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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4장1-16절 소돔의 롯 241002 원주희 목사
2024.10.02 수 오후 10:24 ・ 30분 6초
이 아브라함의 축복이 저와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할렐루야 구원을 받는데 구원받는데 자신의 영혼만, 영혼 구원만 이룬 사람이 있고, 이 구원의 범위가 넓어져서 가족 구원을 이루어내고 삶의 자리에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으로 서는 사람이 있고 종류는 다 다른 겁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의 가정과 삶에 하나님의 구원의 그 영역들이 확장되어지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건져내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그 사람에 속한 모든 것들을 아울러 건져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아브라함을 떠나서 요단 동편 땅을 택했습니다.
그리고는 요다 동편 땅에 거기 가서 거주하다가 재산이 늘어나고 그리고는 이제 살 만해지니까 좀 더 안정된 생활을 하려고 소돔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소돔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 소돔에서 소돔이 부유한 땅이었거든, 너무너무 부유한 땅이었기 때문에 그 땅을 두고서 주변 나라들 속에 이렇게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전쟁이 나는데 그만 아브라함의 조커로 또 그 전쟁에 잡혀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잡혀가게 되었는데 잡혀가는 그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아브라함이 그 소식을 듣고서는 집에서 기리고 연습한 사람 318명을 데리고 와서 조카 롯과 빼앗겼던 모든 재물들을 다 되찾아오는 일들을 일으켰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이렇게 됩니다. 근데 여기서 우리가 교훈을 하나 얻어야 될 게 뭐냐 하면 조카 롯입니다.
조카 롯은 아브라함의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고 구원받은 사람인데 그가 세상에 이런 것들을 좋아하다가 점점 더 아브라함을 떠나서 점점 더 흘러흘러서 소돔까지 흘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소돔은 그 당시에 죄악의 도성이었고, 물질로는 굉장히 풍성했지만 죄악이 가능한 도성이어서 동성애가 만연하고 그 문화 말기적 증상이 너무나 많은 그런 나라 도시가 바로 소돔이었습니다.
그 소돔에서 거주하는데 소돔에 전쟁이 난 겁니다.
전쟁에 나서 전쟁에서 대패를 하고서는 그만 모든 가족들과 재산과 다 뺏겨서 그가 철사줄에 꽁꽁 묶인 채로 포로가 되어서 잡혀가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십니다.
할렐루야 우리 영혼을 구원하십니다. 그런데 영혼 구원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영역도 그의 인격도, 그의 자녀들도 그에 속한 모든 것들도 하나님이 더불어 구원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 은혜에 이르는 사람이 있고 그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것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함께합니다.
그리고 직경이 넘어서서 아브라함의 조카 잡혀가던 롯도 건져내는 구출자로서 쓰임 받게 되는데, 반면에 조카롯은 그 전쟁통에 잡혀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예요.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은 불 가운데서 얻은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믿음의 반석 위에 섰을 때 그는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할렐루야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그의 집을 짓는 자와 같은데, 집을 지을 때 나무나 불이나 집으로 집을 지으면 하나님의 공력이 드러날 때가 오는데, 불로 확 나타날 때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것은 다 그냥 사라져버리고 있고,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하는 그 불에 견딜 수 있는 그런 것들로 집을 지은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집을 지은 사람은 공력을 박힐 때 그때 타지 아니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드러나게 되어서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다.
그게 이제 고린도전서 3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할렐루야 변하지 않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만 그렇게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내게 속한 그들을 구원하는 아름다운 일들을 해나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함께 따라 나온 롯에게도 구원의 은혜가 흘러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그 롯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을 건져내고 그의 삶의 모든 자리 안에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 나가는 아름다운 성취와 영광이 함께할 수 있는 기회들을 주셨어요.
