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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한글판 출가에 부쳐 · · · · · · · · · · 2
한글 개정판에 부쳐 · · · · · · · · · · 3
성서 백 주간 · · · · · · · · · · · · · 4
지도자를 위하여 · · · · · · · · · · · · 6
1. 성서 백 주간의 목적 · · · · · 6
2. 성서 전부를 읽는다 · · · · · ·6
3. 일곱째 날의 모임 · · · · · · · 7
4. 모임에 관한 상세한 설명 · · · 8
5. 그밖의 주의 사항 · · · · · · · 12
6. 새로 반모임을 시작할 때 · · · 14
참가자에게 드리는 권고 · · · · · · · · 17
1. 성서에 대하여 · · · · · · · · · 17
2. 인간적인 훈련 · · · · · · · · · 18
3. 신앙을 키운다 · · · · · · · · · 19
4. 집에서 성서를 읽는다 · · · · · 21
5. 모임에 출석한다 · · · · · · · · 22
성서 백 주간의 은혜 · · · · · · · · · · 23
마치면서 · · · · · · · · · · · · · · · · · 26
『성서 백 주간』차례 총람 · · · · · ·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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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판 출간에 부쳐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못하고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마태 4,4)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어떻게든 사느라고, 그저 커 가느라고 바빴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의 은혜로운 성숙이 이제는 수효보다 그 생명의 참 깊이에 주력해야 함을 누구나 절감하게 된 지도 오랩니다. 그렇기에 하느님 말씀인 성서에 대한 갈증도 간절하고 또 이를 풀어 주려는 놀라운 열의와 노력도 다양합니다. 아니, 요청이 너무나 큰 나머지 성서 공부가 대중 강연의 형태로 치우칠 지경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굶주린 사람일수록 숨을 돌리고 꼭꼭 씹으면서 찬찬히 먹어야 음식이 살로 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때마침, 르 드로즈 신부님께서 20년 가까운 경험을 통해, 이론보다는 사목현장에서 체득하신『성서 백 주간』의 길을 우리나라에서도 트게 된 것은 참으로 고맙고 다행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일생 적어도 한 번은 성서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묵상해나가면서 기도 중에 이를 삶으로 옮기는 것이 도리인 줄 알면서도 쉽사리 엄두를 못 내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저 많은 글을 언제 다 읽어 치우지” 하는 마음이 앞서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생명의 양식을 이토록 푸짐하게 베풀어 주셨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면서 평생 두고두고 고마워할 일입니다. 바로 그렇게, ‘공부할 책’이 아니라 ‘먹을 음식’으로 생명의 말씀을 만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성서 백 주간』입니다.
이 귀한「성서 읽기 도움 책」이 드디어 우리말로 빛을 보게 된 것은, 한글판 발행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 저자를 비롯, 이 일을 열정적으로 주선해 주신 박일규 유스또 회장님, 어려운 번역 일 맡아 주신 박숙안 까리따스 수녀님, 간행에 힘써 주신 본도출판사의 임 세바스티안 신부님과 정한교 편집장님 모두의 울력의 열매입니다.
아무쪼록 “그분의 충만하심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요한 1,16) 받기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장 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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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판 개정판에 부쳐
한국교회에 성서를 읽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이 도움책을 드리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 책자가 한국인의 복음화에 쓸모있는 도구가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책의 지향은 성서를 더 익히 알고자 하는 하느님 백성의 요청에 부응함으로써 믿음의 바탕을 굳건히 다져 주려는 데 있습니다. 바티칸 공의회는 성서에 관한 교회의 전통을 확고히 재확인해 줍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바, 그 말씀의 성서학자나 사제들에게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 모두에게 주어져 누구나 이를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먹고 살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친히 주신 이 말씀을 당초에는 선민이 받아들여 이를 살면서 대대로 구전하다가 마침내 글로 써ㅓ 우리가 성서라 부르는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 책은 하느님 말씀을 전함과 동시에 말씀에 대한 선민의 반응도 알려 줍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누구이시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이제는 이 말씀이 온누리에 울려퍼지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위해 강생하신 말씀인 그리스도께 다가가도록 모든 인간을 이끌어 줍니다.
이 책자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더 잘 알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더 잘 알기를 갈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작은 모임들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20여년에 걸친 경험을 통해 “백 주간”의 방법으로 성서를 가까이하는 것이 큰 열매를 거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작은 모임들이 교회의 품안에서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늘 결합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이며 오히려 교회와 더욱 일치하면서 신앙생활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체험하게 됩니다.
지난 1992년 3월 이 책자 한글판 출간에 즈음하여 그 취지와 방법을 설명하려 서울에 초대되어 간 지 3년 남짓, 이제는 백 개가 넘는 모임들이 차분하고 성실하게 성서에 맛들여 감을 볼 때, 생기 넘치는 한국교회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이번 개정판 원고도 훌륭하게 옮겨주신 박순안 까리따스 수녀님, 처음부터 여러모로 애써 주신 박일규 유스또 회장님, 그리고 특히 『성서 백 주간』모임을 꾸준히 이끌어 주신 장익 요한 주교님께 깊이 감사합니다.
1995년 5월 1일 요셉 성인 축일에, 마르쎌 드 도르즈 신부
성서 백주간
❋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헌장」과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을 통해서,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말씀을 지금보다 더욱 충실히, 더욱 열성을 다하여 듣도록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에 호응하여 말씀을 듣고자 하는 신자들의 욕구도 도처에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 현재 성서 해설서나 성서에 관한 책이 여러 가지 나와 있고 또 성서 연구반도 갖가지 형식으로 많아지고 있어 어느 방법이 가장 자기에게 적합한지를 택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바로 이것이야말로 일반 사회의 성서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깊은지, 또 얼마만큼 성서 안에서 빛과 힘과 구원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는 것입니다.
