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교육지원청(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얼마 전 중2 둘째 아이의 새로 부임한 교장선생님이 학부모들에게 처음으로 인사말을 하셨다.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중학교의 목표라고 하셨다. 나는 2년 전 ‘중학교 교육과정의 이해’라는 강의를 들으며 '일상생활과 학습에 필요한 기본능력' 즉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학교 교육의 목표라고 배웠던 터라 조금 아쉬웠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테니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했다.
관성
몇 주 후 학부모회 임원들과 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묶어 동아리로 만들고 별도의 활동을 시키며 간식도 사주겠다고 하신다. 잘 하는 아이들은 특별히 도와주고 밀어줘 고등 입시 실적을 높이는 방법일 게다. 아마도 이전 학교에서 성공한 경험이 있으셨으리라. 교육적 열의가 있으시니 좋은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외 다른 대부분의 아이들은?
곰곰 듣고 있다 교장선생님께 부탁 말씀을 드렸다.
“모든 아이들이 각자의 특성에 맞는 교육과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특별대우하는 것은 교장선생님의 개인적인 소신이겠지만 그간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는 상호간 경험에 의해 굳어졌을 것이다. 그날 간담회를 함께한 임원들도 신임 교장 선생님과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학부모들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잘 깨닫지 못했으나 알고 보니 내가 소수이고 이방인이었다.
학부모회 및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부모들의 자녀는 학업성적이 우수하거나 집이 부자이거나, 부모님의 직업이 특별한 경우가 많았다. 아이가 전교회장이 되면 으레 그 부모가 학부모회 회장을 하는 식이다. 반대로 아이가 특별하지 못하면 그 부모들은 ‘별 것도 아닌 사람이 설친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학교 일에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학교 구성원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학부모만 있는 것이 아닌데 비합리적인 처사다. 나는 보통 아이들의 학부모를 대변한다는 생각으로 지금은 고2인 큰아이가 이 중학교에 입학한 2019년부터 학부모회에 참여했다.
‘모든 아이들을 생각하는 교육’
너무 좋고 당연한 말이라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싶지만, 실제 가능한가?
주변에서 본 적이 없고 멀리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분명 우리 모두를 한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무엇이 우리를 몰아가고 있는 걸까? 왜 학업성적은 아이들뿐 아니라 학부모까지 계급화하는 분위기를 만들까? 나는 교장선생님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지만 아이 성적에 따라 자기 아이 공부도 제대로 시키지 않고 설치는 학부모로 치부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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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교육은 A급 부품, B급 부품을 구분하여 생산하는 공장이 되었다. 중고등학교 때 이미 등급은 결정되고 대학은 그것을 잘 포장하여 완성품을 만든다. 그들의 기준에 A급 부품이 아니면 하등급품 취급을 받는다. 부품 규격을 뜻하는 SPEC으로 인간을 표현하며 멘탈까지 스펙으로 취급하는 지금, 우리가 사람을 부품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1931년에 발표된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는 인간을 알파에서 입실론까지 등급을 나누어 생산한다. 이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표현한 예언서와 같다. 우리 교육이 그런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모든 아이들이 그 존재로 존중 받는 교육은 환상일 뿐이다. 경쟁은 때로 우리에게 동기를 유발하는 좋은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뭐든 과하면 독이 되는 법, 우리 교육의 경쟁은 이미 그 한도를 한참 넘고도 넘었다.
고등학생 큰 아이, 중학생 둘째아이, 초등학생 막내 아이의 교과서를 보니 삶에 필요한 지식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지식들이 삶과 연결되어 살아있는 지식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방향에 맞게 아이들이 열심히 배우고 익혀 높은 학업 성취도를 가지길 바란다. 경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을 위해서 말이다.
지난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국회에서 “경쟁교육과 헤어질 결심, 대입 상대평가 금지 법안”을 발의 했다. 학생, 학부모, 교사 발언을 들을 때마다 그 내용에 깊이 동화되어 울컥했다. 고등학생의 80%는 ‘학교를 사활을 건 전장’이라고 인식한다. 서로를 딛고 올라서야 하기에 아이들은 언제나 날이 서 있다. ‘좋은교사운동’의 한성준 선생님은 학폭 문제도 상대평가의 극한경쟁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성적이 곧 그 사람이 아닌데, 등수로 그 사람을 규정하고 취급한다. 그것은 아이들의 고유한 색을 지우개로 지워 존재를 희미하게 한다. 연예인들 중에 공황장애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연예인으로서 내가 실제의 나를 압도하여 존재가 희미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정혜신 저 ‘당신이 옳다’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도 사실은 살고 싶어서 마지막 힘을 쥐어 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실행을 한 것이 아닐까?
수년 전부터 시작 되었지만 최근에 아이들의 자해가 더 심각해졌다고 한다. 이젠 보이지 않는 곳을 자해하기 때문에 대동맥이 지나가는 곳은 특별히 주의하라는 말을 해줘야 할 정도라니. 아이들은 그렇게라도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쓰는 게 아닐까? 이미 늦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바꾸어야 한다. 야만적인 상대평가 폐지부터 시작해야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
■ 노워리기자단 용은중
나무늘보처럼 느린 본성을 가지고 다람쥐처럼 정신없이 사는 초, 중, 고 세 아이 엄마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중 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머리카락만큼이라도 보태고 싶어 사교육걱정 노워리기자단으로로 활동하고 있다. 배움이 학교를 넘어 세상으로 더 넓어지길 바라며 서울 용산의 작은도서관에서 지역활동가로 일한다.
첫댓글 "나는 보통 아이들의 학부모를 대변한다는 생각으로 지금은 고2인 큰아이가 이 중학교에 입학한 2019년부터 학부모회에 참여했다." 어떤 일이든 참여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늘 몸소 실천, 행동하시는 모습 배우고 싶어요!
글쵸, 이런 모습야말로 "행동하는 시민" 아니겠어요! 저도 배우고 싶습니다. 😭 (배우면 될 일인데, 눈물이 먼저)
선생님이 실천하고 행동하는 분이셔서 그런지 글에서 힘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