곳을 부르는 사투리 (앞 몬당) |
12 |
큰너머골 |
서당까끔과 작은무덤골 사이의 북서쪽을 향한 골짜기(쌍암산장 뒤) |
죽림마을에서 너머에 있는 골짜기 |
13 |
작은너머골 |
큰너머골과 무덤골 사이의 북쪽을 향한 작은 골짜기 |
무학승강장에서 선암사방향 약30m가 입구 |
14 |
무덤골 |
작은너머골과 덤바구골 사이의 죽림에서 괴목으로 넘어가는 골짜기, (금성,덕정가든이 입구) |
무덤이 많은데서 유래 |
15 |
소맷골 |
무덤골 안쪽에서 덤바구골(西)쪽으로 갈라진 작은 골짜기 |
- |
16 |
솔정자등 |
소맷골 위에 있는 등성이 |
(승주향리지) |
17 |
원(왼)질구부 |
작은너머골(무학승강장)과 무덤골 입구(금성가든)사이 길이 굽은 곳 |
“왼질구부=왼 길 구비” 길이 왼쪽으로 굽어 돌아가는 곳이라는 뜻 |
18 |
꽃밭 등 |
현재 죽학삼거리 다리건너 저동 앞 마당재에서 내려온 줄기가 잔대섬을 앞두고 솟아 있는 등 |
진달래꽃이 많이 피었음,
(승주향리지 죽림 편에는 죽림 삼거리 소쇠부리 동북쪽 산등) |
19 |
노디께(거리) |
죽림에서 무학으로 건너가는 선암사천의 다리일대 |
‘노디’(대)는 징검다리의 사투리, 께는 게(그곳)의 된 발음, 노디를 포함한 입구 일대를 죽림에서 부르는 이름 |
20 |
대밭밑보 |
죽림 앞 선암천의 노디(무학으로 건너 가는 다리) 아래 있던 보, 현재용궁산장 동편 대밭이 있는 곳 |
대밭 아래 있는 보(현재도 대밭이 있음) |
21 |
동답 |
무학으로 들어가는 길(정자나무)위에서 괴목 아랫다리 사이 선암사천변에 있는 논,(왼질구부 길가) |
사찰 답으로 선암사의 동쪽에 논 |
22 |
물방께(거리) |
마을 건너편 대밭 밑 보의 물로 돌리던 물레방아가 있던 개천가 (현재 대밭 밑 고수부지 억새밭) |
물레방아가 있던 곳에서 유래 |
23 |
큰 보 |
선암사천의 상하보 위(괴목 아래다리 위)에 있는 보(덕정가든 앞) |
상보(上湺) 보다 작으나 큰 들(동답)에 물을 대므로 큰 보라 불렀다 함 |
24 |
상하 보 |
노디께 위 원질구부 앞 선암사천에 있는 보, (현재 조은산장 약30m 위) |
위아래로 나란히(약7m 간격) 있는 보 (상보는 죽림 앞 하보는 몰랑들 용수) |
25 |
안산보 |
대밭밑보아래 있던 보 |
-?- |
26 |
성안보 |
안산보아래 있던 보 |
-?- |
27 |
벅수께(거리) |
선암사큰길에서 무학마을로 들어가는 삼거리 길모퉁이 선암사산림경계비가 있는 곳 |
장승이 서있는 길거리 |
28 |
합수 골 |
죽림삼거리와 잔대섬 사이의 상사호 수몰 끝단 언저리 |
선암천과 이사천 빗갱이골 물 모두가 합류하는 수몰전의 골짜기 형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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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1. 19 죽림 남상윤(95)부부 최봉영(79)등 여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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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무학(舞鶴) |
무학승강장으로부터 약500m |
마을의 지형이 학이 춤을 추는 형상 |
2 |
아랫막쟁이 |
노디 건너 무학으로 들어가는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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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웃막쟁(징)이 |
마을이 있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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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아랫개동곡 |
