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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지 않는 꽃
목차
1. 현장 학습
2. 처음 본 아이
3. 성수 삼촌
4. 비빔밥처럼
5. 하나마나
6. 투표소 광경
7. 동포여! 잠에서 깨라!
8. 우리 딸 좀 찾아주세요!
9. 재열이가 사라졌다
7. 비밀 상자 속 대통령 할아버지
8. 텔레비전 속 거짓 평화
9. 최연소 희생자
10. 우리는 동지다!
11. 419 그날, 우리는 알아요!
12. 지지 않는 꽃
1. 현장 학습
“다음 주 월요일은 학교에 오지 않아도 되어요.”
“와! 정말이세요? 만우절은 이미 지났잖아요. 선생님!”
“맞아요. 학교는 안 오는 거예요.”
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느닷없이 학교에 안 와도 된다는 바람에 교실이 시장 통처럼 와글거렸다. 우리 반 아이들 모두 신바람이 나서 떠들었다.
“학교는 안 오지만 수업은 있어요.”
“에이, 그럼 뭐예요? 김 팍 샜잖아요. 팬데믹 때처럼 줌으로 수업하는 거예요?”
철민이가 불만을 토로했다.
“자자, 조용히 해요.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해요.”
선생님은 알 수 없는 말만 했다.
“선생님, 무슨 뜻이에요?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누구의 희생을 말하는 거죠? 독립군을 말하는 건가요?”
따지기 좋아하는 철민이가 질문했다.
“올해가 4•19혁명이 일어난 지 65주년 되는 해예요. 65년 전 여러분들 또래의 어린이 다섯 명이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줌 수업이 아니라 역사 알기 수업으로 4•19혁명 민주 묘지를 견학할 거예요.”
선생님은 주말에 4•19혁명과 그 다섯 어린이에 관해서 자료 조사해 오라고 했다.
“아는 것만큼 보이니까 조사를 해오면 더 많은 걸 알 수 있어요.”
“에이, 그럼 숙제잖아요. 좋다가 말았네요.”
또 잘 난쟁이 철민이다. 선생님은 철민이 불만에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혜는 65주년 4•19혁명에 대해 동시 한편 지어 놓아요. 기념식 날 방송 반에서 낭송할 거예요.”
선생님은 작년 가을 전국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나에게 동시를 써 오라고 했다. 그리고 4•19민주 묘지 기념탑 앞에서 월요일 오전 10시에 모이라고 했다.
“복장은 야외활동하기 편한 간편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와요. 견학 후 소풍 온 기분으로 민주 묘지공원에서 견학 후기를 토론할 거예요. 그때 먹을 간단한 간식도 싸 오길 바래요.”
선생님 말씀처럼 학교에 오지 않는 거는 맞는 거였다. 나는 주말에 4•19혁명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4•19혁명은 1960년 4월 19일 대한민국의 학생과 시민들이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에 대항하는 민주항쟁이다. 자유당 정권은 4할 사전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분노한 학생, 시민들이 선거무효와 이승만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독재투쟁이자 혁명이었다.-
나는 어린이 희생자를 검색해 보았다.
6학년 전한승, 최연소 임동성, 중학생 진영희 언니, 그리고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어린이도 있었다. 아이들이 ‘친구를 살려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장면도 흑백사진으로 있었다.
‘안됐다. 나만 할 때 죽었잖아. 엄마 아빠가 많이 슬펐겠다.’
내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월요일 아침, 나는 절친인 효정이와 함께 전철을 타고 민주 묘지로 향했다. 수유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민주 묘지 입구에서 내렸다. 민주 묘지로 가는 길목에는 4•19혁명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게 있었다.
“정혜야, 너도 여긴 처음이지? 나도야.”
효정이가 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응, 가슴이 떨린다야. 다 안 됐지만, 열 살 최연소 희생자 아이는 정말 안 됐다야. 그 아이가 뭘 알겠니. 너도 자료 조사 해 왔니?”
“응, 대충.”
벌써 선생님과 몇몇 친구들이 와 있었다. 아이들은 소풍 온 것처럼 떠들었다.
“자, 다 모였으면 엄숙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시 묵념한다.”
다 같이 묵념하고 선생님은 4•19혁명 희생자 민주 묘지에 관해 목이 아프게 설명했지만, 떠드느라 제대로 귀담아 듣는 아이들이 몇 명 없었다.
민주 묘지에 엄청난 개수의 비석이 있어 놀랐다. 186명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인터넷 자료에서 보았지만, 이렇게 많은 비석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의 민주 묘지에 더 놀랐다. 또한 묘지는 정말 소풍 온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우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선생님?”
철민이가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호들갑은? 죽은 게 아니라 희생된 거지.”
효정이가 못마땅한 듯이 쏘아붙였다.
“자, 조용히 하고 따라와요.”
우리는 선생님을 따라 차례로 어린이 묘지를 둘러보았다. 나는 최연소 어린이 묘에 시선이 꽂혔다. 비석에 새겨진 해맑은 얼굴이 귀여웠다. 꼭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뭔가 묵직한 돌덩이 같은 게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아 눈을 감았다. 아이들이 시위했던 덕수궁이 떠올랐다. 컴퓨터 이미지에서 보았던 옛 덕수궁 주변이 흑백 필름으로 생생하게 지나갔다.
하늘에는 백여든여섯 개의 크고 작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별들이 태풍의 눈처럼 회오리를 일으키며 빙그르르 돌았다. 나는 그 순간 블랙홀로 휘감겨 들어가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 최고의 광속으로 빛이 순간 이동을 하는 것 같았다.
‘어어!’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옛날 주택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어느 골목길 입구에 서 있었다.
‘어? 여기가 어디지?’
어리둥절했지만, 그 골목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골목길은 고래 등 같은 기와집과 초가집이 섞여 이십여 채가 마주 보고 있었다. 골목 중간쯤 초가집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집이 있어 들여다보았다. 대청마루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바느질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 옆에는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공을 옆에 끼고 서 있었다.
“엄마, 놀고 올게요.”
“그러려무나. 아버지 오시기 전에 들어와야 한다.”
“네!”
그 여자아이는 깡충깡충 뛰며 내 옆을 지나 대문을 나섰다. 그 애는 나를 그림자 취급을 했다.
‘어? 내가 안 보이나?’
어리둥절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그 아이 옷자락을 잡았다. 옷자락은 스르르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갔다.
‘어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여자아이 뒤를 따라갔다. 아이들 소리가 왁자지껄했다.
