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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의 불꽃놀이 or 자유의 횃불을 들다
-4월, 자유의 불꽃!
1. 어른은 안v돼요! (정혜시점)
2. 검보다 강한 펜의 힘(성수시점)
3. 빗자루와 쓰레받기(정혜시점)
4. 투표소 광경(정혜시점)
5. 자유의 횃불을 들다 (성수시점)
6. 우리 딸 좀 찾아주세요.(정혜시점)
7. 4월의 불꽃놀이 (정혜시점)
8. 정호의 죽음(성수시점)
9. 우리는 동지다!(성수시점)
10. 4.19 그날, 우리는 알아요
11. 야구가 뭐예요(성수시점)29매
12. 대통령할아버지의 하야 (정혜시점)
13. 희망의 등불(정혜시점)
1.어른은 안v돼요! (정혜시점)
골목을 빠져나가자, 커다란 공터가 있다.
와와!(큰따옴표 하기)
골목 끝자락에 있는 공터에는 자, 커다란 공터가 있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아이들의 활기찬 함성으로 가득했다. 한겨울 칼바람도 비켜 간다. 설이 며칠 지나지 않은 음력 정월의 골목 바람이라서 은 더 매서웠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공터는 가 넓어 공 던지기나 자치기 놀이하는데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또한 공터는 어른들의 공론장소나 선거철 유세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 요즈음은 선거철이라 공터가 선거 유세장으로 바뀌기도 했다. 하루도 공터가 비는 날이 없었다. 희한하게 오늘은 공터가 텅텅 비어있었다. 아이들의 소리로 그 공터는 왁자지껄했다.
정혜는 세뱃돈으로 산 공을 들고 오빠와 같이 공터로 갔다. 벌써 호성이 오빠와 재열이가 나와 있었다. 도 오빠와 골목친구들과 공 던지기 놀이를 하기로 하고 공터에 모였다. 설날 받은 세배 돈으로 정혜는 새 공을 샀기 때문이다.
“공 가져왔네. 공던지기 놀이하자.”
재열이가 반겼다. 공 던지기는 공격자가 공을 주먹으로 쳐서 날리면 수비들이 공을 잡아 공격자를 맞히는 놀이다.
“그러자.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할까?” 하자.”
오빠가 말했다.
“형, 정혜 공이니까 정혜가 먼저 하게 하자.”
재열이가 의견을 냈다.
“나도 순서 정하는 게 좋아.”
정혜가 공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괜찮아 재열아, 내 공이라고 내가 먼저 하면 안 되고 순서 정해서 해.”
“우리끼린데 뭐 어때.”
“우리끼리니까 더 규칙을 지키며 놀아야지.”
정혜는 규칙을 지키자고 했다.
“맞아. 규칙을 정하지 않으면 우왕좌왕하게 돼. 그래서 반칙도 생기는 거고.”
호성이 오빠도 그러자고 했다. 의견을 냈다.
“정혜 말대로 우리끼리니까 더 정확하게 해야 하는 게 맞아.”
오빠가 의견을 정리했다. (의도성이 보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해야...)
모두 의견에 따라 경기 규칙을 정하기로 합의했다.
“근데 너희들 들었어? 지난 설날에 자유당 후보가 설탕과 밀가루, 검정고무신을 집집마다 돌렸다는데. 그게 바로 반칙 아냐? 그것도 일종의 규칙을 위반한 거라고 봐!”
책을 많이 읽은 호성이 오빠는 아는 것도 많았다. 재열이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울 할머니는 귀한 거 줘서 자유당 후보를 엄청 고마워하시던데…. 귀한 거니까 받고 마음에 드는 후보 찍으면 안 되나?”
“그러긴 한데. 받고 나면 마음대로 투표하는 게 어렵지 않을까?”
호성 오빠가 말하자 어떤 게 맞는지 헷갈렸다. (누가?)
“자자, 애들은 놀기를 잘하는 것도 국력을 키우는 거야. 정치는 어른들의 일이고.” (규칙, 국력.. 의도성이 느껴지는...)
“맞다. 그럼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할까?”
“좋아!”
호성오빠와 재열이가 동의했다. 다들 순서를 정하기 위해 동그랗게 모여 뒤돌아섰다. 서로 먼저 공격자가 되기 위해 왼손을 하늘을 향해 치켜들고 오른손 검지로 왼손 등에 주름을 만들었다. 그것이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르게 표현)
“자, 그럼 한다.”
가위바위보!
“와! 내가 이겼다.”
보를 낸 정혜는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 (굳이 순서를 정하자고 한 정혜인데?) 재열이가 소매 끝으로 코를 쓰윽 닦으며 말했다. (재열이 묘사 더 빠르게 나와야./ 다른 아이 같음.)
“어, 약속한 것도 아닌데 남자들은 똑같이 주먹을 냈네. 이렇게 마음이 딱딱 맞아야하는 거다. 안 그래 형들! 헤헤!”
재열이는 감기가 들었는지 코맹맹이 소리를 하면서 익살을 떨었다. 재열이는 이 추운 날씨에 외투도 입지 않았다. 정혜와 오빠는 지난 설에 엄마가 손수 지어준 따뜻한 누비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호성이 오빠는 토끼털 귀마개에 두툼한 솜 외투까지 입고 있었다. (재열이 모습이 좀 더 빨리 나와줘야...)
“재열이 너가 이거 해! 감기 들었잖아.”
정혜가 목에 두르고 있던 누비 목도리를 재열이 목에 둘러 주었다.
“어? 괜찮은데.”
재열이 얼굴이 빨개졌다.
“정혜 넌 내 귀마개 해!”
호성이 오빠가 귀마개를 벗어 정혜 귀에 씌어주었다.
“호성이 오빠 고마워!”
“자, 각자 위치로. 내가 심판 볼게. 정혜는 공 던질 준비하고.”
오빠가 말했다.
“좋았어. 각자 위치!”
재열이와 호성이 오빠가 손바닥을 높이 들어 짝! 소리가 나게 마주치고, 오빠가 정해 준 위치로 달려가서 공 받을 태세를 취했다. 정혜는 오빠가 그려 놓은 반원 안에 섰다.
“자, 간 닷!”
정혜는 왼손바닥에 공을 올리고 높이 띄우더니 오른손 주먹으로 힘껏 쳤다.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공중으로 날았다. 수비진은 공을 향해 뛰었다.
“어어!”
공은 호성이 오빠와 재열이의 머리 위를 가뿐히 날았다.
“와! 내 동생 공 잘 친다. 한 살 더 먹더니 주먹 힘이 세졌어.”
오빠 시선이 하늘 높이 날아가는 공을 따라갔다. 가며 말했다.
그때,
챙그랑!
공은 동네에서 호랑이라고 소문난 평양댁 아주머니 집 유리창을 깨고 말았다. 공은 창틀에 올려 져 있는 빈 화분에 맞아 떨어지면서 유리창을 깨고 말았던 것이다.
삐거덕
대문이 열리더니 물벼락이 날아왔다. 다행히 물벼락은 아이들한테 맞지 않고 바닥에 떨어졌다.
“이것들아, 여기서 떠들고 놀지 말라고 했갓어. 이제 유리창까지 깨고?” (공터인데 놀지 말라니...)
고함 소리가 대포소리 보다 더 컸다.
“이끄! 큰일 났다. 도망가자!”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빠가 정혜 손을 이끌며 소리쳤다. 물은 금세 살얼음이 되었다.
“이놈들아, 지금 내 딸이 비싼 돈 주고 과외공부 하는 시간이란 말이다. 니들이 시끄럽게 하면 되갓어? 저리 가서 놀지 못 하갓어?”
호랑이 아주머니가 소리를 더 크게 질렀다.
호성이 오빠 옆집에 사는 호랑이 아주머니는 몇 달 전에 이사왔다. 그 아주머니가 호성이 오빠네 마실 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도입에 공터 주위 그림이 그려지게 묘사 필요. 공터에 붙어서 호랑이 아주머니 집과 호성이 오빠 집이 있나요?)
“호랑이 아주머니는 남대문 시장에서 김밥과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를 해. 6.25 전쟁 때 평양에서 피난 오다가 남편과 아들을 잃고 딸만 데리고 겨우 살아나왔는데, 그 딸이 이번에 고등학교 3학년이 된다고 했어. 공부를 잘해 명문여고에 다니고, 그 딸이 아주머니의 희망이라고 하시더라.”
‘나는 우리 딸 혜숙이를 위해 산 다우.’
아주머니는 그 딸을 명문대학에 보내고 싶어 명문대 생을 입주시켜 과외를 시킨다고 했다.
“그 형, 나중에 정치가가 되려고 정치학과에 다닌다고 하더라. 한 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소문에 의하면 엄청 잘 생기고 천재들만 모이는 명문대학에서도 장학생이라고 호랑이 아주머니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시더라.”
호성이 오빠가 호랑이 아주머니에 대해 알려 주었다. 설명했다.
“에이, 그 형 꿈이 정치가야? 정치가 뭐가 좋다고. 부정선거나 하면서.”
오빠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머리를 뒤로 넘기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맞아 맞아!”
아이들은 구정물 세례를 받고도 우리는(1인칭 시점일 때) 아쉬워 헤어지지 못하고 담벼락 밑에 붙어 맞장구를 치면서 떠들었다.
“니들 여기서 자꾸 떠들래? 구정물 맛을 정말 보갓어? 유리는 누가 해 넣을 거야?”
아주머니가 연탄재를 얼어붙은 얼음 위에 던져놓고 연탄집게로 툭툭 깨면서 말했다.
“이크, 또 나오셨다. 어서 도망가자.”
그때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괜찮아요. 저 지금 나갔다 오겠습니다. 아주머니!”
“아이고 선생님, 야들이 떠들어서 공부가 안 되어서 그라지요?”
그는 짧은 머리에 대학생 교복을 입고 있었고, 책가방을 옆에 끼고 있었다. 딱 한 눈에 봐도 호랑이 아주머니가 말한 그 과외 선생님이었다.
‘와! 멋지다.’
정혜는 호기심 가득한 눈을 가늘게 뜨고 감탄했다. 그리고 오빠를 돌아보며 손나발을 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빠, 혹시 우리가 말하는 거 들었을까?’
“글쎄?”
‘들을라. 작은 소리로 말해.’
그 대학생이 담벼락에 가방을 올려 두고 우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정혜와 아이들은 잔뜩 긴장했다.
‘오빠! 큰일 났다. 우리가 흉본 거 듣고 혼낼 건가 봐! 우리 쪽으로 온다.’
정혜는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빠 귀에 대고 말했다.
“얘들아, 나도 공 던지기 잘하는데 끼워 줄래?”
“네? 저, 정말요?”
정혜는 뜻밖의 제안에 들뜬 목소리로 말까지 더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어른은 안돼요!”오빠가 정혜 속도 모르고 딱 거절했다. (하나의 지문, 이어쓰기)
“나 어른 아니야, 학생인걸, 대학생.”
“오빠. 우리 대학생 선생님 끼워 주자. 선생님이 우리랑 놀면 호랑이 아주머니가 구정물 바가지는 안 씌울 거야.”
“하하, 네 말이 맞을 지도 모르지.”
그 대학생이 호탕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다면 우리 의논해야 해요. 우린 언제나 민주적이거든요.” (이런 분위기로 몰아가는 것 같은...)
오빠 말에 정혜는 골목동무들과(왜 골목동무인지?) 머리를 맞대고 잠깐 의논을 했다. 모두 동의했다
“우리랑 같이 놀면 우리가 뭐라고 불러요? 선생님?”
“선생님? 그건 아니고, 내가 대학교 2학년이니까 형도 그렇고…. 좋아, 삼촌이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내 이름이 성수니까 성수 삼촌이라고 불러.”
“네. 좋아요. 저는 정호예요, 강정호! 혁명국민학교 6학년.”
“박재열. 4학년이에요.”
“이호성. 5학년이에요.”
“4학년 강정혜예요. 정호 오빠가 제 오빠예요. 우리 오빠는 공부도 잘하지만 착해요.”
“와, 모두 똑똑하게 생겼네. 끼워주어 영광이다. 지금 너희들이 하는 놀이가 내가 어릴 때 놀던 거와 똑 같네. 고향에 온 기분이 들어. 요즈음 고향생각이 자주 났거든.”
“성수 삼촌 고향이 어딘데요?”
호성이 오빠가 물었다. 묻자 성수 삼촌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고향은 경상남도 고성. 소가야 무량리라는 마을이지. 참 아름다운 마을이란다. 근데 나, 우리 동네에서 대장 노릇했다. 앞장서는 것을 무척 좋아했거든, 하하하!”
성수 삼촌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 어릴 적 친구들이 꼭 너희들 같았어. 나를 포함해 모두가 개구쟁이였지.”
정혜는 성수 삼촌의 말을 들으며 엄마 고향을 그려보았다. 고향이 궁금했다. 정혜 엄마 고향은 이북이라고 했다. 엄마는 고향이라는 말만하면 이북에 있는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정혜는 얼굴도 모르는 외할아버지가 그리웠다. 엄마는 이게 모두 6.25 전쟁 때문이라고 했다. 성수 삼촌도 고향이 그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국민학교까지만 고향에서 다녔어. 그래서 늘 그 어린 시절이 그리워.”
성수삼촌의 고향은 참 평화롭고 안온한 마을이라고 했다. 마을 뒤편에는 병풍처럼 무량 산이 둘러져 있고, 푸르디푸른 청솔가지에는 사시사철 학들이 날아들었단다.
동네 마당에는 언제나 아이들의 소리가 활기를 띠었다고했다.
“꼭 너희들이 놀고 있는 이 공터 같았지.”
그리고 성수 삼촌에게는 멋진 삼촌이 있다고 했다. 자신을 무척 사랑해 주었고, 서울에서 명문대학에 다녔으며, 성수 삼촌은 자신의 삼촌이 굉장히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그 삼촌의 이름이 ‘이교수’라고 했다.
그래서 교수가 되었는지도 모른단다. 성수 삼촌은 교수 삼촌을 닮기 위해 늘 열심히 노력했단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선망의 대상을 정하고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아.”
“아, 나는 방정환 선생님처럼 될래요. 저는 동화작가가 될 거거든요.”(누가 하는 말?)
“하하! 좋은걸.” 아. 아직 정하지 못했으면 생각해 봐.”
그리고 성수 삼촌은 잠시 뜸을 들였다.(왜?) 28.3매
2. 검보다 강한 펜의 힘(성수시점)
성수는 서울 명문대학에 합격하고 서울로 오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창밖 들판에는 아직 하얀 눈이 남아있었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가로수가 차창 밖으로 휙휙 빠르게 지나갔다. 성수는 가방 속에서 책 한권을 꺼내 손으로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성수가 5학년 때 일이었다. 겨울 방학 때 좋아하는 교수 삼촌이 집에 왔다. (실제 이름인가 봐요. 아직 대학생인데 교수 삼촌하니 헷갈려서...)
“삼촌!”
“하하, 우리 성수 그동안 많이 컸네? 어, 얼굴에 여드름도 나고?”
교수 삼촌이 성수를 안아주며 말했다.
“어, 뽀뜨락시인데….”
얼굴이 빨개진 성수를 보고 삼촌은 ‘이제 남자가 되는 기라.’ 하며 웃었다.
5학년인 성수는 삼촌이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는 지 늘 궁금했다.
삼촌이 외출한 날 삼촌 공책에 빽빽하게 쓰인 글을 보았다. 한문과 영어, 한글이 뒤섞여 있어 어린 성수의 눈길을 끌었다.
민주주의, 자유, 인권, 해방, 테모크라시….
‘와! 눈알이 뱅뱅 돈다 아이가.’
성수가 이해 못하는 단어는 오직 ‘테모크라시’였다. 책상 위에는 책 한 권이 함께 있었다.
‘테모크라시?’
“삼촌, 테모크라시가 뭐꼬?”
삼촌이 외출에서 돌아오자 대뜸 물었다. 삼촌은 대답대신 성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이 다음에 대학생이 되면 제일 먼저 읽어볼 기다.’
“나는 대학교 시험이 끝나자마자 그 책을 몇 번이나 읽었단다. 어릴 때 뜻도 모르는 ‘테모크라시’ 라는 말이 멋있어 그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지도 모르지. 그래서 삼촌이 교수로 있는 학교 정치학과를 선택했어. 나는 늘 우리 삼촌을 닮고 싶었어. 삼촌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설레고 따뜻해져.”
“그래서 우리 보고도 삼촌이라 부르라 한 거네요.”
삼촌이 없는 정호가 부러운 눈으로 말했다.
“하하, 그래 맞다.”
“정치를 하려고 정치학과를 택했고요.”
성수는 호성이의 그 말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그건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삼촌처럼 나도 교수가 되고 싶어 정치학과에 지원했던거지.”
“이름도 교수! 직업도 교수! 그래서 이름도 잘 지어야겠네요?”
재열이가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호성이 오빠도 교수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치 호성이 오빠!”
“그래? 열심히 해라.”
성수는 서울 와서 교수 삼촌 집에서 일 년을 함께 살았다.
“시골 부모님이 농사지어 매월 보내주는 학비가 부담스러웠어. 그래서 일 년만 삼촌댁에서 살고, 너희들이 말하는 호랑이 아주머님의 딸 과외를 위해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된 거야. 이사하는 날 삼촌이 무언가를 내게 주셨어.”
