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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4-6)
오늘 설교 제목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합니다.
“성도님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집사님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권사님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장로님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학생들과 청년들이 나와 있는데, 또 온라인을 통해서 예배를 드리는 분들도 있는데, “학생은, 청년은, 성도님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지 않나요?”
기분 나쁜 질문입니다.
‘아니 목사님, 나를 뭐로 보고 설교 제목을 그렇게 정하셨어요? 나 우상숭배하고 있지 않아요. 나 하나님을 숭배하고 있어요!’ 하실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 설교를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상숭배를 아주 강하게, 아주 강하게 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상이라는 말이 180번 나오는데 한결같이 우상숭배를 꾸짖고, 우상숭배를 하면 엄한 벌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상’이라는 말이 제일 처음으로 나오는 곳이 바로 오늘 본문인데 다시 한 번 보세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그 내용과 어조가 얼마나 강합니까?
우상숭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모세가 지금 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가 있습니다.
모세가 빨리 내려오지 않으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에게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아론은 백성들을 보고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가져오라고 해서 그것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이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하고서 그 앞에서 번제를 드리고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출 32:1-6)
모세는 산에 올라가 우상숭배를 금하는 계명이 포함된 십계명을 받고 있는데 백성들은 산밑에서 우상숭배의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이없는 일입니까?
홍해가 갈라지고 그 가운데를 걸어 건너고, 애굽의 병거들과 기병들이 몰살하는 것을 본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그들의 귓전에 홍해의 물결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을 텐데, 이렇게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만들어 거기에 제사를 드리고 뛰놀았습니다.
배은망덕입니다.
아론은 모세의 바로 옆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빠짐없이, 생생하게 본 사람입니다.
모세의 대변인입니다.
아론은 마땅히 백성들에게, ‘이래서는 안 됩니다. 기다립시다. 모세는 틀림없이 내려올 것입니다. 무엇인가 큰 가르침을 안고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아론이 반대로 송아지 우상을 만드는 일을 주도했습니다.
지금도 우상숭배는 이렇게 어이없는 모습으로, 그래서는 안 될 사람들에 의해 우라 가까이에서, 우리 가운데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숭배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처음에는 그들을 진멸하려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가 없었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우상숭배를 싫어하십니다.
우상숭배의 결과는 이렇게 무섭습니다.
모세는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출 32:12)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지요.(출 31:14)
구약에 우상이라는 말이 141번 나옵니다.
구약 시대에 우상숭배를 막는 것은 정말 급하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재일 중요한 과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에 우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이전의 기록인 모세5경에 우상숭배를 경계하는 말씀들이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주변 국가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가나안이나 그 주변 국가들은 이스라엘보다 잘 살았습니다,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청동기 시대인데 그들은 철기 시대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섬기는 우상에 현혹되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우상숭배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피맺히게 외쳤습니다.
구약 시대의 우상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었습니다.
우선 금송아지, 눈에 잘 보였습니다.
성경에 ‘아세라 상’이라는 말이 수십 군데에 나옵니다.(출 34:13, 신 12:3, 16:21, 삿 6:25 왕상 14:15, 14:23 외)
아세라는 여신입니다.
바알과 짝을 이루어 나오는 일이 많지요.
사람들은 그 아세라의 상을 만들어 거기에 절했습니다.
‘아세라 목상’이라는 말도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신 7:5 왕하 13:6외) 아세라 상은 나무로 만든 것 같습니다.
사시기 6장을 보면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들과 싸우러 나갈 때 바알의 제단을 헐고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린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눈에 잘 보인다는 것이 우상숭배에 빠지기 쉬운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잘 믿고 따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큰 힘을 가진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모두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것이 기독교의 특징입니다.
전에 한 번 말씀 드렸는데요, 기독교에는 크게 세 갈래가 있습니다.
천주교가 있고, 정교회가 있고, 그리고 저희 개신교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개신교가 특히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저희 교회 옆에 천주교가 있고, 건너편 골목 속에 러시아정교회가 있는데, 천주교는 마리아 상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고, 정교회는 이콘(icon) 이라고 부르는 성화들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것이 개신교의 특징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개신교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상징, 심볼은 상징에서 끝나야지 그것이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약에는 우상이란 말이 39번 나옵니다.