골목 끝에 커다란 공터가 나왔다. 공터에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놀고 있었다. 정자나무 아래서는 아이들이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남자 아이들이 재기차기와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고무줄놀이를 하는 아이는 고무줄을 잡고 돌리는 아이와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노래 소리에 맞춰 고무줄을 뛰어 넘었다.
“무찌르자 공산당 몇백만이냐~~!”
나도 그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그 여자아이는 남자아이 셋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여자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 둘과 유난히 앳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아이가 다가가 아는 체하며 손을 번쩍 들었다. 17.8
2. 처음 본 아이
“영철이 오빠! 호성이 일찍 나왔네? 근데 얘는 누구야?”
담벼락 밑 공터 한 쪽에는 아이들이 두 세 패가 모여 한창이었다. 그 담벼락은 황토와 돌을 섞어 쌓아 튼튼하게 보였다. 바로 위에는 작은 유리 창문이 있었다. 지붕도 갓 이은 것 같은 새 기와지붕이었다.
“영철 오빠! 호성이 일찍 나왔네? 근데 얘는 누구야?”
호성이 손을 잡고 있는 남자아이를 보고 물었다. 그 아이는 수줍은 듯 호성이 뒤로 살짝 기대섰다. 머리는 빡빡 깎아 추워 보였다. 정월 대보름이 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지 공터바람은 매서웠다.
“정혜야, 소개할게. 얘는 우리 아래채 할머니 손자 재열이야. 재열아, 정혜 누나야 인사해.”
‘어? 나랑 이름이 같잖아?’
“정혜 누나, 안녕.”
호성이 말에 그 재열이라는 아이가 손을 살짝 들어 인사했다.
“반갑다. 몇 학년이니?”
“3학년.”
그 아이가 짧게 대답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이 낯이 익었다. 재열이라는 아이는 약간 수줍은 듯 발그레한 볼이 귀엽고 착하게 생겼다. 눈동자에서는 강한 빛이 났다.
‘맞다. 그 아이다. 비석 얼굴! 저 아이가 비석 주인공의 생전 모습? 그렇다면 내가 1960년419혁명 당시에 와 있단 말인가?’
무서우면서도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 이왕 온 것 철저히 알아보자. 무슨 메시지가 있을 거야.’
“정혜 너 공 샀어?”
호성이가 내 손에 들려 있는 공을 보고 말하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아이들은 전에부터 아는 것처럼 친근감이 느껴졌다.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응! 세뱃돈으로.”
“자자, 정혜 왔으니까 우리 공 던지기 한판 하자.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할까?”
영철 오빠 말에 호성이가 말했다.
“형, 정혜 공이니까 정혜 먼저 하라고 하면 안 돼?”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가위바위보 해.”
그 정혜라는 여자 아이는 공을 겨드랑이에 끼고 가위바위보 할 준비를 했다.
-자유당, 자유당을 찍읍시다.-
그때 갑자기 어른들이 모여 있는 쪽에서 낯선 사람들이 확성기로 소리를 질렀다. 동네 사람들이 소리 나는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뭔가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아이 귀청이야. 선거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맨날 우리 놀이터 다 차지하고서.”
정혜라는 아이는 귀를 막고 도래질 하며 말했다.
“맞아. 지난 설날에도 자유당 후보가 설탕과 밀가루, 검정 고무신을 집마다 돌렸대. 지금도 사람들에게 뭔가 나눠주고 있어. 저거 부정선거 아냐?”
호성이 말에 재열이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울 할머니는 귀한 거 줘서 자유당 후보를 엄청나게 고마워하시던데….”
재열이가 소매 끝으로 코를 쓱 닦으며 코맹맹이 소리를 했다.
“그렇지, 귀한 거니까 받고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찍으면 되지.”
난처해하는 재열이를 감싸는 영철 오빠 말에 호성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받고 나면 마음대로 투표하는 게 어렵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렇긴 하겠지.”
정혜가 호성이를 거들자, 영철 오빠가 말했다.
“자자,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는 공 던지기나 하자. 선거는 어른들 일이지.”
딱딱!
영철 오빠가 말을 하면서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을 높이 들고 튕기며 딱딱! 소리를 냈다. 경쾌한 소리가 손가락 끝에서 튕겨 나와 내 귓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어어?’
내 몸이 스멀스멀 아지랑이처럼 허물 거리더니 눈앞이 깜깜했다. 다시 블랙홀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 정혜라는 아이 몸속으로 스르르 들어가 갇혔다. 당황하여 정혜 가슴을 손으로 때렸다.
‘나가야 해. 내 보내 줘! 답답하단 말이야.’
나는 답답해 한 참을 발버둥을 쳤다.
‘어? 엄마가 말한 그 물고기 배속인가? 그럼 사흘 동안 이렇게 갇혀 있어야한단 말이야?’
“으악! 안 돼! 정혜 죽어!”
“저, 정혜야! 왜 그러니?”
“어? 으응?”
아이들이 나를 붙잡고 흔들었다. 나는 무서워 꼭 감았던 눈을 떴다. 밝은 햇살이 눈부셨다. 답답하던 시야가 확 트였다.
‘내가 밖으로 나간 건가? 벌써 사흘이 흘렀나?’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까 정혜를 따라와서 본 그 공터 그대로였다. 불안했던 마음이 차츰 안정되어 갔다.
‘귀신에게 홀렸나?’
“정혜야, 정신 차려!”
“어? 그래. 잠깐 현기증이 났나봐. 이제 괜찮아.”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나와 합체 된 정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내가 자신의 몸 에 들어간 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 손에 정혜 공이 들려 있었다. 완전히 내가 정혜와 합체되어 내가 정혜가 되어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주변이 낯설지 않고 익숙했다.
“정혜야, 공놀이해도 괜찮겠어? 아니면 집에 가고.”
영철 오빠 말에 다들 “그래, 그래!” 하면서 걱정스레 나를 바라봤다.
“나, 괜찮아. 끄떡없어. 봐봐!”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알통 흉내를 냈다.
“자, 그러면 순서를 정하자. 돌아보지 말고 가만있어.”
각자 한 손을 머리 위로 높이 올렸다.
“가위바위보!”
“어? 정혜가 이겼네. 약속한 것도 아닌데 남자들은 똑같이 주먹을 냈잖아.”
영철 오빠가 각자 낸 가위바위보를 보며 말했다.
“앗샤! 내가 이겼어? 이긴 건 어쨌든 신나. 호호!”
