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길 박사(연세대 명예교수) ]
농경사회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가 중심이 되어 가족을 형성하였고 노인들은 일을 못 하는 나이가 되면 이래저래 세상을 떠나고 그 집에 태어난 아들과 딸이 그 집안을 맡아서 이끌고 나가야만 했다.
그 시대에는 가정이라는 것이 가장 소중한 생활의 단위여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인간 관계로 사회가 손을 쓰기도 전에 한 가족의 문제를 무난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업사회는 지나간 몇 백 년 사이에 인간의 철학과 생활의 방식을 바꾸어 놓아 농경사회의 가치관으로는 살 수가 없게 되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이다. 그것도 많이 변했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그 틀만은 아직도 남아 있어서 정부나 권력기구가 나서기 전에 일반 국민의 철학과 가치관으로 가정의 문제를 조용하게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가장 두드러지게 변한 것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이다. 원시시대에는 난혼의 시대도 있었고 일처다부주의나 일부다처주의와 같은 꼴사나운 습성이 계속 남아있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오늘의 지성인은 대개가 한번은 생각할 것이다 “결혼이란 반드시 해야 하는 건가?” 아무도 정답을 가진 사람은 없지만 결혼이라는 제도가 농경사회에서처럼 필수불가결한 제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팽창해 있는 것을 요즘 많이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