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히브리서 11:23~31)
오늘은 5월의 두 번째 주일인데, 우리나라에는 5월에 가정과 관계있는 날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지난 5일은 어린이날이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원래는 어머니날이었는데 1973년에 어버이날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다음 주일 월요일, 16일은 성년의 날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토요일,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이렇게 가정과 관계있는 날들이 여럿 들어 있어서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릅니다.
찬송가에는 가정을 주제로 한 찬송이 555장에서 559장까지, 다섯 장 들어있습니다.
그 가사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557장은 “에덴의 동산처럼 복되어라 우리 가정”이라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558장은 매 절이 가정을 예찬하는 말로 시작됩니다.
1절은 “미더워라 주의 가정”,
2절은 “평화롭다 주의 가정”,
3절은 “즐거워라 주의 가정”,
4절은 “향기롭다 주의 가정”이라는 말로 시작되지요..
믿는 사람들은 가정이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기도하며 힘써야 합니다.
오늘 설교 후에 그 가운데에 하나인 559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를 부를 것입니다.
이 찬송을 작사한 분은 전영택 목사님입니다.
감리교 목사님이신데 원래는 소설가로서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개척자 가운데 한 분입니다.
작곡한 분은 구두회 장로님입니다.
감리교 장로님으로, 반포동에 있는, 남산감리교회에 가면 이 분의 찬송가 기념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저는 559장 찬송을 듣거나 부를 때마다 감동을 받습니다.
감리교 목사님이 작사를 하고, 감리교 장로님이 작곡을 했기 때문에 감동을 받는 것일까요?
그 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이 찬송을 작사한 전영택 목사님의 따님이 간호학 교수이셨는데 그 분으로부터 “그 찬송은 우리 아버지가 우리 집의 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입니다.”라는 말을 직접 들은 일이 있습니다.
전영택 목사님의 외손자가 저와 나이가 비슷한데 정동교회 원로장로입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교회 일로 가끔 만났습니다.
그 분에게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가 장로님 집안의 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이라고 하던데 맞아요?” 하니까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정말 그대로였어요” 하시더군요.
꾸미지 않고 사실 그대로 이고 진심이 담겨 있는 글이나 노래가 사람을 감동시키는 법입니다.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집 즐거운 동산이라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 하루
우리들이 이루기 위해 기도하며 힘써야 할 가정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오늘 “어버이께 효도해야 합니다”라는 주제로 설교하실 것입니다.
담임목사님께서 편찮으셔서 오늘 제가 대신 설교하고 있는 데요, 두 가지 이유로 설교 준비하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제가 부모님께 효도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할 때 어버이주일 설교하는 것을 참 힘들어 했습니다.
목사님들은 자기가 그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설교해야 할 때는 꿍꿍 앓습니다.
그래서 ‘담임목사님, 편찮으시더라도 다른 주일에 편찮으실 일이지 왜 어버이주일에 편찬으로셔서 나를 또 힘들게 하시나?’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효도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죄송스럽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 것을 조금이라도 씻기 위해 제가 마음을 먹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를 하지 못했는데 돌아가신 다음에라도 효도를 해야 하겠다.“, 돌아가신 다음에 효도를 어떻게 하느냐 물으실 것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고향이 함경도이십니다.
해방 한 해 전인 1944년 가을에 서울에 오셔서 이 동네에 정착하셨는데 고향을 매우 그리워하셨습니다.
40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서울 근처 공원묘지에 모셨습니다.
’아버지, 통일이 되면 제가 아버지 묘소를 아버지께서 그리워하시던 고향으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북한이 심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수백만이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북한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렀지요.
그 때 남한에서는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 ‘아, 내가 드디어 효도를 할 수 있게 되나 보다.’ 하면서 준비를 좀 하기도 했습니다.
탈북민 가운데 아버지 고향에서 온 탈북민을 만나면 그곳 형편을 열심히 묻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뒤늦은 효도를 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통일이 빨리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젊은 분들, 부모님에게 효도를 잘 하셔서 저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이 교회에 나가겠다고 하면 반대하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번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제사 문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제사 지나지 않는다며? 나는 죽은 다음에 제사를 받고 싶다. 교회 나가지 마!”
어떤 분이 어렵게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부모님께 잘 해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산 제사를 드립니다.”했습니다.
부모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래? 죽은 다음에 받는 제사보다 산 제사가 더 좋구나. 교회 잘 나가거라” 하셨답니다.
젊은 자녀들, 산 제사를 열심히 드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설교 준비하기 힘들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저희 교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젊은 세대보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세대, 나이 많은 분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훨씬 더 많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용산교회에 젊은 세대가 차고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기 바랍니다.
설교는 듣는 사람이 중요한데 효도를 하라고 허공에 대고 설교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할까?’ 고민했습니다.
‘효도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좋은 부모가 되자는 것도 강조하자’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모범을 보인 좋은 부모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서 모범을 보인 부모, 여러분 누구를 드시겠습니끼?
