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폼페이)로 가는 길 두시간 반이 걸리는 길에 검투사 양성소가 있었다는 카푸아도 지난다.
나폴리 인근의 관광지...폼페이, 카프리섬 소렌토, 포지타노, 아말피 등
폼페이에 도착한 시간이 9시 정도로 버스에서 내리니 2006년도에 와서 버스를 내리고 점심을 먹었던 곳이라서
눈에 익은 곳이다.
우리 앞에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려서 매표소로 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디에 가나 한국인 관광객
들이 많이 보이는 것을 보아 한국 사람들이 성격이 급해서 제일 먼저 해외여행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매표소 입구로 들어가는 길도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오르막과 매표소 앞에 있는 과일가게도 그대로이다. 그래
도 과일가게 주인들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입구 쪽으로 간다.
산의 정상이 날아간 베수비오화산....79년 이후에도 몇 번의 화산분출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활화산으로 활동을 하고있다고
79년의 폭발로 폼페이를 비롯한 몇 개의 도시가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관광지 입구에 도착을 하니 관광버스도 보이고 관광객들도 보이는데... 대부분이 한국 관광객이다.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구 주변
이 언더길을 걸어서 올라가고..입구 정면에는 과일가게와 기념품 가게들이 그 때 그모습 그대로 있다.
들어가는 입구....들어가는 입구의 이름이 포르타 마리나인데 ...아마도 이곳에 예전에는 바다의 항구였었기 때문인 듯
검은 안경을 쓴 분이 현지 가이드로 정말 차분하게 설명을 잘 하는 분이다.
입장을 하기 위해서 대기하면서 본 폼페이...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이 들어가는 길이다고 문 안으로 들어간다.
문이 두개가 보이는데 큰 문은 마차 작은 문은 사람이 다니는 곳이라고 ...인도와 차도인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폼페이라는 이름을 제일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소설이나 영화일 것
으로 폼페이 최후의 날(영어: The Last Days of Pompeii)은 에드워드 불워 리턴 이 1834년에 발표한 역사 소설이
다.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은 폼페이에서 발굴된 연인들이라는 화석 때문이라고...
폼페이에서 발굴된 인간 화석...연인들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남자들이라고....
간단한 내용은 어릴 적 로마 군에 의해 가족을 모두 잃은 뒤 노예 검투사가 된 마일로는 폼페이 영주의 딸 카시아
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풍요를 기원하는 비날리아 축제의 대규모 검투 경기에 참여한 마일로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코르부스를 발견한다. 로마의 상원 의원이 된 코르부스는 카시아와 정략 결혼을 계획하게 된다. 마일
로는 부모의 복수와 자신의 연인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건 최후의 검투에 나서게 된다. 그때 갑자기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을 하게 되고 쏟아지는 뜨거운 용암과 화산재에 폼페이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지만 그 가운데 연인
과 함께 탈출을 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항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쏟아져 내리는 화산재 속에 묻히게 된다.
2014년도에 개봉된 영화...영화가 몇 번 만들어졌으며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이다.
폼페이는 로마보다 먼저 만들어진 도시로 그리스의 지배를 받았다고 하며 폭발이 일어나던 시기에 2만 명 정도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AD 79년 8월 4일 오후 1시에 폭발이 일어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피를 하였으나 2천명
정도가 대피를 하지 못하고 도시와 함께 매몰되었다고 한다.
이때의 참상을 기록한 내용이 있는데 나폴리 서쪽 지역에 있었던 작가 플리니우스가 역사가 타키투스에게 보낸 2
통의 편지에 그 당시의 대참사가 잘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영화의 한 장면...이런 모습으로 폭발했을 것이다. 오전에 징조가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피하였고 몰랐거
나 사정이 있었던 사람들 2천명 정도가 매몰되었다고 한다. 그 때 로마의 나폴리의 해군총독이었던 플리니우스
가 본 광경이 이런 광경이었을 것이다.