노디(선암천) 건너 무학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굽이를 돌아 우측(마을뒤편)을 향한 골짜기 |
- |
5 |
웃개동곡 |
아랫개동곡을 지나 마을 직전에서 서북(마을뒤편)을 향한 골짜기 |
아래개동곡과 상단 큰 줄기 앞에서 만남 |
6 |
서정골 |
무학마을 남서쪽 병정봉 좌(남)측의 큰 골짜기, 중단까지 경작지가 있었음 |
골짜기의 방향이 서쪽일 뿐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음. “중이 공부를 하던 곳이 있었다” (승주향리지) |
7 |
아래 안골 |
마을 위 개울건너 마당재 방향의 골짜기 |
마을안쪽골짜기 중의 아래(낮은)쪽 골짜기 |
8 |
웃 안골 |
아래 안골 우(북)측 서정골 사이 |
마을안쪽골짜기 중의 위(높은)쪽 골짜기 |
9 |
마당재 |
무학⇔저동을 넘나드는 고개 |
고갯마루 무학방향이 마당처럼 평평한 모양을 하고 있음 |
10 |
농바구
(군량바위) |
서정골 하단의 계곡우측(길 좌측) 언덕 (242m) |
노적(가리)바위라고도 하며 이곳에 묘를 쓰면 장군이 난다는 풍수 전설이 있음 |
-2009. 1. 24 무학마을 장지원(78) 제공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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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괴목(槐木) |
선암사의 사하촌(주차장 마을) |
선암사입구에 괴상하게 생긴 고목들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북쪽에 있는 괴배기재와 괴핏등과 같은 지명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향리지) |
2 |
선암사
(仙巖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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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장군봉
(將軍峯) |
조계산의 정상(884m) 송광면과 경계 |
장군이 높게 앉아있는 형상(將軍大座) |
4 |
깃대봉
(旗幟峰) |
병정봉과 굴목재몬당 사이(중간)에 있는 봉우리(大覺國師重創建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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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병정봉
(丙丁峰) |
선암사의 남쪽 대승암 뒤편봉우리
(선암사“대각국사중창건도“에는 龍馬峰이라 표기되어 있음) |
오행으로 방위를 구분할 때 丙은 정남에서 동방15˚, 丁은 서방15˚를 가리키므로 정남쪽봉우리라는 뜻 |
6 |
중봉(中峰)
(소장군봉) |
장군봉에서 동쪽으로 내려오는 줄기의 정상으로부터 약250m 지점 중간 봉우리 |
실제로는 거의 정상에 가까우나 능선 길의 도중에 있어 마을 사람들은 중봉으로 부르지만 소장군봉으로 표기함 |
7 |
장박골
(帳幕洞) |
장군봉 뒤(서)편의 산줄기가 원형으로 둘러싸인 장안천 계곡의 막다른 골짜기, 장막골의 발음이 장박골로 변한 것임. (습지가 있는 곳) |
“장군의 막사”라는 뜻으로 장군봉과 연계한 산세의 형상에 의해 붙여진 이름.(송광면 장안리 구역이지만 장군봉과 연계된 명칭이므로 선암사에 편입함) |
8 |
배바구(위)
(仙岩) |
정상(장군봉)에서 남쪽(굴목재방향)줄기 따라 약100m 내려간 지점 |
조계산이 물에 잠기는 대홍수에 배를 묶었다는 민가의 전설과 신선이 놀았다는 선암사 측 전설이 있는 바위 |
9 |
범바구(위) |
정상으로부터 중봉(동)방향 약70m아래지점 |
선암사 1700년대 초 제작지도 “대각국사중창건도”는 호석(虎石)으로 표기 |
10 |
일월석
(日月石) |