❋ 확실히 성서에는 대답이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삶의 희망을 주고 인생길을 비추는 빛으로서의 사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기를 기대하며 독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성서를 깊이 알고 확고한 지식으로 신앙의 기초를 다질 필요가 있습니다.
❋ 신앙에 바탕한 판단과 행동력을 갖춘 신자를 양성하기 위함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하는 교회 신자들의 요구에 호응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서 이 성서 공부를 소개합니다.
❋ 이 성서 백 주간은 성서 전부를 처음부터 끈까지 통독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서 성서를 기도중에 신앙의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읽는 것입니다.
이미 참가해 온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구원의 말씀을 보다 깊이 깨닫고 맛들이는 기쁨을 체험해 왔습니다. 이 체험은 흡사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그리스도 자신에게서 성서 말씀을 경청하며 맛보았던 것과 같은 체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도자를 위하여
1. 성서 백 주간의 목적
성서 백 주간의 목적은 신자들이 성서를 즐겨 읽어, 성서에 관한 지식을 넓힐뿐더러, 하느님의 말씀을 영적 양식과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확신을 갖고 신앙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키우는 데에 있습니다.
충실히 성서 전부를 통독한 신자는 하는님 계시의 발전과 흐름을 파악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맛들이고 즐기며, 보다 깊이 미사의 신비를 이해하게 되고 개인적으로도 실제로 변화되어 깊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2. 성서 전부를 읽는다
성서 전부를 대충 백 주간에 통독합니다. 교회에서 성서로 편집한 순서를 존중하여 대개 그대로 읽어 나가지만,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체험기록이므로 그 지방의 풍습이나 문화와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 등의 관계를 고려하여 순서를 바꾸어 읽을 때도 있습니다.
구약성서는 2년쯤, 신약성서는 1년쯤 걸립니다. 모이는 획수는 군데군데 정리를 위한 복습도 필요하게 되므로 실제로는 100회 이상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성서 전부를 읽는 것입니다. 성서를 읽어나가면서 점진적으로 훈련이 되어 말씀에 대한 마음이 열리고, 역사를 통하여 끊임없이 이야기해 오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어 하느님 계시의 발전과 흐름을 성서 전부를 통해 파악하게 됩니다.
미사 성제나 교리 공부 때에 듣는 유명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하찮게 여겨지는 대목도 전부 꽤 빠른 속도로 읽어 나갑니다. 매주 각자가 읽어 오는 분량은 10장이나 15장 정도이지만, 구약성서에서는 20장을 읽을 때도 있습니다. 아주 마라톤 같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처럼 빠른 속도로 통독할 뿐임에도, 놀랄만큼 성서 전체의 흐름이나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실현 등 전체의 관계를 민감하게 파악하여 헤아리게 됩니다.
중심이 되는 것은 성서입니다.
지도자는 어쨌든 모이는 사람들은 다른 책을 읽거나 레포트를 작성하거나 할 필요가 없고 오직 성서를 읽는 도움책으로서 『성서 백 주간』을 사용하면 됩니다.
성서반 참가자들을 하나로 묶는 사슬과 같은 약속이 있습니다.
반모임의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
읽어야 할 성서의 대목을 숙독한다.
복습한다.
매주 모임에 지각 없이 충실히 출석한다.
참가자는 서로 떠받쳐 주면서 백 주간을 계속하는 노고와 즐거움을 함께하게 됩니다.
3. 일곱째 날의 모임
1. 시작 기도로 성가를 부른다.
2. 읽은 부분을 복습한다 (20분~25분).
3. 각자가 금방 릭은 부분의 감상을 말하고 짧은 기도를 바친다. 참석자는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하고 응답한다(3분씩).
4. 휴식(10분 정도).
5. 휴식 후, 지도자가 보충해 주거나 질문이나 의문에 대답도 한다. 다음 주에 읽을 곳을 알린다. 더러 어려운 점도 있으므로 간단한 설명을 더할 때도 있다.
6. 마침 성가를 부르고 사제의 강복으로 모임을 끝낸다.
두 시간쯤 걸리는 이 모임의 이상적인 인원수는 10명 안팎인데, 4명이나 5명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20명 이상은 어렵습니다.
4. 모임에 관한 상세한 설명
시작 기도
시편의 기도로써, 할 수 있으면 노래(성가)로 시작합니다.
시작 시간을 꼭 지킵니다.
복습 (20~25분)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반드시 복습을 할 것입니다. 읽은 대목을 다시 기억해 내여, 중요한 사건이나 귀중한 대목을 명확히 하여 둡니다.
복습은 연결 관계나 요점을 파악하기 위해서, 또는 읽어 온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읽어 온 여러 가지 사건이 정리되고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부각되어 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관계가 있는 곳은 확실한 연결을 지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복습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자연스럽게 진행해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아래와 같은 것을 제시합니다.
1. 참가자가 지난 주에 읽은 것을 생각하면서 앉은 순서대로 중요한 사연을 차례로 발언해 나갑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거의 다 나오게 되는데, 때로는 보충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2. 인원수가 적은 반모임의 경우에는 지도자(사회자)가 지난 주의 느낌을 정리하여 발표하고 중요한 데는 강조하며 부족한 데는 보충하면서 다른 것과의 관계를 연결지어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복습을 위한 제한된 시간을 잘 지키도록 유의합시다.