근데 롯은 그만 자신의 관심이 물질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에 너무 지나치게 추구하다가 동편땅을 택하고 그 동편땅을 택해서 홀로 거기서 가서 그곳에서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면 되는데, 여러분 신앙이 견고할 때는 혼자 떨어뜨려 놔도 화장실에 앉아서도 기도하고 어디 가서도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신앙의 자생력을 가지지만은 그렇지 않은 분들은 교회가 주관하는 공적인 예배가 아니면 자기 혼자 예배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실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소돔 땅에게 잡혀가고 생활하다가 거기서 잡혀가는 일들을 겪었습니다.
인생에 그런 일을 한번 위기를 한 번 지나고 나면 움칫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내가 곰곰이 생각도 해봐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말씀을 통해서 차근차근 인도함을 받을 수 있어요.
할렐루야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감동하셨다 이런 분들도 있습니다.
그도 분석해 봐야 되겠지만 분별해 보아야 되겠지만은 어쨌든 말씀과 기도 안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함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때때로는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말씀과 기도의 삶 안에서 인도함 받지 못하는 이유 허다합니다.
그럴 때 주로 어떤 것을 통해서 주어지느냐 따라 합시다.
삶을 통해서 인도함 받습니다. 삶을 통해서 인도함 받는데, 그 인도함 안에 삶을 통해 인도함 받는 많은 계기들이 위기를 지나가는 것들을 위기를 지나갈 때 그때 하나님 이거 나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 이때는 나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런 고민을 하고 막 어떤 때는요 잡혀가는 상황이 되면 어떻겠습니까?
잡혀가는 상황이 되면요.
하나님 앞에 여러분 기도 중에 제일 센 기도가 뭔지 압니까?
이런 강도를 써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똥줄 타는 기도라고 들어봤습니까?
그냥 막 그냥 위급한 상황에서 그냥 하나님 앞에 막 그러는 기도하고 아마 로슨 잡혀가던 요중에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하나님 한 번만 살려주시면 한 번만 살려주시면 아마 그런 기도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때는요. 얼마나 그렇게 강하고 얼마나 그렇게 강력한지 몰라요.
즉각적인 줄 몰라요. 그래 롯을 구원하시는 은총의 손길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베풀어 주십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구원의 은혜를 입었으면 여러분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하고 나올 때 마음이 같아야 됩니까?
안 같아야 됩니까? 같아야 되잖아요. 그 들어갈 때 그 구원의 은혜를 구했는데 잡혀가는 그 상황에서 구원의 은혜를 구하고 그리고 이제 구출을 받았으면 그때부터 롯은 선택해야 돼요.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살아야 되겠구나.
할렐루야 깨닫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난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살아야 되겠구나. 소돔에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소돔에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소돔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난 어디 안에 있어야 되겠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어야 되겠다.
할렐루야 그러면 그때부터 롯의 삶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믿음의 생이 되어집니다.
가장 가까이는 구추를 아브라함에게 받았는데 삼촌 이제 삼촌 떠나서 나가 보니까 도시의 화려한 것도 좋고 뭐 이렇게 이렇게 저렇게 사는 재미도 있고 그런데 문제는 내 영혼이 허하고 문제는 내 마음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니까 너무 힘들어요.
나 다시 삼촌 밑에서 같이 좀 있으면 안 돼요. 이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럴 수 있잖아요. 이게 우리가 주님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방법들입니다.
여러분 안에 저와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나만의 시계, 나만의 방식들이 그렇게 세워지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게 세워지면 한 번 넘어질 수 있고요. 한 번 삶을 통해서 교훈을 받을 수 있는데 그다음부터는요.
좀 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정직히 따라 나가는 그런 여정들을 걸어갈 수가 있어요.
그게 이게 몸으로 한번 제대로 배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얼마나 중요한지 저는 목회자의 길을 걸으면서 주로 목회자들은 임지를 구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많이 구하거든요.
다른 사람도 또 다르게 구하겠지만은 저도 임지를 구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죠.
