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는 날개가 있지만 절대 날아가지 않고, 내 옆에만 앉은 듯 서서, 결단코 모서리 만들지 않고 둥글게만 돌아가는, 바람난 아내다. 미풍이면 미풍대로, 강풍이면 강풍대로, 약풍이면 약풍대로, 고정이면 고정대로, 회전이면 회전대로, 연속이면 연속대로, 시간이면 시간대로 … 선풍기는 그렇게만 바람난다. 나는 이렇게 바람난 여자를 참 사랑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우리 친구란 놈이, 시도 가...끔 쓰는 분필쟁이 친구란 놈이 술 한 병 들고 집에 오더니 덥지도 않은데 덥다며 날 위해 바람난 선풍기를 발로 밟아 지맘대로 끄곤 에어컨 켜잔다. 이건 분명 겁탈이고 능멸이다. 개자식이다. 후레자식이다. 백정이다. 가지고 온 술병 들고 나와, 정읍집에 가서 왕소금에 쐬주나 한 잔 하자 했다. 그랬더니 … ? 그는 들고 온 술병, 깨고 갔다.
사랑하는 친구야, 선풍기 발로 밟아 끄지 마라
차라리 네모진 에어컨을 발로 짓밟아 끄라
사랑하는 친구야, 바람난 아내 버리지 마라
오로지 네 둘레만 지쳐 맴돌다 바람났잖냐
작품출처 : 시인 박성구 <선풍기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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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순인데 무덥기가 찜통같은 학교의 교실. 참을성이 부족한 아이들은 선풍기 바람만으로는 더워서 도저히 공부 못하겠다며 에어컨을 틀어달라 난리입니다. 어떤 녀석은 교장실로 찾아와서 하소연에 읍소를 연발합니다. 전력난, 에너지 절약 들먹이며 조금 더 견디어보자 말해보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그게 어디 통합니까?! 코가 쑤욱 빠져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 안타까이 바라보다가 문득 시 한편이 떠올랐습니다.-날개가 있지만 날아가지 않는 선풍기 같은 아내의 사랑, 우리 곁에 있어 오늘 이만큼이라도 행복한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