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베소서5 : 1 - 2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02. 12. 22 주일
1. 크리스마스는 사랑의 절기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줄곧 외치신 말씀은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수평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절기가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사
랑의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작가 존 그리샴이 지은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란 책이 신간으로 나왔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한 중산층 부부의 크리스마스 대소동을 그린 소설인데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세무사인 루터는 스물 세 살의 딸을 공항에서 배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이번 크리스마
스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합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경비로 6,100달러나 썼지. 6,100달러라니! (우리 돈으로 곱하기 1300원 하면
793만원이나 됩니다) 그런데 그 많는 돈을 다 어디다 썼지?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고 장식품 사고,
이웃을 불러 파티하는데 다 썼지. 그리고 남은 게 뭔가?....."
6,100달러나 썼지만 남은 것이라곤 그저 이웃 사람들을 불러 함께 잠시 웃고 떠들며 기분 낸 것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만은 적어도 그런 과소비만은 줄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안에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아이들도 집에 없고 하니 그냥 뛰어넘기로 했습니다.
대신 아내와 단둘이서 오랜만에 카리브해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루터 부부가 여행을 떠나기로 한 크리스마스 이브의 아침이 되었습니다.
따르릉! 하고 이른 아침부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딸에게서 온 전화였습니다.
"아빠, 저예요. 거기 눈 와요?" 딸은 첫 눈에 반해 결혼약속까지 했다는 남자 친구를 인사시키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그 예비신랑에게 화이트크리스마스를 보여 주겠다며 오후 6시경 공항
에 도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카리브해 여행은 물 건너가고 말았습니다.
루터는 뒤늦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아내는 차량 홍수의 물결을 뚫고
백화점으로 차를 몰고 나갔습니다.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며 크리스마스 장식을 겨우 끝낸 후에 루터는 조용히 집을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아내가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웃집 부부를 찾아가 카리브해 유람선 티켓을
선물하고 돌아옵니다.
아내와 함께 모처럼 계획한 여행은 못 가게 되었지만 이상하리 만치 오히려 마음은 더욱 즐겁고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습니다.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와 같은 가슴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크리스마스를 그리스도의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들과 함께 할 때 진정 의미 있는 크리스마스
가 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계획하고 있습니까?
단순히 연례 행사와 같은 카드 몇 장 보내고 받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저 크리스마스를 끼리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크리스마스란 죄악으로 얼룩진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서 사랑의 화신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사랑의 절기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성탄절은 우리 주위의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들을 찾아보고 그들에
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내 가진 것을 나누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 1 -
우리는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
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하신 이 말씀을 우리는 깊
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사랑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아니, 서로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성품을 닮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연스런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1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
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라고 하십니다.
'만일 누가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을 보고도 마음을 열지 못하면 어찌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느냐?'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부여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탄절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성탄절을 보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주의 오심을 축하하는 것이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2. 그럼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1) 먼저 비천한 자를 돌아보는 사랑입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말하기를 "마리아여 무서워하
지 말라.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
라 하라....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
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하고 아기 예수의 수태 소식을 전해 주었을 때, 마리
아는 성령이 충만하여 기뻐하며 찬양하기를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라고 했습니다.
마리아의 감격적인 감사의 찬양 첫 마디가 '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부자나 높은 신분을 가진 가정에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한 가난한 목수인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같이 가난하고 비천한 가정에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얼마든지 권세 있고, 부하고 신분이
높은 집에 태어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가난한 목수의 집에 태어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비천한 자들의 구주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실로 주님의 선교는 가난하고 약하고 천대받는 비천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은 가난하고 천대받는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셨고, 사람들의 손가락질 받는 세리를 부르셨고,
사람 대접도 받지 못하는 창기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가장 깨끗하고 가장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낮은 자들의 친구가 되신 것입니다.
돈 있고, 권력있는 사람들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에겐 친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야말로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의 구원을 기다렸고, 사랑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다.
웃어른들이나, 직장 상사나, 나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성탄
의 선물을 하는 것에 머물러선 안됩니다.
- 2 -
진정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성도라면 고아원이나 양로원이나 거리의 노숙자나, 소년 소녀가장
이나, 독거 노인들이나 병으로 앓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같이 주님의 사랑을 목말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전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끼리의 축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불우한 이웃에게 찾아가는 사랑의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가정마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돼지저금통을 깰 생각은 없습니까?
춥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주머니를 열 생각은 없습니까?
자녀들과 함께 모은 정성을 가지고 역전에서 퀭한 눈으로 쪼끄려 앉아 떨고 있는 노숙자들이나
어려운 가운데 외롭게 살아가는 모자가정이나 독거 노인 가정에 찾아갈 용의는 없습니까?