“이렇게 딱딱 마음이 맞으니 우리는 단짝!”
호성이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빡빡머리를 한 재열이가 어색하게 서 있었다.
“재열이 너는 머리를 좀 길게 깎지. 춥겠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우리 아부지가 길게 깎으면 머리가 빨리 자라 이발비가 많이 든대.”
이 추운 날씨에 재열이는 외투도 입지 않았다. 내 목에는 따뜻한 누비 목도리가 감겨 있었다.
“재열이 네가 이거 해! 감기 들었잖아.”
나는 목에 두르고 있던 누비 목도리를 재열이 목에 둘러 주었다.
“어? 괜찮은데. 고마워, 정혜누나!”
“넌 내 귀마개 해!”
호성이가 토끼털 귀마개를 벗어 내 귀에 씌어주었다.
“고마워! 이렇게 누나를 챙긴다니까. 히히!”
“요게 그냥! 하루 먼저 났다고 까불긴.”
호성이가 억울하다는 듯이 주먹을 공중으로 날리며 말했다.
“내가 심판 볼게. 정혜는 공 던질 준비해. 우리 셋만 노는 것보다 재열이가 있으니 배열이 맞네. 자, 각자 위치로! 정혜는 어지러우면 말해?”
“오케이!”
나는 담벼락 밑에 그려 놓은 반원 안에 섰다.
“자, 간 닷!”
왼손바닥에 공을 올리고 높이 띄워 오른손 주먹으로 힘껏 쳤다.
따악!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공중으로 날았다. 수비진은 공을 향해 뛰었다. 18.9
3. 성수 삼촌
“어어!”
내가 친 공이 호성이와 재열이 머리 위를 가뿐히 날았다. 영철 오빠 시선이 하늘 높이 날아가는 공을 따라갔다.
쨍그랑!
공은 공터 담벼락을 끼고 있는 집 유리창에 정면으로 가서 맞고 말았다.
“앗! 큰일 났다. 이 집에는 소문난 호랑이 아주머니 집인데.”
호성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문이 열리더니 한 아주머니가 구정물 벼락을 날렸다. 구정물은 다행히 아이들에게 맞지 않고 바닥에 떨어졌다.
“이것들아, 담벼락에 붙어 놀지 말고 저만치 가서 놀라고 했갓어? 안 했갔어? 이제 유리창까지 깨고?”
고함 소리가 대포 소리보다 더 컸다.
“이크! 호랑이 아주머니다.”
호성이가 소리쳤다. 그 아주머니는 공터에서 놀이하는 아이들에게 소리 질러 호랑이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몇 달 전 호랑이 아주머니가 이사 오는 바람에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놀아야만 해서 불만이 많았다.
“이것들아, 니들이 떠들어 명문 여고 다니는 내 딸이 시끄러워 공부를 못 하갓어.”
호랑이 아주머니는 동백꽃 무늬 누비저고리에 분홍색 옷고름을 매고, 아래는 몸빼 바지를 입고 있었다. 엄청 촌스러워 나는 속으로 킥킥 웃었다.
“유리를 깬 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공터는 아주머니 집이 아니잖아요?”
“예끼, 이 녀석아. 그러니까 저만치 떨어져서 놀라고 했갓어. 안 했갓어?”
영철 오빠가 앞으로 나가서 사과를 하고, 오빠답게 똑 부러지게 따졌다. 영철 오빠는 함께 공부하다 모르는 것 물어 보면 잘 가르쳐 주었다. 재열이가 울상이 되어 내 소매를 잡아끌며 말했다.
“누나, 잡히면 유리값 물어야 하니까 도망가자! 나 돈 없는데.”
“이놈들아, 어딜 도망가려고?”
호랑이 아주머니가 토끼목을 잡듯이 재열이 목덜미를 낚아챘다.
“용서해 주세요. 저희가 깬 게 아니고 공이 깼단 말이어요.”
“허허 참, 처음 본 요 녀석 제법 맹랑하네. 공이 발이 달렸갓어? 네 녀석들이 공을 던졌으니, 유리가 깨졌지 않았갓어?”
“캑캑!”
재열이는 숨을 쉴 수 없는 지 목을 잡고 캑캑거리며 울상이 되었다.
“제가 유리 물어 드릴게요. 용서해 주세요.”
“옳 커니, 넌 부잣집 손주 아니 갓어?”
호랑이 아주머니는 호성이를 보더니 한풀 누그러졌다. 유리값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호성이 부모님은 동대문 시장에서 비단을 파는 포목점을 해서 부자였다. 집도 동네에서 제일 큰 기와집이다. 호성이는 귀공자같이 얼굴도 뽀얗게 생기고 공부도 잘 했다.
우리는 구정물 세례를 받고도 아쉬워 헤어지지 못하고 담벼락 밑에 붙어 맞장구를 치면서 떠들었다.
“니들 여기서 자꾸 떠들래? 구정물 맛을 정말 보갓어? 유리는 언제 해 넣을 거냐?”
아주머니가 연탄재를 얼어붙은 길 위에 던져놓고 연탄집게로 툭툭 깨면서 호성이를 보며 말했다. 이미 노루꼬리만치 짧은 해가 산마루에 걸려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그때 삼촌과 명문 여고에 다니는 혜숙이 언니가 호랑이 아주머니 집에서 나왔다.
“성수 삼촌!”
나는 달려가서 삼촌 팔짱을 끼었다.
“아, 유리는 제가 해 넣겠습니다. 제 조카 정혜와 친구들이 놀다가 그랬으니까요!”
“일 없음다.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괜찮으시라요. 야들이 떠들어서 공부가 안 되지라요?”
“아닙니다. 혜숙이가 워낙 잘해서 일찍 끝났습니다.”
“호랑이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영철이 오빠가 허리를 90도 각도로 굽혀 인사했다.
“뭐, 뭐? 호랑이 아주머니? 예끼, 이 녀석들! 하하하!”
딸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아주머니는 호탕하게 웃었다.
얼마 전에 공터 옆으로 이사 온 호랑이 아주머니가 이사 떡을 가지고 와서 엄마한테 하는 말을 들었다. 아주머니는 남대문 시장에서 김밥과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를 한다고 했다.
‘지는 6•25 전쟁 때 평양에서 피난 오지 않았갓시오. 팔자 쌘 년이 오다가 남편과 아들을 잃고 딸만 데리고 겨우 살아 나왔시오. 지는 우리 딸 혜숙이를 위해 산다우. 지는 빨갱이라면 치가 떨린다요.’