감상 발표
이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느낌을 발표하는 것인데, 이것은 성서 백 주간의 특징의 하나입니다.
참가자 각자가 성서를 읽고 느낀 것이나 체험한 것을 발표합니다. 이것은 해석도 설명도 아니며 설교도 결론도 아닌 순수한 감상입니다. 매주 행하는 것이므로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렇게 하는 동안에 성서를 점점 더 충실히 읽게 됩니다. 무단히 결석하거나 전혀 느낌을 발표하지 않는다면 반모임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집에서 읽는 성서의 분량은 『성서 백 주간』배분표에 있는 대로 실행합니다.
그 주간에 읽을 분량을 참가자에게 몇 장씩 나누어서 맡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데를 읽고 모입니다.
또 느낌 나누기는 매 장(章)에 대한 것이 아니고 그 주간에 읽은 전체에 걸친 감상을 나누도록 적절한 지도가 필요합니다.
지도자는 모두가 스스럼없이 마음놓고 발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도록 마음을 써야 합니다.
지도자는 감상을 발표할 사람마다 이름을 불러 발언을 청합니다.
감상을 발표하는 동안 서로 마음을 열고 고요히 경청하며 발표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맛들이고 느낀 기쁨을 더불어 음미하도록 합니다.
지도자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이 그 소중한 은혜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서로의 발언을 주의깊게 들으며 기록을 하도록 이따금 상기시켜 주는 것이 좋습니다.
비판이나 평가는 절대로 피해야 합니다. “아주 훌륭한 발표”라든가 “좋다”라든가의 칭찬도 다른 발표와 비교가 되므로 삼가야 합니다.
또, 처음이라 익숙지 않은 이에게는 억지로 발표시킬 것이 아니라 충실히 읽어 오는 동안에 자연스레 발언하게 될 때까지 기다립시다.
지도자는 교단에서 내려와서 함께 어울리며 다같이 같은 대목을 읽습니다. 한 시간 동안이나 묵묵히 감상을 듣고 있는 지도자의 입장이란 제법 어려운 노릇입니다.
귀중한 자기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때로는 뒤죽박죽이어서 시작도 끝도 헤아릴 길 없이 모호하고 조금도 알아듣지 못한 듯한 발언을 듣고 있자니 지도자로서 책임을 느껴 당장 설명을 해주고 싶은 충동이 솟을 때도 있겠지만, 꾹 참아 누르며 발표자마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어야 합니다.
중간에서 지도자가 입을 열게 되면 참가자는 말없이 듣기만 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성서 백 주간에서는 신자의 신앙 양성이 목적이므로, 비록 아랫사람이라 할지라도 참가자가 스스로 찾아 얻은 바를 자기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지도자가 이 원칙을 꼭 명심하고 묵묵히 그들과 함께 경청한다면 성령께서는 당신 뜻대로 자유롭게 한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훌륭하게 키워 주십니다.
기도
신앙을 키우기 위해서는 감상 발표 후 기도의 체험이 퍽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느낌을 이야기 한 후에 이어서 기도를 바칩니다.
기도의 내용은 당연히 읽은 성서와 자기 생활에 바탕한 것이 되겠지요. 각자의 기도에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로 응답함으로써 한 사람의 기도가 모두의 기도로 하느님께 바쳐집니다.
기도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에 나오는 바와 같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는데, “아버지이신 하느님!” “예수님!” 식으로 명백한 호칭으로 기도를 시작하기를 권합니다.
“온 세상에 평화가 임하기를!” “오는 주일은 맑은 날씨가 되어 주기를!” 등은 하느님을 향한 청원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지도자는 그들의 기도가 하느님의 은덕을 찬미하고 감사드리며 다른 이들을 위하여 전구하는 기도가 되도록 기도의 내용과 방법에 마음을 써야합니다.
모두가 발표한 다음에 지도자(사회자)도 자기 감상을 발표하고 기도 드립니다. 그리고 감상과 기도의 맨 마지막에는 주의 기도를 바치고 때로는 시편이나 성모송을 아울러 바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임이므로, 지도자는 부활하신 주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어 그들의 기도를 당신 자신의 기도로 바치고 계심을 상기시키도록 유념합시다.
휴식(10분 정도)
쉬는 시간은 아깝다고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신자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함께 차도 마시고 담소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 모임은 단순한 공부나 연수를 위한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제 자매들의 모임입니다.
지도자의 발언 (약 10분~15분)
지도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안됩니다. 전원의 발언을 듣고 나서 할 이야기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지도자는 참가자들이 요점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강조해야 할 것만을 간단히 알려 줍니다.
지금까지 읽은 내용과 이제부터 읽을 내용의 관계, 교회 전례와의 연결,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교회의 관계 등을 보충해 줍니다.
다음 주까지 읽어 올 범위를 간단한 설명을 붙여서 말해 주고 난점이 있으면 미리 알려 줍니다.
참가자는 많은 설명이나 어려운 학설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내용이나 의심나는 것에 막히지 않고 읽어 나갈 수 있도록 알아듣기 쉽고 정확한 짧은 설명으로 충분합니다. 3년 동안을 계속 읽을 것이므로 질문에는 본인이 생각할 실마리를 주는 것으로 넉넉합니다.
이 모임의 은혜는 지식만이 아니라 신앙을 키우고 기도를 북돋우며 듣는 귀와 자기의 말로 신앙을 전하는 훈련을 아 나감에도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사회자)는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모임의 마무리
마침 기도로 시편을 노래합니다.