정상종주등산로(대각암⇔장군봉) 약1/3지점 바위쉼터(무성암 터 약80m앞) |
길의 좌우 약3m간격으로 아래는 각 지게 박혀있는 큰 일석과 지름1.2m원형 월석이 놓여있음, 주민들은 달 바위쉼터로 부름 |
11 |
호랭이턱걸이바위 |
큰 굴목재길 중간(굴맥이깔크막 아래) 좌(남)측 절벽형태의 바위 |
호랑이가 이 바위위에 길을 지키고 앉아 악인은 지나가지 못하게 하였다는 전설 |
12 |
제친(자치)바구 |
큰 굴목재길 편백림쉼터 위(서) 약60m지점 좌(남)측 길에 있는 길이2m 폭1m 두께40cm가량의 납작한 바위 “南無阿彌陀佛”이 새겨져있음 |
“자친(자치)⇦제친⇦제끼다⇦젖히다” 옛날 선암사 대 불사에 장사가 시주 돌을 지고 오다 끝났다는 말을 듣고 실망하여 지게를 젖혀버리고 갔다는 전설 |
13 |
지름바구(위) |
큰 굴목재길 자치바구 위 개울(개울쉼터) 바닥의 바위 |
기름을 발라놓은 것처럼 미끄럽다는 의미에서 유래 |
14 |
나무아미타불 바위 |
선암사 괴배기재길 월출봉 능선으로부터 괴배기재방향으로 약80m지점 |
바위벼랑을 넘는 곳 비탈바위에 세로로 “南無阿彌陀佛”이 음각되어 있음 |
15 |
굴목재
(屈目峙) |
선암사에서(약2.3km) 송광사(지경터-보리밥집-)로 넘는 고개 |
작은굴목재와 구분하기위하여 큰굴목재라고 하며 주민들은 “굴맥이”로 부름 |
16 |
작은굴목재 |
큰굴목재로부터 정상방향 약500m 은적암(비석거리)길과 비로암길에서 장박골 입구로 넘나드는 고개 |
큰굴목재보다 통행이 적고 역사적 비중이 떨어지는 상대적인 이름 |
17 |
괴배기재 |
선암사북쪽 약1.5km, 신전마을로 넘나드는 고개 |
고양이가 엎드려있는 형세에서 유래 |
18 |
조계천
(曹溪泉) |
장군봉 북서쪽, 장박골몬당 동쪽 비탈 약50m아래 신전리방향 골짜기가 시작되는 곳 |
“대각국사중창건도”에 曹溪泉으로 표기, 참샘이라고도 함, 신전리에서는 마을 참샘의 모천으로 여김, 순천부사에게 이물을 매일 떠다 바쳤다는 이야기가 넌함 |
19 |
덤바구골 |
가장골(동쪽)과 무덤(소메골)골(서쪽) 사이의 골짜기(행복한 가족민박이 입구) |
덤바구(위)가 있는 골짜기 |
20 |
덤바구 |
덤바구골 상단에 있는 바위 |
무리지어 있는 바위의 방언 |
21 |
가장골 |
괴목마을 북쪽, 지계골 동쪽(노인당 뒤편) 골짜기 |
가장(假葬)터였음(승주향리지),가장은 시체를 임시로 묻거나 어린아이를 묻는 것을 뜻하나 이곳은 애(아)장터를 말함 |
22 |
작은지계골 |
큰지계골 우(남동)측, 큰지계골 입구로 가는 중간지점에서 우(북동)측을 향한 골짜기 |
큰지계골 옆의 작은 골짜기 |
23 |
큰지계골 |
선암사주차장(현 화장터)북방 괴배기재를 향해 들어가 작은지계골 입구를 지나 우(북동)측으로 형성된 커다란 골짜기 |
선암사의 관련된 목기제작 화장장비 등을 만들는 큰 마을이 있던 곳(현재는 터만 남음) 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함(혜운노장 96) |
24 |
풍영박골 |
큰지계골과 작은지계골 사이 |
- |
25 |
호랑이밥상 바위 |
작은지계골에서 큰지계골로 넘어가는 길 앞(삼거리) |
1800년대 말 호랑이가 나물 캐러간 괴목마을 김씨 부인을 물어가 바위위에서 뜯어먹다가 사람들이 쫓아가니 도망 간데서 유래 |
26 |
괴(갱)핏등 |
달뜨기에서 남(주차장)쪽으로 당산나무 뒤까지 가늘게 뻗어 내린 등성이 |
-명칭의 뜻 불명- 용머리라고도 하며 새주차장 건설로 목이 잘렸다고 말함 |
27 |
깽깽이골 |
선암사매표소 뒤편 골짜기 |
화장터(선암민박 위치)의 제실인 미타전이 있어 다비 전 천도 제를 지낼 때 악기를 두드리는 소리에서 유래 |
28 |
도치샘골 |
깽깽이골(매표소)과 옛 주차장사이의 달뜨기(우측)를 향한 골짜기 |
도치는 도끼의 사투리, 옛날 골짜기 중간에 샘이 있는 곳에서 마을사람이 도끼로 나무를 패다가 도끼가 박히자 빼려다가 도끼는 뽑고 벌어진 틈으로 손이 끼어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나무 째로 사람을 구해 내려오는데 그 순간에도 내도치 내도치하고 도끼를 찾은 데서 유래… |
29 |
토다리 |