저는 모세의 부모를 찾아냈습니다.
왜 모세의 부모를 모범적인 부모로 택했을까요?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히브리서 11장을 ‘믿음 장’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위인들이 이십여 명 등장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믿음으로 아무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이런 일을 했다,”
“믿음으로 에녹은 이런 일을 했다”,
“믿음으로 노아는 이런 일을 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이런 일을 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본인들의 이야기인데 예외가 꼭 하나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모세의 부모입니다.
23절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한글 성경 가운데 성경을 쉽게 풀어 번역한 『표준 새번역성경』이 있는데 『표준새번역성경』에는 23절이 “모세가 태어났을 때, 믿음으로 그 부모는 석 달 동안 아기를 숨겼습니다. 그들은 아기가 잘 생긴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아무개는” 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믿음으로 그 부모는”인데 여기에서 따왔습니다.
그 때 애굽 땅에는 아들은 죽이고 딸은 살려두라는 명령이 선포되어 있었습니다.
이 명령을 어기는 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모세의 부모는 이 명령을 어기고 석 달 동안 아기를 숨겼습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에 담아 나일 강가에 두었습니다.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서서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그의 부모가 ‘너 가서 동생을 지켜보아라’ 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의 일,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에 왔다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았고, 그 안에 든 아기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고,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했고, 모세가 바로의 딸의 아들이 되었고, 이런 일들을 우리는 출애굽기 2장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에 모세의 부모가 임금의 명령이 두려워서 명령대로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모세에 대한 일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위인들에 대한 기록 가운데 모세의 이야기가 분량이 제일 많을 것입니다.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닌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하여 참았습니다.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택하시고 함께 하셔서 할 수 있었던 일이지만, 모세의 부모가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모세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부모의 믿음은 이렇게 큰 일을 이룹니다.
모세의 부모가 믿음의 부모였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 주는 일들이 또 있습니다.
모세는 “나는 지금 노예로서 고난 받고 있는 히브리 사람이다”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인 것을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애굽 왕실에서 애굼의 발달한 학문을 배우며 자랐으면 애굽에 동화되기가 쉬웠습니다.
교포의 자녀들, 살고 있는 나라에서 자라고 교육 받고, 생활하다 보면 그 나라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말, 한국 풍습 거의 잊어버립니다.
그런 자녀들을 1.5세라고 부르는데 동화가 많이 되면 2세라고 하지요.
그런데 모세는 어떻게 해서 자기가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수 있었을까?
출애굽기 2장을 보면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모세를 건진 바로의 딸에게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출 2:7) 했고 바로의 딸이 이를 받아들여 모세는 어머니의 집에서 젖을 먹으며 자라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젖을 먹이면서 아들을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이가 말을 알아듣게 되었을 때 ‘너는 애굼 사람이 아니다. 너는 히브리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다’ 일렀을 것이다.
전에 한 번 말씀드렸는데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까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것을 쉐마 교리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는데 모세의 부모는 그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나는 히브리 민족’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기독교교육 학자들은 “어머니 품의 교육이 애굽 왕실의 교육을 이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믿음의 부모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모세에게는 누나와 형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누나와 형도 이스라엘을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미리암, 성경은 미리암을 선지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19절에서 21절까지를 보면.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하였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리암이 앞장서니까 모든 여인이 따라 나왔습니다.
지도력이 대단한 것을 볼 수 잇습니다.
나중에 모세를 비난하다가 나병에 걸린 흠결이 있기는 하지만 미리암이 출애굽의 뛰어난 여성 지도자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성경사전을 찾아보니까 “미리암, 이스라엘의 최초의 여선지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형남 아론도 있습니다.
동생 모세의 대변인으로, 동역자로, 고와 낙을 함께 했습니다.
또 최초의 대제사장으로 많은 일을 합니다.
자녀의 이름을 ‘이론’이라고 지은 부모님을 여럿 보았습니다.
잘 알려진 신학자 가운데도 이런 이름을 가진 분이 있습니다.
박아론이라는 가수가 있는데요, 아세요?
이 가수도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분 같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에 “사자와 어린 양” “주의 나라가 이 곳에” 이런 것들이 있고 프로필을 보니까 개신교로 되어 있더군요.
하나님은 믿음의 부모에게 믿음의 자녀를 주십니다.
성경에서 궁금하게 여겨지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의 딸입니다.
바로의 딸은 갈대 상자에 들어있는 아기가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출애굽기 2장 6절을 보면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버려야 합니다.
히브리 아기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지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는 것을 공주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명령을 내린 사람은 바로 자기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바로의 달은 데려다 키웠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마음이 착해서였을까?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가 아름다운 아이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래서였을까?
출애굽기 2장 6절을 보면 갈대 상자를 열고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우는 것을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였을까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제일 정확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 부모의 믿음을 보시고 바로의 딸에게 그런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의 딸은 모세를 건져냈을 뿐만 아니라 유모를 구해 젖을 먹이게 했고, 자란 다음에는 데려다가 아들로 삼았습니다.