적어도 성탄의 참 의미를 아는 성도라면 산타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도리어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는 산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나아가, 주님의 사랑은 삶에 희망을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향하여 외치신 첫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난하고 천대받고 소외 당하고 살아갈 희망을 잃어 사람들에게 '때가 찼고 하나님 나
라가 가까웠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라!' 하고 새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인생이 사는 것은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다. 진정한 삶은 내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다가
올 새로운 세계는 질병도 없고, 억울함도 없고, 근심도 고통도 눈물도 없고 죽음마저 없는 영생의
나라 참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가지라' 하는 것이었습
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므로 그 나라는 가난이 없는 나라
요, 차별이 없는 나라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불치병으로 고생하며 고통받는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심으로 그 나라는 질병이 없는 건강한
나라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죽은 오빠 나사로를 살려 주시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장례 행렬을 멈추시
고 그 청년을 살려 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죽음도 없는 영생하는 나라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솟구치는 풍랑을 명하여 잔잔케 하심으로 주님이 다스리는 하늘나라가 평화의 나라임을 암
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참된 삶의 용기와 희망을 주셨습니다.
이번 성탄절엔 우리도 서로에게 이웃에게 삶에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메사추세츠 주에 <호오돈>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사에 정직하고 성실하였고, 감수성이 특히 예민하여 작은 일에도 늘 다정다감한 반응을
보이는 마음 따뜻한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장점이 있는 반면 단점이 있듯이, 그는 남자로서 너무 소심하고 의지가 약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교적이지도 못하고 활동적이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그의 부인만큼은 남편 호오돈을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유
능한 남자로 존경하기를 마지않았습니다.
호오돈의 직업은 세관의 관리로서 샐러리맨이었는데, 맡은 바 자신의 일에 충직하게 일하면서 퇴
근 후 밤에는 독서와 글공부를 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낙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었습니다. 직장에서 별로 크게 잘못한 일도 없는데, 상사와의 사소한 갈등이 조금
씩 누적되다가 어느 날 그만 직장인 세관에서 면직되는 불행한 일이 생겼습니다.
월급에 의존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오래도록 하다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 그는 어깨를 늘어
뜨리고 집에 돌아와 부인에게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부인은 살아갈 앞날이 캄캄했습니다.
- 3 -
그러나 부인은 절망에 빠져 있는 남편을 오히려 간절한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
니다.
"여보, 오히려 잘된 일이에요. 이제야말로 하나님이 당신에게 마음놓고 집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계신 거예요. 자, 힘을 내세요. 당신은 얼마든지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훌륭한 남자
라구요."
그러면서 부인은 한 뭉치의 원고지와 펜을 사다 남편의 무릎 위에 갖다 놓았습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호오돈은 결연한 표정으로 아내의 손을 꼭 쥐었습니다.
이튿날부터 직장으로 출근하는 대신, 그는 서재의 책상 앞에 앉아 전에는 취미생활로 쓰던 글을
이젠 본격적으로 열심히 쓰기 시작했습니다.
심혈을 기울인 집필은 오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마침내 작품을 탈고시켰습니다.
그 작품의 제목은 그 유명한《주홍 글씨》였습니다.
그리고 이 주홍글씨는 곧 19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 나다나엘 호오돈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 역경에 처했을 때, 곁에서 용기를 북돋워 주는 사랑이야말로 인생의 새로운 전기
를 개척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호오돈의 아내야말로 그리스도의 삶에 희망을 주는 사랑을 몸소 실천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작은 정성, 따뜻한 격려의 말 한 마디가 지친 이웃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삶의 지친 이웃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산타가 되어
야 하겠습니다.
3)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용서의 선물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마지막 순간까지도 용서를 선물하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잔악한 로마군병들을 위해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
옵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용서의 은총
을 베푸셨습니다.
우리가 진정 이 예수님의 용서의 은총을 받는 자들이라면 이번 성탄절은 올 한 해 동안 내게 잘
못한 사람들에게 용서를 베푸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가 내게 어떻게 하면 용서하겠다고 어떤 조건을 요구하지만 주님은 아무 조건없이 먼저
용서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 말씀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
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기도문 중에 "우리가 우리에
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강조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
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주기도문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하지 않으시고, 오직
용서에 대해서만 강조하여 다시 언급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은 용서받기를 바라면서 다른 사람의 실수와 잘못을
잘 용서해 주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우
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경고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용서의 사람입니다.
- 4 -
영국 웰링턴 장군이 제독으로 있을 때 구제불능인 병사 하나를 사형시키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했
습니다.
“나는 너를 가르치려 했다. 징계도 하여 보았고, 때려 보기도 하고, 심지어 감옥에도 넣어보기도
했다. 할 일을 다 했다. 그러나 너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사형
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때 그 병사의 친구가 갑자기 그곳에 뛰어들어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군님, 장군님은 물론 할 일을 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독님이 저 병사에게 안한 것이 꼭 한
가지 있습니다. 저 친구를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친구의 말에 제독은 감동을 받아 사형을 취소하고 그를 용서했습니다.
“용서한다. 내가 조건없이 너를 용서한다.”
그 다음부터 이 병사는 완전히 달라져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참된 용서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고 보여주신 대로 조건없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율법에 의하면 사형에 해당되는 우리의 죄를 아무 조건없이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자신이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용서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 마음속으로 용서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까?
이번 성탄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는 성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이 나타난 절기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에게 크리스마스가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는 비천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불우한 이웃에게 달려가서 주님의 사랑을 전합시다.
그들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됩시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하심같이 용서하고 화해를 이루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