옛 주차장의 입장권 개찰 문(현재 대형등산안내도 밑) 앞의 개울에 있던 다리 |
현재 포장도로 밑 배수관으로 바뀌기 전 개울에 놓였던 전통의 토다리 |
30 |
토다리골 |
토다리 북쪽(신 부도전 좌측) 월출봉 좌(서)측을 향한 골짜기 |
토다리가 골짜기의 입구 |
31 |
불당(골) |
선암사동부도전 뒤편 녹차체험관으로부터 뒤편골짜기 일대 |
불당마을이 있었음 (사찰인근에 집집마다 불당을 모셔놓고 점을 치는 것을 업으로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
32 |
동부도전 |
선암사의 입구 승선교 약100m전 우측 길옆 (현 녹차체험과 앞)
(본래의 위치는 일주문 앞 현 선각당(매점) 뒤였으나 1939년경 이전) |
고승들의 탑 북도 비를 모셔놓은 선암사 동쪽의 부도 밭, |
33 |
서부도전 |
일주문 앞 삼인당에서 대승암(굴목재) 방향으로 약70m 우측 비탈 |
동부도전과의 상대방위가 서쪽 위치 |
34 |
동암골 |
선암사 동방 북암(운수암) 우(남)측 의 골짜기 (독락당 터(축구장) 뒤편) |
동암(청량암)이 있는 골짜기 |
35 |
달뜨기 |
깽깽이골과 도치샘골 뒤편 작은 봉우리.(월출봉에서 마을(주차장)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다 약간 솟은 봉우리 |
월출봉 동편능선아래 위치한 괴목마을에서 월출봉과 같은 의미로 불림 |
36 |
월출봉
(月出峰) |
선암사 동방의 높은 봉우리, 주차장에서부터 승선교사이의 모든 줄기들이 이봉우리에서 갈라져 내려옴 |
선암사(대각국사중창건도)에서는 월출봉이라 하였으나 괴목마을 사람들은 달뜨기 상봉이라 하였음 |
37 |
냉골 |
선암사 터의 청룡(좌)줄기와 장군봉 앞 중앙줄기사이에 형성된 선암사 우측의 크고 깊은 골짜기, 승선교가 골짜기의 시발점 |
골짜기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험(음침)하여 냉골이라 부르게 되었을 것이라는 노인들의 추정 |
38 |
벌통밭골 |
헛지게골 좌(東)측 괴목 음달동네 뒤편의 큰 골짜기, 상가 입구 조계산장 뒤편이 입구 |
벌통을 많이 놓았음 |
39 |
헛지계골 |
벌통밭골 입구의 정면으로 완만하게 움푹 들어간 곳, 지계골 입구와 마주보는 위치 |
지계골과 마주보고 있는 골짜기 같지도 않은 골짜기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헛”은 일부명사나 말의 앞에 붙어 속이비거나 참이 아님으로 쓰이는 접두사 |
40 |
큰시양골
(큰생골) |
괴목 남서방 매표소 건너편 상가끝단(선암민박)에서 병정봉의 좌측을 향한 큰 골짜기 |
정확한 유래를 아는 사람은 없으나 이곳은 북 바라기의 추운 곳으로 겨울을 의미하는 시한(時寒)골이 소리 나는 데로 시양골 혹은 생골로 변한 것으로 추정 |
41 |
작은 시양골 |
큰 시양골 중간에서 좌(동)측으로 형성된 작은 골짜기 |
- |
42 |
(옛)화장터 |
시양골 입구(선암민박 위치)에 있었던 선암사의 다비장 |
1938~9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 |
43 |
동박터 |
큰 시양골 안쪽 막바지에 있는 평지 형태의 공간 |
산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6.25 직후에도 사람이 잠시 살았음 (씨앗이 나무를 하던 곳) |
44 |
수내골 |
구 주차장 좌(남)측 개울 건너편 병정봉에서 승선교를 향해 내려오는 줄기의 (남암부근을) 향한 골짜기 |
- |
45 |
웃켓돌
(웃께똘) |
순애골 위 끝단 우측, 대승암 좌(동)측 능선(선암사전경 촬영지) 너머 |
웃켓(께)은 어느 곳 위의 지점(위에)을 이를 때 쓰는 사투리, 수내골의 위를 뜻함 |
46 |
얼음덕골 |
큰시양골 상단 동박터(東)와 웃켓돌(西) 사이의 작은 골짜기 |
봄 늦게까지 얼음이 녹지 않고 있음 |
47 |
가마매(미)골 |
수내골 우(서)측 골짜기 작은 승선교지점이 입구 |
= |
48 |
남암골 |
선암사 남쪽 대승암 뒤편 골짜기 |
남암(대승암)이 있는 골짜기 |