아주머니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자신의 유일한 그 딸이 공부를 잘해 명문 여고에 다니며, 아주머니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드르륵!
삼촌이 아래채 방에서 미닫이문을 열고 나왔었다.
‘아주머니, 이번에 명문대 합격한 정혜 막내 삼촌이에요.’
‘안녕하세요? 이성수라고 합니다.’
‘아, 딱 우리 혜숙이 과외선생님 하면 좋갓시오.’
‘호호 그러세요? 안 그래도 과외자리를 찾아볼까 했는데 잘 됐네요. 집도 가깝고.’
엄마가 삼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부터 삼촌이 호랑이 아주머니 딸 과외를 맡았다.
삼촌은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긴 미남이다. 그래서 삼촌이 내 선망의 대상이기도하다.
“언니 안녕!”
나는 삼촌 따라가서 언니를 한 번 본적이 있었다. 언니는 손을 살짝 들어 아는 체했다.
“삼촌! 내가 말한 절친들이에요. 영철 오빠 그리고 호성아, 내 선망 우리 삼촌! 인사해. 재열이도.”
“저는 정혜랑 같은 반 이호성이예요.”
“저는 박재열이고요. 오늘 할아버지 제사라서 할머니 댁에 왔어요.”
“할아버지께서 손자 왔다고 좋아하시겠네.”
삼촌이 재열이 빡빡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모두 똑똑하게 생겼다. 넌?”
삼촌이 영철 오빠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저는 6학년 정영철이에요.”
“반갑다.”
“저희도 무지 반가워요.”
삼촌은 바쁜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도 공 던지기 잘하는데, 나중에 끼워 줄래? 오늘은 바쁘고.”
“아, 어른은 안 끼워주는데요.”
영철 오빠가 딱 거절했다.
“나 어른 아니고 학생인걸, 대학생. 그렇지 정혜야?”
“맞아요. 영철 오빠. 우리 삼촌 끼워주자. 삼촌이 우리랑 놀면 호랑이 아주머니가 구정물 바가지는 안 씌울 거야.”
“하하, 정혜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재미있게 놀아. 다음에는 함께 놀자.”
삼촌은 아버지 형제 중 막내라서 그런지 대학생인데도 얼굴에 장난 끼가 서려 있었다.
삼촌은 그 말을 하고 성큼성큼 걸어 골목을 빠져나갔다. 공터 울타리에는 이 추위에도 봄꽃이 눈망울을 틔우기 시작했다. 또 유세차량이 먼지를 일으키고 지나가며 떠들었다. 17.2
4. 비빔밥처럼
바닥에 얇은 담요 한 장 깔고 잤더니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컹컹 컹컹!
개들도 시끄러운 소리에 깼는지 짖어댔다.
“아흠! 엄마! 시끄러워 잠이 오지 않아요.”
“깼구나? 몹쓸 꿈을 꾼 모양인지 밤새 뒤척이더구나?”
“방바닥이 배겨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침대가 아니라서요.”
“그게 무슨 소리냐? 침대가 뭐냐?”
“아, 아니에요. 어, 엄마….”
온 몸이 찌뿌둥해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크게 켰다.
그때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유권자 여러분, 자유당, 자유당을 찍으십시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교실에 아이들이 꽉 차 있는 곳에 있었다.
땡땡땡!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 남자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어? 우리 학교 체육 선생님이시다.’
“다음 주 월요일 급장 선거가 있다.”
탁탁!
선생님은 그 말을 하면서 지휘봉 같은 것을 오른손에 들고 왼손바닥을 탁탁 두드렸다. 그 소리에 아이들이 움찔했다.
“곧 대통령, 부통령을 뽑는 투표를 한다. 우리도 급장 선거를 해야 하고. 모든 선거는 공정해야 한다는 것 잘 알고 있지?”
“네!”
“이번 급장 선거가 작은 민주주의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담임은 체육 선생님처럼 말투도 훈련식이었다.
“우리 학급 칠십 구명 중 자진해서 급장 출마할 사람 손들어라. 추천해도 좋다. 후보가 된 사람은 주말에 후보 연설을 준비해 오도록.”
“제가 급장 선거에 출마하겠습니다.”
철민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정혜 추천해요.”
호성이가 정혜를 추천했다.
“근우 추천해요.”
효정이가 근우를 추천했다.
“더 없나?”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더 없으면, 김철민, 이정혜, 허근우, 세 명이 후보다. 모두 동의하나?”
“네 동의합니다.”
“참, 철민이 할아버지가 자유당 국회의원이신 거 알고 있지?”
그 말은 지금 밖에서 들리는 확성기 소리에서 자유당을 찍으라고 강요하듯이 철민이를 급장으로 뽑으라는 말투였다.
“철민이는 할아버지 닮아 우리 학급을 위해 앞장설 거라고 본다. 그래서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급장으로 뽑길 바란다.”
그것은 분명히 철민이가 급장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선생님이 하는 행동을 보고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일요일 날 공터에 모여 급장 후보 연설 준비를 했다.
“정혜 급장 후보 연습하는 것 보니까 삼촌이 너만 할 때가 생각난다.”
“삼촌도 내내 급장 했다고 했죠? 이번에 제가 급장이 꼭 되어야겠어요.”
“급장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선생님이 철민이 할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 하고, 철민이는 할아버지 닮아 우리 학급을 위해 일을 잘할 사람이라고 했고요. 그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거잖아요. 선생님은 중립을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급장이 되어 우리 학급은 공정하고 올바른 반이 되게 이끌고 싶어요. 선생님이 말한 작은 민주주의도 실천하고요.”
“정혜 아직 어린애인 줄 알았더니 대단한데. 좋았어.”
삼촌이 도서관 가다가 잠깐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약을 제시해야 해. 어른들 선거처럼 실천할 수 없는 것을 내세우면 안 되고.”
그리고 자신만의 특징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너희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똑바로 세울 주역이 될 것이라는 것 명심하고. 부정선거 땜에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어. 행운을 빈다.”
드디어 급장 선거 날이었다.
철민이는 처음 나온 크라운산도 과자를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선거운동을 했다. 아이들이 철민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두 번 받으면 안 된다.”
아이들은 과자를 받아 손에 들고 쥐처럼 쪼끔씩 갉아먹으면서 난리였다.
“입에 살살 녹는다.”
“이게 천국 과자가?”
“줄 서! 받고 나 안 찍으면 도로 내놔야 하는 거 알지?”