교수 삼촌이 소중히 여기는 만년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그 만년필을 처음 상으로 받아와서 어린 조카에게 얼굴이 상기되어 자랑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성수야, 이게 만년필이라는 건데, 학교에서 공부 제일 잘한 학생에게 주는 상이란다. ’우등상’ 멋지지 않니?’
삼촌은 ‘우등상’을 강조했다.
‘에이, 나는 맨날 우등상 받는데. 서울에서는 금으로 상으로 주나? 우와! 금이 번쩍번쩍하네. 근데 만년필이 뭐꼬?’
‘여기다 잉크를 넣어 글을 쓰면 요술 펜처럼 잘 써져. 글을 쓸 때마다 잉크를 안 찍어도 되니까 편리하지.’
하루는 삼촌이 그 만년필이라는 것을 두고 외출한 적이 있었다.
성수는 그 만년필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연습장에 낙서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삼촌 공책에 있는 글을 베껴 쓰기도 했다.
특히 테모크라시를 크게 쓰고 여러 번 썼다. 한참을 쓰다 보니 글씨가 점점 희미해졌다.
‘어? 고장 나뿐나?’
만년필에 대해 삼촌이 설명해 주었지만, 혼날까봐 머릿속의 기억이 다 지워져버린 것 같았다.이 하애 졌다.(잉크를 넣어쓴다고 알려줬는데.)
잠시 후 삼촌 발소리가 났다. 이불을 쓰고 자는 척했다.
“녀석, 일찍도 잔다.”
삼촌은 만년필을 꺼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 이불을 쓰고 있으려니 눈물이 삐쭉삐쭉 나왔다.
“어? 벌써 잉크가 다 달았나?” 하며 서랍 여는 소리가 드르륵 났다.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 같았다. 소중한 만년필이 고장 났는데도 놀라지 않는 삼촌이 이상했다. 성수는 궁금해 이불을 살짝 들쳐보았다. 삼촌이 잉크병을 들고 만년필에 넣은 다음 공책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역시 좋은 만년필은 잉크가 끊기지 않고 잘 써진단 말이야.”
“어? 삼촌, 만년필 고장 안 났나? 정말 글 써지나?”
“아이고 깜짝이야! 아직 안 잤나? 고장이 왜 나? 잉크가 없네.”
“삼촌! 내 숨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아이가! 으앙!”
“녀석! 고장난줄 알았어? 하하! 그래서 울었구나?”
삼촌이 큰 소리로 웃었던 생각이 나서 소중하게 받아든 만년필을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삼촌도 그 생각이 나던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검보다, 말보다 펜이 더 강하다는 것 이제 이해하지?”
“소중하게 올바른데 잘 쓰겠습니다. 삼촌!”
“그래, 한번 길을 들어서면 그 길로 끝까지 가는 거 명심하고.(요즘은 가치관이 바뀌어서...) 그리고 그 펜은 펜에 대한 신뢰와 무한한 사랑, 믿음을 불어 넣을 때라야 만이 강한 힘을 얻는 다는 것도.” (납득이 안 됨.)
“네, 잘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멋있는 말인 것 같아요.”
“정혜 말이 맞아. 나는 교수 삼촌이 해준 그 말이 멋있어 늘 명심하며 여기까지 왔단다. 그리고 난, 말이야! 나를 삼촌으로 불러주는 조카가 있으면 우리 삼촌처럼 엄청 잘해 줄 수 있을 거 같아.”
성수는 주말이면 아이들과 골목에서 떠들썩하게 놀았다. 그 이후로 호랑이 아주머니의 구정물 세례는 더 이상 없었다.
그날은 혜숙이도 도서관 가다가 합류했다.
“언니가 호랑이 아주머니 딸이죠?”
“뭐? 호랑이 아주머니?”
정혜가 대뜸하는 질문에 혜숙이는 당황해 하더니 금세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그래도 그 호랑이 아주머니가 얼마나 마음씨가 고운 줄 아니?”
“에이! 엄마라고 두둔하는 거예요?”
성수는 재열이가 하는 말을 거들었다.
“별명이 호랑이이시지만 마음이 따뜻한 분이신건 맞는 것 같다.”
아주머니는 구정물을 뿌릴 때마다 직접 아이들에게 퍼붓지 않았고, 아이들이 미끄러질까 봐 연탄재를 뿌리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유리창 깨진 것도 다음엔 조심하라며 넘어가 준 일도 그렇다. (유리창 깨진 건 어찌 되었나요)
“어쨌던 반갑다. 예쁘고 똑똑하게 생겼네. 모두 씩씩하고 잘 생겼다야.”
혜숙이는 아이들을 칭찬했다.
“언니는 공부도 잘해 명문여고 다닌다고 이 골목에 소문이 쫙 났어요.”
정혜는 혜숙이에 대해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서울은 이웃 사람 얼굴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랐다. (누가 이렇게 알고 있었다는 건가요?)
“햐, 과장이 심하긴 하지만 기분은 좋은데. 너희 모두 마음에 들었어.”
“참, 성수 삼촌! 정혜가 전국 백일장에서 상도 받았어요.”(새로운 정보)
호성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와! 축하한다!”
성수는 정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정혜라고 했니? 이 골목에 소문이 쫙 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정혜네. 나 분발 해야겠는데.호호! 축하한다.”
혜숙이는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지문에 웃는다고 나와 있으니 굳이 대화에 호호! 할 필요 없어요.)
성수는 골목동무들을 만난 이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잊을 수 있었다. 공부도 더 잘 되는 것 같았다. 주말이 기다려졌다. 아이들은 모르는 게 있으면 물었다. 그 아이들의 질문에 척척 대답해 주는 것이 보람되기도 했다. 아이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면 고향동무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교수 삼촌이 해준 말을 고향 동무들에게도 으쓱대며 말해 준적이 있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우리 삼촌이 말했다 아이가.”
고향동무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그기 뭔 말이고? 칼이 올매나 센지 니는 모르나?’
성수도 칼이 엄청 센 줄 알았는데, 삼촌이 그 말을 해서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엄청 멋있는 말인 것 같아 외우고 있었다.
‘삼촌! 이 쪼깨마한 게 어째 칼보다 강하단 말이가?’
교수 삼촌은 성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니가 공부 열심히 해서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다.’
성수는 로망인 삼촌이 하는 말은 뭐든지 멋있어 보였다.
“와! 멋져요. 저도 성수 삼촌처럼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성수 삼촌이 제 로망이에요.”
정혜가 엄지 척을 하며 말했다.
“정혜는 방정환 선생님이 로망이라고 하지 않았나?”
“두 사람을 선망하면 안 되나요?”
“하하, 안되긴…. 내가 정혜 선망의 대상이라니 영광인데.”
성수는 품속에서 그 만년필을 꺼냈다.
“이 만년필이 앞으로 나를 지켜 줄 수호신이란다.”
“아, 그 만년필이에요?”
“맞아, 그 만년필.”
만년필은 오래 되었지만 아직까지 새것같이 반짝반짝 빛났다. 교수 삼촌이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 알 것 같았다.
“와! 금이 박힌 것처럼 반짝거려요.”
재열이가 감탄하며 말했다.
“교수 삼촌이 이 만년필을 내게 주시며 명심하라고 한 말. 너희들은 그 뜻이 이해가지 않겠지만, 나는 지금도 이해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칼보다, 말보다 펜이 더 강하다’는 말.”
정혜 엄마가 아이들을 불렀다.
“정호야, 정혜야, 밥 먹으러 오너라!”
“네, 엄마! 조금만 더 놀다 가면 안 되어요?”
“자자, 들어가 밥 먹어. 다음에 또 이야기 하고.”
성수는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한 참을 서서 곰곰 생각했다.
‘검보다, 말보다 펜의 힘이 더 강하다.’
‘그래, 네 역할을 할 때가 분명 올 거다.’ 24.7매
3. 빗자루와 쓰레받기(정혜시점)
이른 아침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다. 쩌렁쩌렁한 확성기 소리에 정혜뿐만 아니라 새벽잠이 든 동네를 다 깨웠다.
‘오늘은 1960년 3월 15일. 부통령을 뽑는 날입니다. 유권자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투표장으로 가셔서 자유당에 투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지역은 가까운 혁명국민학교가 투표소입니다. 투표장 가실 때는 주민증을 꼭 지참하시길 바랍니다. 자유당, 자유당에 찍으십시오!’
정혜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며칠 전 신학기 급장선거가 생각났다. 정혜는 한 표차로 급장이 되었지만, 영 기분이 찝찝했다. 선생님이 급장후보 김철민을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 급장선거가 있다.”
“네!”
선생님 말씀에 천정이 들썩거릴 정도로 아이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나라에서도 대통령, 부통령 선거가 있다. 학교 급장 선거뿐만 아니라 모든 선거는 공정해야 하는 것 명심하고. 급장 선거야말로 작은 민주주의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 나라의 기둥이 될 테니까. 알았나?”
“네!”
“자진해서 급장 출마할 사람 손들어라. 추천도 받는다. 후보가 된 사람은 주말에 후보 연설을 연습해 온다.”
“제가 급장선거 출마하겠습니다.”
철민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철민이는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고, 급장이었다.
“강정혜 추천해요.”
골목 동무 재열이가 정혜를 추천했다.
“승재 추천해요.”
효정이가 승호를 추천했다. 또 다른 아이가 효정이를 추천했다.
“더 없나?”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아이들 반응이 없자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더 없으면, 김철민, 강정혜, 이승재, 서효정, 네 명이 후보다. 모두 동의하나?”
“네 동의합니다.”
“참, 철민이 할아버지가 자유당 국회의원이신 거 알고 있지? 철민이는 할아버지의 강직함을 닮아 2학년 때부터 쭈욱 급장이 됐다.”
철민이 할아버지가 자유당 국회의원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몇 번을 강조했다. 그것은 지금 밖에서 들리는 확성기 소리에서처럼 철민이를 꼭 급장으로 뽑으라는 말투였다.
작년에 철민이는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했다. 귀한 쵸콜렛을 할아버지가 주었다며 현물공세를 폈다. 정혜는 이번에는 꼭 급장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씩이나 철민이한테 지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승재와 효정이가 기권했다.
결국 또 철민이와 대결을 하게 되었다. 정혜 반은 모두 79명이다.
선생님은 우리 반을 위해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급장으로 뽑으라고 하면서도 김철민 이름을 또 강조했다. 그것은 분명히 철민이가 급장이 되어야한다는 암묵적인 뜻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부정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설날 친척들이 모여 자유당이 주는 선물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정혜는 오빠와 골목 동무들과 주말에 후보 연설 연습을 했다. 성수 삼촌이 함께했다.
“아이들이 공감 할 수 있는 공약을 제시해야 해. 공약한 것은 꼭 실천해야 하고.”
성수 삼촌이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자신만의 특징이 있어야한다고도 했다. 말을 할 때는 동무들 눈을 똑바로 보며 진심을 다해 말해야 한다고 했다.
“동무들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으면 진심이라고 말 할 수 없어. 동무들의 이름을 먼저 외우는 것도 중요 해. 자신감을 가지고 상대한테 기죽지 말아야 하고. 참, 어깨를 쫙 펴는 것도 중요 해.”
“근사해요. 성수 삼촌! 동무들 이름은 꼭 외워야겠어요. 만약 급장이 안 되더라도 동무는 중요하니까요.”
정혜는 주말 내내 반 아이들 이름을 다 외웠다. 79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우기는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특징을 떠올리며 외우니까 쉽게 외워졌다. 그리고 공약도 마음속으로 정해 두었다.
‘성수 삼촌이 ‘검보다 말보다 강한 게 펜’ 이라고 했어. 진심은 통한다는 뜻 일거야.’
드디어 급장선거 날이었다.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 좋아하는 후보에 대해 열띤 선거운동을 벌였다. 교실은 참새 떼처럼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후보 연설은 철민이가 먼저 했다. 가정환경 조건이나 자신 넘치는 행동에 정혜는 약간 주눅이 들었다.
‘성수 삼촌이 주눅 들면 안 된다고 했는데.’
“김철민입니다. 동무들이 나 김철민을 급장으로 뽑아 준다면 최선을 다해 여러분들의 종이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나의 최고의 동무입니다. 세상에서 동무가 제일 좋다는 것을 보여 주겠습니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연설이었다.
“와, 우리의 종이 되겠단다.”
“그럼 우리가 시키는 것 다 하는 겁니까?”
“나하고도 동무 하나요? 우리 집은 가난한데 가난한 사람과도 부자인 후보가 동무가 될 수 있을까요?”
재열이가 아니꼬운 듯이 질문을 했다. 다른 아이들도 질문공세를 했다.
“물론입니다. 가난은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부자인 저의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제게 뭐든 시켜만 주세요. 그리고 한 달에 한번은 간식도 책임지겠습니다.”
철민이는 많은 공약을 내세웠다.
“우! 부자라 다르긴 다르네. 그렇다면 내가 가난 한 건 우리 부모님이 잘못했다는 뜻이 되네요. 말도 안 되어요. 우리 집이 가난 한건 전쟁 때문이라고 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재열이의 그 말에 아이들이 웅성웅성했다. 부자인 아이는 반에서 몇 명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자, 조용히 하고. 철민이는 동무가 되겠다고 그렇게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난 거하고 급장선거하고는 무관하니까 그것으로 자신의 집이 가난한 걸 비관하지마라.”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선생님의 그 말에 재열이가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분한지 씩씩거리기도 했다. 그때 한 여자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종이 된다면, 우리 동무 양순이 책가방도 들어 줄 수 있나요?”
양순이는 약간의 뇌성마비와 중증소아마비아이다. 철민이는 그 말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 물론입니다.”
“그런 질문은 개인적인 것이니까 하지 않는 게 좋다!”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움찔했다. 정혜 차례가 되었다.
“강정혜! 강정혜!”
어른들의 대통령 선거 못지않은 열기가 교실을 뜨겁게 달구었다.
“저 강정혜는 우리 반을 위해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되겠습니다. 또한….”
정혜는 잠시 말을 끊었다.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되겠다고 했는데 그건 무슨 뜻인가요?”
승재가 질문을 했다
“네, 그 뜻은 우리 반 동무들의 모든 의견과 불만 상황을 귀담아 들어 빗자루처럼 쓸어 쓰레받기에 담아 공정하게 수렴하겠다는 뜻이고, 솔선수범해서 교실을 깨끗이 청소하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펜은 칼보다 말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전 말만하거나 급장이 되었다고 해서 그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펜으로 또박또박 글을 쓰듯이 정직하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급장선거는 작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 최고다. 강정혜!”
아이들이 환호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뒤에 서 있어 아이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투표만큼은 자신들의 생각이 반영된 투표를 했다. 승재와 효정이가 개표를 하고 재열이가 확인해서 후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칠판에 ‘바를 정(正)’자를 적어 숫자를 표시했다. ‘正’자 하나가 완성되면 다섯 표다. 정혜와 철민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치열한 경쟁이었다. 후보이름을 부를 때마다 아이들이 연호했다.
“김철민!”
“와! 김철민 한 표!”
“강정혜!”
“우와! 강정혜 한 표 추가다!”
이미 각 이름 앞에는 바를 정(正)자가 일곱 개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각 이름 앞에 네 개의 막대가 그려져 있었다. 승재와 효정이 손에는 달랑 한 표가 남아있었다.
“에! 이 마지막 한 표에 급장이 결정됩니다. 2등은 부급장이 됩니다.”
승재가 뜸을 들이자 아이들은 종이를 펴 보라고 야단이었다. 정혜는 두 손을 모았다.
‘제발!’
정혜는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철민이도 칠판의 숫자와 승재와 효정이 손에 들린 한 장 남은 표를 번갈아 보았다.
“마지막 한 표는 펴 볼 필요도 없다. 그건 김철민 표일테니까 내가 펴 보마!”
“안 돼요. 선생님!”
아이들이 소리 질렀다. 효정이와 승재가 재빨리 접힌 표를 펴서 이름을 읽었다.
“강정혜!”
“와! 강정혜다!”
재열이가 그 표를 받아 확인하고 아이들이 볼 수 있게 높이 치켜들어 이름을 다시 읽었다.
“강정혜!”
“와와! 강정혜!”
정혜도 놀랐다. 자신을 지지한 아이들이 서로 껴안았다. 철민이를 지지한 아이들은 책상을 주먹으로 쳤다. 선생님이 굉장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승재가 발표를 했다.
“강정혜 40표, 김철민 39표! 당선된 강정혜 급장에게 축하를 보내며, 한 표차로 부급장이 된 김철민에게도 축하합니다.”
“부정 투표다. 다시 개표해요!”
철민이는 개표를 다시 하라고 항의했다.
“우리 어린이들은 어른들처럼 부정선거를 하거나 반칙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민주적으로 투표를 했으며 공정한 개표를 했습니다.” (아이답게)
재열이가 큰 소리로 말하자 아이들이 소란해졌다.
“맞아요. 우리 어린이들은 정직해야 해요.”
“맞습니다.”
여기저기서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번 급장선거에서는 무효표도 한 장 나오지 않은, 공정한 투표 결과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민주국가에서 말하는 자유입니다. 강정혜는 급장이 된 소감과 공약을 다시 한 번 말해 주십시오.” (선생님은 가만히 있네요.)
