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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은 천이백오십인의 큰 비구 승단과 수많은 보살 마하살들과 함께 사위성의 제타숲에 있는 급고독장자의 승원에서 머무셨다.
그때 세존은 아침 일찍 법복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탁발하기 위하여 큰 도시인 사위성으로 들어 가셨다.
그때 세존은 큰 도시인 사위성에 탁발하러 가서 탁발한 음식을 잡수시고 탁발을 마친 후 돌아와서 발우와 법의를 정돈하고 두 발을 씻고 나서 결가부좌하고 몸을 곧게 하여 입가에 사띠를 확립하시고서 준비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세존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세존의 두 발에 자신의 머리로써 절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도는 예를 올린 후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그때 수보리 존자가 바로 그 모인 대중 속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수보리 존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에 상의를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서 세존을 향하여 합장 공경하면서 다음과 같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훌륭한 세존이시여, 대단한 선서시여,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께서 지극한 보살핌을 보살 마하살들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훌륭한 세존이시여,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께서 지극한 사명을 보살 마하살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양가(良家)의 아들 딸로서 보살승으로 나아가 서 있는 자는 어떻게 생활해야 하며, 어떻게 수행해야 하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이와 같이 말했을 때 세존은 수보리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특하고 기특하다. 수보리야, 그와 같다 수보리야, 네가 말한 대로이다.
여래는 지극한 보살핌을 보살 마하살들에게 베풀고 있으며, 여래는 지극한 사명을 보살 마하살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야, 잘 듣고 잘 생각하라. 나는 너에게 “보살승에 나아가 서 있는 자가 어떻게 생활하며, 어떻게 수행하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가.”를 설할 것이다.
“예 세존이시여”라고 수보리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보살승에 나아가 서 있는 자는 이와 같이 마음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곧 수보리야, ‘중생의 세계에 있는 중생에 포섭되는 중생으로서 알에서 태어난 것이든 태에서 태어난 것이든, 습기로부터 태어난 것이든 변화하여 태어난 것이든, 형상을 지닌 것이든 형상을 지니지 않은 것이든, 산냐가 있는 것이든, 산냐가 없는 것이든, 산냐가 있는 것도 산냐가 없는 것도 아닌 것이든,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중생계에 알려졌거나 알려지는 그 모두를 나는 무여 열반계로 완전하게 열반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수많은 중생들을 완전하게 열반시켰다 하더라도 실은 어떠한 중생도 완전하게 열반을 얻은 자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일 보살에게 중생산냐가 일어난다면 그는 보살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자아산냐 또는 중생산냐 또는 생명산냐 또는 인간산냐가 일어나면 그는 보살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수보리야, 보살은 형성된 것에 집착하여 보시(布施)를 하여서는 안 되고 어떤 것에도 집착하여 보시해서도 안 되며 형상(색;물질)에 집착하여 보시해서도 안 되고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과 법들에 집착하여 보시해서도 안 될 것이다.
수보리야, 이와 같이 보살 마하살은 니밋따 산냐(對相認識者)에조차 집착하지 않은 채 보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은 채 보시한다면 수보리야 그 복덕의 쌓임의 양은 헤아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쪽에 있는 허공의 양은 헤아리기 쉽겠는가?
수보리는 말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세존은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남쪽 ․ 서쪽 ․ 북쪽 ․ 아래 ․ 위 ․ 네 사이 방향 등 모두 열 가지 방향에 있는 허공의 양은 헤아리기 쉽겠는가?”
수보리는 말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세존은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이와 같이 보살이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은 채 보시한다면 수보리야 그 복덕의 쌓임의 양은 헤아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수보리야, 이와 같이 보살승에 나아가 서 있는 자는 니밋따 산냐(對相認識者)에조차 집착하지 않은 채 보시해야 한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상호를 구족했기 때문에 여래라고 봐야 하는가?”
수보리는 말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상호를 구족했기 때문에 여래라고 봐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여래는 ‘상호의 구족이 곧 상호의 구족이 아니다.’라고 설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대답했을 때 세존은 수보리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무릇 상호의 구족이라 하는 것은 그것은 모두 허망하고. 상호의 구족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모두 허망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야 하니 실로 상호란 상호가 아니다라고 할 때 여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설명했을 때 수보리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오백 년 후 미래에 바른 법이 소멸됐을 때 이와 같이 이 경전의 구절이 설해졌을 때, 참된 산냐를 일으키는 중생이 있겠습니까?