지도자(사회자)가 사제라면 강복을 줍니다.
“다시 다음 주를 기다리겠습니다” 하고 모임을 마칩니다.
아주 중요한 한 가지는 좀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마치는 시간을 꼭 지켜 연장시키는 일 없이 제때에 끝내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천천히, 오랜 세월에 걸쳐 당신 말씀을 계속해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마지막 말씀은 아직 발언되지 않았습니다.
5. 그밖의 주의 사항
참가자는 집에서 도움책 『성서 백 주간』에 실린 배분표에 따라 성서를 읽습니다.
집에서 성서를 읽을 때에 도움책을 함께 사용합니다.
이 도움책은 성서를 흥미 분위로 읽지 않고 하느님과 계획과 그 실현을 올바로 깨닫기 위한 길잡이요 입문서의 구실을 합니다.
참가자가 도움책을 잘 사용하게 되면 성서 통독은 궤도에 올라 깊이 맛들이게 되고 중단할 수가 없게 됩니다.
지도자는, 아직 익숙지 못한 시초 무렵에는 자주 도움책을 읽도록 권면해 주었으면 합니다.
성서 전부를 백 주간에 통독한다는 것은 꽤 빠른 속도입니다. 그런 까닭에 일반적으로 크게 논의되는 말이나 사건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불석할 시간의 여유가 없지만, 성서 전체의 흐름과 성서 안에 거듭 강조되고 있는 중요한 사건이나 각 경전의 초점 같은 것은 명확하게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참가자가 다른 성서 해설서를 읽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온 정성을 기울여 성서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기 위하여 해설서를 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비록 알아듣지 못하는 데가 있다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백 주간을 다 들여 읽어 나가노라면 자연히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성서 전부를 통독하여 전체를 파악하고 있다면 전문적인 참고서를 읽거나 특별한 연구를 하는 것도 쉬워집니다.
백 주간의 성서 통독은 3년 걸려 자기의 신앙 토대를 견고케 하기위한 묵상 기간과 같은 것입니다.
도움책의 성서 구절 인용은 구약성서의 경우 주로『공동번역 성서』(대한성서공회)를, 신약성서의 경우 『200주년 신약성서』(분도출판사)를 따랐습니다.
지도자는 지금까지의 익숙한 강의 방식을 이 『성서 백 주간』의 방법으로 바꾸어 행할 각오가 필요합니다.
이 방법은 여러 가지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자 한 사람의 이야기보다도 훨씬 풍부한 열매를 맺는 것으로서, 사실상 신자들의 재교육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6. 새로 반모임을 시작할 때
새로 반모임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와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여기서는 한 가지만 보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준비
시작하기 두어 달 전부터 “성서 백 주간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공고합니다. 참가자가 예정하기 쉽도록 일찍부터 알리는 것인 데, 이것은 마음의 준비 기간이기도 합니다.
신자들에게 “성서를 읽자”고 자주 거듭 촉구합니다.
영세 전에 배운 교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성서를 읽음으로ㅆ 매일 생활의 양식을 삼자!
일생에 한 번쯤은 성서 전부를 읽자! 등으로.
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계속 알린 다음 설명회를 엽니다.
설명회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설명회에 모여 오는 것이므로 성서 백 주간을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것인지를 명백하게 설명합니다.
특히 아래와 같은 것을 똑똑히 일러 줍니다.
성서 전부를 읽기로 한다.
각자가 자기 집에서 정해진 만큼의 성서를 읽는다.
매주 두 시간씩 모임에 출석한다
모임에서는 각자가 읽은 성서의 느낌을 발표하고 함께 기도한다.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다.
대상은 신자 어른들입니다.
설명회 끝에 그 자리에서 신청서를 받고, 첫 모임의 날과 시간을 알려 줍니다.
첫 모임
제 1부 말씀의 전례 (가능하면 성당에서)
1. 성가: 적절한 성가나 시편 등
2. 성서 봉독: 루가 24,13 이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3. 격려 말씀
4. 성가: 시편 등
5. 성서 봉독: 마르 7,34이하 “귀먹은 반벙어리를 낫게 하심”
6. “에파타”의 기도
사제가 한 사람씩 머리에 손을 얹으며 “에파타”하고 기도한다.
7. 공동 기도
<예문>
아버지 하느님, 우리의 마음과 눈이 열려 성령의 이끄심에 유순히 따를 수 있도록 지금 성령을 보내 주소서.
성서를 읽기 시작하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 뜻을 깊이 깨닫고 그 말씀에 맛들이는 기쁨을 내려 주소서.
이 성서 통독에 참가하는 우리가 비록 어떤 곤란이나 장애에 부딪치게 되더라도 그것을 용감히 물리치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끝까지 계속할 항구력을 내려 주소서.
우리뿐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도 말씀을 통한 기쁨이 전해지고 그 하느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가정도 새로워지도록 은총 주소서.
우리가 성서를 읽음으로써 교회 전체가 더 그리스도께 충실한 사람들이 되도록 도와주소서.
지도자(사회자)도 성령의 이끄심으로 말씀을 충실히 전하도록 은총 주시고 건강도 돌보아 주소서.
이 성서 백 주간을 시작함에 있어 많은 이들에게 기도를 부탁 하였사오니 그들의 기도를 들어 허락하소서.