근데 내가 성급하게 뭘 택했다가 얼마나 낭패를 한 번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일을 겪고 난 뒤에 난 절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발을 안 떼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리고는 그 뒤부터 계속 그래왔습니다.
어쨌든 그건 제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방법들입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함을 바르게 받아가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롯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삶으로 부딪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기회였습니다.
연합군의 친공들 속에 틈바구니에서 그냥 음한 사람 롯은 거기에 가담한 것도 아니고 얽힌 것도 아닌데 외지인인데 얽히고설켜서 같이 엮여가지고 그만 잡혀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잡혀가는 처지에 아브라함이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사람 318명을 데리고 가서 그 옷을 구출해 냅니다.
여러분 그 당시에 국제전이 펼쳐졌는데 아브라함은 그냥 집에서 기르고 연습한 사람, 그냥 유목생활하면서 양떼를 여기 갔다 몰고 저기 갔다 몰고 그런 사람이에요.
아브라함이 적을 만들면 됩니까? 안 됩니까? 만들면 안 돼요.
어느 편에도 소속하지 않고 중립적인 위치에 이렇게 서 있는 것이 아브라함의 생존 방법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지금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조카가 얽혀버리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그 전쟁에 뛰어들어가서 제대로 된 무기도 가지지 아니하고 집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가지고는 그 전쟁에서 자기 조카 롯을 건져냈습니다.
그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조카롯을 건져놨는데 그 조카롯은 다시 소돔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그다음에 일어난 일이 뭡니까? 그 소돔 땅에 죄악이 너무 관영하니까 하나님께서 불과 유황으로 소돔을 멸망시켜버리는 거 소돔을 멸망시키는데 만약 롯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이것을 상황 속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사인을 알았다면 그가 그곳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됐을 거고, 할렐루야 아니면은 그 소돔 땅에서 나와서 아브라함과 함께 내 좀 가난해도 좋으니까 내가 좀 덜 먹어도 좋으니까 삼촌과 함께 믿음의 삶을 살겠습니다.
이 결단을 해야 되는 겁니다.
할렐루야 이 은혜가 이 결단들이 저와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늘 대비되는 사람이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울왕과 다윗입니다. 사울왕과 다윗은 한 사람은 장인어른이고 한 사람은 사위고, 사울왕은 다윗의 전임자고 다윗은 후임자입니다.
그런데 둘 다 모질게 광야를 지나갑니다. 사울왕은 왕이 되어서 성령이 떠나버린 광야를 지나가고 왕의 자리에 호의오수하면서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취할 것은 다 취할 수 있고, 온갖 권력은 다 쥘 수 있고, 종교 행사하면 걸음한 옷을 입고서 폼을 잴 수 있을지 모르지만은 사실은 그에게는 뭐가 떠났고 따라서 성령이 떠났고 성령이 떠난 광야에 영혼은 완전히 메말라서 귀신이 들락날락하는 그러한 상황이에요.
그게 사울의 모습이에요. 다윗은요. 이 사람은 물리적 광야에 있습니다.
장인어른에게 쫓겨서 이리 도망가고 저리 도망가고 이스라엘 땅 안에서 도망갈 데가 없으니까 적국인 블레셋 땅에 망명을 가서 거기 헤매고 다니면서 그냥 목숨 하나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 가족 지파가 유다 지파인데, 유다 지파와 그의 가족 2세나 그의 아버지 가족들이요.
사울 왕의 미움에 나면 온 가족이 몰살 당하니까 차라리 없는 자식 친다고 그냥 다윗을 잊어버린 것 같아요.
시편에 말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다.
사람들에게 버린 바 되고요. 가족들에게 내친 바 되고요.
물리적인 광야를 지나가는데 하지만 그에게는 고난 중에서도 따라 합시다.
하나님이 늘 함께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광야예요.
하나님의 은혜 없는데 지위는 높은 지위고 돈은 많고 모든 권력을 다 지고 있는 근데 영혼은 바리안 광야.