사회를 맡은 승재가 말했다.
“4학년 2반 급장선거에서 당선된 강정혜입니다. 저 강정혜는 공약한 것을 실천할 것을 명세합니다.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동무들의 협조도 필요합니다. 아무리 급장이라지만, 여러분의 협조 없이는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저 강정혜는 말보다 실천으로 옮기겠습니다. 진심을 다하겠습니다.”
“와! 짝짝짝!”
옆 반에서도 결과가 나왔는지 시끌벅적했다. 정혜는 성수 삼촌이 말한 ‘펜은 칼보다 말보다 강하다’라는 그 뜻이 무엇인지 어슴푸레 알게 되었다.
정혜는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되겠다는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3학년 때보다 매일 삼십분이나 일찍 학교에 갔다.
지금 밖에서 나는 저 소리가 정혜는 왠지 불안했다. 28.1매
4. 투표소 광경(정혜시점)
밖에서는 확성기로 치열한 선거 유세가 막바지까지 치닫고 있었다.
“자유당의 부정선거를 막읍시다. 여러분들은 한분도 빠짐없이 투표하여. 주어진 자유민주주의를 행사합시다.”
“야, 니들 죽으려고 환장했냐? 어따 대고 자유당을 비방하는 거야?”
욕설이 오가는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들렸다. 개들도 나와서 컹컹거리며 짖고 있었다. 정혜는 시끄러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시끄러워서 깼구나. 잠이 깼니?”
엄마도 시끄러운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아! 엄마냄새 좋다.”
정혜는 엄마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얘는, 다 큰 게.”
“근데 엄마, 저 사람들은 새벽부터 왜 저래?” (급장 선거할 때 정혜가 아닌 듯)
“자유당은 온갖 부정을 다 저질러서라도 이기붕이를 부통령으로 만들려고 저 난리지.”
“왜 부정 선거를 하는 건대요? 공정하게 하면 되지.”
“부통령이 자기편이 돼야 지들 마음대로 국가를 휘두를 수 있거든. 서민들한테 고무신이나 밀가루, 설탕을 나눠 주면서 자기당 후보를 찍으라고 강요하는 거지. 서민들은 그게 부정 선거라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유권자들은 자유당을 찍는 거고. 그걸 바로잡으려고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고.”
“아무리 귀한 거라도 받으면 안 되잖아요? 어쩔 수 없이 받았다면, 일 잘 할 수 있는 사람 찍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우리 반 급장 선거에서도 철민이가 초콜릿을 돌렸는데도 제가 급장이 된 것 봐요.”
엄마가 한 말이 꼭 급장 선거하던 거와 흡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혜야, 이런 말 들어 봤니?”
“무슨 말?”
“사람은 말이야. 백 번 잘하다가 한번 잘 못하면 그 한 번 잘못한 것만 드러나는 법이거든. 이대통령처럼.”
“대통령 할아버지가 왜?”
“나라를 건국하고 미국에서 많은 공부를 해서 박사까지 되지 않았니?”
“박사 되면 훌륭한 거 아니야? 박사 되기 힘들다던데.”
“그렇지. 그 뿐만 아니라 일본 식민지가 된 대한 제국을 되찾고자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지 않니. 많은 일을 하고도 저렇게 국민들한테 환영을 못 받는 것은 사전 투표에서 부정 선거와 깡패들 동원해서 협박하고 폭력까지 쓴 때문이지. 그렇게만 하지 않았어도 존경받을 텐데.”
엄마는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엄마도 그들이 주는 거 받았어요?”
“집집마다 돌리는데 안 받을 수도 없어 받긴 받았는데 돌려 줄 수도 없고 영 찝찝하단다. 자유당 반공청년단이 일일이 투표용지를 확인한다는구나. 후유!”
엄마는 한숨까지 쉬었다. 일찍 투표하고 와서 모퉁이 집 어르신 회갑연 잔치한복을 지어야 한다며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바느질 솜씨가 좋아 동네 결혼식이나 잔치가 있으면 옷감을 맡아 한복을 지어준다. 그 자투리로 정혜와 오빠 목도리도 만들어주었다.
일찍 아침밥을 먹고 엄마가 나갈 채비를 했다.
“엄마, 나도 따라갈래.”
정혜도 엄마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나섰다.
“아이고, 일찍 투표하려가시네요. 자유당! 자유당 찍는 거 아시죠?”
확성기를 들고 있던 아저씨가 엄마를 보자 반갑게 말했다.
“아, 걱정마시라요.”
엄마는 천연덕스럽게 이북 말을 했다. 골목 끝 공터에서 확성기 소리가 났다.
“자유당 정권은 야당 유세장 결집을 막고자 2월 28일 일요일인데도 시험, 토끼사냥을 핑계 대며 학생들을 강제 등교시켰습니다. 유권자 여러분 2번을 꼭 찍어 자유당 행패를 막고 이번 기회에 정권을 바꿔야합니다.”
“저 유세차량을 뒤집어 뿌라이!”
붉은 완장을 찬 아저씨가 몽둥이를 들고 그 차량으로 돌진하며 소리를 질렀다.
삐거덕!
호성이 오빠와 할머니, 호성이 오빠 엄마가 대문을 열고 나오며 말했다.
“무슨 난리고?”
“서로 자기들 후보를 찍으라고 저 난리지요. 호성이 할머니도 일찍 투표하러 가시려고요? 곱기도 하셔라.”
“자네 솜씨가 좋아 나한테 잘 맞네.”
할머니는 엄마가 지은 옥색 한복을 입고, 목에 두른 은색 숄은 눈이 부실만큼 고왔다.
“나는 투표 안 할라 했는데, 우리 호성이가 투표는 꼭 해야 한다네. 부통령은 우리 손으로 뽑아야지. 안 그런가?”
“쉿! 그런 말 하면 큰일 나요. 어머니!”
호성이 엄마가 손가락을 입에 대며 말했다.
“내가 누구 찍었는지 어찌 알거고? 어서가기나 하세.”
“할머니, 저 사람들이 들어요!”
“들으라지. 이 늙은이를 어짤라고.”
재열이가 할머니를 부축하고 대문을 열고 나왔다. 재열이네는 호성이 오빠네 아래채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재열이가 호성이 할머니한테 깍듯이 인사하고, 어른들을 보고도 인사했다.
“오냐! 인사성도 밝지.”
“어여 가세요. 내사 마 귀한 것 받았으니께 고마 이기붕이 찍으러 갈란다.”
재열이 할머니는 자유당 유세장을 따라다니며 고무신, 밀가루, 설탕을 받아 왔다고 했다.
“나는 부정 선거가 뭔지 모른다. 귀한 거 주는 자유당이 천사아이가. 그래서 나는 무조건 자유당인기라. 없는 살림에 누가 된들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 구하는 사람이 최고지. 안 그런가?”
“할머니 그만해. 창피하게.”
재열이는 전쟁에서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와 산다. 오빠도 뒤따라 나왔다. 성수 삼촌이 대학생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들고 나왔다. 가슴에는 명문대 로고와 ‘이성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멋져보였다.
“안녕하세요? 어르신들!”
성수 삼촌이 인사를 했다.
“성수 삼촌도 투표가요? 오늘 학교 안 가는데 투표 끝나고 공놀이해요.”
“아하! 미안, 정혜야. 오늘은 삼촌이 학교에 가 봐야 할 것 같다.”
혜숙이 언니와 호랑이 아주머니도 나왔다.
“언니도 투표해요?”
“아니, 엄마 모시고 가려고.”
“아고 일찍들 나오셨구만요. 자들이 떠들어서 잠을 못 자 죽갓시오. 새벽 댓바람부터 저 난리를 치는지 모르갓시요.”
골목식구들은 서로 인사하고 떠들썩하게 투표소로 향했다. 투표소는 천막이 쳐져있고, 천막에는 당 이름과 후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자유당 이름이 가장 크게 적혀있다. 입구에서부터 빨간 완장을 찬 청년들이 지키고 있었다. 입구에는 자유당이라고 쓰인 커다란 항아리가 놓여있었다. 빨간 완장을 찬 아저씨가 호롱바가지로 막걸리를 퍼서 투표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크! 좋다. 걱정 마시라. 나는 뭐라 뭐라 캐도 자유당인기라.”
한 아저씨가 불콰해진 얼굴로 큰소리로 말했다.
‘어? 정혜야, 너네 담임 선생님이다.’
정혜 귀에 대고 오빠가 말했다. 정혜는 담임 선생님을 보고 놀라 혜숙이 언니 뒤에 숨었다. 책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선생님한테 머리를 깊이 숙여 절을 했다. 선생님은 거만하게 팔을 휘휘 저으며 투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저, 저 사람 좀 보소! 쯧쯧!”
호성이 오빠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곧 양복을 입은 중년 아저씨가 들어왔다.
‘오빠! 오빠 선생님도 오셨어.’
정혜는 오빠 귀에 대고 말했다.
“아이고, 선상님, 일찍 나오셨구마니라요. 막걸리 한잔 하시라요!”
빨간 완장을 찬 아저씨가 막걸리를 퍼서 오빠 선생님 얼굴 가까이 대며 말했다.
“저리 치우시오!”
선생님은 한 팔로 바가지를 밀치자 막걸리가 그 아저씨 얼굴에 튀었다.
“와이카지라요? 선상님이 먹고 안 먹고는 자유지만, 찍는 거는 자유가 아닌거여. 선상질 길게 할라카면 우리 시키는 대로 하는기 좋을 거여.”
자유당 청년당원이 오빠네 선생님한테 소리를 지르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악!”
선생님은 외마다 비명을 지르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선, 선생님!”
오빠가 달려 나가 선생님 앞을 가로 막고 섰다.
“어른들은 나빠요. 왜 우리선생님을 때려요?”
“정호야, 니들이 왜 여기 왔어? 난 괜찮으니 어서 집에 가거라. 다친다.”
“선생님!”
“새벽 댓바람부터 아가들은 여기 오는 게 아니여. 맞고 싶지 않거든 얼른 집에 가라이! 썩 꺼지지 못 할 거여!”
붉은 완장을 찬 사람이 오빠한테 소리를 지르며 밀쳐버렸다. 오빠가 바닥에 쓰러졌다.
호성이 오빠와 재열이가 오빠를 부추겨 일으키며 항의했다.
“아저씨들 나빠요!”
“저, 저런! 나쁜 놈들! 어디다 행패야?”
호성이 할머니가 호통을 쳤다.
“정호야!”
엄마가 오빠를 안아 일으켰다. 줄을 서 있던 골목 어른들이 오빠를 에워쌌다.
“오, 오빠! 무릎에서 피나!”
성수 삼촌이 앞으로 나가 그 깡패와 맞섰다.
“당신들 뭐요? 부정선거와 폭력을 휘두른 것 신고하겠소! 아이들까지 다치게 하다니!”
“이 새끼 뭐야? 이 새끼 명문대 생이잖아! 명문대 생이면 명문대 생답게 도서관에 쳐박혀 공부나 할 일이지!”
깡패 같은 사람이 성수 삼촌 멱살을 잡고 말했다.
“이놈들이 사람 죽이네.”
호랑이 아주머니가 성수 삼촌 앞을 막으며 소리쳤다. 부정선거 감시단 완장을 찬 사람도 성수 삼촌 앞을 막아섰다.
“니들 뭐여? 저리 안비키나? 니들도 죽고 싶은 거여? 콩밥 좀 먹고 싶어 환장한 거여?”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나랍니다. 투표는 원하는 사람을 찍을 수 있단 말이요.”
“자유 좋아하네!”
그들이 엉겨 붙어 몸싸움을 했다.
“당신들 선거법 위반으로 경찰에 신고하겠소!”
성수 삼촌이 소리쳤다.
“신고 좋아하네. 반항하거나 다른 후보에 도장 찍으면 저리 되는 기라. 알았나?”
“자자, 모두 제자리로 가서 줄서서 투표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소!”
자유당에서 사람이 나와 경찰을 부른다는 말에 사람들은 제자리로 돌아가서 줄을 섰다. 정혜는 오빠 선생님과 자신의 담임 선생님이 비교 되었다.
‘아, 그래서 급장선거에서 철민이 편을 들었구나?’
“아까 그 양반 혁명국민학교 정호 담임 선생님이라던데. 그런 양반들이 많아야 민주주의가 바로 설 건데. 저 놈들과 몸싸움을 하더니만 다치지는 않았는가? 죽일 놈들! 쯧쯧!”
호성이 오빠 할머니가 성수 삼촌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나라꼴을 걱정했다.
“맞아요. 호성이 할머니! 전쟁이 난지 얼마나 됐다고 또 저 난리인지 모르갓시요! 밑에 지방서는 학생, 시민이 부정선거 데모하느라 다 들고 일어났다던데요?”
호랑이 아주머니가 말했다. 투표를 마치고 덕수궁 앞을 지나오는데 건너편에서 수백 명의 데모대가 모여 있었다. 성수 삼촌이 학교에 가 봐야겠다며 서둘러갔다. 29매
5. 자유의 횃불을 들다 (성수시점)
성수가 학교에 도착하자 이미 학도호국단이 주축이 되어 강당에 모여 있었다. 그날 밤 문리대를 중심으로 남산에 아지트를 마련하고 밤늦게까지 부정투표 규탄 회의에 돌입했다. 서울의 각 대학들과 연계하여 대규모 부정선거 항의 데모를 벌이기로 했다. 자유당 정권의 작태로 보아 장기전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천여 명의 학생들이 의기투합하여 모였다.
“학년대표 전부해봐야 40명이다. 40명으로는 턱없이 인원이 부족하다. 하지만 잘 구성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어떻게 구성하면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좋은 의견을 내보라.”
4학년 전체학생대표가 단상에서 발언했다.
“자유당 반공청년단이 5인 1조로 편성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조를 짜 행동하면 어떨까요?”
“2학년 대표 이성수의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
모두 기립박수로 찬성했다.
40명을 5인1조로 8개 팀을 편성하여 각 조장을 두고 퇴학은 물론이고 교도소 가는 것까지 책임지기로 결의했다. (무슨 말인지?)
“자, 지금이라도 겁을 먹거나 퇴학이나 감옥에 가서 앞날이 걱정된다면 지금 빠지는 게 좋다. 잘 생각해라! 조가 정해지면 빠지고 싶어도 못 빠진다는 걸 명심해라.”
모두 각오를 단단히 하고 모였지만, 막상 현실 앞에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잠깐 아지트는 정적이 흘렀다.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데 제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2학년대표 이성수는 모든 것을 걸겠다고 했다. 또 없나?” (이성수가 너무 적극적, 혼자만 있는 듯한 분위기)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좋다. 이대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데 이 젊음과 목숨까지 바친다! 한 번 길을 들어섰다면 그 길이 완성 될 때까지 끝가지 간다. 각오되었나?”
“바칩니다! 각오되었습니다!”
“만약 한 조장이 체포되면 그다음 조가 릴레이식으로 책임지고 맡기로 한다.”
학생대표가 모든 거사 계획을 꼼꼼히 준비해 왔다. (데모를 하겠다는 건지?)
“자유당 독재정권을 몰아내는 데는 지금이 때라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은가? 동지들!”
“부정선거 타도하자! 타도하자!”
아지트의 밤은 불이 꺼질 줄 몰랐다.
“그렇다면 프랭카드 구호문구를 각자 내 놓는다.”
성수는 몇 가지 구호 문을 만들었다.
“제가 생각한 문구는 <자유, 민주, 정의를 달라!> <민주주의를 바로 잡아 공산주의 타도하자> <데모가 이적이냐, 폭정이 이적이다> 이 세 문구를 내 놓겠습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시위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이었다. 성수는 그 날 이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1960년 4월 19일 4학년 학생의장이 문리과대 결의문을 발표했다.
하나,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하와 폭력으로써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보를 양보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학생의 양심을 느낀다.
둘,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셋,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퇴 하에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형제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 사수파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생일동, 「선언문」(필사본 일부), 1960
문리과대 학도호국단 결의문을 발표하고 총연합학생대표는 연설했다.
“동지여러분, 우리 문리대 캠퍼스에서는 한명의 낙오자도 없다. 다 같이 한마음 한 몸으로 우리는 혁명대열에 참여한다. 우리는 희생된 시민과 학우들에게 묵념한다.”
학생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묵념했다.
“민주주의를 똑바로 세우자! 독재를 막는 데는 이번이 절호의 기회임을 천명한다. 끄으윽!”
학생의장이 목이 터져라 외치자 성수는 울음을 참느라 흙바닥을 맨주먹으로 내리쳤다. (우리는 알지만 당시 어떤 일이 있기에 이 정도인지 알수 있게 해야... 자유당을 찍으라고 협박하고, 뇌물 공세를 하는 정도로 보이는데. 학생들이 일어날 정도로 어떤 사건이 있다면?)주먹에서 피가 났다. 피를 본 성수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뜨거운 것이 목 줄기를 타고 치밀어 올라 왔다.
평화행진 도중 예지동 백화점 앞에서 대한반공청년단 폭력배들에게 피습되었다. 백여 명의 괴한들이 벽돌과 부삽, 몽둥이, 쇠망치, 갈고리들을 들고 선두학생들을 마구 난타했다. 학생들이 현장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기자들도 폭행을 당했다.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머리와 가슴에 피를 흘리는 학생들은 고통에 울부짖었다.
“나는 죽는다.”