8. 주의 기도와 성모송
제 2부 모임 장소에서
도움책『성서 백 주간』을 나누어 주고, <유의 사항>(도움책 처음에 있음)을 참고하여 다시 한번 백 주간의 공부 방법을 간단히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도움책 022쪽 이하 참조) 안에서 성서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를 간단히 이야기합니다. 다음 주까지 읽게 되는 창조 설화는 바빌론 유배 생활의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그 지방 설화가 바탕이 되어 있으므로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합니다.
다음 주까지 창세기 1장과 2장을 집에서 읽을 것. 여기서 성서에는 몇 가지 다른 전승이 있으며 창세가 1장과 2장에서는 전승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교실, 회계 연락 등의 담당자는 참가자들이 상의하여 결정하고 다과 비용 같은 것은 각 그룹에서 부담합니다.
일생에 한 번은 성서를 전부 읽읍시다!
❋ 은총의 성서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신자나 사제, 수도자가 차분히 정성껏 읽게 되면 한국교회 전체가 새봄의 기쁨을 느낄 만큼 쇄신되리라 확신합니다. 이 쇄신의 실현을 위하여 함께 기도합시다.
참가자에게 드리는 권고
1. 성서에 대하여
성서도 활자로 찍힌 책입니다. 다른 책에 비하면 꾸밈새도 별로 없이 멋없는 책으로 볼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장구한 세월에 걸친 온가지 사건의 체험이 기술되어 있으며 이것들을 통해서 온 인류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특별한 책입니다. 신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신앙의 책으로 선서를 존중하도록, 믿음과 경의를 품고 소홀히 다루지 않으며 일정한 장소에 깨끗이 간직하도록 마음을 써야합니다.
신자들은 미사와 그밖의 교회 전례 때에 성서 봉독과 시편 기도, 성가 등을 통해 성서의 말씀을 신앙 안에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대한 양의 성서이므로 교회 전례에서 낭독되는 성서는 단편적이며 전체가 한번에 읽히는 때는 전혀 없습니다. 또 자주 듣게 되는 내용의 낭독이라 할지라도 그 전후에 나오는 성서적 표현이나 역사적 배경까지는 읽혀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말씀의 책인 성서를 충분히 음미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총괄적으로 성서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실상 많은 신자들이 이것을 회구하고 있으니 이 희망과 기대 안에 성서를 전부 통독하도록 합시다.
성서 전체에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란 어떤 것인가.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는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여야 옳은가 등등은 성서 백 주간에 참가하여 읽어 나가는 동안에 차차 알게 됩니다.
2. 인간적인 훈련
성서 백 주간의 매주 모임에 충실히 출석하는 동안에는 성서 전부를 읽을 뿐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아주 특별한 훈련도 하게 됩니다.
자기 감상을 이야기한다.
매주 자기 감상을 자기의 말로 발표합니다. 읽고 있는 성서와 자기의 생활을 대조하여 말하게 되므로 사람들 앞에서 행하는 신앙고백과도 같습니다. 이와같이 이렛날마다 계속해 가는 동안에 자기의 신앙을 다른 이에게 말하는 용기도 생기게 되어 적극적인 신자로 바뀝니다. 비록 발표하는 어려움이 끝까지 계속한다 해도, 발표한 후의 기쁨 역시 계속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저 단순한 공부나 머리의 훈련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신앙 실천이며, 믿음의 기쁨을 더불어 나누어 누리는 백 주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을 바이올린 연습에 비긴다면, 선생님이 말로써 이론만을 설명해도 바이올린의 소리는 나지 않으므로 학생이 자기 스스로 실제로 켜는 훈련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서 백주간도 마찬가지여서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학생(참가자)이 실제로 성서를 읽고 더듬어 찾으며 서툴지라도 자기 말로 마음에 느끼는 바를 발표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의 말을 듣는다
매주 거의 두 시간을 지도자의 말이 아닌 동료 참가자의 이야기를 그들 자신의 음성으로 듣는 것인데, 참을성이 필요한 힘든 면이기도 합니다. 다른 이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생각보다는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가 곧 발표해야 할 것에 정신이 팔려 다른 이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을 때도 있고, 자기가 발표한 후에는 신경이 흥분되어 남의 말이 들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자기 감정을 가다듬어 발언하는 이의 말을 경청하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각자의 발표라기보다 사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을 통하여 신비로운 성령의 놀라운 은총에 의한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귓전에 흘려보내 버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므로 화술이 능한 이의 말만이 아니라 말솜씨가 서투른 이의 이야기도 마음 모아 듣도록 합시다.
다른 이의 말에 겸손히 귀기울여 듣는 사이에 동료의 말뿐 아니라 고요한 침묵중에 속삭여 오시는 하느님의 말씀에도 서서히 마음의 문이 열리어 들을 줄 알게 됩니다.
진정 하느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을 걸어 오십니다. 사무엘 소년처럼 우리도 “주님, 말씀합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 (1사무 3,9) 하고 언제나 응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3. 신앙을 키운다.
이 성서 백 주간을 공부하는 동안에,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배우면서 참가자들의 마음도 점차 빛을 받아 변하여 하느님을 더울 잘 알게 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마음의 친교도 깊어집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인이므로 교회의 전통적인 성서 해석과 성서 읽기를 그대로 따르며 믿음의 마음으로 성령의 및과 인도하심을 기원하면서 읽어 나갑니다. 그것은 성서를 세계적으로 인정된 한 문학 서적을 읽는 그런 읽기 방법과는 전연 다른 것입니다.