근데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돈도 없고 뭐도 없고 뭐도 없는데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는 광야 두 가지 광야를 동시에 진행합니다.
그때 여러분 무엇을 택하겠습니까? 우리들에게 그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택하겠습니까?
사울 왕이 자신의 광야를 벗어나는 거는 굉장히 간단합니다.
그 자리에 내려놔버리면 돼요.
그 자리에 내려놔버리고 나 처음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을 때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가장 작은 지 난 이 왕위를 감당할 만한 그런 감도 안 되고 하면서 겸비하게 그거 사랑했던 사람이잖아요.
나는 이 왕위보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머물러 있겠습니다라고 하는 그 결단만 해버리게 되면 사울의 광야는 끝이 납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사울은 자기 걸 전혀 내려놓지 않아요.
다윗은 다윗의 광야는 이거는 물리적인 광야이기 때문에 이거는 하나님이 정한 기한 안에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야 끝나는 거지요.
어쨌든 두 가지 광야를 같이 걸어갑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붙잡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조카로은 하나님이 말씀 안에서 인도하시는 거 놓쳐버리고요.
기도 중에 인도하는 거 놓치면 왜 기도 생활 안 하니까 왜 말씀을 안 읽으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생각 하지 않으니까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 아래 들어간 사람들은요.
저는 그리 믿습니다. 꿈으로라도 가르쳐줍니다.
할렐루야 꿈으로라도 가르쳐줍니다. 근데 아무 계지가 없고 아무런 멍투도 없고 아무런 것도 없는데 인생에 닥친 일들이 막 닥치기 시작합니다.
그런 분들은 몸으로 배우는 겁니다. 여러분 인생을 몸으로 배우는 것만큼 고달픈 게 어디 있습니까?
이리 부딪혀보고 저리 부딪혀보고 여러분 물론 인생은 좀 부딪히면서 배워야 될 것들이 있어요.
그러나 생몸으로 막 부딪히면서 배우면 얼마나 몸이 고달픕니까?
롯은 조카 롯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몸으로 부딪혀 가는데 한 번 부딪혀서 넘어져 보고 한 번 부딪혀서 깨져 보면 되지 그걸 반복할 필요는 없잖아요.
근데 어리석게도 그 기회를 그만 놓쳐버렸더니 소돔 땅에 하나님이 의인 10명이 없어서 그 성을 온통 불과 요양과 멸망시킬 것데 그에게 속한 그 어떤 사람도 함께 하나님의 은총 속에 제대로 세워진 사람이 없더라.
그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었고요. 그의 딸 둘이 있는데 정원한 남자가 있어서 사윗감들 데리고 그렇게 나와서 함께 구원의 바위에 서서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나가야 될 여정들을 그 혼자 마치 불 가운데서 구원받는 사람처럼 그렇게 그만 구원받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옥은 나중에 돌아가셔서 관광차 가라 해도 못 가십니다.
구경이라도 한번 해볼라 하면 그것도 못할지 모릅니다.
근데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하고 기도하고 하면서 하나님의 인도 안 받고 쭉 나가다 보면요.
시간이 걸리는지 모르지만은 내가 붙들어줘야 될 사람을 붙들게 하시고 내가 세워가야 될 사람을 세워가게 하시고 그리고는 나를 중심으로 해서 내게 속한 사람들을 이렇게 하나님께 함께 나아가는 은총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십니다.
그 복과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가정 안에 삶의 자리 안에 함께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치 이런 거와 비슷합니다. 언젠가 주득대가 되었을 때에 시골이 저희 시골 울진이거든요.
경북 울진에 갔더랬습니다. 갔더니 마을 한쪽 귀 속에 단감나무가 있는 겁니다.
울진에 단감이 재배가 안 되는데 계량이 계량이 돼서 단감이 그래 맺혀 있더라고요.
큰어머님이 그래요. 형하고 저보고 감 따라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시골 내려가자마자 감나무 위에 기어 올라가 가지고 단감을 땄습니다.