처참한 울부짖음은 맹수가 포효하는 소리 같았다. 그것을 본 학생들은 격양되어 악에 받칠 대로 받쳐 소리를 질렀다.
“저 놈들을 죽여라.”
“저놈들은 살인마다.”
시민들도 흥분하여 여자들은 치마에 돌을 싸서 날라 학생들에게 주었다.
“평화적으로 한다면 신분을 보장한다더니 깡패까지 동원했다. 저들은 살인자다!” (이런 정보는 어디에?)
시민들이 합류하여 외쳤다.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데는 예상보다 더 많은 피를 흘려야만 했다.
이제 학생시위의 주역이 지방의 고교생으로부터 서울의 대학생으로 바뀌었다. 시위의 목적은 분명했다. 부정선거 규탄에서 독재타도로 전환시켰다. 또한 구속학생들 석방요구였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구타를 당해 사망했다. 그 반공청년단들은 자유당으로부터 많은 돈을 받아 사주된 깡패 집단들이었다.
거사 날 4월 19일!
전날 밤, 거의 밤샘을 하고 새벽 다섯 시쯤 종로 평화극장 뒷골목에서 해장국으로 요기를 하고 긴장한 상태로 동숭동 교정에 도착했다.(누가?) 일곱 시가 조금 넘었다. 학생들이 일찍부터 속속 교정으로 모여들었다. 그 숫자는 거의 천명에 육박했다.
정확히 아홉시에 학생들은 문리대 본관에서 부터 진군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문리대 학장이 두 팔을 벌리고 학생들 앞을 막고 섰다.
이미 정문은 학장의 지시로 걸어 닫았다. 학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자네들, 지금 나가면 크게 다치게 되네!”
“교수님, 제발 좀 비켜주세요.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두 번 세 번 말씀을 드렸으나 학장은 여전히 두 팔을 벌린 채 요지부동이었다.
학생의장은 소리를 빽! 질렀다.
“비켜!”
돌변한 학생의장 태도에 깜짝 놀라 튕기듯이 학장은 옆으로 비켜섰다. 9시 20분쯤에는 문이 다시 열렸다.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종로 5가 까지는 도착하여야 했기 때문에 학생의장도 다급했던 모양이었다.
서울대 팀은 동대문 경찰서 앞까지 무사히 진출 할 수 있었다. 이른 시간에 동대문 경찰서 앞을 점령한 데모대를 보고 그들은 놀라 최루탄을 발사했지만, 파고다공원 앞 전투를 치르면서 의사당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시민연대와 학생들은 붉은 완장을 찬 반공청년단과 경찰과의 충돌이 계속 되면서 둘로 갈라지게 되었다. 데모대가 경찰과 대치한 순간 갑자기 모든 동작이 멈추어 느린 화면이 움직이는 듯했다. 공중에서 사람들이 비처럼 떨어지는 연출을 하는 듯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그것이 착시가 아님을 아는 데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따따따따다!”
다발총 소리가 귀청이 찢어질 듯이 하늘을 울렸다. 동숭동 전투보다 더 많은 부상자가 나왔고, 많은 학생이 연행되었다. 아비규환을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경찰이 곤봉으로 학생들을 내리쳤다. 몇몇 학생이 이마에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 내렸다. 그들은 한마디 말도 못하고 죽었다. 성수는 치를 떨었다. 그 곤봉이 성수를 향해 내리쳤다. 성수는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일단 이 위기를 잠시 모면하기 위해 무조건 뛰었다. 그들은 성수를 체포하는 것이 목적인 듯 악착같이 쫒아왔다. 무작정 뛰다 보니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독 안에 든 쥐새끼처지가 되었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하지만 성수에게는 고양이를 물수 있다고 믿는 것은 성한 두 다리 뿐이었다. 성수의 얼굴은 몇 차례 신문과 방송에 대문짝만하게 나서 그들은 성수를 잡아들이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이성수! 넌 독 안에 든 쥐다. 항복하지 않고 도망치다 잡히면 죽는다!”
두 명의 경찰이 따라 붙어 소리를 질렀다. 정말 잡히면 그 자리에서 맞아 죽을 판이었다. 성수 앞에 돌 축대가 떡 버티고 있었다. 죽을힘을 다해 몸을 날려 축대를 넘어야만했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저 새끼 귀신 아니야?”
뒤쫓던 경찰들이 닭 쫓던 개처럼 담장을 올려다보며 소리 질렀다. 몇 발의 총알이 하늘을 향해 날아왔다. 성수는 두 다리로 콘크리트 벽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기회는 그 날이 마지막이 될 줄을 알지 못했다. 경찰들은 포기 한 모양인지 더 따라 붙지 않았다. 성수는 무사히 시위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의사들과 의대생들은 흰 가운을 입고 길거리로 나왔다. 그날 파고다공원 파출소는 이미 파괴 되었다.
세종로와 태평로일대로 진출한 평화행진 도중 대한청년단단장과 학생들이 폭력배들로부터 피습되면서 그 불은 더 거세졌던 것이다. 앞장선 성수가 구호를 외쳤다.
“데모가 이적이냐, 폭정이 이적이다!”
시위대도 따라 외쳤다.
“데모가 이적이냐, 폭정이 이적이다!”
“3.15 부정선거 다시 하라!”
“1인 독재 물러가라!”
“민주주의를 바로 잡아 공산주의 타도하자!”
한번 불붙은 시위대의 구호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독재정권 퇴진과 민주수호를 요구하는 혁명적인 규탄은 무정부상태에 빠진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했다. 전국이 유혈사태로 번졌다.
그 사태로 더 많은 부상자와 희생자를 냈다. 경무대 앞에는 대학생 2만 여명과 엄청난 군중이 모였다. 동대문 경찰서 앞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탕탕탕!”
경찰과 자유당 반공청년단은 무차별 총기 난사를 했다. 빗나간 총탄은 길거리 건물에 맞아 총구멍이 벌집처럼 숭숭났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 데모가 4·18 고대 사건을 중심으로 4·19로 절정에 다다랐다. 27.1매
6. 우리 딸 좀 찾아주세요.(정혜시점)
“어머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4월 19일 아침, 정혜는 오빠와 함께 책 보따리를 허리에 메고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골목에는 호성이 오빠와 재열이가 벌써 나와 있었다.
“호성이 일찍 나왔네. 어? 재열이 맨날 꽁지였는데 오늘은 웬일이야?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오빠가 재열이를 놀렸다.
“시끄러워서 잠을 자겠더나? 그래서 일찍 깼지.”
“하긴 그래. 우리도 일찍 깼으니까.”
좀 이른 등교라 학교 가는 길은 한산했다.
“오늘 학교에 너무 일찍 가는 거 아니야?”
재열이가 억울한 듯 말했다.
그때 문방구에서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저 목소리 혜숙이 언니 목소리다!”
“어? 맞다! 저쪽 문방구에는 텔레비전이 있다. 저기 봐 혜숙이 누나가 텔레비전에 나왔어! 저쪽으로 가보자.”
출입구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건너편 문방구를 보더니 호성오빠가 말했다. 우리는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혜숙이 언니가 고등학생 대표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카랑카랑하고 힘이 있는 혜숙언니의 목소리는 전 국민들의 뜻이 담겨 있었다.
“와! 혜숙이 누나 웅변 잘한다.”
재열이의 말에 동무들은 한마디씩 했다.
“그래서 명문여고생 아니야.”
“저건 웅변이 아니라 전 국민의 목소리야!”
“내 동생 제법인데.”
“당연하잖아. 정혜는 작가가 될 건데.”
모두 그럴듯하게 한마디씩 했다. 혜숙이 언니가 하는 선언문 뜻은 이해 할 수 없지만, 정말 연설을 잘 하는 것 같았다. 언니가 수많은 군중 앞에 우뚝 솟은 단상 위에서 연설하는 모습이 근사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는 계속 언니의 선언문 낭독이 이어지고 있었다. 호랑이 아주머니한테 이 사실을 알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알고 있지 않을까요?)
“오빠! 혜숙이 언니 낭독하는 거 언니 엄마한테 말해 주자. 기뻐하실 거야.”
“오! 호랑이 아주머니 자랑거리 하나 더 생겼네.”
“그렇게 말하지 마. 이제 호랑이 아주머니 아니잖아!”
정혜는 재열이 말에 버럭 화를 냈다.
“아, 알았어. 이제부터 자랑쟁이 아주머니라 하면 되겠다.”
“그것도 안 돼! 아주머니가 얼마나 좋은 분이신데. 지난번에 어묵하고 주먹밥도 실컷 먹게 해주었잖아. 유리 깬 것도 안 물리고. 구정물도 안 씌우고….” (날이 꽤 지난 것 같은데?)
“맞다. 성수 삼촌이 유리 값 대신 드린다고 할 때 뭐라고 하셨어. ‘학생이 무슨 돈이 있갓어. 오늘 내 장사 쉬었다 생각하고 그걸로 유리 갈면 되갓어.’ 하셨잖아.” (언제 그랬는지?)
호성이 오빠가 아주머니 흉내까지 내었다.
“맞아 맞아. 얼른 가서 알려 드리기나 하자. 우리 다 같이 가자!”
오빠가 앞장서며 말했다.
모두 우르르 혜숙언니 집으로 몰려가 대문을 활짝 열어 재꼈다.
“우당탕!”
“아이고 깜짝이야. 또 무슨 난리고? 간떨어지갓어야.”
“그, 그게. 라디오, 라디오 한번 틀어보세요. 혜숙이 누나가 나와요.”
오빠가 숨이 넘어가듯이 말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고?”
“지금 설명할 시간 없으니 라디오부터 틀어보세요.”
호성이 오빠가 재촉했다.
호랑이 아주머니는 대청마루에 있는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는 연속으로 학생들의 시국선언문을 각 학교와 지역 학생들이 연설하는 것을 내보내고 있었다. 혜숙언니의 선언문 연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동포여 잠을 깨라! 짓밟힌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나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라! 무엇 때문에 우리는 피를 흘려 왔느냐
귀를 기우려라. 선열들의 통곡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학생선언문 일부
“아이고, 애미나이가 이악스럽기(극성스러울정도로 열성을 다한다)는 저기가 어디메라고 가서 저러고 있제.”
아주머니는 연설내용에 감동한건 지, 걱정하는 눈물인지 기쁨의 눈물인지 눈물 콧물을 훔쳐냈다.
“그라도 내 딸이 똑똑하긴하제. 안 그러냐. 정혜야? 내 이 참에 텔레비전 한 대 들여 나야갓어.”
“맞아요. 언니는 제일 똑똑해요.” (똑똑해야 민주주의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그나저나 저런거 해도 나중에 불이익은 없나. 데모하다 잡혀 가면 감옥간다고 하던데.”
아주머니는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듯했다.
방송에서는 그날 3천여 명의 대학생들이 국회의사당 앞에 모였다고 했다. 대학생들이 외치는 구호도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왔다.
“니들은 얼른 학교 가거라. 지각하것다.”
“아, 네! 다녀오겠습니다.”
정혜는 골목동무들과 함께 인사를 하고 후닥닥 학교로 향했다. 학교 앞에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걸어가고 있었다. 어제 쏘아댄 최류탄 냄새가 매캐하게 아직 남아 있어서 메케해 눈이 따가웠다.
“에취!”
“에취!”
여기저기서 재채기 소리가 났다. 정혜도 연신 재채기를 했다. 오빠가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정혜한테 주었다.
“오빠도 맵잖아. 오빠가 해!”
“난, 괜찮아!”
오빠가 손수건으로 정혜 코와 입을 막아주었다.굴을 닦아주었다.(최루탄은 닦으면 안 되는데?)
“에고, 콧물 봐!”
“헤헤, 오빠가 닦아주니 나는 좋은데.”
각자 교실로 들어가며 인사했다.
“안녕 오빠들, 공부 열심히 해! 나 수업 끝나고 도서관에서 책 읽고 있을게. 나중에 글루 와. 집에 갈 때 같이 가게.”
“알았어.”
4교시였다. 시내에서 총소리가 요란했다. 아이들은 무서워 모두 창문으로 몰려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운동장 마이크에서 큰소리로 방송을 했다.
“지금 전 학년 수업을 중단하고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고 선생님들은 교무실로 집결바랍니다.”
“또 난리가 난 모양이네. 데모하는 것들 다 싹 쓸어 감옥에 쳐 넣어버려야 조용할 긴데. 안 그러냐?”
“네, 맞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도 그리 말씀 하셨습니다.”
철민이가 선생님 말에 큰 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정혜는 선생님 얼굴과 철민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급장! 종례한다.”
“네, 선생님!”
정혜는 대답하고 선생님께 경례를 했다.
“일어 서! 차렷! 선생님께 경례!”
“선생님, 수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청소는 안 해도 된다. 한눈팔지 말고 빨리 집으로 가라. 전쟁이다 전쟁!”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나갔다. 아이들도 우르르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정혜는 칠판도 닦고 삐뚤어진 책상도 바로 놓았다.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되겠다는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재열이가 거들어 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혜 네가 급장되는 바람에 내가 고생이다. 고생. 하하!”
“고맙다, 고마워. 동무야!”
정혜가 칠판을 닦으며 재열이 말에 장난을 쳤다.
“정혜야! 재열아! 빨리 집에 가자.”
“오빠, 벌써 왔어?”
뒤따라 호성이 오빠도 들어 왔다.
“우리가 할 테니까 넌 저기서 기다려.”
오빠와 호성이 오빠가 거들어 얼른 끝내고 책가방을 챙겨 교실 문을 나왔다. 운동장을 가로 질러 교문을 향해 뛰었다. 문방구 앞에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정혜와 골목친구들은 뒤에서 까치발을 하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빗금이 소나기처럼 내리는 텔레비전화면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와서 울면서 말하고 있었다.
“우리 딸 좀 찾아주세요. 아침에 학교 가면서 이걸 써두고 나갔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공책에 쓰여 진 글을 기자한테 내밀었다.
“따님이 몇 학년입니까?”
“중학교 2학년이에요. 훌쩍!”
“뭐라고 쓰여 있는지 제가 읽어봐도 되겠습니까?”
아주머니는 말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기자 언니는 그 종이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렀습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여중 2학년생이 어머니께 남긴 편지
“네, 안타깝군요. 하지만, 어머니 염려 마세요. 따님은 큰일을 하고 꼭 돌아올 겁니다. 혹시 진양이 이 방송을 본다면 어머니가 걱정하시니까 얼른 집으로 돌아와요.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마음은 남녀노소가 없는 것 같습니다. 시청 앞이었습니다. 에취!”
최류탄이 날아오자 기자는 몸을 피하며 재채기를 했다.
“오빠! 그 중학생 언니 괜찮을까?”
“어, 괜찮을 거야.”
“우리도 구경 가. 오빠!”
“안 돼. 위험해!”
“우리 가 보자 응?”
정혜는 오빠 손을 잡고 흔들었다. 호성이 오빠도 재열이도 가 보자고 했다. 넷은 손을 잡고 시위현장으로 달려갔다.
* 진양은 한성여중 2학년이던 1960년 4월 19일 시위에 참가해 미아리 파출소를 거쳐 시내로 가다가 미아리고개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세브란스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1960년 4월 19일 오후 4시 시위에 나가며 남긴 한성여중 2학년 진양이 어머니게 쓴 글이 유서가 되어 버렸다. 25.2매
7. 4월의 불꽃놀이 (정혜시점)
4월 19일 아침에 아버지가 출근하면서 말했다.
“오늘 정혜와 정호 학교 끝나면 바로 집에 오너라. 밖에 나가지 말고. 데모한다고 거리가 난리가 아니다.”
“네, 아버지, 다녀오세요. 아버지도 조심하세요.
“오냐!”
오빠는 아버지 등 뒤에서 절을 꾸벅하며 말했다. 아버지는 가던 발걸음을 돌려 오빠가 입고 있는 교복 매무새를 한 번 더 만져 주고 갔다. 가면서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전국에서 들고일어난 데모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 라디오만 틀면 데모 뉴스가 나왔다. 덕수궁 담벼락에는 아직도 후보들의 사진이 햇빛에 바래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유독 이기붕부통령후보 사진만이 갈기갈기 찢겨져있었다. 그것은 국민들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정혜는 성수 삼촌을 선거 날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오빠! 성수 삼촌 보고 싶다. 성수 삼촌은 데모하느라 집에 못 오고 있을 거다 그치?”
“아마 그럴 걸. 요 앞에서도 데모 매일하잖아. 어제는 대학생들이 많이 죽었다고 하던데. 성수 삼촌은 괜찮겠지.”
“응, 나도 걱정 돼. 왜 데모는 해서 난리래? 혜숙이 언니 본 지도 오래 됐어.”(혜숙 언나는 동네 언니인데?)
정혜는 오빠와 골목동무들과 손을 잡고 시위현장 쪽으로 걸어가며 걱정하는 소리를 했다.
“빨리 가보자!”
정혜는 오빠 손을 끌며 재촉했다. 반대편에서는 수많은 인파와 데모대가 뒤섞여 시위를 하고 있었다.
“와와! 부정선거 다시하자!”
“와! 잘한다. 짝짝짝!”
정혜가 손뼉을 치자 오빠와 호성이 오빠, 재열이도 따라했다.
“오빠! 사람들 굉장히 많다. 그치? 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왔을까?”