모세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도 바로의 딸이었지요.
모세라는 이름의 뜻은 “건져냄”입니다.
이름 그대로 모세는 자기 민족을 노예생활의 고통에서 건져내는 일을 했습니다.
저는 이 바로의 딸이 누구인지 참 궁금합니다.
여러 기록을 찾아보았는데, 그 이름이 어떤 기록에는 터무디스(Thermuthis)라고 나오고, 어떤 기록에는 파리아(Pharia)라고 나오고, 어떤 기록에는 머르히스(Merrhis)라고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믿음으로 행동하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모세의 부모를 도우셨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우리가 열의 노력을 하면 성령님도 열을 도우시고, 다섯의 노력을 하면 다섯을 도우시고,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성령님도 가만히 계시는 것을 많이 체험하는데요, 모세의 부모는 열의 노력을 했습니다.
젊은 성도 여러분, 효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효도, 중요합니다.
인천에서 목회하시던 목사님 한 분이 은퇴한 다음에 성산효도대학원대학교를 세웠습니다.
성산은 그 목사님의 호입니다.
1998년에 개교하였는데, 세계 최초로 효학을 가르치는 대학교로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2006년에 세계 최초로 효학(孝學) 박사를 배출했다고 합니다.
그 기사를 보고 ‘아, 효학 박사도 있구나’ 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 가운데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군인으로 오래 복무한 친구가 있습니다.
예수 잘 믿는 친구입니다.
이 옆에 있는 국방부에서도 근무했었습니다.
전역을 한 다음에 울산에 효사관학교를 만들었습니다.
학위를 주는 정식교육기관은 아니고 사단법인체입니다.
동창들이 이 친구를 만나면 ‘너 참 보람 있는 일 한다’ 하며 부러워합니다.
어버이인 성도 여러분, 좋은 부모, 믿음의 부모가 되기 윌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맏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기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이렇게 기록되는 것,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여러분, 모세 부모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경 퀴즈 대회 할 때 종종 나오는 문제가 “모세 아버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어머니의 이름은 무엇입니까?”입니다.
감리교회에서는 신학교를 졸업한 전도사님들이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서는 여러 해 과정심사, 자격심사,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예전에는 그 심사가 더 엄격했습니다.
장로님들도 심사를 받아야 하지요..
목사 안수 과정 심사를 할 때 좀 심술궂은 심사위원들이 이 질문을 하는 일이 있습니다.
“모세 부모의 이름을 말하시오”
감리교 목사님과 장로님들은 이렇게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속되게 표현을 하면 어깨에 힘을 줍니다.
모세의 아버지는 아므람입니다.
“고상한 백성”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어머니는 요게벳입니다.
“여호와는 영광이시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이들의 이름은 출애굽기 6장 20절을 비롯해서 성경 여러 군데 나오는데, 민수기 26장 59절에는 “아므람의 처의 이름은 요게벳이니 레위의 딸이요 애굽에서 레위에게서 난 자라 그가 아므람에게서 아론과 모세와 그의 누이 미리암을 낳았고”, 이렇게 자세하게 나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간단하게 하느라고 “그 부모”라고 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찬송가 579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을 잘 아실 것입니다.
어머니의 넓은 사랑 귀하고도 귀하다
그 사랑이 언제든지 나를 감싸줍니다
내가 울 때 어머니는 주께 기도 드리고
내가 기뻐 웃을 때에 찬송 부르십니다.
참 감동적인 찬송인데요, 작사헌 분은 주요한 선생입니다.
시인으로 아까 말씀드린 전영택 목사님과 더불어 우리나라 현대문학을 개척한 분입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을 보면 ‘아, 이 분 기독교인이겠구나!’ 짐작되는데 아버지가 목사님이셨습니다.
주요한이 첫째 아들이고 둘째는 이름은 요섭이라고 지었습니다.
주요한 선생님의 회고에 따르면 579장은 자기 어며니의 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이 찬송가의 4절 가사는 이렇지죠.
온유하고 겸손하며 올바르고 굳세게
어머니의 듯 받들어 보람있게 살리라
풍파 많은 세상에서 선한 싸움 싸우다
생명시내 흐르는 곳 길이 함께 살리라
믿음의 부모는 자녀들이 이런 결심을 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좋은 믿음의 부모들이 되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말슴을 맺습니다.
어버이 주일입니다.
자녀들의 효도와 부모님들의 믿음이 아름다운 이중주를 이루는 귀한 주일이 되기를 주남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저희는 지금 어버이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의 절기에 따라서, 행사표에 따라서 그냥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다시 망츰에 새기는 주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자녀를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도(엡 6:4) 기억하며 지키기에 힘쓰게 하옵소서.
모세의 부모를 본받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의 가정이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진 가정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