49 |
남암재 |
병정봉 서편 선암사와 저동마을을 넘나드는 남암골 뒤편의 고갯마루 |
고개아래 가까이 남암(대승암)이 있어 붙여진 이름 |
50 |
큰 삼밭등 |
선암사 남쪽 대승암으로 가는 길 좌(동)측 경작지 일대 (일명 백련암 들) |
선암사에서 경작하던 큰 인삼밭.
(백련암 앞에 있는 들 -승주향리지-) |
51 |
작은 삼밭등 |
선암사 굴목재 길 입구 편백림(큰 묘목장) 앞 야생화단지 일대 |
큰 인삼밭 위의 작은 삼밭, 삼밭등은 두 인삼밭이 깃대봉에서 내려오는 줄기가 끝나는 잔등사이에 있으므로 일대를 부르는 이름 |
52 |
큰 묘목장 |
삼밭등(야생화단지) 편백림 |
1937~8년경 조림당시 부르던 이름 |
53 |
한계골 |
굴목재 등산길의 개울쉼터(지름바구) 남쪽 깃대봉을 향한 골짜기 |
- |
54 |
어디미골 |
한계골 서(굴맥이)쪽 굴목재 밑에서 남쪽으로 굴맥이 몬당을 향한 골짜기 |
어둠의 골 |
55 |
은적암 골 |
서부도전에서 작은굴맥이(작은굴목재)를 향한 골짜기 |
중간에 은적암이 있었음(터만 남음) |
56 |
선조암 골 |
선암사(녹차밭) 뒤편 골짜기 |
중간에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선조암 터가 있음 |
57 |
물골 |
향로암(터) 아래골짜기, 정상종주 등산로 좌(남)측 큰 골짜기 |
고로쇠물이 많이 나는 곳에서 유래하였다하나 확실치 않음 |
58 |
미리소 |
덤바구골 입구 앞 개천에 있는 소
(덕정가든 앞 다리 위) |
이름의 유래는 불명, 큰 보물이 미리소로 떨어짐, 동답과 죽림앞들까지 물을 댐 |
59 |
도가지소 |
선암사주차장에서 상가로 건너가는 다리 밑 (매점뒤편) |
도가지=독, 둥그렇고 깊은 형태가 커다란 독의 모양을 닮았다고 생각함 |
60 |
용소(龍沼) |
선암사 동부도(녹차체험관입구) 앞 |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에서 유래 |
61 |
뱀소 |
용소 바로 위, 목장승 밑 개천 |
용소보다 작다는 의미 |
62 |
무림보 |
괴목교 밑에 있는 보 |
물레방아를 돌렸음 |
63 |
청량폭포 |
선암사후문 뒤 북암(운수암) 앞 개천 |
청량(淸涼)은 맑고 시원(서늘)하다는 뜻이지만 불교에서는 문수보살을 의미하기도 함, 선암사에서 부르는 폭포이름 |
64 |
삼인당
(三印塘) |
선암사입구(일주문 앞) 타원형 연못, 못 안에 작은 인공 섬이 있음 |
제상무행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삼법인을 의미함, 도선국사가 선암사의 화기를 막기 위한 비보로 축조하였다는 전설 |
65 |
비로암
(毘盧庵) |
선암사서방 약 1.7km, 장군봉 남동쪽 고도 약550m 골짜기에 있는 암자 |
백제성왕6년(528) 일선군(경북선산)에서 온 아도화상이 비로암을 먼저세운다음 해천사(선암사)를 창건하였다는 전설 |
66 |
대각암(서암)
(大覺庵) |
선암사서방 약300m, 보물 제1117호 서부도(대각암부도)가 있음 |
대각국사(의천)가 창건하였다는 전설과 유품들이 선암사에 전해옴, 선암사의 4방위 암중의 하나 서(西) 암이라 칭함 |
67 |
대승암(남암)
(大乘庵) |
선암사남쪽 약700m 병정봉 기슭 |
선암사의 4방위 암자중의 하나 남(南) 암이라 칭함, 침명한성(枕溟翰醒)을 비롯한 5대 강백(고승)을 속출함(남암문도) |
68 |
운수암(북암)
(雲水庵) |
선암사북쪽 약150m |
선암사의 4방위 암자중의 하나, 북(北)암으로 칭함, 해붕 전령(海鵬展翎)을 비롯한 5대강백이 속출함(벽파문도) |
69 |
적멸암(터)
(寂滅庵) |
비로암뒤편 골짜기상단 장군봉 정상 남동 약80m 아래 바위절벽 앞 |
조계산(선암사)의 암자 터 중 가장 높은 곳,(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봉안하거나 불상이나 탱을 모시지 않음) |
70 |
행남절터
(香爐庵) |
조계산정상종주길상의 장군봉으로부터 동방 약200m 아래 암자터, 커다란 느티나무와 우물이 있음 |
향로암을 행남으로 발음함(향로암 터) |
71 |
청련암(동암)터 (靑蓮庵) |