신약에서도 우상숭배를 엄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신약에는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문제가 여러 군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지도자들, 사도들이 예수를 믿게 된 이방인들의 문제를 가지고 회의를 열었는데요, 이것을 ‘예루살렘 공회의’라고 합니다.
그 이야기가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회의의 결론이 사도행전 15장 18절과 2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던 음식을 먹어도 좋으냐, 먹지 말아야 하는 문제는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던 큰 문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고사를 지낸 집에서 동네에 떡을 돌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교인 가정에서는 그 떡을 먹어야 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했지요.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8장 전부를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주는데 사용했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우상 문제는 심각한 것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바울이 아덴, 우리가 잘 아는 철학의 도시 아테네에 잠시 머물었는데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격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아레오바고 가운데에서 외쳤지요.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성지순례를 하던 중에 아레오바고 광장에 들린 일이 있었는데 그 한 가운데 가만히 서 있으니까 바울 사도의 이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 나오는 우상이라는 말들을 잘 살펴보면 우상에 대한 해석이 넓어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을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라는 말씀이 「공동번역성서」에는 ”우상 숭배나 다름없는 탐욕 따위의 욕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재물, 탐욕, 음행 등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모두 우상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5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원래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는 비슷한 내용이 많아서 ‘쌍둥이 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에베소서 5장 5절,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탐하는 자를 우상 숭배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살피면서 ‘아, 신약성경은 우상에 대해 더욱 폭 넓은 교훈을 주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상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포함됩니다.
아니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 문제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확신, 충성, 헌신을 창조주 하나님께만 바쳐야 합니다.
그것을 피조물에게 바치려고 하면 그 피조물이 우상이 됩니다.
우리는 지도자에게 충성해야 하고, 나라에 헌신해야 하지만, 최고의 확신, 최고의 충성, 최고의 헌신은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우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당신의 마음이 매달리고 의지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그것이 당신의 하나님이다. 오직 마음의 신뢰와 믿음이 하나님도 만들고 우상도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 대신 다른 그 무엇에 마음이 매달리고 의지하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티모시 켈러(Timothy J. Keller, 팀 켈러)라는, 현대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 분의 책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출판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여럿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습니다.
티모시 켈러 목사님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 우리의 마음과 공상의 세계를 하나님보다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 하나님이 줄 수 있는 것을 주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 드린 것을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우상의 현대적 의미, 또 현재적 의미는 ‘하나님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설교 제목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님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말을 바꾸면 “성도님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없습니까?”, 이런 질문이 됩니다.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국어사전에서 “우상”이라는 말을 찾아보았습니다.
전에는 이 출판사, 저 출판사에서 국어사전을 냈는데 1990년에 국립국어원이라는 국가가관이 생기면서 거기에서 펴내는 「표준국어대사전」이 이름 그대로 표준이 되어 있습니다.
보니까 “우상: ① 맹목적인 인기를 끌거나 숭배되는 대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 인위적으로 만들어 신처럼 떠받드는 신의 형상 ③ 나무, 돌, 쇠붙이, 흙 따위로 만든 사람이나 신의 형상”라고 하였습니다.
잘 풀이되어 있는데요, 거기에 ‘④ (기독교의 입장에서) 하나님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것“ 이것을 하나 더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두 달 전에 십계명을 주제로 설교를 시작하면서 십계명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계명,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신명기 5장 3절의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라는 말씀을 강조했습니다.
설교 제목도 “오늘 우리와 세우신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너 하나님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없느냐?’ 묻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면 불행해집니다.
개인도 불행해지고, 나라도 불행해집니다.
우리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님을 잘 압니다.
이승만 박사님은 독립운동가였고, 자유민주주의의 이념 위에 이 나라를 세운 분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정동제일감리교회와 관계가 깊은 분입니다.
장로님이셨지요.
저기 삼각맨션 앞길로 쭉 올라가면 지금은 그 끝이 막혀 있지만 예전에는 막히지 않고 군 부대 안으로 이어졌는데 그 안에 육군중앙교회가 있었습니다.
이승만 박사께서 이 앞길로 해서 그 교회에 가시는 것을 여러 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나이 들어 권력을 우상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하는 고집이 우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인터넷에서 ‘우상’이라는 항목들을 검색해 보았는데 2년 전에 “우상”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더군요.
