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면 땅’ 과 소주
중간고사, 기말 고사를 볼 때마다 성적이 학년 전체에서 꼴지를 다투던 학생이 있었다. 그래서 시험을 본 후 1주일 동안 과목 시간마다 맞는 매를 모두 합하면 백대가 훌쩍 넘을 거라 짐작되었다.
어느 학교이든지, 교사 사이에 불꽃 튀는 성적 경쟁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험의 평균 점수를 낮추게 만드는 그 학생에 대해 과목 담당 선생은 물론 담임인 나에게도 달갑지 않은 편이었다.
게다가, 항시 지각을 하고 또 잊혀질만하면 결석을 하다 보니 , 좀 과장스럽게 표현하자면 애인 다음으로 내 관심을 차지하는 듯 했었다.
그 정도 이다 면 교사는 부모를 호출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의 부모들은 친 부모임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넘겨버려 이제 나도 지친 상태에 있었다.
결국 교사로서 그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고치기를 단념하고 그저 더 이상 다른 문제점이 눈에 띄지 않기만을 매일 매일 바라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그 애 아버지가 점심시간에 나를 찾아왔었다.
극빈자 증명서를 들고서 납부금 면제를 받으려고 나를 찾아왔다.
괘씸죄가 쌓일 대로 쌓인 아이에 대한 불쾌감을 생각하면 납부금 면제란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애 아버지의 초라한 행색과 가정 형편에 대한 설명이 조금은 내 기분을 누그러뜨렸나 보다. 그래서 일단 교장 선생님의 허락이 필요하니 나중에 답변을 해주겠다며 그 애 아버지를 전송했다.
이것은 현실이 아닌 전설이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대한민국에 살지만 한국 국민이 아니어야만 한다. 집 기둥을 구하지 못해 아예 원통형 토담을 쌓았고 , 대문이자 부엌문인출입구를 들어서면 시어버린 김치 냄새와 젓갈 냄새가 한 평도 못되는 토방 부엌에 가득 차 있었다.
부엌 쪽으로 나있는 방문을 열면 , 두 평 남짓한 반원형의 방이 하나 있었다. 동생 3, 부모, 그리고 그, 애가 하루 24시간 삶이라는 형태의 생존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정말 힘든 시련이었다. 가장이 폐병으로 쓰러진 후 ,새벽이면 부두에 나가 생선을 받아 온종일 떠돌이 행상을 하는 어머니대신 , 밥 짓고, 빨래하고, 또 병 환 하기가 몇 년이라나 !
동생들을 밥 먹여 학교에 보내고 병자의 밥상을 채려놓다 보면 당연히 지각-- 수업을 마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집까지 잰 걸음으로 갈지라도 저녁 밥 짓기에는 늦은 시각이었다. 그러한 하루를 마무리 짓고 그 좁은 공간에서 책을 펼친들 욕심 많은 교사들의 바램을 얼마나 채워주랴 !
어찌해서 ‘ 공부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니 다’ 항변 한번 못하고 몇 십대나 되는 매를 그저 참고 견디기만 했는지 모르겠다. 굶주림처럼 이것도 생활 속에 나타나는 당연한 고통이려니 ! 하고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온순함 . 적어도 지각이나 결석 때문에 꾸중을 들었을 땐 , 비참한 생활이 떠올라 한번쯤은 서러움에 겨워 울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저 황소처럼 두 눈만 꿈벅 꿈벅하면서 어두운 표정을 띤 채 침묵을 지켰다.
그 후 몇 달지나 늦가을 날 , 점심시간 직전에 또 그 애 아버지가 찾아왔을 때 이번엔 또 무슨 부탁을 해올 까 미리 겁부터 났다. 하지만 그동안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점심이나 한 끼 같이하자나---!
점심이라야 시골 장터 허름한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이면 족할 터이지만 , 그에게는 어려운 지출일 것 만 같아 당혹스러웠다. 그러자 그는 발길을 돌리기 어려운 듯 몇 번이ㅏ고 전송하는 나를 뒤돌아ㅓ보곤 했다. 그럭저럭 짧은 점심 시간이 끝나갈 무렵 그는 종종 걸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선생님그냥 가려니 찌나 서운한지 --- 이것이라도 좀 드시지요. 하며 그가 내민 봉투 속에는 소주 한 병과 안주로 삼을 라면땅 과자가 한 봉지; 들어 있었다. 수업 종이 울렸지만 숙직실로 들어가 그와 소주를 나누었다.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나에게도 이런 때 수업 좀 빼먹으면 어때 ? 하고 뱃장이 생겼다.
그래서 나를 찾아 애타게 해매이던 학생들이 왔을 때에야 그와 작별을 했다. 아마 교단에 섰던 이래 가장 훌륭한 강의였으리라. 해당되는 과는 ‘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오 헨리의 단편이었다.
성탄절 전야에 가난한 아내는 머리칼을 잘라 남편 시계에 어울릴 시계 줄을 사놓고 , 퇴근하던 남편은 사정을 모르고 시계를 팔아 아내의 금 빛 머리칼에 어울릴 값 비싼 머리 빚을 사오는 내용이었다.
술에 취하고 정에 취해서 나는 그만 교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잠이 깨었을 때 숙직실에 옮겨져 있었고, 가을 밤 싸늘한 바람을 타고 어느 곳에서인지 한풀이 굿을 하는 무당의 북소리가 덩더꿍 덩더꿍하고 아슴 프레히 들려왔었다. 그리고 한풀이 춤사위 따라 ,펄럭이는 무당의 옷자락이 자꾸만 새벽 갯바람을 맞으며 서있는 어느 생선 장수 여인네의 치마폭처럼 어른 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