선암사의 동쪽(북 암 우측) 동 암 골에 있는 암자(터) |
선암사 4방위 암중의 현존하지 않은 동쪽암자로 동암이라 칭함, 청(靑)은 오행의 방위 중 동방을 의미함 |
72 |
무성암(터)
(無性庵) |
정상종주길 대각암과 향로암 터 중간 달바위 쉼터로부터 약80m 위 |
무성암이 있었던 높은 석축위의 암자터 |
73 |
무성암 굴 |
무성암 터 좌(서)측 약50m 암벽하단에 있는 석굴 |
무성암 가까운 곳에 위치함으로 붙인 이름, 의병과 공비들의 은신처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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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도
(東浮屠) |
선암사 후문 중수비 뒤(서)편 약50m 지점 산줄기 끝단, (보물 제1185호) |
일명 무우전부도, 서부도 북부도 3부도중의 가장 동쪽에 있는 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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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도
(北浮屠) |
선암사(녹차밭) 뒤편 선조암골 중간에 있는 대형부도(보물 제1184호) |
일명 선조암부도, 탑주가 확실치 않으나 도선국사부도라는 설이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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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도
(西浮屠) |
대각암 후원에 있는 부도, 대각국사부도로 추정하는 보물 제1117호 |
선암사 서쪽암자(서 암)에 있는 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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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암 기와굴 |
선암사와 남 암 중간지점의 백련암들 끝단 뒤(남)편 산비탈 |
선암사가 운영한 기와 가마터, 우(북)측의 큰 골짜기 입구에 백련암이 있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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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어화석 |
선암사 옛 주차장과 동부도전사이 도로우측 길옆 바위의 물고기 화석과 같은 모양 |
옛날 망나니스님이 낚시질을 하다 큰스님에게 들키자 놀라 당겼는데 때마침 물린 잉어가 바위에 부딪혀 화석이 되어 금살생의 교훈으로 남았다는 전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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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골 |
병정봉 좌측 잘록 허리 진 시양골의 상단 끝부분 |
호랑이가 지나다니는 통로이므로 이곳에 호랑이를 잡기위한 함정(큰 위장 구덩이)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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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혜운노장(장규선) 지허스님, 괴목마을: 유천년(87) 최선용(85) 徐奉根(82) 지막기(63)씨 등 여러분 (2007~2008) |
첫댓글 이렇게 많은 지명들을....
정말 대단하십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