참가자는 공부 시초부터 믿음의 마음으로 성서를 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시대와 세기를 초월하여 오늘도 끊임없이 무한한 사랑의 신비를 계속 전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씀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며 감탄과 경이의 찬미를 바칩니다.
이런 마음으로 계속 읽어 가면 비단 성령 강림 날만이 아니라 천지창조 이래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성령의 충만한 은총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또한 성서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모습 안에 우리 자신의 모습도 나타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반성과 회심으로 인도되어 “나에게로 돌아오라.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즈가 1,3) 하신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게 됩니다.
익어 나가는 동안 우리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신 분”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안내되어 갑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죽음과 묻히심과 부활의 빠스카 신비에 초대되어, 그리스도의 빠스카 신비의 재현인 미사 성제의 “신앙의 신비”를 보다 깊이, 보다 명확하게 깨닫게 됩니다.
또한 오늘날에도 역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빠스카의 신비로운 업적을 계속 행하시며 성령과의 친교 안에서 우리의 성부께로 인도하고 계심을 똑똑히 알게 됩니다.
나자렛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시편 기도를 “나”라고 하시며 읊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부여, 나는 밤낮 없이 당신께 부르짓나이다”라는 시편의 탄식을, 부활하시어 살아 계신 지금도 교회를 통하여 계속 부르짖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도 우리 입을 통하여 우리와 더불어 “나”라고 하며 부르짖고 계시는 것이지요. 성서 전체의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편 기도의 맛스러움이 자신 속에서 더욱 풍성한 진미로 맛들게 됩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빠스카 신비를 중심으로 하여 살면서 3년간 긴 묵상회에 참석하고 있는 셈입니다.
성서 백 주간은 어떤 의미에서 신앙의 기초, 토대를 이루는 기간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이 토대가 튼튼해지면, 더욱 상세한, 혹은 좀더 전문적인 연구에도 쉽게 진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집에서 성서를 읽는다
참가자는 주마다 모임에 출석하기 위하여 성서의 몇 장을 배분표에 있는 대로 집에서 읽습니다.
읽기 전에 눈을 감고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성령의 비추심을 기원하고 읽은 후에도 그렇게 합니다.
성서를 읽으면서, 읽고 있는 각장을 짧게 정리하여 네댓 줄씩 적어 놓습니다. 이것은 후에 복습할 때 도움이 됩니다.
다 읽고 나서 잠시 눈을 감고 돌이켜보면 자기 마음에 남은 말이라든가, 성서에 나오는 인물의 태도나 행동 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반모임 때에 느낌으로 발언할 사연이 되는 것입니다. 이 것을 잊지 않도록 적어 두십시오. 이와같이 모임 때에 바칠 기도도 준비합니다. 그러나 적어 놓은 것은 기억하기 위한 것이므로 집회때에 그냥 읽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말로 감상을 발표해야함을 잊지 마십시오.
또한 끝까지 결석하지 않고 참여하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협력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그들도 들을 수 있도록 소리내어 읽기를 권고합니다. 가족도 함께 백 주간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5. 모임에 출석한다.
모이는 사람들에 따라 그룹에도 개성이 있습니다. 어떤 그룹이든 참가하기로 결정하고 시작한 이상은 백 주간을 끝까지 계속할 각오가 필요합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성서를 읽을 것과 매주 출석할 일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성령께 기도하지만, 그와 똑같이, 참가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빛을 받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에서 놀라울 만큼 신비스러운 성령의 힘에 의한 말씀을 듣고 자기 자신이 변화되기 위함입니다.
비판과 평가를 피하고 서로 지지하고 도우며 서로 기도한다면 함께 사는 형제 자매와 같은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성서 백 주간의 은혜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성서 백 주간의 방법으로 도움책을 사용하면서 성서 전부를 통독하였습니다. 그들이 십수년 도안에 내놓은 여러 가지 의견과 보고서를 보면 확실히 공통적인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을 들여 꾸준히 읽어 온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 아래 놀랄 만큼 탁월한 은총을 받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은총은 성서를 어느 순간에 깨달았다든가 곧장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그런 식이 아니라, 3년 가까이 “충실히 성서를 읽고 모임에 참석한다”는 노력을 쌓아 올린 공덕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신자들의 생활 면에서
이 모임에 참가하게 되면, 주마다 만나고 그때마다 같은 음성을 들으면서 각자의 마음이 차차 개방되어 서로가 동료 의식을 품게 되고, 그때까지 느꼈던 고독이나 고립감에서도 해방됩니다. 이 체험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나 날마다 함께 생활하고 있는 수도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교회 공동체를 일원임을 자각하고 의식하게 되면서 그리스도의 형제 자매로서의 사귐이 얼마나 힘찬 지지가 되는지를 체험합니다. 주마다 있는 느낌 나누기를 통하여 알지 못하던 이웃을 서로 잘알게 되고 자기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공동체와 더불어 공동체를 위해서도 기도하게 됩니다.
하느님이 자애넘치는 어버이처럼 친근한 분으로 느껴져, 찬미와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신자는 “오늘” 들려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써 희망을 얻습니다. 특히 세례성사의 은총은 받는 그때뿐이 아니고 계속 살아가는 은총임을 알아, 세례에 의한 하느님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사명도 깨닫게 됩니다.
미사 성제는 노예 상태에서의 구원의 실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도 오늘 구원됩니다.”
미사 때에 낭독되는 구원의 말씀과 사제의 기도, 자기들의 응답의 의미도 깊이 음미하게 되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엮어 가는 나날의 삶도 점차 깊어집니다.