꽤 많더라고요. 마디로 두 마디가 나옵니다. 단감을 땄는데 그 단감을 가지고 이제 눈가르기 시작합니다.
넌가르기 시작하는데 분명히 딴 건 우린데 큰어머니한테 친아들 저희한테 사촌 형님들 사촌 형님들 몫은 담긴 게 두 달 아이에 이렇게 좋은 거 하고 그다음에 좀 더 양도 이렇게 많이 담겨 있다면 너도 따님 수고했다면서 한 뭉치씩 주는데 반지밖에 안 당기더라고요.
한 다리 건너가 무섭집시다. 여러분 신앙의 세계, 믿음의 세계에도 하나님은 내 구원하시고 나를 통해서 내 한 다리 건너 있고 또 한 다리 건너 있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구원하셨고 아브라함이 한 다리 건너에 있는 롯을 구원하시고 롯이 믿음에 있어서 자생력을 가지면 롯이 그의 한 다리 건너에 있는 또 누구를 건져내 또 누구를 건져내는 그런 역사라고 한다면 아브라함의 한 다리 건너에 있는 그의 조카니까 건져내주는데, 롯은 그가 붙들어야 될 그의 아내도 그의 사위도 그 누구도 그대로 건져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 자유는 뭐냐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놓친 것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려고 하니까 말씀 생활 기도하세요.
눈에 보이는 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때로는 무슨 에너지, 무슨 시간을 그려서 사는가 싶지만은 이상해요.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고 따라가고 따라가다 보면 시간이 지나가면 나타나 보여집니다.
시간이 지나가고 한 대와 두 대를 지나가 보면 보여집니다.
그 열매가 전혀 다른 인생의 열매들이 그렇게 나타나는데, 그 사람 한 다리 건너에 사람도 구원받았더라.
두 다리 건너의 사람들도 그런 하나님의 축복 안에 세워졌더라.
할렐루야 여러분이 가진 이야기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이 로세 교훈을 우리의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데 불 가운데 구원받는 사람 나는 구원받았는데 남편은 건지지 못하고 나는 구원받았는데 자녀는 세우지 못하고 나는 구원받았는데 부모님은 예수님 바깥에 있는 그런 가정들, 그리고 나는 영혼은 구원받았는데 내 성품과 인격은 완전히 그냥 주님과 전혀 상관없는 그런 인격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맞아 우리들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여러분 근데요. 똑같은 사람이고 똑 똑같은 죄인이고요.
똑같은 연약함인데 예배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하다 보면 어느 때인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들이 우리에게 몸에 베여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그분이 목자가 되셔서 걸음걸음 가다 가다 가다 보니까 그분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그분이 사망이 넘치는 골짜기를 지나갈 때 지키시고 도우시는 은혜를 주시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다 보니까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우리에게 부으시옵나이다.
기름에게 부으시고 하나님이 영광으로 채우시는 놀라운 역사들을 허락하여 주시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아브라함이라면 그 정반대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조카 요새의 모습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안에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교훈이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승리하는 저희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고, 복음의 그 능력 안에서 넉넉한 승리와 이김의 역사가 있게 우리 하나님 주장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한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해 주시기 원합니다.
복음의 권능이 저희를 덮어주시고, 복음의 영광이 저희를 주관하여 주소서 우리 내남제일교회가 아버지 하나님 전날 덕천위에서 그렇게 기도했던 많은 분들의 기도의 열매들을 이제 이루어내게 해 주시옵고 그 영광을 다시 회복하고 아버지 하나님 이 경주 땅에서 참으로 빛으로 소음으로 그렇게 드러내는 교회 되어지게 축복하여 주옵시고 하나님의 선하심 앞에 다시금 쓰임 받는 은혜가 있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10월 9일 귀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사오니 주의 성령이 도와주고 끌어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들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아름다운 날 되게 하나님 주장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온전한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해 주시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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