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③
* 신라의 신분제도
신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돌무지 덧널 무덤은 주로 마립간 시대에 만들어진 무덤으로 지상이나 지하에 시신과 껴묻거리를 넣은 나무덧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냇돌을 쌓은 다음에 흙으로 덮었다. 도굴이 어려워 많은 껴묻 거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천마도가 출토된 천마총과 출(出)자형 금관 출토로 유명한 황남대총, 서봉총, 금관총 등이 있다.
신라는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왕권을 강화하고, 독특한 신분 제도인 골품제를 마련하여 통치 기반을 정비해 나갔다. 골품제는 각 지방의 부족장들을 그 세력의 크기에 따라 등급을 두어 중앙 귀족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성립하였다. 왕족은 성골, 진골에 속하고, 일반 귀족들은 6두품 이하의 각 두품에 속하였다. 신라인의 사회 활동과 정치 활동은 골품에 따라 결정될 정도로 엄격었다.
① 백제는 웅진 시기 중흥을 도모한 무령왕(501~523)은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다.
② 부여의 풍속에는 영고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다. 이것은 수렵 사회의 전통을 보여 주는 것으로 12월에 열렸다.
④ 고구려는 고국천왕(179~197) 때 국상 을파소의 건의로 먹을거리가 모자란 봄에 농민들에게 곡식을 빌려 주었다가 가을에 추수한 것으로 갚게 하는(춘대추납) 진대법을 실시하였다(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