베드로의 서간(1베드 3,15-16)에 있듯이 신앙이나 교회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면 자신을 갖고 두려움 없이 대답하게 되며, 성서 전부를 통독한 큰 기쁨도 함께 나누게 됩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신명기에 “부모는 자녀들에게 되풀이하여 가르치라”고 하였거니와, 가정에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아이들에게 들려 주고 아이들의 질문이나 의문에도 응하게 됩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이 가정에서 열심히 성서를 읽고 주마다 모임에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진하여 공부하게 됩니다.
부부가 함께 참가하면 공통되는 화제로 마음이 열려 가정생활도 원만해집니다.
성서를 읽음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에 눈뜬 신자는 복잡한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부정이나 악을 민감하게 느끼게 보게 되어 사회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성서 전부를 통독한 후에도 하느님의 말씀을 더 깊이 음미하고, 말씀에 의해 성장하고 힘을 얻고자 하는 희망에 자극되어 묵상회나 영성회에 참가하면서 영적 양식을 찾게 됩니다.
오늘의 사회에서,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서 전력을 다하여 활동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루가 11,28)
마치면서
❋엠마오로 향해 걸어가는 두 제자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두 사람이 …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 동안의 모든 사건에 관해서 … 토론하고 있는데 예수 친히 … 동행하시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의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루가 24,13 이하)
❋ 두 제자는 나자렛 예수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고 있었으나 그 참모습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 두 제자는 걸음을 멈추며 찬찬히 예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런 고난을 겪고 자기 영광을 누리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예수께서는 … 빵을 …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리어 예수를 알아보았다.”
❋ 이와같이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는 하나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는 구약성서 시초부터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 나자렛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통한 빠스카 신비를 알고 있다면 구양성서의 의미도 뚜련이 밝혀지며 올바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 우리도 걸음을 멈추고 진지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합시다.
예수께서는 지금도 교회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예언자들을 통해 조상자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히브 1,1-2)
『성서백 주간』차례 총람
구약성서 역사 편
성서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021
성서와 이스라엘의 역사 · · · · · · · · · · · · · · · · · ·022
구약성서 · · · · · · · · · · · · · · · · · · · · · · · · · · 026
창세기 · · · · · · · · · · · · · · · 029
출애급기 · · · · · · · · · · · · · · 045
레위기 · · · · · · · · · · · · · · · 067
민수기 · · · · · · · · · · · · · · · 081
신명기 · · · · · · · · · · · · · · · 096
여호수아기 · · · · · · · · · · · · · 114
판관기 · · · · · · · · · · · · · · · 122
룻기 · · · · · · · · · · · · · · · · ·131
사무엘기 · · · · · · · · · · · · · · 134
열왕기 · · · · · · · · · · · · · · · 147
전승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64
구약성서 성립사(成立史)표 · · · · · · · · · · · · · · · · · 172
왕국 연대표 · · · · · · · · · · · · · · · · · · · · · · · · · 174
구약성서 예언 교훈 편
예언서 실마리 · · · · · · · · · · · · · · · · · · · · · · · · 217
아모스서 · · · · · · · · · · · · · · · · · · · · · · 221
호세아서 · · · · · · · · · · · · · · · · · · · · · · 229
이사야서 · · · · · · · · · · · · · · · · · · · · · · 238
미가서 · · · · · · · · · · · · · · · · · · · · · · · 255
스바니야서 · · · · · · · · · · · · · · · · · · · · · 261
나훔서 · · · · · · · · · · · · · · · · · · · · · · · 265
하바꾹서 · · · · · · · · · · · · · · · · · · · · · · 268
예레미야서 · · · · · · · · · · · · · · · · · · · · · 272
애가 · · · · · · · · · · · · · · · · · · · · · · · · 293
바룩서 예레미야의 편지 · · · · · · · · · · · · · 295
오바디야서 · · · · · · · · · · · · · · · · · · · · · 301
에제키엘서 · · · · · · · · · · · · · · · · · · · · · 302
이사야서 제2부 · · · · · · · · · · · · · · · · · · 321
에즈라서 느헤미야서 · · · · · · · · · · · · · · · 334
하깨서 · · · · · · · · · · · · · · · · · · · · · · · 347
즈가리야서 · · · · · · · · · · · · · · · · · · · · · 350
말라기서 · · · · · · · · · · · · · · · · · · · · · · 359
요엘서 · · · · · · · · · · · · · · · · · · · · · · · 365
이사야서 제 3부 · · · · · · · · · · · · · · · · · · 372
즈가리야서 제2부 · · · · · · · · · · · · · · · · · 383
역대기 · · · · · · · · · · · · · · · · · · · · · · · · 390
예언서 마무리 · · · · · · · · · · · · · · · · · · · · · · · · 406