“치사하다 치사해! 차라리 안 받고 말겠다.”
“나도 안 받아! 우리 코흘리개가 아니라 5학년이라고!”
“맞아, 맞아!”
한 아이가 줄에서 벗어나자, 몇몇 아이들이 따라 나왔다. 삼삼오오 모여 좋아하는 후보에 대해 열띤 선거운동도 벌였다. 교실은 참새 떼처럼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여러분, 과자 부스러기 하나에 현혹되지 말아요. 우리 어린이는 정직해야 해요. 우리가 민주주의의 주역이 될 테니까요.”
“와! 정혜 말이 맞다.”
호성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정혜 너 죽을래? 이렇게 귀한 걸 과자부스러기라고 했어?”
그때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철민이가 씩씩거렸다.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자자! 제자리 앉고. 지금부터 급장 선거를 하겠다.
“선생님, 저는 기권하겠습니다.”
근우가 철민이 하는 행동이 아니꼬운지 기권했다.
“그러면 김철민과 이정혜 대결이다. 김철민부터 나와서 후보 연설을 해봐라.”
철민이가 먼저 앞으로 나갔다. 자신 넘치는 행동에 약간 주눅이 들었다.
‘정혜 힘내!’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나 김철민을 급장으로 뽑아 준다면 최선을 다해 여러분의 심부름꾼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철민이는 교탁에서 내려와 교실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우-! 너의 할아버지 닮았네.”
몇몇 아이들이 야유를 했다. 철민이는 선거 유세장 후보들이 하는 것을 흉내 냈다.
“부자인 후보가 가난한 아이들의 심부름을 할 수 있을까요?”
“심부름꾼이 되겠다면, 우리들의 요구를 뭐든 들어주나요?”
아이들이 질문을 퍼부었다.
“네! 가난은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저는 저의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제가 급장이 된다면, 가난한 친구들을 위해 간식은 책임지겠습니다.”
철민이를 지지 하는 아이들이 함성을 질렀다.
“와! 철민이 최고다.”
“우-! 우리가 거지로 보여?”
한 아이가 강하게 반발했다.
“그렇다면 내가 가난한 건 우리 부모님이 잘못했다는 뜻이 되네요. 우리 집이 가난한 건 전쟁 때문이라고 했어요. 내 다리도 전쟁 때문에 잃었다고요!”
양순이가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 그 말에 아이들이 웅성댔다. 반 아이들은 겨우 도시락을 싸 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도시락은 꽁보리밥에 간혹 쌀알을 하나씩 심어 놓은 듯이 박혀있는 도시락을 싸오는 아이도 있었다.
“자자, 조용히 하고. 철민이는 급장이 되면 우리 반을 위해 열심히 하겠다는 뜻을 그렇게 묘사한 것이다.”
선생님 말씀에 아이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정혜 차례가 되었다.
‘정혜야, 잘해!’
나는 마음속으로 나를 응원했다.
“이정혜! 이정혜!”
호성이가 선창하자 아이들이 따라 했다. 어른들의 대통령 선거 못지않은 열기가 교실을 뜨겁게 달구었다.
“저는 우리 반을 위해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닦아 반짝반짝 빛이 나게 만드는 급장이 되겠습니다. 비단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지 않지만, 걸레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또한….”
“빗자루와 걸레로 쓸고 닦는다고 했는데 단지 청소를 잘하겠다는 뜻인가요?”
호성이가 질문했다.
“아닙니다. 그 뜻은 솔선수범해서 교실을 깨끗이 청소하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며, 저는 우리 학급이 화합하고 모든 친구가 차별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우리 ‘맛있는 비빔밥처럼’ 고루 잘 섞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급장 선거는 비밀 투표를 실천하는 것이고,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학급 민주주의를 제가 실천해 보이겠습니다.”
“와아, 이정혜 최고다!”
호성이와 아이들이 환호했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말했다. 투표도 자신들의 생각대로 소신껏 했다. 근우와 효정이가 개표를 맡고, 호성이가 확인해서 후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칠판에 ‘바를 정(正)’ 자로 표시했다. 정혜와 철민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치열한 경쟁을 했다.
“김철민!”
“와! 김철민 한 표!”
“이정혜!”
“이정혜 한 표 추가!”
이미 각 이름 앞에는 바를 정(正)자가 일곱 개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각각 네 개의 막대가 그려져 있었다. 근우와 효정이 손에는 달랑 표 한 장이 남아 있었다. 22.9
5. 하나 마나 한 투표
아침 일찍부터 치열한 선거 유세가 막바지까지 치닫고 있었다.
—대통령도 자유당—
—부통령도 자유당!—
“시끄러워서 깼구나?”
내가 몸을 뒤척이자, 엄마도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아! 엄마 냄새 좋다.”
나는 엄마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얘는, 다 큰 게.”
“아흠! 엄마, 저 사람들은 새벽부터 남의 잠 다 깨워가면서 선거운동을 하고 그래요.”
아직 잠이 덜 깨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하나 마나 이승만이는 단독 후보니까 대통령이 될 거고. 부통령이 자기편이 돼야 지들 마음대로 할 수 있거든.”
“참, 지난 설에 자유당이 주는 거 우리 집도 받았어요?”
“집마다 돌리는데 안 받을 수가 있어야지. 돌려줄 수도 없고…. 후유!”
엄마는 한숨까지 쉬었다.
“이번 급장 선거에서 철민이가 과자를 아이들한테 나눠주며 자기를 찍으라고 했어요. 우리 반 아이들 거의 다 과자를 받았는데 한 표 차이긴 하지만, 제가 급장이 됐잖아요. 그래서 더 기뻤어요. 아이들이 과자에 현혹되지 않고 소신껏 투표했으니까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낫구나.”
일찍 투표하고 와서 호성이 할머니 회갑 잔치 한복을 지어야 한다며 엄마는 서둘러 부엌으로 갔다. 솜씨 좋은 엄마는 아버지 월급만 가지고 생활하기 힘들다며 동네잔치가 있을 때마다 한복을 지어준다고 했다.
아침밥을 먹고 아버지가 출근할 채비를 하며 말했다.
“투표하고 출근해야 하니까 나 먼저 가리다. 자유당 청년들이 길에 쫙 깔렸으니 조심해서 당신도 투표소 다녀와요.”
“걱정하지 마세요. 시내가 온통 시끄러우니 당신도 조심해서 다녀와요.”
“아버지 다녀오세요.”