“아마 전국 방방곳곳에서 다 모였을 걸. 부정선거 타도하자고 저러는 거잖아.”
“데모가 더 크게 된 것은 마산에서 김주열이라는 형이 시위 구경 나왔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이 눈에 박혀 죽었기 때문이래.”(이런 사건이 앞부분에 나와서 공분을 사게 해야 독자들도 곰감을 할 것 같은데요.)
“정말? 호성 오빠! 무섭다.”
“응, 그걸 경찰이 시신에 돌멩이를 달아 마산앞바다에 던졌는데 그 시신이 떠오르면서 학생, 시민들이 화가 나서 더 크게 번졌대.”
“설마? 으, 끔찍하다. 사람이 그럴 수 있어. 그 오빠 안 됐다. 불쌍해!”
정혜는 그 말을 듣고 무서우면서도 호기심이 더 생겼다. 뛰면서도 입을 가만 놀려 두지 않았다. 정혜는 군중 속으로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도 많이 있었다. 그 속에는 당연히 혜숙이 언니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혜는 시위대들의 구호에 맞춰 함께 소리를 질렀다. 오빠와 재열이는 아예 책 보따리를 내려놓고 손뼉을 치고 있었다. (심각성이 느껴지지 않아요.)
“오빠! 재미있다 그치? 오길 잘했지? 콜록콜록!”
“응, 오길 잘했어.”
“성수 삼촌도 저 속에 있을까? 혜숙이 언니도.”
“오늘 전국 대학생 연합과 고등학생 형 누나들, 일반 시민까지 광화문과 시청 쪽에서 데모 집결한다고 라디오에서 하더라. 그럼, 저 속에 당연히 성수 삼촌도 혜숙이 누나도 있을지 모르지. 어제 고려대 사건 때문이라고 하던데.”
호성이 오빠가 말했다.
“여튼 호성이 오빠는 아는 것도 많아. 성수 삼촌은 맨 앞에서 데모 할 거다 그치?.”
“맞아. 성수 삼촌은 맨 앞에 있을 지도 몰라. 우리 맨 앞으로 가보자. 성수 삼촌을 만날지 모르잖아.”
재열이가 앞장서며 말했다.
어느새 해가 서쪽하늘에 걸려 있었다. 긴 그림자가 시위대위에 내려 앉아 어둑어둑해졌다.
펑펑펑!
최류탄이 불꽃처럼 튀어 올라 번개같이 하늘이 번쩍번쩍했다. 최루탄 불꽃이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와! 멋지다. 꼭 불꽃놀이 하는 것 같다 그치 오빠?”(아직 사안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한데?)
정혜와 골목동무들은 구경하느라 어두워지는 줄도 몰랐다. 갑자기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며 하늘을 덮었다.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다.
“으아!”
“앗! 뜨거!”
군중들이 놀라 흩어졌다. 정혜 바로 옆에서도 불꽃이 튀었다.
“정혜야 빨리 피해! 호성이 재열이도.”
오빠가 소리를 질렀다.
“부릉 부릉 부르릉!”
수십 대의 경찰 백차가 도로를 질주했다. 하얀 오토바이를 탄 경찰들이 그 뒤를 줄지어 지나갔다. 사람들이 다시 앞으로 몰렸다. 정혜도 그 진귀한 광경을 보려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앞으로 나갔다. 꼭 오토바이 시가행진을 하는 것 같았다.
정혜가 일곱 살 땐가 여덟 살 때 엄마 손을 잡고 대통령 할아버지 구경을 나왔다. 시청 앞에서 대통령 할아버지가 뚜껑이 없는 차를 타고 지나가며 손을 흔들었다. 많은 사람이 도로에 나와 태극기를 높이 들고 흔들며 ‘이승만대통령만세!’를 외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백차와 오토바이 행렬이 대통령 할아버지 차를 호의하며 지나갔다. 그날 밤 불꽃놀이는 정말 멋있었다. (정혜의 의식을 잘 모르겠음.)
“와와!”
“정혜야, 위험해서 안 되겠다. 무서우니까 우리 그만 집에 가자. 아버지가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 가지 말라고 했는데….”
“싫어, 오빠는 겁쟁이야.”
오빠 말에 뽀로통해졌다.
“나는 성수 삼촌 만날 거야!”
“이 많은 사람 속에서 어떻게 찾아. 모래에서 바늘 찾기지.”
오빠는 마지못해 따라오며 말했다. 정혜는 성수 삼촌이 걱정이 되었다.
“오빠, 혹시 성수 삼촌이 앞에서 데모하다 총탄에 맞은 건 아닐까?”
“재수 없게 그런 소릴 하고 그래.”
재열이가 옆에서 듣고 한 소릴 했다.
“난 걱정 되어 죽겠단 말이야.”
“야들아, 위험한데 여긴 왜 왔어?”
구경나온 호랑이 아주머니가 정혜무리들을 보고 소리쳤다.
“저희들 데모 구경 좀 더하고 올게요.”(데모 구경?)
“앞으로 가지 말고 여기서 구경해도 돼갔어야.”
하지만 정혜는 아랑곳하지 않고 군중들 속을 향해 비집고 들어갔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사람 넘어지면 도미노처럼 다 넘어질 것 같았다. 최루탄 냄새와 사람들의 열기로 제대로 숨도 쉴 수조차 없었다.
“오빠! 숨을 못 쉬겠어.”
정혜 말에 오빠가 사람들을 밀었다.
“밀지 마세요. 밀면 위험해요!”
대학생 교복을 입은 한 무리가 군중을 향해 다가오며 확성기로 외쳤다.
“어? 저기 성수 삼촌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소리를 질렀다.
“성수 삼촌!”
넷이서 손나발을 하고 불렀지만, 군중의 구호 소리에 그 소리는 묻히고 말았다. 성수 삼촌은 커다란 확성기를 들고 밀지 말라며 사람들에게 질서를 지켜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구호를 외쳤다.
“구속된 동지를 풀어라!”
“우리가 흘린 피의 대가를 치룰 것이다.”
성수 삼촌이 이끄는 시위대가 바로 앞에까지 왔다.
“성수 삼촌!”
정혜가 달려가 성수 삼촌 앞에서 두 팔을 높이 들어 막아섰다. 성수 삼촌이 깜짝 놀랐다.
“정혜야? 아니, 너희들! 위험한데 여기는 왜 왔니?”
“삼촌! 쓰러지겠어요. 얼굴이 그게 뭐예요?”
“너희들 빨리 집에 가라!”
“안 돼요. 우리도 할 거예요.”
“안 된대도. 위험해!”
“아악!”
최루탄이 정혜 바로 옆에 떨어졌다. 하마터면 최루탄에 맞을 뻔 했다.
“콜록콜록! 에, 에취!”
정혜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재채기 소리가 났다. 눈물 콧물범벅이 되었다. 성수 삼촌은 시위대를 지휘하느라 초죽음이 되어있었다. 성수삼촌을 투표 날 보고 처음 보았다.
성수 삼촌은 우리가 고집을 부리자 확성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군중들 밖으로 우리를끌고 나갔다.
“녀석들, 큰일 나겠네. 너희들의 마음은 알겠는데, 이만하면 구경 할 건 다 했으니 이제 집에 가거라.”
우리가 고집을 부리자 성수 삼촌은 우리를 집에 까지 손을 잡고 끌고 갔다.
“아이고, 선생님, 그 꼴이 뭐예요. 저놈들이 사람 다 죽이갔서.”
호랑이 아주머니가 성수 삼촌을 보고 놀라서 말했다.
“아이고 이것들아. 내가 얼마나 걱정했다고. 다행히 선생님을 만났네. 근데 정호와 재열이는 왜 안 왔나?”
“어, 오빠! 오빠가 안 따라왔어요.”
“너희들 집에 있어라. 삼촌이 찾아서 데리고 올게.”
“아이고 선생님, 민주주의가 바로 서기도 전에 선생님이 먼저 죽갓시요. 이 나라가 어찌 될라고 이러는 지. 쯧쯧!”
성수 삼촌은 그 길로 대문을 뛰쳐나갔다. 두 눈을 꼭 감고 성수 삼촌 손에 이끌려오는 바람에 오빠와 재열이를 보지 못했다.
“성수 삼촌, 저도 따라갈래요.”
“나도 갈래.”
정혜가 뛰자 호성 오빠도 뒤따라 뛰었다.
“곧 어두워져 안 돼! 너희들은 집에 있어. 삼촌이 찾아 올 게.”
정혜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펑펑펑!
체루탄 불꽃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대문을 나서려는데 방에서 재봉틀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드르륵 드르륵!
엄마는 며칠 뒤에 있을 모퉁이 집 어르신 회갑 잔치에 입을 한복이 급하다고했다. 정혜는 잠시 엄마의 재봉틀 소리를 듣고 발을 멈추었다. 왠지 그 소리가 슬프게 들렸다. 정혜 볼에 눈물이 쭈르륵 흘러 내렸다.
‘엄마!’
“호성이 오빠 빨리 뛰자. 우리 오빠 찾아야 해!”
정혜 마음이 급해졌다. 둘은 손을 잡고 사람들을 이리저리 비켜 한참을 뛰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오빠를 찾는 다는 것은 정말 모래 속에서 바늘 찾기였다.
“헉헉! 호성 오빠, 오빠와 재열이를 어떻게 찾지?”
“정혜야, 우리 맨날 만나는 장소 돌담길 있잖아. 거기 있을지 몰라. 그리로 가보자.”
“콜록 콜록! 맞아. 역시 오빠는….”
“얼른 뛰기나 하자.”
둘은 사람들을 헤집고 덕수궁 돌담길로 향했다. 메케한 냄새에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26.4매
8.정호의 죽음(성수시점)
성수는 정호와 재열이를 찾아 정신없이 뛰었다.
“비켜요! 비켜! 아이들이 위험해요!”
“정호야! 재열아?”
성수는 군중을 헤치고 나가며 소리를 질렀다.
‘이 많은 사람 속에서 어떻게 찾아야하나? 무사해야 할 텐데.’
이럴 때 신을 믿지 않은 게 후회가 되었다.
‘신이 있다면 아이들을 지켜 주세요.’
성수는 모든 신을 부르며 정호와 재열이를 지켜 달라고 기도했다. 전에 아이들이 한 말이 떠올랐다.
‘성수 삼촌! 우리는 헤어지거나 만나야 할 때는 꼭 덕수궁 돌담 입구에서 만나요.’
성수는 돌담을 향해 뛰었다.
저 만치 돌담길 입구에 서 있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휴! 다행이다.”
성수는 정호와 재열이를 향해 달려갔다.
“이 녀석들. 정호야. 재열아!”
“성수 삼촌!”
성수는 달려가서 아이들을 껴안았다.
“녀석들, 얼마나 걱정 한 줄 아니? 어쩌다 헤어진 거니?”
“재열이랑 삼촌 뒤를 따라 뛰는데 갑자기 우리 앞에 최루탄이 떨어졌어요. 눈을 떠보니 보이지 않더라고요. 우린 집에 가고 싶었는데 사람들에 떠밀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네, 맞아요. 우린 길을 잃거나 헤어지면 여기서 기다리면 만나게 되거든요.”
성수는 잠깐 생각했다. 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그 우정은 편치 않을 것 같았다.
‘나에게도 이러한 동무가 몇 명이나 있을까?’
성수는 허탈한 생각이 들고 이 아이들이 부러웠다.
“얼른 집으로 가자.”
“정혜와 호성이는 집에 있지요?”
“그래, 걱정하고 있을 거니까 빨리 가자.”
구름떼처럼 시위대 대학생과 일반시민들이 덕수궁 쪽으로 건너왔다. 그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군인들이 데모대를 차도로 나오지 못하게 탱크로 막고 있었다. 만약의 소요사태에 대비하는 것 같았다. 최루탄 냄새가 더 심했다.
“콜록콜록!”
모두 심하게 기침을 했다.
“정호야, 재열아! 손으로 눈을 비비지마라.”
성수는 정호와 재열이 손을 끌고 시위대 반대편으로 뛰었다.
“빨리 뛰어라. 어서!”
“부정 선거 타도하자!”
시위대에서 구호를 외치자 구경 나온 사람들도 모두 따라 외쳤다. 그때 총소리가 났다.
“탕탕탕!”
각목과 갈고리를 든 불량깡패들이 사람들을 향해 휘둘렀다. 아이들이 군중에 떠밀리다시피 밀려갔다.
“헉헉헉! 삼촌!”
“군중들에 휩쓸리면 큰 사고를 당할 수 있어. 삼촌이 뒤따라가니 걱정 말고 뛰어.”
사람이 너무 많아 도저히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성수는 아이들의 등을 떠밀었다. 그 힘으로 아이들이 앞으로 나가더니 더 이상 밀려가지 못하고 섰다.
“나, 도저히 못 나가겠어요.”
“멈추면 안 돼! 밀고 나가!”
군인들을 실은 트럭이 줄지어 달려왔다. 총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탕탕탕!”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쓰러졌다. 거리에는 피가 낭자했다. 총소리가 바로 앞에서 났다.
“엎드려!”
성수가 아이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때….
“악!”
“정, 정호야!”
성수 앞에 정호가 쓰러졌다.
“정호야!”
성수는 정호를 안고 소리를 질렀다.
“어? 호성 오빠! 성수 삼촌 목소리다!”
“응! 빨리가 보자.”
“형! 정호 형!”
재열이 울부짖는 소리도 들렸다.
“아악! 안 돼. 정호야!”
성수 삼촌이 오빠를 부르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비명처럼 들렸다.
정혜와 호성이는 비명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사람들을 밀치고 다가갔다. 오빠 온몸에 피 범벅이 된 정호를 성수 삼촌이 안아 올렸다. 정호 가슴에서 피가 솟아올랐다.
“헉! 정호야. 정호야!”
성수는 맹수의 포효하는 소리를 냈다.
“정호야, 안 돼! 죽으면 안 돼! 삼촌이야. 삼촌!”
“오, 오빠!”
정혜가 달려가 정호를 잡고 흔들었다.
“너, 너희들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정혜야, 정호가… 으흐흑!”
“성수 삼촌! 오빠가 왜이래요?”
“형! 엉엉!”
호성이가 정호 손을 잡고 소리쳤다. 성수는 정호를 안고 일어서며 소리쳤다.
“비켜요, 비켜! 아이가 다쳤어요. 아이가 총에 맞았다고요.”
성수는 정호를 안고 시위대를 헤치고 나갔다.
“그만 쏴! 이 살인마들아! 아이가 총에 맞았단 말이야. 저 살인마들을 모두 죽여라!”
성수는 그들을 향해 소리소리 질렀다. 성수는 정호를 바닥에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입을 벌려 인공호흡을 했다. 가슴에서 피가 솟구쳤다. 성수는 정호가슴에서 솟아오르는 피를 손으로 막았다. 아스팔트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빨리 벙원에 옮겨야 하지 않을까요?)
“제발, 제발 정호야! 안 돼! 으, 흐흐흑!”
“오빠! 제발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정신 차려! 눈을 떠! 눈을 떠야해!”
성수는 정호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정, 정혜야!”
“오빠! 눈떠 봐! 얼른 눈뜨란 말이야! 으앙! 오빠! 내가 잘 못했어. 내가 구경 가자고 떼써서 오빠가 이리됐어.”
군중들은 물밀 듯이 밀려 왔다. 탱크를 탄 군인들이 군중들을 향해 대사포를 쐈다.
“너, 너희들은 얼른 집에 가라. 얼른! 삼촌은 정호 병원에 데리고 가겠다.”
“저도 따라 갈 거예요.”
“저희도 따라 가요.”
“안 돼, 모두 집에가. 너희가 따라오면 빨리 병원에 갈 수가 없어. 어서 집에 가서 기다려. 삼촌이 연락할게. 빨리 병원가지 않으면 오빠가 위험해.”
성수는 정호를 안고 뛰었다. 정호 두 팔이 아래로 축 쳐졌다. 마침 구급차가 오고 있었다.
“애애애앵!”
성수 앞에 구급차가 멈춰 섰다.
“아, 아이가 다쳤어요. 어서 빨리요!”
구급대원이 정호에게 인공호흡을 했다. 출혈이 너무 심해 정호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정호가 잠깐 눈을 떠 정혜 이름을 불렀다.
“정, 정혜야….”
“오빠! 오빠 나 여기 있어.”
“정호야. 삼촌이다. 정신 차려!”
“형, 호성이야!”
“형, 나 재열이야!”
정호는 잠깐 눈을 떠서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두 눈에서 눈물이 쭈르륵 흘러내렸다. 인공호흡을 하던 구급대원이 손을 멈추었다. 성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정호가 한 번 뜬 눈을 감지 않았다.
“흐흐흑! 삼촌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삼촌이 꼭 너희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게. 미안 해! 정말 미안해!”
성수는 한참을 정호를 안고 울부짖다가 손으로 눈을 감겨 주었다. 그리고 안주머니에 손을 넣고 더듬었다. 성수는 지난번에 사 둔 봄 시즌 야구 관람 티켓을 꺼내 정호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정호야! 봄 시즌 고교야구시합 구경 가기로 했잖니? 그런데…. 이 표 가지고 꼭 야구 보러 와라. 정호야! 우리가 기다릴게!”
정혜가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정호 눈물을 닦아주었다.