교훈서 실마리 · · · · · · · · · · · · · · · · · · · · · · · · 409
잠언 · · · · · · · · · · · · · · · · · · · · · · · · 411
욥기 · · · · · · · · · · · · · · · · · · · · · · · · 415
아가 · · · · · · · · · · · · · · · · · · · · · · · · 419
전도서 · · · · · · · · · · · · · · · · · · · · · · 424
요나서 · · · · · · · · · · · · · · · · · · · · · · 427
토비트서 · · · · · · · · · · · · · · · · · · · · · ·432
유딧서 · · · · · · · · · · · · · · · · · · · · · · 436
에스델서 · · · · · · · · · · · · · · · · · · · · · ·440
마카베오서 · · · · · · · · · · · · · · · · · · · · 443
다니엘서 · · · · · · · · · · · · · · · · · · · · · ·452
집회서 · · · · · · · · · · · · · · · · · · · · · · · 463
지혜서 · · · · · · · · · · · · · · · · · · · · · · · 468
시편 · · · · · · · · · · · · · · · · · · · · · · · · 473
구약성서 마무리 · · · · · · · · · · · · · · · · · · · · · · · 485
성서와 이스라엘의 역사 · · · · · · · · · · · · · · · · · · · 487
구약성서 성립사표 · · · · · · · · · · · · · · · · · · · · · · 492
왕국 연대표 · · · · · · · · · · · · · · · · · · · · · · · · · 494
신약성서 편
머리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517
구약성서에서 신약성서로 · · · · · · · · · · · · · · · · · · · · 519
주 예수 그리스도 생애의 주요 사건 · · · · · · · · · · · · · · 525
마르코 복음서 · · · · · · · · · · · · · · · · · · 529
사도 바울로에 대하여 · · · · · · · · · · · · · · · · · · · · · · 543
데살로니카 전서 · · · · · · · · · · · · · · · · · 547
데살로니카 후서 · · · · · · · · · · · · · · · · · 550
갈라디아서 · · · · · · · · · · · · · · · · · · · · 552
고린토 전서 · · · · · · · · · · · · · · · · · · · 557
고린토 후서 · · · · · · · · · · · · · · · · · · · 565
로마서 · · · · · · · · · · · · · · · · · · · · · · 571
필립비서 · · · · · · · · · · · · · · · · · · · · · 578
필레몬서 · · · · · · · · · · · · · · · · · · · · · 582
골로사이서 · · · · · · · · · · · · · · · · · · · · 584
에페소서 · · · · · · · · · · · · · · · · · · · · · · 588
마태오 복음서 · · · · · · · · · · · · · · · · · · · 593
히브리서 · · · · · · · · · · · · · · · · · · · · · · 614
루카 복음서 · · · · · · · · · · · · · · · · · · · · · 621
사도행전 · · · · · · · · · · · · · · · · · · · · · · 633
디모테오 전서 · · · · · · · · · · · · · · · · · · · 643
디모테오 후서 · · · · · · · · · · · · · · · · · · · 647
디도서 · · · · · · · · · · · · · · · · · · · · · · · 650
야고보서 · · · · · · · · · · · · · · · · · · · · · · 653
베드로 전서 · · · · · · · · · · · · · · · · · · · · · 656
유다서 · · · · · · · · · · · · · · · · · · · · · · · · 660
베드로 후서 · · · · · · · · · · · · · · · · · · · · · 662
요한의 편지에 대하여 · · · · · · · · · · · · · · · · · · · · · 665
요한 3서 · · · · · · · · · · · · · · · · · · · · · · 666
요한 2서 · · · · · · · · · · · · · · · · · · · · · · 667
요한 1서 · · · · · · · · · · · · · · · · · · · · · · 669
요한 묵시록 · · · · · · · · · · · · · · · · · · · · · 675
요한 복음
첨부파일 성서 백주간 길잡이.hwp
서 · · · · · · · · · · · · · · · · · · · · · 689
마리아의 노래 · · · · · · · · · · · · · · · · · · · · · · · · · 701
신약성서 마무리 · · · · · · · · · · · · · · · · · · · · · · · · 703
성서백주간 ― 길잡이
1992년 2월 초판
1995년 5월 개정판
2011년 3월 18쇄
옮긴이 · 박숙안 | 펴낸이 · 이형우
© 성서백주간 모임
본도출판사
등록 · 1962년 5월 7일 라15호
718-806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34의 1
왜관 본사 · 전화 054-970-2400 · 팩스 054-971-0179
서울 지사 · 전화 02-2266-3605 · 팩스 02-2271-3605
www.bundobook.co.kr
IBSN 89-416-9507-8 03
첫댓글 "신자라면 누구나 일생 적어도 한 번은 성서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묵상해 나가면서 기도중에 이를 삶으로 옮기는 것이 도리인줄 알면서도 쉽사리 엄두를 못 낸다. 그것은 어쩌면 '저 많은 글을 언제 다 읽어 치우지'하는 마음이 앞서서 그런지 모르겠다. 오히려 '생명의 양식을 이토록 푸짐하게 베풀어 주셨으니 얼마나 좋은가'하면서 평생 두고두고 고마워할 일이다. 바로 그렇게 성서 백주간은 공부할 책이 아니라 먹을 음식으로 생명의 말씀을 만나도록 도움을 준다" (장익 주교,1995년 성서백주간 개정판 도움책 길잡이, 2p)
이 책자는 (성서백주간 도움책) 하느님을 더 잘 알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더 잘 알기를 갈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작은 모임"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마르쎌 르 도르즈 신부, 1995년 개정판 도움책 길잡이, 3p)
성서백주간은 평신도 사도직 프로그램이다. (물론 사제와 수도자에게는 더욱 좋다) 사제들의 사목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열악한 일부 국외 지역들 두바이, 캐나다, 홍콩,미국,베트남등에서 평신도 형제자매들이 열심히 하던 모습을 보았다. 지금도 여전한지 아니면 모두 사라졌는지는 모르지만....혹시 이 자료가 외국에 오지에 있는 이들의 그물망에 걸려 도움을 받을 수도 있어 게시 첨부한다.
도움책 길잡이 24쪽 페이지를 입력해준(2012년경?) 송향미 엘리사벳 작은 따님에게 감사와 축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