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와 특전사
철갑상어 알, 거위 간과 함께 서양에서 3대 진미(珍味)로 치는 게 송로(松露)이다. 버섯 kg당 500만원에서 1억원까지도 한다. 이 '검은 다이아몬드'를 캐는 일이 여간 어렵지가 않다. 프랑스 사람들은 땅 속에서만 자라는 송로버섯 채취에 돼지를 이용한다. 송로버섯 지꺼기를 먹여 냄새에 익숙해진 돼지를 숲에 풀어놓으면 미묘한 버섯 향을 귀신같이 맡는다.
돼지는 후각 세포가 2억개로 인간의 40배나 된다. 후각이 개 못지않게 발달했다. 독일에선 마약 수사에 돼지를 동원했을 정도다. 그래서 멧돼지 사냥꾼의 첫째 수칙이 바람을 등지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 냄새에 놀라 달아나기 때문이다. 멧돼지는 청각도 예민하다. 사냥꾼이 부스럭대는 소리만 내도 멧돼지 사냥은 헛탕을 친다. 멕돼지는 사납기도 보통이 아니다. 멧돼지가 정통으로 들이받을 때 충격은 1t이나 된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대통령이 되면 첫눈 오는 날 공수부대를 동원해 멧돼지를 잡아 포획량의 10%를 부대에 넘겨주겠다"고 했다. 나머지는 도축해 양로원에 주거나 팔면 된다는 것이다. 야생동물보호협회 관계자는 "멧돼지는 사람을 피하는 습성이 있는데 잡겠다고 뒤지면 멧돼지가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괜히 피해만 커질지 모른다"고 했다. 국내 멧돼지 포획량은 2000년 172마리에서 작년 3779마리로 20배 늘었지만 농가 피해는 되레 커지고 있다.
'공수부대'는 특전사령부를 가리킨다. 특전사는 1958년 4월 1일 창설됐다. 1996년 9월 18일 강릉 대(對)간첩작전에 투입된 특전사 소속 이병희 상사는 간첩의 총탄에 숨을 거두면서도 5발의 대응사격을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총을 놓지 않은 그는 '우리의 베레모는 죽지 않는다. 영원히 찬란하게 조국을 빛낸다'는 특전부대 신조 제7조를 몸으로 지킨 영웅이었다. 이런 특전사를 멧돼지 사냥에 동원하겠다는 발언에 회원 27만명인 특전동지회가 분개해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충석 특전사동지회장은 "특전부대원은 적의 심장에 일격을 가하는 것을 목표로 고난도 훈련을 받는 국가 최정예 자산"이라고 했다. 특전사동지회의 반발 소식에 유 전 장관은 24일엔 "멧돼지 소탕 같은 어려운 작전에 특전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기 말은 괜히 해본 게 아니라 '진지한 공약'이라는 것이다. 군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만하다. 대통령이 돼 보겠다는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는다.
--- 논설위원 문갑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