세존이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너는 그와 같이 말하지 말라.
오백년 후 미래에 바른 법이 소멸됐을 때 이와 같이 이 경전의 구절이 설해졌을 때, 참된 산냐를 일으키는 중생이 있겠습니까?[라고]
수보리야, 오백 년 후 미래에 바른 법이 소멸됐을 때 보살 마하살들과 덕을 갖춘 자들과 계율을 지킨 자들과 지혜가 뛰어난 자들이 있는데 이와 같은 경전의 구절이 설해졌을 때 그들은 참된 산냐를 일으킬 것이다.
수보리야, 또한 이 보살 마하살들은 한 분의 부처님만을 모신 것이 아니며, 한 분의 부처님께 선한 뿌리를 심은 것이 아니다. 수보리야, 이 보살 마하살들은 수많은 부처님을 모시며, 수많은 부처님께 선한 뿌리를 심은 것이다. 이와 같은 경전의 구절이 설해졌을 때, 그들은 청정한 한 마음을 얻을 것이다.
수보리야, 여래는 부처님의 지견으로서 그들을 알고, 수보리야, 여래는 부처님의 눈으로서 그들을 보고 있으며 수보리야, 여래는 그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
수보리야, 그들은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복덕의 쌓임을 가질 것이며 유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이 보살 마하살들에게 자아산냐가 일어나지 않으며 중생산냐도 [일어나지] 않으며 생명산냐도 [일어나지] 않으며 인간산냐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또 그 보살 마하살들에게 법산냐가 일어나지 않으며, 그와 같이 비법산냐도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수보리야, 그들에게 산냐도 일어나지 않으며 산냐 아닌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일 그 보살 마하살들에게 법산냐가 일어난다면 자아에 대한 집착, 중생에 대한 집착, 영혼[생명]에 대한 집착, 인간에 대한 집착도 있을 것이다.
만일 비법산냐가 일어난다면, 그들에게도 자아에 대한 집착, 중생에 대한 집착, 영혼[생명] 에 대한 집착, 인간에 대한 집착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또한 수보리야, 보살 마하살은 법에 집착해서도 안 되며 법 아닌 것에 [집착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위에서 설한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뗏목으로 비유되는 법문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법조차 버리는데 하물며 법 아닌 것도 [버리게 된다])
그리고 다시 세존은 수보리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정각]라고 하는 어떤 법을 성취했는가? 또는 여래는 어떤 법을 가르쳤는가?
이와 같이 설했을 때 수보리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제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여래께서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는 그 어떤 법도 얻지 않았으며, 여래께서 어떠한 법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래는 법을 깨달았거나 가르쳤는데 그 법은 어떤 번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법도 아니며 법 아닌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인들은 무위법에 정통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훌륭한 집안의 아들과 딸들이 삼천 대천 세계를 일곱 가지 보배로 가득 채우고 나서,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께 보시할 것이다. 그러면 그 양가의 아들들이나 딸들은 그 인연으로써 더 많은 복덕을 쌓았다고 하겠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많습니다, 선서시여. 양가의 아들들이나 딸들은 그 일로 인하여 많은 복덕을 쌓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복덕의 쌓임, 그것은 복덕의 쌓임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복덕의 쌓임, 복덕의 쌓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실로 수보리야, 양가의 아들들이나 딸들이 삼천 대천 세계를 일곱 가지 보배로 가득 채우고 나서,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께 보시하였다고 하자. 그리고 이 법문으로부터 네 구절로 된 게송만이라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세하게 가르치고 설명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인연으로써 측정할 수 없고 셀 수 없는 더 많은 복덕을 쌓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이것으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들에게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제불 세존들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는 붓다의 가르침은 붓다의 가르침이라고 하며 붓다의 가르침은 실로 붓다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설했다. 그러므로 붓다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류자에게 ‘나는 예류과를 성취했다’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수보리는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예류자에게 ‘나는 예류과를 성취했다’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진실로 그는 어떠한 법도 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류자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색을 얻지 않았으며, 소리도 냄새도 맛도 촉감도 법도 얻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류자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예류자에게 ‘나는 예류과를 성취했다’라는 것이 있다면, 그에게는 자아의 집착이 있으며, 중생에 대한 집착, 영혼[생명]에 대한 집착, 개인에 대한 집착이 있을 것입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래자에게 ‘나는 일래과를 성취했다’는 것이 있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일래자에게 ‘나는 일래과를 성취했다’라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래과라고 하는 그 어떤 법도 얻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래자라고 합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불환자에게 ‘나는 불환과를 성취했다’는 것이 