“오빠! 이 손수건 고이 간직할게. 아침에 이 손수건으로 내 콧물을 닦아 주었잖아. 흐흑!”
하늘에서는 별도 달빛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최루탄 불꽃만이 하늘에서 번쩍거렸다.
성수는 정호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구급차는 정혜와 호성이, 재열이 그리고 군중들을 뒤로 남겨 두고 느리게 느리게 사이렌소리를 내며 떠났다. 뒤에 남은 그들은 구름 속을 둥둥 나는 것 같은 형상으로 공중 속에서 사라졌다. 길바닥에 정호 책보따리거 뒹굴고 있었다. 정혜가 실신한 것을 호성이가 부축해 가는 것이 유리창을 통해 움직임으로 보였다. 모두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성수는 방명록을 펼쳤다. 사망자 명단에 ‘강정호’라고 적었다. 멍하니 펜 끝을 바라보았다.
‘성수야, 펜은 칼보다 말보다 강하단다.’
성수 귀에 교수 삼촌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리는 듯했다. 성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22.8매 (너무 술프네요. 구경하다가 죽은 것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행동이 나와 준다면...)
9.우리는 동지다!(성수시점)
성수는 정호와 재열이를 4.19혁명에서 잃고, 또한 많은 희생자를 내고 초죽음이 되어 삼촌 집을 방문했다. (문장?)
성수의 몰골을 보고 교수 삼촌은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그래, 살아 돌아 왔구나. 어디 다친 데는 없나? 이렇게 살아 와주어 삼촌은 정말 기쁘다. 희생된 동무들한테는 가히 미안하구나. 정말 장하다. 꺼억!”
삼촌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고 말았다.
“이 나라가 어찌 되려고.”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삼촌!”
“네가 혹시 부상을 당했으면 어쩌나 해서 병원을 다 찾아 봤단다.”
삼촌의 그 말에 성수는 설움이 복받쳤다.
“성수야! 너희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될지 모르겠구나.”
삼촌은 그 사건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고 했다.
고려대 사건과 4.19 거사 날 많은 학생 시민들이 희생되자,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을 인식하고 보다 못한 대학교수들이 결의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했다. 여태 묵묵히 지켜보며 몸을 사리던 대학 교수들까지 시위에 합류하기로 했던 것이다. 성수는 삼촌의 말에 의아해 하며 바라보았다. 교수 삼촌의 눈에는 나라를 걱정하며, 조카를 걱정하고 학생들을 걱정하는 진심이 들어 있었다.
“삼촌, 고맙습니다.”
삼촌이 중심이 되어 교수들이 집결된다고 했다. 교수들이 동참한다는 말에 성수는 울컥했다. 삼촌은 늘 성수의 든든한 구원자였다. 몰골이 말이 아닌 조카가 안쓰러웠던지, 성수 등을 토닥토닥 쓰다듬어 주었다. 대의를 위해 교수들 참여는 자신의 앞날은 물론이고 생명까지 내건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삼촌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말했다.
“자, 우리는 동지다!”
성수는 삼촌과 어릴 때 자주했던, 손을 높이 들어 주먹을 마주쳤다.
“하하하!”
“하하하!”
성수는 삼촌의 그 말에 모든 걸 다 잊은 듯, 오랜만에 삼촌과 마주보고 호탕하게 웃을 수 있었다.
“민주주의를 쟁취하는데 교수 학생이 어디 있나. 모두가 다 갈망하는 것이지.”
조카를 향한 삼촌의 사랑이 새삼 더 깊음을 성수는 느꼈다.
“날짜가 언제 입니까? 날짜를 알아야 저희들이 준비를 하지요.”
“아직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조심 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성수야, 선언문, 결의문, 프랭카드 인쇄 제작까지는 문제가 없는데, 당일 학생들의 호위가 필요하다. 교수들은 연세가 높은 분들이 많고, 또 숫자로도 부족할 것 같으니 될수록 많은 수의 학생들이 그날 참여 해 주길 바란다.”
“염려마세요. 삼촌! 저희가 최대한 교수님들을 호의하겠습니다. 한 분도 희생자가 나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삼촌은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교수들은 워낙 노령인분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4월 23일, 4백여 교수들은 <4·19의거로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평화적인 시가행진을 감행했다. 교수단 참여로 시민과 학생들의 절대적 지지를 불러일으켰다. 또다시 시민과 학생들이 궐기를 함으로서 대대적인 데모를 촉발시켰다. 그것이 마침내 이승만대통령의 하야를 촉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 분명했다.
시위현장에 교수들이 잔뜩 긴장 한 상태로 커다란 프랭카드를 펼쳤다. 그 내용을 보고 학생들은 아연실색해 입이 딱 벌어졌다.
"이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3•15 부정선거 후,
“우리는 소년의 죽음을 그냥 묵과할 수는 없다.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영원히 자유 민주주의는 없다. 소년의 죽음을 밝혀내자!”
마산 김주열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흥분한 과격시민들까지도 공식적으로 이승만대통령 하야를 직접 요구하거나 강하게 비난한 일은 없었다. 기껏해야 ‘백색독재 타도’ 정도였다.
그날 군중들의 수가 최소 3-4만 명 정도는 되었다. 군중들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일부 시민들은 계엄군을 에워쌌다.
군중들은 군인들이 끌고 나온 탱크에 올라가기도 했다. 계엄군은 무표정한 태도를 유지하고 절대 중립을 지키고자했다. 그들은 행여나 교수들이 다칠까 염려해서 일 것이다. 대통령은 한사람도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것이다. 사태가 예상했던 것 보다 심각 해 지자, 교수 삼촌이 성수에게 말했다.
“혹시 일부 과격한 학생과 시민들과 계엄군 사이에 우발적인 충돌이라도 일어난다면 큰일이다.”
그러니 군중들을 해산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건 불가능해요. 이미 시민연대는 각오를 하고 모였으니까요. 지식인들이 나온다는데 그들로서도 가만있을 수가 없는 거지요. 여태 그들은 지식층들의 호응 없이 외롭게 싸웠잖아요. 그리고 지식층들은 하층민들이 하는 시위라고 무시 했던 건 사실이고요.”
성수는 그동안에 쌓인 불만을 교수 삼촌을 향해 쏟아냈다. 성수 자신이 삼촌에게 대든다는 것은 꿈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데모대를 이끌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변해있어 성수자신도 깜짝 놀랐다. 교수 삼촌은 이해한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삼촌!”
성수는 고개를 숙이고 삼촌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성수의 의지는 더 불타올랐다. 그런 성수를 삼촌은 말없이 토닥여주며 말했다.
“몰골이 말이 아니구나. 너희들이 이렇게 애쓰는데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 나라에 정착해야 할 텐데. 자, 가자.”
삼촌이 앞장서며 주먹을 높이 들었다. 삼촌의 선창으로 교수들은 묵직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이대통령은 물러가라”
“이승만은 물러가라”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
교수, 학생 시민연대는 자유의 횃불을 높이 들었다.
이제 이승만의 정부는 무너질 위기를 맞고 있었다. 학생들을 중심으로 엘리트 계층과 교수들까지 시위가 확산되자, 주한 미국대사였던 W. P. 매카나기가 수습에 나섰다. 교수대표 교수 삼촌과 학생의장과 성수도 함께 동참했다. 매카나기가 대통령을 찾아가서 하야할 것을 설득했다. 하지만 이승만대통령의 뜻은 확고했다.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더 젊었던 시절의 나는 우리 국민들을 잘 이해하고 있었소. 난 지금도 내가 그들의 동지라고 생각했소.”
주한 미국대사가 전달한 교수 학생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1960년 4•25 전국 대학교수 대표들이 모여 시국수습을 위한 선언문을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 모여 발표하고 시위에 나섰다. 선언문 낭독과 교수 몇 분의 연설이 시작되자 점점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27개 대학교수 258명은 14개항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부정 물의에 항거하는 민족정기의 표현-
이번 4.19의거는 이 나라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계기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과정이 없이는 이 민족들의 불행한 운명은 도저히 만회할 길이 없다. 이 비상시국에 대비하여 전국 대학 교수들의 양심에 호소하여 좌와 같이 우리의 소신을 선언한다.
-1960년 4월 25일 대학교수단 시국선언문 일부-
대통령과 대법관은 이러한 사태를 책임지고 물러나는 동시에 재선거를 실시하라는 요지였다.
이어 4백여 교수들은 <4·19의거로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평화적인 시가행진을 감행했다. 교수단 참여로 시민과 학생들의 절대적 지지를 불러일으켰다. 그날 밤부터 다시 시민과 학생들이 궐기를 함으로서 대대적인 데모를 촉발시켰다. 마침내 이승만의 하야를 촉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교수들이 거리로 나서자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들까지 참가해 구호를 외쳤다.
“우리 아이들에게 자유민주주의 나라에서 살게 해 주고 싶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는 당시 경무대 경찰서장은 곡사포로 학생들 진압을 막으려했으나 실패했다. 여기서도 많은 학생들이 또 희생되었다.
부상자와 시신들이 거리에 너부러졌다. 학생들도 악에 받칠 대로 받쳐 경찰의 총을 빼앗고 무기고를 탈취해서 맞섰다.
“상아의 진리 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같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서 이성과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
연행된 학생들을 석방하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연행된 학생을 석방하라! 석방하라!”
“이대통령은 물러가라”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흘린 피에 보답하라!”
노 교수들이 외치는 그 소리는 군중들을 자극하기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이승만은 물러가라”
노 교수들이 외치는 그 소리는 군중들을 자극하기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었다.
교수, 학생 시민연대는 자유의 횃불을 높이 들었다. 교수들의 힘에 이승만대통령은 위기를 맞았다. 23.6매
출처: 모든 자료 googl.com/search
10. 4•19 그날, 우리는 알아요!(정혜시점)
4월 26일, 혁명국민학교 6학년들이 덕수궁 앞에서 데모를 하기로 했다. 오빠와 재열이가 희생된데 대한 분노가 국민학생들까지도 분노했다. 오빠 담임 선생님이 앞장섰다. 오빠 담임 선생님은 투표 날 반공청년단으로부터 폭력을 당했다. 그보다 사랑하는 제자 오빠와 재열이가 희생된데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정혜는 어젯밤에 낭송할 동시도 한 편 써서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정혜는 호성이 오빠랑 공터에서 만나 덕수궁 쪽으로 가기로 약속했다. 약속장소에 호성이 오빠가 먼저 나와 있었다.
“호성 오빠! 맨날 네 명이 모였는데….”
정혜는 오빠와 재열이 생각이 더 났다. 호성 오빠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빠 엄마한테 우리 데모 간다고 말했어?”
정혜는 얼른 말을 바꾸었다. 정혜는 엄마한테 공터에서 조금 놀다 온다고 말했다. 오빠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 있는 엄마에게 말하면 앞장 설 것이 분명했다. 오빠가 죽은 이후로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먹지 못한 엄마가 데모에 나간다면 쓰러지고 말 것이다. 정혜도 그 이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아니.”
정혜 생각대로 호성이 오빠도 말 안하고 나왔다.
“그럼 뭐라 하고 왔는데?”
“할머니한테 공터에서 놀다 온다고.”
결국 엄마한테 들키고 말았단다.
“쉿! 엄마한테는 비밀!”
“왜? 너 애미가 못 놀게 하나?”
“엄마는 맨날 공부하라고만해서요.”
“애들은 놀기도 해야지 공부만 해서 되나. 그래 놀다 오너라. 밖이 시끄러우니까 멀리는 가지 말고?”
“나는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나오는데 부엌문이 삐그덕 열리지 않겠어.”
“호성이 어딜 가려고?”
“헉! 깜짝이야!”
“왜 그리 놀라?”
“나 둬라 내가 놀다 오라 했다.”
“헤헤! 엄마, 나 요 앞에서 쬐끔만, 아니 요만큼만 놀다 올게요. 정혜 위로도 할 겸. 정혜 붕어빵도 하나 사주고. 정혜가 정호 형 그리되고 아무것도 못 먹고 있거든요.”
“그럼 멀리 가지 말고. 돈은 있니?”
“네, 지난 번 용돈 그대로 있어요.”
“아버지 아시면 혼나니까 빨리 들어오고. 큰길 쪽은 데모 한다고 난리이니까 가지 말고.”
“네, 다녀오겠습니다. 할머니, 어머니!”
“그래서 데모 가는 거 안 들켰어.”
호성이 오빠는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었다.
“오빠는 겁 안 나?”
“응, 약간. 하지만 지금은 겁 안나? 정호 형 일이고, 재열이 일이고, 우리 국민 동생 일이잖아. 내가 앞장 안서면 누가 서? 정호 형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아이들을 향해 총을 쏘지는 않을 거니까 안심하라고 했어. 정호 형은 데모대하고 함께 있어 총을 맞은 거래. 그러니까 총 안 쏠 거야. 걱정 마.”
“지네들 부정선거로 우리 오빠가 죽고…. 흐흑!”
“울지 마. 정호 형은 너가 씩씩하길 바랄거야. 데모 끝내고 이 오빠가 붕어빵 사 줄게.”
정혜는 눈물을 글썽글썽하면서 호성이 오빠를 향해 ‘씨익’ 웃어 주었다.
“자. 가자!”
“오빠! 괜찮을까?”
“괜찮아, 내 손 꼭 잡아.”
정혜는 호성이 오빠 손을 꼭 잡고 덕수궁을 향했다. 세종로와 경무대 앞쪽까지 사람들이 줄지어 빽빽이 모여 있었다.
국민학생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어른들도 대로를 가득 메우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군인과 경찰들은 탱크를 타고 총을 들고 군중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아이들 손에는 삐뚤빼뚤 직접 쓴 피켓이 들려있었다.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
<어린이가 죽었다. 살려내라!>
<우리들에게 총을 쏘지 마라!>
군인과 경찰들은 긴 장총을 들고 총구는 시위대를 향해 있었다. 정혜는 주춤했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준비해온 오빠와 재열이 얼굴이 그려진 천을 품속에서 꺼냈다.
“어? 그건 언제 준비했어?”
“어젯밤에 그렸어.”
“정혜그림도 잘 그리네.”
“문방구에 사진 주니까 이렇게 크게 천에다 빼껴주더라.”
“정혜 니가 이 오빠보다 낫다.”
정혜는 배시시 웃었다. (오빠를 잃은 아이인데?)
오빠와 골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칼싸움하던 해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장난감 총과 검이 아닌 진짜 총과 검 앞에 무서움도 모르고 희생된 것이다. 오빠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모두가 골목이 떠나가도록 웃으며 행복했다.
‘하하! 히히! 헤헤!’
덕수궁 앞에서 그 웃음소리가 정혜 귀에 들리는 듯했다.
시위대 맨 앞에 성수 삼촌이 있었다.
“성수 삼촌!”
정혜는 호성이 오빠 손을 잡고 성수 삼촌에게 달려갔다.
“그래, 왔구나. 너희들까지 저들은 이 위험한 곳으로 끌어들였구나. 잘 왔어.”
성수 삼촌이 우리들을 반겨 주었다. 백여 명의 어린이가 어깨동무를 하고 인간 띠를 만들어 피켓을 들었다.
“나는 말이야, 너희들을 위해서라도 민주주의를 똑바로 세워야겠다고 다짐했단다.”
성수 삼촌이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피켓을 높이 들어외쳤다.
“우리 동무들을 살려 내라. 살인마들!”
정혜도 저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오빠와 재열이 얼굴 프랭카드를 높이 들어 흔들었다. 사진을 본 아이들이 더 큰소리 질렀다. 사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하늘로 울려 퍼졌다.
“우리 동무들을 살려내라 살인마들!”
정혜도 호성이 오빠도 백여 명의 아이들도 성수 삼촌을 따라 큰 소리로 외쳤다. 성수 삼촌은 이 천진한 어린이까지 희생 된 데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저 아이들이 뭘 안다고. 정호야, 재열아, 이 삼촌이 꼭 너희의 억울한 죽음을 위해 싸울게. 보고 싶다. 으으윽!’
성수 삼촌은 도대체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디로 갈 것인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한 달 전만 해도 멋진 교수를 꿈꾸며 학업에만 열중 하던 성수 삼촌이 아니었나 말이다.
지난번에 성수 삼촌은 교수 삼촌이 한 말을 해 주었다.
‘학생 때는 학업에만 정진해야한단다. 그래야 정치든 교수든 할 수 있다.’
그런 성수 삼촌이 시위대의 앞장에 서고 있었다.
성수 삼촌은 시위대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천천히 움직였다. 정혜는 호성이 오빠와 함께 성수 삼촌 뒤를 따랐다. 앞줄에는 오빠 담임 선생님도 성수 삼촌과 나란히 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선생님!”
정혜는 오빠 담임 선생님을 불렀다.
“오냐, 정혜 왔구나. 호성이도. 정혜야, 슬프지만 우리 함께하자. 오빠는 민주주의의 초석이 됐다.”
선생님은 정혜를 안아주며 말했다.
“우리 오빠를 살려 내라!”
정혜는 오빠사진을 높이 들었다. 정혜 담임 선생님을 보이지 않았다. 철민이도 보이지 않았다.
성수 삼촌은 자신이 직접 만든 프랭카드를 들고 하늘 높이 흔들었다.
<민주주의 바로 잡아 공산주의 타도하자!>
시위대가 전진하자 경찰과 군인들은 더 살벌한 얼굴을 하고 시위대를 에워쌌다.