“오냐! 큰 애는 벌써 학교 갔나?”
고등학생인 오빠는 늘 새벽이면 학교에 갔다.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어머니가 나갈 채비를 했다.
“엄마, 나도 따라갈래.”
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들고 대문을 나섰다.
“아이고, 일찍 투표하러 가시네요. 자유당! 자유당 찍는 거 아시죠?”
확성기를 들고 있던 아저씨가 어머니를 보자 반갑게 말했다. 골목 끝 공터에서 확성기 소리가 났다.
—유권자 여러분, 2번을 꼭 찍어 자유당 행패를 막고 이번 기회에 정권을 바꿔야 합니다.—
“저 유세차량을 뒤집어 뿌라이!”
붉은 완장을 찬 아저씨가 몽둥이를 들고 그 차량으로 돌진하며 소리를 질렀다.
호성이가 할머니와 어머니랑 골목 입구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손을 살짝 들어 호성이와 눈인사를 했다.
“무슨 난리고?”
“서로 자기들 후보를 찍으라고 저 난리지요. 어르신도 일찍 투표하러 가시려고요? 곱기도 하셔라.”
“자네 솜씨가 좋아 나한테 잘 맞네.”
할머니는 설빔으로 엄마가 지은 옥색 한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몸이 안 좋아 투표 안 할라 했는데, 우리 호성이가 꼭 해야 한다네. 대통령은 하나 마나지만, 부통령은 우리 손으로 뽑아야 한다면서. 우리 호성이 말이 맞제? 안 그런가?”
“할머니, 저 사람들이 들어요!”
“들으라지. 이 늙은이를 어짤라고.”
재열이가 할머니를 부축하고 저만치서 오고 있었다.
“어? 재열이 언제 왔어?”
“정혜누나, 안녕? 임시공휴일이라서 형들과 누나하고 놀고 싶어 엊저녁에 왔지. 안녕하세요?”
재열이가 어른들한테 인사했다.
“오냐! 인사성도 밝지.”
호성이 할머니가 재열이의 까칠한 빡빡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내사 마 귀한 것 받았으니께 하나 마나 고마 이기붕이 찍을 라요.”
재열이 할머니는 자유당 유세차량을 따라다니며 그들이 주는 것들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부정 선거가 뭔지 모르는 기라요. 귀한 거 주는 자유당이 천사 아이가. 그래서 나는 무조건 자유당인 기라. 없는 살림에 누가 된들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 구하는 사람이 최고지. 안 그런가요?”
그때 성수 삼촌이 책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 나왔다. 베레모에는 명문대 로고가 황금빛으로 빛났다. 삼촌도 어른들께 인사를 했다.
“삼촌도 투표가요? 오늘 학교 안 가는 날인데 나중에 우리랑 공놀이해요.”
“미안, 오늘은 삼촌이 학교에 가 봐야 할 것 같다.”
혜숙이 언니와 호랑이 아주머니도 공터 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동네 어른들이 다 모였다.
“언니도 투표해요?”
“아니, 엄마 모시고 가려고. 정혜는 기자 된다고 했제? 투표 현장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공부가 될 거다.”
“응, 언니. 그래서 요것도.”
정혜는 치마 주머니에서 수첩과 삼촌이 줬다며 자랑한 그 만년필을 꺼내 보여주었다.
“아하! 저 사람들한테 들키지 않게 조심해.”
혜숙 언니가 저만치 서 있는 자유당 당원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새벽 댓바람부터 저 난리를 치는지 모르갓시오. 자유당이 빨갱이를 잡는다는 데는 나도 찬성이요. 아비 없이 키운 우리 혜숙이 불쌍해서라도 빨갱이를 모조리 잡아 없애야 하지 안 갓시오. 이 가슴에 시커멓게 멍이 들었시요.”
호랑이 아주머니는 가슴을 툭툭 치며 울분을 토했다.
“호성이 형, 영철이 형도 부르자.”
“나, 여기 나왔다.”
“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형이 오네.”
재열이가 영철 오빠 곁으로 달려가며 말했다.
“재열이 언제 왔어?”
“어젯밤에 왔대.”
내가 대신 대답했다. 영철 오빠 부모님은 두 분 다 직장을 다녀 얼굴보기 힘들었다. 골목 식구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떠들썩하게 투표소로 향했다. 사랑국민학교 운동장에 마련된 투표소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천막 지붕에는 자유당 이름과 후보의 이름이 크게 적혀 있었다. 입구에는 빨간 완장을 찬 자유당 당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커다란 항아리에는 막걸리가 찰랑찰랑 담겨 있었다. 윗도리는 양복, 아래는 핫바지를 입은 자유당 사람이 호롱 바가지로 막걸리를 퍼서 투표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우리는 어른들 뒤에 바짝 붙어 투표소에 들어가려 했다.
“아그들은 여기 들어오면 안 돼!”
자유당 당원이 우리 앞을 막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천막 뒤에 떨어져서 지켜보기로 했다.
“우리도 저 투표소 안에 들어가 보면 좋을 텐데. 그치 영철이 오빠!”
나는 투표소 안이 궁금했다. 한 아저씨가 자유당 당원이 퍼 주는 막걸리를 받아 마시며 기분 좋게 말했다.
“크! 좋다. 걱정 마시라. 나는 뭐라 뭐라 캐도 자유당인지라.”
그 아저씨가 불콰해진 얼굴로 큰 소리로 말했다. 책상에 앉아 있던 사람이 그 아저씨한테 머리를 깊이 숙여 절을 했다. 그 아저씨는 거만하게 팔을 휘휘 저으며 투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저, 저 사람 좀 보소! 쯧쯧!”
호성이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곧이어 양복을 입은 중년 아저씨가 들어왔다. 18.4
6. 투표소 광경
‘어? 영철 오빠, 오빠 담임 선생님이다.’
정혜는 영철 오빠 귀에 대고 말했다.
“아이고, 선상님, 일찍 나오셨구마니라요. 막걸리 한잔 하시라요!”
자유당 아저씨가 막걸리를 퍼서 선생님 얼굴 가까이 내밀며 말했다.
“저리 치우시오!”
선생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한 팔로 바가지를 밀치자, 막걸리가 그 아저씨 얼굴에 튀었다.
“와이카지라요? 선상님이 먹고 안 먹고는 자유지만, 찍는 거는 자유가 아닌 거여. 선상질 길게 할라카면 우리 시키는 대로 하는 기 좋을 거여.”
자유당 당원이 선생님한테 소리를 지르며 밀쳤다.