존재하겠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불환자에게 ‘나는 불환과를 성취했다’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불환과라고 하는 그 어떤 법도 얻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환자라고 합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라한에게 ‘나는 아라한과를 성취했다’는 것이 있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라한에게 ‘나는 아라한과를 성취했다’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아라한이라고 불리는 그 어떠한 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라한이라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아라한에게 ‘나는 아라한과를 성취했다’라는 것이 있다면, 그에게는 자아의 집착이 있으며, 중생에 대한 집착, 영혼[생명]에 대한 집착, 인간에 대한 집착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께서는 저에게 ‘다툼 없이 살아가는 자 가운데 제일인 자’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탐착을 떠난 아라한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나는 탐착을 떠난 아라한이다.’라는 것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저에게 ‘나는 아라한과를 성취했다’라는 것이 있다면, 여래께서는 저에게 ‘양가의 아들인 수보리는 다툼 없이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제일인 자로서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툼 없이 살아가는 자는 다툼 없이 살아가는 자라고 합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연등불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의 곁에서 어떠한 법을 얻었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여래는 연등불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의 곁에서 어떠한 법을 얻지 않았습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만일 어떤 보살이 ‘나는 국토 장엄을 성취하리라.’고 한다면, 그는 거짓을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는 ‘국토장엄, 국토장엄’이라는 것, 그것은 장엄이 아니라고 설했다. 그러므로 국토장엄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 마하살은 이와 같이 머물지 않고 마음을 일으켜야 하며 어디에 머물러서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되며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수보리야, 마치 수메루 산만한 자신의 존재를 가지고 있는 갖추어진 몸이며 큰 몸의 존재가 있다면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큰 자신의 존재는 있겠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큽니다. 선서시여, 그 자아의 존재는 큽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여래는 자신의 존재, 자신의 존재라고 하지만 그것은 존재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진실로 세존이시여, 그 존재는 존재가 아니며 존재 아닌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세존은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큰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만큼 갠지스강이 있다면 그 강들에 있는 모래들은 많다고 하겠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갠지스강만으로도 많습니다. 하물며 그 많은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내가 너에게 말하겠으니, 잘 이해하도록 하라. 어떤 여인이나 남자가 많은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만큼의 세계에 일곱 가지 보물로 가득 채우고 나서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들에게 그것을 보시한다면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여인이나 남자가 그것을 인연으로 많은 복덕을 쌓게 되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많습니다. 선서시여, 많습니다. 여인이나 남자가 그것을 인연으로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복덕을 쌓게 됩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그리고 수보리야, 어떤 여인이나 남자가 그렇게 많은 세계에 일곱 가지 보물로 가득 채우고 나서 이것을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들에게 보시한다고 하고, 이 법문 가운데 네 구절로 이루어진 게송 한 편만이라도 받들어서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드러낸다면, 그것이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복덕을 쌓는 것이 될 것이다. 또한 수보리야, 어느 곳에서든 이 법문으로부터 네 구절로 된 게송만이라도 가지고서 가르치거나 설명한다면 천신과 인간과 아수라 세계의 그 지역은 탑묘와 같은 곳으로 여길 것이다. 하물며 이 법문을 기억하고 독송하고 이해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설명한다면 수보리야, 그러한 사람들은 가장 존경받을 것이다. 수보리야, 그 지역에는 스승이 계시며 또는 여러 지혜로운 존경받는 자가 있다.
이와 같이 설했을 때 수보리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간직해야 합니까?
이와 같이 말했을 때 세존은 장로 수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이 법문의 이름은 ‘반야바라밀다(지혜의 완성)’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간직하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가 설한 ‘반야바라밀다’는 곧 바라밀다가 아니라고 여래는 설하였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라고 불리는 것이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보리야, 여래가 어떠한 법을 설했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여래께서는 어떤 법도 설하지 않았습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삼천 대천 세계에 있는 땅의 먼지는 많은가?