“위험하니 너희들은 이제 집으로 가거라. 민주주의는 삼촌이 어른들과 함께 바로 잡으마.”
“싫어요. 정호 형과 재열이가 죽었단 말이에요.”
호성이 오빠가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 호성이 오빠의 눈동자는 이글거리고 있었다. 우리들의 울분을 잠재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성수 삼촌이 하는 것 같았다.
성수 삼촌이 우리 등을 토닥여주었다. 정혜는 오빠 생각에 온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있었다.
“성수 삼촌! 이제부터 울지 않고 오빠를 위해 싸울 거예요. 우리는 분명히 그날을 기억하고 있단 말이에요.”
정혜는 착한 오빠보다 야물졌다. 호성이 오빠는 울음을 참느라 목에서 끄윽끄윽! 소리를 냈다. 성수 삼촌도 울음을 참느라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른침을 자꾸만 삼켰다.
“너희들 눈에서 민주주의가 바로 서는 게 보이는구나. 그래, 해 보자, 끝까지! 너희들이 이 삼촌에게 용기를 주는 구나.”
“우리도 끝까지 할 거예요.”
“우리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마세요! 총을 쏘지 마라! 너희들 동생이고 조카들이고 아들딸들이다!”
성수 삼촌이 확성기에 대고 큰 소리로 아이들의 피켓에 쓴 프랭카드 문구를 외쳤다.
“우리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마세요!”
“살려내라! 우리 동무와 오빠들을 살려내라!”
“우리는 알아요! 우리 오빠를 어른들이 죽였다는 것을.”
호성 오빠가 피켓을 들고 맨 앞장서서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4월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아이들의 소리는 높이높이 하늘로 올라갔다. 새 한 마리가 팽그르르 하늘로 날아올랐다. ‘자유다?’
“탕!”
“턱!”
그 새가 정혜 앞에 떨어졌다.
“허엉!”
정혜는 놀라 새가 떨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혜도 성수 삼촌도 총보다 더 놀란 눈으로 떨어진 새를 바라보았다.
“불쌍해!”
최루탄이 시위대를 향해 발사되었다.
“콜록콜록, 콜록콜록!”
사방에서 아이들의 기침소리가 들렸다. 성수 삼촌이 얼른 손수건을 꺼내 정혜 코를 막았다.
“성수 삼촌! 이 확성기 저 좀 주세요.”
정혜는 성수 삼촌 손에서 확성기를 건네받아 아이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정혜는 어젯밤에 쓴 동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확성기에서 또랑또랑한 동시를 낭송하는 정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혜는 4•19혁명을 그린 시를 낭송해 군중들이 오열했다.
우리는 알아요
아.....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 오며는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놀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놀은
오빠와 언니들의 피로 물들었어요
오빠와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 먹고
저녁도 안 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 19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 말 안 해도
오빠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강정혜(강명희)의 동시<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일부
“흐흐흑!”
동시 낭송이 끝나자 시위현장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잠시 총소리도 멈추었다.
“우리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마세요!”
“살려내라! 우리 동무와 내 아들을 살려내라!”
언제 왔는지 엄마와 호랑이 아주머니, 재열이 할머니 호성이 오빠 엄마와 할머니도 피켓을 들고 외쳤다. 아이들보다 더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살려내라 내 새끼! 생떼 같은 내 강아지 살려내라!”
재열이 할머니가 피켓을 높이 들고 외쳤다.
“살려내라 내 새끼! 생떼 같은 내 강아지 살려내라!”
“엄마, 할머니!”
“니들이 몰래 나간다고 우리가 모를 줄 알았나?”
호랑이 아주머니가 우리를 안아주며 말했다.
총을 든 트럭들이 시위대 앞을 지나가며 바닥에다 총을 쏘았다.
“얼른 피해! 아주머니, 이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세요!”
성수 삼촌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고 대학생 시위대를 이끌고 경무대 쪽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오빠 선생님이 이끌었다.
저녁 라디오 뉴스와 신문에서 어린이 시위대를 톱기사로 다루었다. 정혜의 시 낭송도 라디오를 통해 흘러 나왔다. 신문에는 성수 삼촌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났다. 32.6매
12. 야구가 뭐예요(성수시점)
성수는 시위대를 이끌면서도 정호와 재열이 생각에 슬픔을 참지 못했다. 시위현장에서 아이들이 눈에 띄면 달려갔다.
‘으윽! 정호야, 재열아! 이 삼촌이 미안하구나.’
‘헤헤! 삼촌 미안 할 것 없어요. 우리 골목에서 매일 만나면 되잖아요.’
‘그, 그래.’
성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훔쳤다. 아이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
와와와!
“성수 삼촌 야구가 뭐에요?”
“그건 공 던지기나 자치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거야.”
“자치기는 재열이가 잘하고, 공 던지기는 정혜가 잘해요.”
정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성수 삼촌. 우리도 야구놀이 할 수 있어요?”
정혜가 물었다.
“물론이지. 하지만 야구는 장비가 필요해.”
“장비라면 정혜는 공이 있고, 자치기 막대는 우리 모두 가지고 있어요.”
호성이가 담벼락에 세워 둔 자치기 막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하하, 그런 게 아니고, 아, 가만있어 봐. 삼촌이 집에 가서 장비를 가지고 올게.”
성수는 집으로 달려가 커다란 가방을 들고 왔다. 가방 속에서 야구 장비를 꺼내자 아이들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 찼다.
“성수 삼촌! 이게 다 뭐예요?
“자, 이건 야구 방망이.”
성수는 재열이 손에 야구 방망이를 잡혀주며 말했다. 재열이가 야구방망이로 공을 치듯이 휘둘러 보았다.
“와! 재열이 멋지다.”
“이건 글러브.”
커다란 장갑을 호성이 손에 끼워 주었다.
“너무 커요. 이렇게 딱딱해 어떻게 공을 잡아요?”
호성이는 공중으로 날아오는 공을 잡는 시늉을 해 보였다.
“이건 야구모자!”
딱딱한 모자를 정호 머리에 씌워 주었다. 정호는 모자를 통통 두드리며 말했다.
“이건 우리 국군아저씨 철모 같아요.”
“하하! 그러냐? 그리고 이건 야구공!”
정혜가 야구공을 받아 들고 손가락으로 팽그르르 돌리며 말했다.
“근데 공이 왜 이리 딱딱해요? 그러고 보니 모두 딱딱 한 것뿐이네요. 그건 또 뭐예요”
“이건 마스크라는 건데. 얼굴에 쓰는 거야. 공이 얼굴에 맞으면 다치거든.”
“와, 장비가 이렇게 많아요? 장비가 없으면 야구를 못하는 거네요?”
정호 말에 모두 실망하는 눈치였다.
“골목에서 연습하는 것이니까 고무공도 괜찮아. 방망이와 공만 있어도 할 수 있어. 하지만 야구 장비도 알아 두는 게 경기를 볼 때 도움이 되는 거란다.”
아이들은 야구 장비를 신기한 듯 하나하나 만져보았다.
“하얀 공에 빨간 실로 꿰맸네요. 그리고 이 낙서 같은 것은 뭐예요?”
정혜가 공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하하! 정혜 관찰력이 대단한데. 그 낙서 같은 것은 선수들이 사인 한 거란다. 이걸 사인볼이라고 하고. 그리고 하얀색은 타자 눈에 잘 띄고, 빨간 실밥은 흰색 공을 더 선명하게 보이세하는 효과가 있지. 기운 것은 공의 속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래. 매끈한 공은 130km만이 날수 있지만, 기운 공은 150km까지 속력을 낼 수 있단다.”
“와! 대단하네요?”
“꿰맨 바늘땀은 똑같겠어요. 왜냐하면 엄마가 바느질할 때 양쪽 소매처럼 같은 길이는 바늘땀도 똑같아야 한복이 예쁘게 나온다고 하셨거든요.”
“정혜 말이 맞아, 야구공은 일률적으로 꿰맨 숫자가 108번으로 똑같아. 삼촌이 야구에 대해 설명해 줄 테니까 여기 앉아 봐!”
“네!”
모두 동그랗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정식 야구는 한 팀이 아홉 명이나 열 명으로 구성된 구기 종목이야. 우리는 인원이 안 되니까 정식으로 할 수는 없고. 야구에서 제일 중요한 선수는 일단 투수와 타자야.”
성수는 아이들이 알기 쉽게 땅바닥에 그림을 그려가며 야구하는 방법과 규칙을 설명했다.
“정혜가 공을 잘 던진다고 했지? 그럼 공격투수가 되는 거야. 그리고 재열이가 자치기 잘 하니까 타자를 맡아. 정혜가 던진 공을 재열이가 방망이로 치는 거지. 그러면 수비에 섰던 선수가 그걸 받아 투수를 향해 던져 맞히는 거야. 공이 멀리 가서 못 치면 점수를 따는 거지. 그걸 홈런이라고 하고. 그리고 이 마스크는 정호가 써. 타자가 치지 못하고 놓친 공을 잡아야 해. 얼굴에 맞을 수도 있거든. 그걸 스트라이크라고 하지. 공터가 넓어서 야구하기 딱 좋겠네. 그럼 우리 연습해볼까?”
꽃샘추위가 기성을 부렸지만, 골목 끝 공터에서는 야구 연습하느라 아이들의 함성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성수는 아이들과 봄 시즌에 서울운동장에서 일본 고교생과 우리나라 고교생 시합 관람하기로 약속했다.
“아는 것만큼 경기를 잘 관람 할 수 있으니까 배워서 우리 함께 보러 가자. 다음 주말부터는 학교 운동장에 가서 연습하자.”
“와, 신난다! 약속했어요?”
아이들은 생전 처음 야구라는 경기를 구경할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제 야구 게임 규칙만 알면 관람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겠다.”
“네!”
“뭐든 규칙이 깨지면 질서가 무너져. 그래서 규칙을 지키려고 하지. 공부도 규칙이 있어야하고, 노는데도 규칙을 따라야 해.”
그날 밤 성수는 아이들과 노느라 피곤했다.
‘녀석들도 되게 피곤 할 텐데.’
다음 날 성수는 곧바로 관람표 여섯 장을 사두었다.
‘하하, 이 녀석들이 좋아하겠군.’
관람표를 들여다보며 흐뭇해서 중얼거렸다.
‘삼촌, 야구가 뭐에요?’
성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야구란 말이야….’
아이들의 모습과 말소리가 느린동작으로 움직임과 메아리로 다가왔다.
야구가 무슨 운동인줄도 모르는 아이들의 호기심 가득한 그 얼굴! 언제나 웃음 가득한 해맑은 얼굴. 친구끼리 서로 배려하며 챙겨주던 그 마음, 작은 것에도 기뻐하며 감사할 줄 아는 착한 표정. 그 하나하나가 흑백 필름처럼 느리게 성수 머리를 스쳐갔다.
‘운동장에서 연습도 한 번 못하고…. 정호야, 재열아’
‘어느 팀과 붙어요?’
‘일본하고.’
‘일본 놈은 깨 부셔야 해요. 제가 나가면 일본 놈을 한방에 이길 수 있을 건데요.’
‘하하! 그럼 정호는 야구 선수가 되면 되겠네.’
‘좋아요. 전 지금부터 꿈을 바꿨어요.’
‘정호 꿈이 뭐였더라?’
‘우리 선생님 같은 분이 되려고요.’
‘그러면 정호는 선생님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으면 되겠네. 꿈이란 말이야.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야. 그러면 이루게 되어 있단다.’
아이들의 입은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참새처럼 조잘거렸다. 그것이 3.15 선거가 있기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 아이들은 각자 자기의 역할이 있었다. 정호는 형답게 아이들을 잘 다독이고 인솔했다. 아이들은 일본에 대해서도 분노를 터트렸다.
‘전 군인이 되어 일본을 쳐부술 거예요.’
재열이는 덩치가 커서 나쁜 아이들한테서 동무들을 보호해준다고 했다. 군복이 참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교수가 되겠다던 호성이 집은 동대문 시장에서 옷가게를 해서 그나마 넉넉해 개인과외도 했다. 과외에서 배운 공부를 동무들한테 가르쳐 주었다.
‘성수 삼촌! 나는 동화와 동시 쓰는 작가가 될 거에요.’
아이들은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자라서도 그 우정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으으윽!”
성수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하늘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를 질렀다. 금방이라도 정호가 ‘성수 삼촌! 정혜야, 호성아, 재열아!’하고 달려 올 것만 같았다.
‘그래, 천국에서라도 야구구경을 가려무나. 정호야!’
성수가 모처럼 집에 왔을 때였다. 정혜와 호성이가 혜숙이 집에 와 있었다. 재열이는 보이지 않았다. 마당에 들어서자 정혜가 성수 품속으로 달려들었다. 정혜는 오빠를 잃은 슬픔에 얼마나 울었든지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으앙앙! 흑흑!”
성수는 두 아이를 안아주고 달래주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위해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해야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면 이해 할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꿈나무들인데….
‘정호야, 너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이 삼촌이 보여주마.’
성수는 호주머니에서 나머지 야구관람 표를 꺼냈다. 그리고 정혜와 호성이 손에 쥐어 주었다. 재열이 표가 한 장 남았다. 성수가 두리번거리며 재열이를 찾았다.
“성수 삼촌! 재열이는 구경 못가요. 엉엉!”
“아니, 왜?”
호성이는 말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때 재열이 할머니가 달려왔다.
“내 손가락을 잘라버릴 거다. 이 손가락이 내 강아지를 죽인 거여. 아이고, 이 할미가 그 물건들에 눈이 멀어가지고 내 손주를 죽인 거여!”
할머니는 신고 있던 검정고무신을 벗어 마당에 패대기를 치며 울부짖었다.
“재열이 할머니. 무슨 말씀입니까?”
성수 삼촌은 재열이 할머니와 호랑이 아주머니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아이고! 죽일 놈들 때문에 생떼 같은 우리 새끼 둘이나 죽었지 안갓어요. 선생님!”
“무슨 말씀입니까? 정확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날 재열이도 죽은기라요. 선생님이 엠브런스를 타고 정호하고 간 뒤에 재열이가 보이지 않았다고 해요. 호성이와 정혜는 군중에 떠밀려 겨우 집에까지 왔는데 재열이가 못 온기라요.”
“저, 정말입니까? 그렇다고 재열이가 죽었다고 어떻게 단정합니까?”
“라디오 뉴스에서 나왔지 않갔슈! 학교 파하고 오는 길이라 교복을 입고 있었지라요. 그래도 그게 다행이지. 교복 아니었으면 시체도 못….”
호랑이 아주머니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고, 내 새끼야! 재열아, 할미를 두고 어디 갔나? 이제 이 할미는 살 희망이 없다. 내도 너 따라 갈란다.”
하나뿐인 손자를 믿고 살아온 할머니는 통곡을 했다. 골목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정호가 죽자 정호어머니는 실신해서 병원에 실려 가고 없었다. 정호 아버지도 함께 병원에 갔다.
‘으으윽! 내가 너희의 희생이 억울하지 않게 꼭 그들을 심판하고 말겠다.’
“아이고, 이놈들아, 내 새끼 살려내라.”
골목은 두 어린영혼의 억울한 죽음의 슬픔으로 가득 찼다. 재열이 할머니가 실신하고 말았다. 성수는 할머니께 인공호흡을 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휴우!”
“하아! 하아! 할머니 정신이 드세요?”
성수는 바튼 숨을 내 뱉으며 안도했다.
“성수 삼촌은 우리의 구세주예요.”
정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말했다.
‘성수 삼촌, 야구가 뭐예요?’
‘정호야, 재열아! 야구도 룰을 지켜야하고, 민주주의도 룰을 지켜야 제대로 되는 민주주의란다.’
성수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러간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대문을 나섰다. 29매
흐름이 곁길로 새는 분위기
12. 대통령 할아버지의 하야 or역사의 날 (정혜시점)
성수 삼촌이 검거대상 1호가 되었다는 것을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경찰은 성수 삼촌을 검거하려고 혈안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외침이 승리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뭉치면 이기고 흩어지면 죽는다.’ 는 말이 맞았다. 언니 오빠들, 그리고 전 국민이 뭉쳐 민주주의를 다 함께 외쳤다.
“호외요, 호외!”
골목에서 신문배달 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기쁨에 찬 라디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날아갈 듯이 흥분했다. 정혜는 라디오에 귀를 기우렸다.
“이승만대통령은 4월 23일 시위진압 경찰의 발포로 시민들의 사망 소식을 전달받고 병원을 찾아 부상 학생들을 위문했습니다. 애도의 뜻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며, 4월 24일 유혈사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총재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오늘 4월 26일 오후 1시에는 이승만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하야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엄마는 오빠가 생각나는지 연신 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혜야, 잘 있었어? 아주머니도 안녕하세요? 기쁜 소식이 있어 제일 먼저 정혜 가족분이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달려왔습니다.”
성수 삼촌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정혜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마당으로 달려가 성수 삼촌 품에 안겼다.
엄마가 삼촌을 보더니 놀라며 말했다. 정혜는 성수 삼촌 손을 끌고 마루로 올라갔다.
그때 대통령 할아버지의 연설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 오빠가 죽었는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성수 삼촌?”
정혜는 오빠를 죽인 대통령인데도 자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 이야기로는 대통령 할아버지 보다는 측근들이 더 나쁘다고 했다.