“으윽!”
선생님은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저러다 사람 죽이겠네.”
사람들이 겁에 질러 한쪽으로 피했다.
“선생님!”
영철 오빠가 달려 나가 선생님을 부추겨 세우며 소리쳤다.
“왜 우리 선생님을 때려요?”
“영철아, 니가 왜 여기 왔어? 어서 집에 가거라. 다친다.”
“선생님!”
“새벽 댓바람부터 아가들은 여기 오는 게 아니여. 맞고 싶지 않거든 싸게 집에 가라이! 썩 꺼지지 못 할 거여?”
붉은 완장을 찬 자유당 당원이 눈알을 부라리며 영철 오빠를 밀쳤다. 넘어지면서 무릎에 피가 났다. 호성이가 영철 오빠 앞을 막으며 항의했다.
“아저씨들 나빠요!”
재열이는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나도 엄마 치맛자락을 붙들고 있는데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 저런! 나쁜 놈들! 어디다 행패야?”
호성 할머니가 호통을 쳤다. 삼촌이 그 깡패와 맞섰다.
“당신들 뭐요? 폭력을 휘두른 것 신고하겠소! 아이들까지 다치게 하다니!”
“뭐야? 이 새끼 명문대생이잖아! 명문대생이면 명문대생답게 도서관에 처박혀 공부나 할 일이지!”
자유당 당원이 삼촌 멱살을 잡고 모자에 새겨진 로고를 보고 말했다. 혜숙 언니가 삼촌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이 아저씨들 완전 깡패들이네. 정말 신고할 거예요.
“이 가시나는 또 뭐여? 저리 안 비키나? 한 패구만, 니들 콩밥 좀 먹고 싶어 환장한 거여?”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나랍니다. 유권자는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단 말이요.”
“주권 좋아하네!”
삼촌도 호락호락하지 않고 그들과 엉겨 붙어 몸싸움을 했다.
“당신들 선거법 위반으로 경찰에 신고하겠소!”
자유당 당원이 양쪽에서 삼촌 팔을 붙잡았다. 삼촌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소리치며 맞섰다.
“신고 좋아하네.”
“삼촌 어떡해!”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골목 어른들도 불안에 떨었다. 투표소는 완전히 자유당이 장악하고 있었다. 재열이 할머니는 이승만 대통령을 뽑아야 빨갱이들을 다 잡아 깜빵에 처넣을 수 있다고 했다. 정말 자유당이 전쟁을 일으킨 빨갱이를 쳐부술 수 있을까? 사람들도 그렇게 믿는 듯 했다. 전쟁이라면 사람들은 치를 떨었으니까.
“줄 서서 투표하시오. 반항하거나 하면 이 자식처럼 다 집어넣을 거요!”
자유당 당원이 다 잡아갈 듯이 기세등등했다. 삼촌이 큰 소리를 외쳤다.
“부정선거 우리가 막읍시다. 여러분 소신껏 투표하세요. 비밀투표라 누구를 찍었는지 표 나지 않으니 겁먹지 마세요.”
“이 새끼 봐라! 입 다물지 못 할 거여?”
그 사람은 삼촌 멱살을 잡으며 유권자들에게 협박했다.
“이 새끼 말 들으면 다 잡아 너뿔기라.”
“아, 뭘 그래 샀소! 아직 어린아를 뎃고. 우리는 자유당! 자유당인 기라. 우리 동네 사람들은 내가 뎃고 왔으니 말하나마나 모두 자유당인 기라. 안심하소! 나리 양반. 갸 내 손주인 게 놔 주소!”
재열이 할머니가 자유당 완장을 속곳 주머니에서 꺼내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때야 반공청년단이 삼촌을 놓아주고 제자리로 들어가며 엄포를 놓았다.
“재수 좋은 줄 알아라. 한 번만 더 걸리면 깜빵에 처넣을 뿌끼라.”
투표소는 살벌했다. 호성이 할머니가 말했다.
“아까 그 양반 영철이 담임 선생님이라고 했제? 그런 양반들이 많아야 민주주의가 바로 설 건데. 저놈들과 몸싸움하더니만 자네는 다치지는 않았는가? 죽일 놈들! 쯧쯧!”
“네, 괜찮습니다.”
호성이 할머니가 삼촌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나라꼴을 걱정했다. 줄을 길게 서 있던 어른들은 벌벌 떨면서 자유당 당원들 눈치를 보며 투표소로 들어갔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투표를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자유당 당원들이 그런 사람을 돕는다며 투표소에 함께 들어갔다.
“선거는 공정해야 하잖아요. 왜 함께 들어가요?”
내가 그 아저씨를 보고 소리쳤다.
“아가들은 집에 가라고 했어? 안했어? 이 사람들이 투표할 줄 몰라 우리가 돕는 거라고. 꼬마야!”
“누가 속을 줄 알고요.”
그 자유당 당원이 우리를 보고 눈알을 부라렸다.
“완전 자유당 마음대로잖아? 보나마나 이기붕이 한테 도장 찍지. 반장 선거도 이리 안하고 공정했는데. 안 그래. 호성아?”
“철민이 자식 하는 거 안 봤어? 저들도 철민이랑 다를 게 뭐있어. 자기가 정혜 너한테 지니까 과자 준 것 도로 내 놓으라고 했잖아. 그리고 부정 개표라고 개표 다시 하라고 했잖냐. 그래서 몇몇 아이들이 과자를 철민이 얼굴에 과자를 던졌고. 고소하더라.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정혜 네 얼굴 봐서 참았지. 헤헤! 잘했지?”
“너도 과자 받았구나?”
“아, 아니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는 우리 반 급장 선거할 때나 지금 어른들이 하고 있는 선거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권력에 욕심이 많은지 모르겠다.
골목 어른들은 투표를 마치고 서둘러 살벌한 투표장을 떠났다. 우리도 투덜거리며 뒤따라 나왔다. 선생님도 우리 보고 얼른 집에 가라며 어른들께 인사를 하고 떠났다. 선생님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삼촌도 투표를 마치고 학교에 가 봐야 한다며 서둘러 갔다. 16.9
7. 동포여! 잠에서 깨라
전국에서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학생 시민들을 중심으로 들고 일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위는 사그라들지 않고 더 거세졌다.
“있잖냐? 마산 김주열 형은 알루미늄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27일 만에 바다에 떠올랐대. 죽은 김주열 형 시신에 경찰이 돌을 달아 바다에 빠뜨렸대. 그래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분노하여 4⦁19혁명으로 이어졌다더라.”