수보리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많습니다. 선서시여, 땅의 티끌은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땅의 티끌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여래께서는 티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땅의 티끌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래께서 이 세계를 말씀하셨는데 여래께서는 그것은 세계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계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른두 가지 대인의 상호가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로 볼 수 있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서른두 가지 대인의 상호는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로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서른두 가지의 대인의 상호, 그것은 상호가 아니라고 여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서른두 가지의 대인의 상호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실로 수보리야, 어떤 여인이나 남자가 매일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자신의 몸을 바친다고 하고 이와 같이 공양하기를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의 겁 동안 자신의 몸을 바친다고 하자. 그리고 어떤 사람이 이 법문 가운데 예를 들어 네 구절로 이루어진 게송 한편이라도 받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드러낸다고 하자. 이것으로 인하여 더 많은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복덕을 쌓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장로 수보리는 법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는 눈물을 닦고 나서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놀라운 일입니다. 선서시여. 지극히 놀라운 일입니다. 여래께서 설하신 법문은 최상 승에 나아가 서 있는 유정들을 위하고 가장 수승한 승에 나아가 서 있는 자들을 위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에게 앎이 생겼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예전에 이와 같은 법문을 들은 적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최상의 경이로움을 갖춘 보살들이 있는데 그 보살은 이 경전이 설해졌을 때 이것을 듣고서 참된 산냐를 일으킬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참된 산냐는 참된 산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참된 산냐, 참된 산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이 법문이 설해지면 저는 놀라지 않고 그것을 이해하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오백 년 후 미래에 바른 법이 소멸됐을 때 어떤 중생들이 이 법문을 받들고 간직하고 외우고 독송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드러낼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가장 존경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그들에게 자아산냐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중생산냐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생명산냐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인간 산냐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어떤 산냐도 [일어나지] 않고 산냐 아닌 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자아산냐는 산냐가 아니며, 중생산냐도 산냐가 아니며, 생명산냐도 인간산냐도 산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제불 세존은 일체의 산냐를 제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말했을 때 세존은 장로 수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수보리야, 그렇다. 이 경전이 설해질 때 무서워하지 않으며 놀라지 않고 두려움에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가장 경이로운 것을 갖춘 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가 설한 이 최상의 바라밀다는 곧 바라밀다가 아닌 것이다. 수보리야, 여래가 설한 ‘최상의 바라밀다’는 많은 제불 세존도 설하셨다. 그러므로 ‘최상의 바라밀다’라고 불리는 것이다.
또한 수보리야, 여래의 인욕바라밀다는 곧 바라밀다가 아니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일찍이 [과거세에] 나쁜 왕이 나의 팔다리에 있는 살을 도려내었을 때 나에게는 자아산냐, 중생산냐, 생명산냐, 인간산냐 그리고 그 어떠한 산냐, 산냐 아닌 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그때 만일 나에게 자아산냐가 있었다면 그 때 나는 분명히 분노의 생각이 일어났을 것이다. 만일 그때 중생산냐, 생명산냐, 인간산냐가 있었다면, 그때에 나에게는 분명 분노의 생각이 일어났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나는 과거 오백 생 동안에 인욕을 설하는 선인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때에도 나에게는 자아산냐, 중생산냐, 생명산냐, 인간산냐가 없었다.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 마하살은 모든 산냐를 제거하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정각]에서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색에 머무른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되며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에 머무른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법에 머무른 마음을 일으켜서도 안 되지만 법이 아닌 것에 머무른 마음을 일으켜서도 안 된다. 어떤 것에 머무른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머무른다는 것은 곧 머물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보살은 머무름이 없이 보시를 해야 하며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에 머무른 보시를 하지 않는다.’고 설하는 것이다.
또한 수보리야, 보살은 모든 중생들을 위해 이와 같이 보시하고 희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중생 산냐는 산냐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여래는 중생은 중생이 아니라고 설했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는 진실을 말하며, 여래는 사실을 말하며, 여래는 있는 그대로 말하며, 여래는 다르지 않게 말하기 때문이다. 또 여래는 거짓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수보리야, 여래는 그 법을 깨달았고 가르쳤으며 관찰했다. 그것은 진실하지도 않고 허망하지도 않다.
수보리야, 예를 들면 어둠 속에 들어간 사람은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처럼 사물에 떨어진 보살은 사물에 떨어져서 보시한다. 수보리야, 예를 들면 눈이 있는 사람은 밤이 지나고 태양이 떠오를 때 여러 가지 색들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물에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보살은 사물에 떨어지지 않은 보시를 한다.