“아닙니다. 아주머니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저도 정호를 잊지 못할 것 같은데요….”
4월 26일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4•19혁명은 민족정기이자 혼이요, 생명이고, 영원히 타오르는 민족의 숨결이고 정신이라고 아나운서는 말하고 있었다.
“정혜야, 4•19혁명은 ‘미완의 혁명’ 즉 ‘절름발이 민주주의’라는 거야. 민주주의를 쟁취 하는 데는 많은 희생이 따른단다. 오빠도 재열이도 희생되었고….”
정혜는 성수 삼촌 말을 다 알아 듣지는 못해도 독재나 부정 선거가 나쁘다는 것은 분명히 알았다.
대통령 하야가 생중계되고 있는 라디오에서 함성이 들렸다
“와! 만세! 민주주의가 이겼어요. 4월 26일은 역사의 날입니다.”
정혜는 라디오를 듣다가 울고 있는 엄마 품으로 뛰어 들었다. 엄마는 정혜를 품에 안으며 설움이 복받치는지 어깨가 들썩였다.
“엄마, 울지 마. 오빠도 기뻐할 거야.”
“네 오빠가 얼마나 아팠을까. 정호가 흘린 피가 헛되지 않은 모양이구나.”(민주주의를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면이 나와야 이 말에 힘이 실려요.)
“네, 정혜 말이 맞아요. 아주머니. 하늘나라에서 정호도 기뻐할 거예요.”
이승만대통령의 잘못보다 그 측근들의 욕심 때문에 빚어진 사건이 더 많았다고 성수 삼촌도 설명했다. (최고 책임자의 책무를 가벼이 생각하는 듯이 보여요.)
“엄마, 텔레비전으로 보면 더 잘 볼 수 있을 텐데 켜볼까?”
“고장 나서 잘 안 나올 건데 그래도 한번 켜봐라.”
정혜는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이 지지직거리며 흔들렸다.
“지지직!”
“텔레비전이 고장 안 나고 나오네.”
텔레비전 화면은 굵은 소낙비가 내리는 것처럼 떨리고 빗금이 쳐져 보기 힘들었지만, 라디오로 듣는 것보다 훨씬 생동감이 넘치고 사실적이고 생생했다.
텔레비전에서는 대통령이 할아버지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연단에 서 있는 모습이 크게 나왔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엄마는 신문지를 쭉 찢어 코를 풀었다. 언제 왔는지 호랑이 아주머니도 대청마루에 걸터앉아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호성 오빠도 할머니와 함께 대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성수 삼촌이 호성 오빠 할머니 손을 잡아 마루로 끌어 주며 말했다.
“정혜야, 호성아! 그리고 골목 가족 어르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정호와 재열이가 희생되었고, 많은 사람이 흘렸던 피가 헛되지 않아 다행이이에요.”
“근데 성수 삼촌, 우리 오빠를 죽게 한 사람인데 왜 자꾸 대통령 할아버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까요?”(이 부분... 공감을 살지?)
“그건 삼촌이 말해 줄게. 대통령이 하야하는 것은 국민들의 요구에 의해 자진해서 물러나는 것이기 때문일 거야. 경찰이나 시위진압대가 과잉 진압으로 시민들과 학생들이 죽은 것을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이 된 거지. 물론 그 사건의 책임자는 이승만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건이 커질 거라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독재의 끝은 비참한 거야. 대부분의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이렇게 어렵게 탄생하는 줄은 정말 모르고 있거든. 이번 기회로 자유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귀한 건지 국민들이 알았으면 해. 그리고 대통령 연설문에는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들어 있어. 그게 진실이든 가짜이든.”
“오늘 대통령 하야 연설을 정호와 재열이가 보아야하는데.”
호랑이 아주머니의 그 말에 엄마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혜도 울고 말았다.
“으앙!”
“이 사람아, 터지려는 둑을 건들면 어쩌나?”
호성이 할머니가 옆에서 퉁박을 주었다.
“지가 그 애들이 보고 싶어시요. 정혜 어머니 울지 마소. 정혜야, 울지 마라, 하늘에서 오빠가 보고 기뻐 할 거다. 뚝! 오늘 기분 좋은 날이니까 내 장사할 어묵과 주먹밥 여기 다 풀란다. 그러니께 울지 마라. 알았제? 대한민국만세!”
아주머니는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일어섰다.
“대한민국만세!”
모두 따라 일어나서 대한민국 만세 삼창을 불렀다.
“대한민국만세!”
재열이 할머니기 대문을 들어서며 소리쳤다.
“재열이 할머니, 이제 재열이 원수 갚은 기지요. 이제 울지 마시라요.”
“원수 갚으면 뭐해! 생떼 같은 내 강아지가 죽고 없는데. 안 그러냐? 정호 에미야!”
그 말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아주머니, 주먹밥과 어묵 준다고 한 날 아닌가요?”
정혜는 겨우 울음을 그친 엄마가 또 울까봐서 엉뚱한 말을 하며 배시시 웃었다. 정혜가 웃자 무거운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주머이 예, 그 주먹밥은 우리 어무이 특허품인기라예.”
성수 삼촌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쓰며 안 쓰던 사투리로 말했다.
“에고머니나, 그럼 지가 불법을 저지른 것 갓시오!”
“하하하, 아입니더. 괜찮십니더.”
“하하, 호호!”
겨우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 같았다.
성수 삼촌이 전에 주먹밥을 만들어 준 적이 있었다. 그 주먹밥은 둘이 먹다 하나 없어져도 모를 만큼 맛있었다.
‘성수 삼촌! 이 주먹밥 정말 맛있다.’
오빠와 골목 아이들은 엄지 척을 했다.
‘이 주먹밥은 말이야.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우리 어머니 표야. 우리 교수 삼촌이 제일 좋아하던 주먹밥이고.’
그 주먹밥은 통 계란을 삶아 까서 밥 속에 넣고, 밥에는 고소한 참기름과 간장, 그리고 통깨를 솔솔 뿌려 간을 한 다음 김에다 보자기처럼 싼 것이었다. 호랑이 아주머니 가게에서 제일 잘 팔리는 주먹밥이라고 했다.
모두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도 성수 삼촌의 말에 웃고 있었다. 이 웃음소리가 오빠와 재열이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박사님! 안돼요! 하야하면 안 되어요. 가지마세요!”
텔레비전에서는 대통령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울부짖었다. 대통령 할아버지는 박사도 되고 좋은 일을 많이 해서 국민들에게 존경도 받는다고 전에 엄마가 말한 적이 있었다.
“부정 선거만 하지 않았어도 존경 받지 않았갓슈. 안 그래요 선생님!”
호랑이 아주머니는 성수 삼촌을 돌아보고 말했다. 자유당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대통령 할아버지는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가고 있었다. 뒤를 따르는 국민들의 수도 어마어마했다.
성수 삼촌이 말했다.
“힘들게 쟁취한 민주주의 결과가 감격스럽지만, 많은 희생자를 내고 쟁취한 피의 민주주의가 왠지 허탈감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힘든 결정을 한 이승만대통령이 측은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의 업적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이 원고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
성수 삼촌의 말에 모두 공감하는 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서 사람은 열 가지를 잘 하더라도 한 가지 잘 못하면 그 잘못한 하나만 기억 되는 법이지 않갓어요. 그나저나 혜숙이 이것은 어디 가서 싸돌아다니는지 안 보이는 구만요.”
“어딜 싸돌아다니긴요. 박이 터지게 민주주의를 외치고 오는구만요. 어? 선생님도 계셨네요.”
정혜는 혜숙이 언니한테 달려갔다. 언니는 정혜를 꼭 안아주었다. 좀 전에 호랑이 아주머니가 한 말은 엄마도 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열 가지 잘하다가 한 가지 잘 못하면 그 잘 못한 것만 죄가 된다고 했던 그 말 말이다. 대통령 할아버지도 그 열 가지 중 한 가지를 잘못한 것 같았다. 오빠만 죽지 않았어도 대통령 할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을 끌어내리면 민주주의가 되는 줄 알고 모두 들고 일어났지만. 그렇게 희생자를 내지 않고도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자유란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라고요.”
자유를 쟁취하는 데는 많은 피의 대가와 많은 희생이 따른다는 뜻이라고 했다. 또한 성수 삼촌은 대통령이 하야한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완벽하게 쟁취한 건 아니라고 했다. 더 많은 일이 남아있다고 했다. 그래서 4•19는 미완성이고. 절름발이 민주주의가 되고 만 것이란다. 그리고 성수 삼촌은 가 봐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부연 설명 필요요)
그날 이후, 정혜는 성수 삼촌을 몇 달 동안 보지 못했다.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궁금한데요.)
13. 희망의 등불(정혜시점)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여 우리는 언니뒤를 따르렵니다.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졸업식노래 윤석중 작사 정순철 작곡
졸업식 강당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4.19혁명이 일어 난지 벌 써 일 년이 되었다. 1961년 3월 혁명국민학교에서 특별한 졸업식이 열리고 있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했던 졸업식장은 졸업식 노래가 울려 퍼지자 울음바다가 되었던 것이다.
졸업생 오빠 언니들과 함께 오빠의 영령 졸업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선생님과 학부모님 그리고 동무들의 눈물 속에 오빠는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오빠의 졸업장은 엄마가 대신 받았다.
졸업식 노래를 부르는 재학생들, 졸업식을 하는 오빠 언니들은 졸업식 노래를 부르다 목이 메여 팔백여 명이 모인 강당 안은 까마귀 떼의 울음소리처럼 꺼억 꺼억 하는 소리만 가득 메웠다. 엄마는 거의 실신상태였다. 교장선생님의 졸업축사에서는 더 큰 울음소리 때문에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오늘 우리는 특별한 졸업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 졸업식은 길이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강정호군의 희생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똑바로 세우는데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 아시겠지만 우리 학교 학생이 또 한명 희생되었습니다. 4학년 박재열군입니다. 4.19사태로 어린이만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들도 동무와 동생의 희생으로 자유 민주국가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하시고 정호군과 재열군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도 축하드립니다. 특히 강정호군의 졸업식은 더 뜻깊습니다. 여기 정호어머님과 동생 정혜양이 참석했습니다. 알다시피 정혜양은 4.19동시를 낭송해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심금을 울렸습니다. 어머님 또한 가슴 아프고 원통한 일이지만 정호군으로 인해 이 나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면 그 보다 더 뜻깊은 일이 있겠습니까? 오늘 어머님께서 정호 졸업장을 대신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님은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엄마, 나오래요.’
정혜는 나직히 엄마 귀에다 말했다. 엄마는 우느라 교장선생님 말을 못들은 것같이 멍하니 넋을 잃고 있었다. 정혜 말에 엄마는 화들짝 놀랐다. 엄마는 휘청거리며 쓰러질듯이 앞으로 나갔다. 정혜는 엄마를 부축했다. 교장 선생님이 졸업장을 읽었다.
졸업장
강정호
위 학생은 4.19 혁명 희생으로 6년을 채우지 못했지만 민주주의가 똑바로 서는데 초석이 되었으므로 졸업장을 수여합니다.
1961년 3월 6일
혁명국민학교교장 임명석(졸업장 내용을 다 쓰지 않아도 되는데...)
교장선생님이 엄마한테 졸업장을 수여하자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호성 오빠가 흰 국화꽃다발을 엄마한테 주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이 마이크를 엄마한테 건네며 말했다.
“정호 어머니, 아드님을 잃은 슬픔이 크시겠지만, 혹시 국민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까?”
강당에는 기자들도 와 있었다.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록 내 아들은 4.19 혁명으로 희생 되었지만, 우리 아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우리 가슴속에 장미꽃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그 꽃은 전 국민들이 물을 주어 가꿀테니까 절대 시들거나 죽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민주주의를 위해 이제부터 저도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공산당을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데 제가 필요하다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함께 하겠습니다. 우리 정호도 그러길 바랄 겁니다. 또한 제 힘이 약하였기에 더 좋은 어머니로서의 소명을 다 하지 못해 부끄러우며 어머니로서 겨레를 위해 이바지 하겠습니다. “나라를 똑바로 세우는데 모두 동참합시다.”
엄마는 한 손을 높이 들고 외쳤다. 졸업식 강당은 울음바다에서 구호로 바뀌었다.
‘나라를 똑바로 세우는데 모두 동참합시다.’
기자들의 카메라 후레쉬가 터졌다.
그리고 정혜는 졸업식 축시 동시를 낭송했다.
4월의 장미 꽃/강정혜
오빠!
그 날 많이 아팠지?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마
오빠의 피가 이스팔트 위에 흥건히 젖어
붉은 장미꽃이 되었어
오빠의 꽃은
영원히 지지 않을 거야
전 국민이 물을 주고
가꾸기 때문이지
우리는 알아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유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그날 오빠와 재열이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오빠!
오빠는 민주주의라는 꽃으로 피워 났어
우리가 잘 가꾸어
오빠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할게
오빠!
하늘나라는 총성도 없고
최류탄도 없고
아름답고 평화롭지?
오빠!
오늘 오빠의 빛나는 졸업장을 받았어.
기쁘지?
오빠를
영원히 지지 않은
4월의 장미꽃으로
우리 마음속에 꼬옥 간직할게
오빠! 안녕!
정혜는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치 오빠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정혜야!”
“성수 삼촌! 혜숙이 언니!”
정혜는 성수 삼촌과 혜숙이 언니 가슴에 와락 안겼다.
“잘했어, 정혜야!”
호성이 오빠도 다가왔다. 성수 삼촌과 혜숙이 언니는 둘을 힘껏 안아주었다. 성수 삼촌과 혜숙이 언니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정혜야! 우리 이제 오빠 보내주자. 네가 그러고 있으면 오빠가 더 슬플 거야. 동시 참 잘했어.”
정혜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오빠! 안녕!’
마음속으로 다시 작별인사를 했다.
성수 삼촌이 뭔가를 교복 안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고 정혜 손에 꼭 쥐어 주었다.
“풀어 봐!”
정혜는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풀었다.
성수 삼촌이 아끼던 금빛 문양 만년필이었다. 그것은 성수 삼촌의 삼촌이 자신에게 주었다던 그 만년필이었다.
“이, 이건 성수 삼촌이 제일 아끼던 만년필이잖아요?”
“정혜야, 펜은 말이야. 전에도 말했지만, 칼보다 말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단다.”(그런 역할을 했는지요? )
정혜는 그것이 정확히 무슨 뜻인 줄은 모르지만, 큰 뜻이 담겨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수 삼촌, 고맙습니다. 이 만년필이 잘못된 일은 하지 않을 거예요. 똑바른 글만 쓸게요.”
“그래, 너는 꼭 할 수 있을 거야.”
성수삼촌이 정혜와 호성 오빠를 안아주며 말했다.
“이제 가 봐야겠다. 성수 삼촌이 뒤돌아서서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정혜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는 알아요. 성수 삼촌 다리가 왜 그런지를 요.’
정혜는 물끄러미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성수 삼촌, 이 만년필로 4.19혁명의 그 끔찍한 일들을 낱낱이 빠짐없이 기록할 게요. 성수 삼촌 이야기 꼭 쓸 거예요. 우리 오빠! 세상에서 제일착하고 다정한 오빠라고 꼭 쓸게.’
정혜는 성수 삼촌이 준 만년필을 들여다보며 전에 교수 삼촌이 해 주었다는 말을 생각했다.
‘그래, 한번 길을 들어서면 그 길로 끝까지 가는 거 명심하고. 그리고 그 펜은 펜에 대한 신뢰와 무한한 사랑, 믿음을 불어 넣을 때라야 만이 강한 힘을 얻는 다는 것도.’ (공감이 가게...)
“성수 삼촌, 혜숙이 언니 고맙습니다. 두 분은 우리 모두의 희망의 등불입니다. 성수 삼촌의 다리로 이루어 낸 민주주의에요.” (이야기가 작아지는 듯해요.)
정혜는 두 사람의 등 뒤에다 큰 소리로 외쳤다. (빼는 게...) 22.9매
총347.5매
긴 글 쓰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역사동화는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이 더해져서 이야기 전개가 되는데요.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려주려고 해서 문학성을 약하게 하고 있어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도 중요하지요.
주제가 독자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지 체크해 보세요.
구성은 교차시점으로 해서 등장인물의 심리를 잘 드러내고자 했는데,
집중되지 않고 분산되는 느낌이었어요.
전체적으로 공감해서 읽기보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읽게 되었어요.
작가는 주인공화되어서 이야기를 전개해야...
문장도 살펴보세요.
반복되는 이야기가 많아요.
자료 부분은 꼭 필요한 것만 넣는 게 좋겠어요.
정혜와 성수 삼촌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지? 성수 삼촌 분량이 큼.
이야기가 나눠지고 있는 듯함.
독자가 공감하며 읽어야 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등장인물 캐릭터 구분이 되는지?
실제 인물을 기준으로 해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맞게 취할 것만 취해서 써야 해요.
강정혜가 동시를 쓴 건 팩트인데...
그 가족 중에 오빠를 죽게 했네요.
사실에 상상을 넣는다 해도, 유족의 항의를 받을 수 있어요.
작가의 주제의식이 흔들리는 부분이 보여요.
이승만 대통령 평가 문제... (빼는 게 좋음.)
역사동화는 작가의 역사관이 중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