역사속에 뭍혀져 있던 폼페이가 세상에 발견되게 된 것은 1549년 수도공사를 하다가 발견이 되었다고 하며 본격
적인 발굴은 18 세기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하며 아직도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화산재 속에 묻혀있었기 때문에 건물 등 유적과 유물들의 보존상태는 양호하다고 하나 관광객들이 보고 있는 사
람들의 모습은 발굴 도중에 비어진 구멍이 사람의 모습처럼 생겨서 그곳에 석고를 부어서 만든 석고상으로 실제
로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그 안에 뼈 같은 것도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당시 열기와 가스 등으로 고통받으며 죽
어갔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고 있어서 보고 있으면 그 고통이 같이 느껴지는 것 같다.
유적지로 들어가는 성문.....이 문을 통과해야 주거지로 들어갈 수 있다. 사람이 다니는 문과 마차가 다니는 문
모자이크처럼 보이는 벽...
마차가 다니던 길...가운데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징검다리라고
물고기처럼 생긴 유적지...파랗게 칠해진 집을 들르게 된다.
징검다리가 세개인 곳인 이 도로는 두 대의 마차가 엊갈려 다닐 수 있는 도로라고
가이드가 설명도 하고 사진도 찍어준다.
주피터신전이 있던 곳이라고...뒤에 베수비오 화산이보인다....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는 로마신화에서는 주피터로 불리운다.
이곳은 여러 신전이 있던 곳으로 .기둥만 남아 있는데... 이곳의 대리석들은 관리가 되지 않는 동안 유실이 되었다고... 청동상은 반
인 반수의 켄타우로스의 청동상으로 나중에 만들어 세운 것이다.
주피터 신전쪽...
오른쪽에 있는 기둥은 바실리카가 있던 곳이며 벽돌은 분실된 부분을 복원한 것이라고
신전이 기둥이 아래는 이오니아식이고 위에는 도리아식으로 장식이 되어 있다.
광장 주변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상점들과 주택들이 있는 골목이다....앞에 보이는 아치는 칼리굴라 개선문이라고
그 당시의 사람들과 마차가 다녀서 닳아진 돌들을 밟으며 걷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마차 바퀴자국... 바퀴가 금속으로 되어 있어서 돌들이 이렇게 패였다.
파우노스의 집이라는 간판이 있는 귀족의 집
파우노스라는 귀족의 집으로 파우노스의 청동조각상은 나중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부자들의 주택지와 서민들의 주택지를 둘러보고....가운데 돌로 된 것은 수도이다.
이런 집 앞에서 포즈를 잡고 사진도 찍고....
사진을 찍는 것에 의의를 두는 사람 중의 한 사람 같이 간 딸이다.
수도시설의 돌들은 꺽쇠로 엮여져 있으며 수도꼭지는 지금 붙여 놓은 것이라고...
도시가 동서남북으로 잘 정비가 되어 있는데 계획도시인 셈이다.....상수도 시설과 하수도 시설도 갖추어진 도시라고 하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골목 곳곳에 있는 꼭 가봐야 할 집들을 둘러보고...
이곳은 빵을 만들어 파는 집이라고...
빵을 굽던 화덕..
음식을 팔던 곳이다.
블록마다 표시가 되어 있어서 개인적으로 가면 유적지 지도를 들고 찾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지금도 발굴이 되고 있는 중이다.
그 때 벽의 채색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 대의 마차만 다닐 수 있는 길....중간에 회피가 되지 않으니 일방통행을 해야 했을 듯
수도꼭지에는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는데.....그 때 만들어진 관을 통해서 나오나??
목욕탕을 보러 가는 길
스타비아네 목욕탕이라고 팻말이 적혀 있다....스타비아네 목욕탕은 넓은 면적과 체육시설, 수영장, 탈의실, 냉탕, 온탕, 증기탕을
겸비해 오락, 취미, 시민 건강을 위한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는 현대의 종합 스포츠센터 규모의 목욕장이었다. 소수 부유한 사람들
만 주택에 수도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개인소유의 욕실 설비가 되어 있지 않은 대다수 폼페이 시민이 저렴한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 욕장은 매우 인기가 있었다. 목욕장이 사회적인 교류의 장으로 사교 및 모임의 장소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스타비아네 목욕탕 조감도
목욕탕에는 체육시설도 같이 있었다고 한다.
여성들도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었다고....
목욕탕 내부
목욕탕의 이런 저런 시설들...
냉탕과 온탕 증기탕 등도 있었다고...
그 때 사용하였던 수도관이라고......
https://youtu.be/r9d-hbN5Vho....폼페이 최후의 날 유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