한석규와 설경구가 주연을 맡은 영화인데 설경구가 한 대사 가운데 “한 개인이 이루고 싶은 꿈이나 신념이 맹목적으로 바뀌게 되면 그것 또한 우상이 아닌가?”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박사가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4.19가 일어나고, 많은 학생들이 피를 흘리고, 이 박사님은 하와이로 망명을 하고, 그 곳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지요.
우상숭배를 하면 자손들도 불행해집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세요.
우상숭배와 관련해서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5절).
나라도 불행해집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북한입니다.
북한의 김일성 숭배, 우상숭배도 그런 우상숭배가 없습니다.
저는 북한선교를 위해 「로동신문」을 비롯해서 북한의 자료들을 많이 보고 있는데, 북한의 김일성 숭배는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세계 최빈국(最貧國)의 하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라는 불명예입니다.
최근에는 국제사회의 제재, 코로나 방지를 위한 국경봉쇄, 자연재해 등으로 염려스러운 소식들이 많이 들리고 있습니다.
일본도 문제이지요.
일본은 신사참배가 민간신앙처럼 되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그것을 우리나라에도 강요했습니다.
특히 기독교에 강하게 요구해서 이 문제 때문에 한국교회가 부끄러운 모습도 보였고, 또 순교자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용산교회 위에 예전에 일본 절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희들이 어렸을 때 ‘백룡사’라고 했는데, 나중에 어느 기록을 보니까 ‘백련사’(白蓮寺)라고 나오더군요.
‘백련’은 흰 연꽃을 말합니다.
지금 천주교 성당은 그 절의 부속건물이 있던 자리입니다.
‘그것이 혹시 신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교회로 올라오는 길의 반이 긴 계단이었습니다.
일본의 신사들이 대개 그런 계단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인데 조사를 해 보니까 아니더군요.
1940년 당시 한국에 601개의 신사가 있었는데 서울에는 9개가 있었습니다..
남산에 제일 큰 조선신궁 있었고 용산에 세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후암동에, 하나는 신계동에, 하나는 이태원동에 있었습니다.
신사참배는 일본의 국가적인 행사 같은 성격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신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야스쿠니(靖國/靖国) 신사’인데 일본의 고위 정치인들이 이 신사에 참배해서 말썽이 일어나곤 하는 것이 종종 보도됩니다.
야스쿠니를 한자로는 평안할 정, 나라 국, 정국신사(靖國神社)라고 적는데 일본은 나라의 평안을 위해 야스쿠니 참배를 이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사참배가 일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싶습니다.
아까 우상이라는 말이 신약에 39번 나온다고 했는데 그 가운데 13번, 정확하게 3분의 1이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15장 2절과 3절을 보면 우상을 이긴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상을 이기면 천국에 갑니다.
천국이 어떤 곳인가,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담임목사님이 지난 주일에 참 좋은 말씀, 분명한 말씀을 해 주셨지요.
우상숭배를 하면 만나게 되는 제일 불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곧 지옥에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20절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은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황불 못,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 안에 있는 사람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지난 주일에 담임목사님이 ‘요한계시록은 천문견문록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요한계시록은 지옥견문록이기도 합니다.
신구약 성경의 거의 끝부분인 요한계시록 22장 15절은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결과는 이렇게 무섭습니다.
제가 오늘 오후에는 강남의 어느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게 되어 있는데 “코로나 사태는 사람들이 인간의 능력을 우상시하다가 만난 환난이 아닌가?‘ 하는 내용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원래 다른 설교를 준비했는데, 코로나 감염자가 3천 명을 넘어서고 사태가 더 심각해져서 급하게 바꿨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며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상을 만들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3,500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어진 계명이 아닙니다.
우상이 많던 나라에 둘러싸여 있는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어진 계명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을 마음에 두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제일 높은 곳에, 제일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상을 섬기자 말라는 계명을 잘 지키는 길입니다.
그와 같이 하여 나도 복을 받고, 이 나라도 복을 맏고, 자녀들도 복을 받고, 후손들도 복을 받게 하는 용산의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고 감하게 말씀하고 계시는 주님,
저희가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섭리하시며 주관하시는 거룩하시고 자비하시며 오직 한 분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보이는 우상에게 절하려는 유혹을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더 존귀하게 여기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이 세계가, 사랑하는 이 나라가 권력의 우상, 돈의 우상, 지식의 우상, 쾌락의 우상을 숭배하고 따르는 일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