또한 수보리야, 양가의 아들 딸로서 이 법문을 받들고 간직하고 외우고 독송하고 다른 사람에게 널리 드러낸다고 하자. 수보리야, 여래는 붓다의 지력으로 그들을 알고 있으며 붓다의 눈으로써 그들을 보고 있다. 또 수보리야, 여래는 그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 수보리야, 그들은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복덕의 쌓임을 가질 것이며 유지할 것이다.
또한 수보리야, 남자나 여자가 아침에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만큼 자신의 존재를 바치고, 낮에도 마찬가지로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만큼 자신의 존재를 바치며, 저녁에도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만큼 자신의 존재를 바친다고 하자. 이렇게 하여 백천억 나유타의 많은 겁 동안 자신의 존재를 바친다고 하더라도 이 법문을 듣고 이를 비방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앞의 경우보다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이 더 많은 복덕을 쌓게 될 것이다. 하물며 이 법문을 쓰고 난 후 정리하고 유지하고 외우고 완전히 이해하며,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것이다.
또한 수보리야, 이 법문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수보리야, 여래는 이 법문을 최상승에 나아가 서 있는 사람들을 위하고 가장 수승한 승에 나아가 서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설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법문을 정리하고 간직하고 외우고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것이다. 그러면 수보리야, 여래는 그들을 붓다의 지력으로써 알며 여래는 그들을 붓다의 눈으로써 보고 여래는 그들은 잘 파악하고 있다.
수보리야, 그 중생들은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복덕을 갖추게 될 것이다. 사의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무량한 복덕을 갖추게 될 것이다. 수보리야, 이 중생들은 모든 깨달음을 균등하게 지니고 외우고 완전히 이해할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수준 낮은 것을 신해하는 중생들은 이러한 법문을 들을 수 없다. 또 자아의 견해를 지닌 자, 중생의 견해를 지닌 자, 영혼[생명]의 견해를 지닌 자, 개인의 견해를 지닌 자도 이 법문을 들을 수 없다.
보살의 서원을 세우지 않은 사람들은 이 바른 법문을 들을 수 없고 받을 수 없고 간직할 수 없고 외울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며 그 이치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수보리야, 이 경전이 설해지는 어떤 땅과 지역이 있다면, 그곳은 천신과 인간과 아수라와 전세계가 공양을 올려야 할 곳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땅과 지역은 공손히 절해야 할 곳, 오른쪽으로 도는 예를 올려야 할 곳이 될 것이며 그 땅과 지역은 탑이 있는 곳이 될 것이다.
그런데 수보리야, 양가의 아들과 딸들이 이와 같은 경전들을 정리하고 간직하고 외우고 이해하고, 근본적으로 사유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드러낼지라도, 그들은 천대받을 수 있으며 아주 천대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그 사람들은 전생에 악업을 지어서 죄악이 발생하여 그것에 의해서 바른 법조차 천대받음으로써 전생의 부정한 업이 소멸되면서 붓다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왜냐하면 수보리야, 과거세 아승지겁에 더욱더 아승지겁에 연등불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의 휠씬 이전에 84억 나유타만큼의 붓다가 계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이 붓다들을 공양하여 기쁘게 해 드렸으니 거역하는 일이 없었다. 수보리야, 이처럼 나는 많은 붓다를 기쁘게 해 드리며 한 번도 거역하는 일이 없었으며 500세 후에 바른 법이 소멸하는 시기가 전개될 때 이와 같은 경전들을 받들고 간직하고 외우고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수보리야, 전자의 복덕의 쌓임은 이 복덕의 쌓임의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천분의 일에도, 백천분의 일에도, 억분의 일에도, 백 억분의 일에도, 백천 억분의 일에도, 백천억 나유타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숫자로도 산수로도 계산으로도 비유로도 비슷함으로도 견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수보리야, 만일 양가의 아들 딸들이 어느 정도 복덕을 쌓았으며, 또 그것을 어느 정도 자신의 것으로 하였는가에 대하여 내가 설한다면, 그 유정은 내 말을 듣고서는 미치고 의기소침하고 마음이 어지러워질 것이다. 또한 수보리야, 여래가 이 법문은 사의할 수 없는 것이며 그 과보도 또한 사의할 수 없으니 궁금스러워질 것이다.
- 후략(後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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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4.24 1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