근우는 이모가 기자라 보고 들은 것을 학교에 와서 실감 나게 이야기했다.
“정말? 무섭다.”
“설마? 으, 끔찍하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아이들이 몸서리를 쳤다.
나는 그 이야기를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면서 아버지한테 말했다.
“아버지, 근우가 말한 그 이야기를 이 수첩에 다 적어두었어요. 나중에 글로 쓸 거예요.”
“정혜야, 글은 말이야. 진실해야 하고, 사실이 왜곡돼서도 안 되고, 함부로 조금 아는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꾸며도 안 된다는 것 꼭 명심해야 한단다.”
“활자화되는 건 영원히 남는다는 것도 명심해야 하고요. 아버지.”
“정혜 제법 똑똑하네.”
“오빠는 맨날 왜 그리 일찍 학교 가는데? 밤늦게 오고. 얼굴 잊어버리겠다.”
“정혜야, 다섯 살씩이나 많은 오빠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어머니가 나무랐다.
“정우는 시국이 어수선하니 일찍 집에 들어오너라.”
“네, 아버지!”
나는 그 김주열이라는 알지도 못하는 오빠가 자꾸 머릿속에 떠돌아다녔다. 무서워 잠이 오지 않아 뒤척였다. 다음 날 아침 늦잠을 잤다. 아버지는 벌써 회사에 가고 없었다. 오빠도 새벽에 학교에 갔다고 했다.
“엄마, 내가 또 제일 꼴찌야? 오빠는 왜 그리 일찍 학교 간대?”
“이제 고등학생이잖아.”
나도 서둘러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책 보따리를 허리에 매고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나왔다. 골목에는 영철 오빠와 호성이가 벌써 나와 있었다.
“영철 오빠 일찍 나왔네. 호성이도.”
“데모하느라 시끄러워서 잠을 자겠더나? 그래서 일찍 안 깼나.”
“내가 늦은 줄 알았는데 아니네. 교실 문 안 열렸으면 어떡해?”
좀 이른 등교라 학교 가는 길은 한산했다.
“정혜 너 공 가지고 왔니? 운동장에서 공 던지기 한판하고 교실에 들어가자.”
“응, 당연히 가지고 왔지.”
나는 책 보따리에서 공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그럼, 호성이 말대로 한번 놀다 가게 빨리 가자.”
그때 문구점에서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저 목소리 혜숙이 언니 목소리다!”
“맞다! 안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는 출입구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문구점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이미 몇몇 아이들이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근우가 맨 앞에서 듣고 있었다.
“근우야!”
나는 근우가 있는 곳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야들아, 밖에서도 들리니까 밀고 안 들어와도 된다.”
문구점 아저씨가 라디오 소리를 크게 틀었다. 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서 더 크게 흘러나왔다.
“역시 명문 여고생이라 잘하네.”
영철 오빠가 혜숙이 언니를 칭찬했다. 선언문 뜻은 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언니가 수많은 학생 앞에 대표로 연설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혜숙이 언니가 근사할 것 같았다.
“텔레비전에도 나오지 않을까. 텔레비전이면 누나를 볼 수 있을 텐데. 우리 집에 가서 보고 갈까?”
호성이가 말했다.
“호성이 집은 너무 멀어. 누나 집에 가면 텔레비전 있잖아. 우리 그리로 가자. 호랑이 아주머니도 누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 보면 좋아하실 거야. 얼른 가서 알려드리자.”
영철 오빠는 늘 차분하고 판단력이 빨랐다. 우리는 지름길로 혜숙 언니 집으로 몰려가 대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우당탕!
“아이고 깜짝이야. 또 무슨 난리고? 간 떨어지갓어야.”
“그, 그게. 텔레비전, 텔레비전 한번 틀어보세요. 혜숙이 누나가 나와요.”
호성이가 숨이 넘어가듯이 말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 갓네?”
“지금 설명할 시간 없어요. 텔레비전부터 켜보세요.”
영철 오빠가 재촉했다. 호랑이 아주머니는 대청마루에 있는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은 소낙비가 내리듯이 빗금이 쳐졌다. 희미하게 혜숙 언니의 얼굴이 화면에 나왔다.
“와! 누나다!”
“언니다!”
“정말 저게 내 딸 혜숙이란 말이가?”
선언문 낭독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동포여! 잠에서 깨라! 짓밟힌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나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라! 무엇 때문에 우리는 피를 흘려 왔느냐
귀를 기울여라.>―학생 선언문 일부
“아이고, 에미나이가 이악스럽기는. 저기가 어디메라고 가서 저러고 있제.”
아주머니는 언니 연설에 감동한 건지, 눈물 콧물을 훔쳐냈다.
“데모 절대 못 하게 했더니만 앞장까지 섰갓어. 에미나이 앞길 막히 갓어야. 데모하다 잡혀가면 깜빵 간다고 하지 않았갔어?”
아주머니는 한숨까지 쉬며 걱정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을 거예요.”
영철 오빠가 아주머니를 안심시켰다.
“너들 학교 늦갓어야.”
아주머니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했다.
“아주머니. 언니 멋지죠?”
“그렇긴 한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우리는 후닥닥 학교로 향해 달려갔다. 등굣길에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걸어가고 있었다. 어제 쏘아댄 최루탄 냄새가 매캐하게 남아 있어서 눈이 따가웠다.
“에취!”
“에취!”
여기저기서 재채기 소리가 났다. 학교 복도에 들어서니 데모 이야기로 왁자지껄했다.
“어제 고려대 쪽에서 난리가 났대.”
“너네 이모한테서 들었구나?”
“군인들이 총을 싸서 학생들하고 시민들이 많이 죽었대. 아스팔트에는 피가 흥건했다더라.”
“무섭다야.”
근우는 소식통이라 근우 주변에 아이들이 몰려있었다. 영철 오빠도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었다.
“영철 오빠 교실로 안 가? 나 수업 끝나고 도서관에서 책 읽고 있을게. 나중에 글루 와. 집에 갈 때 같이 가게.”
“알았어.”
4교시였다. 시내에서 총소리가 요란했다. 아이들이 창문으로 몰려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운동장 마이크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7.5
8. 우리 딸 좀 찾아주세요.
“지금 전 학년 수업을 중단한다.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고 선생님들은 교무실로 집결 바랍니다.”
“또 난리가 난 모양이네. 데모하는 것들 다 싹 쓸어 교도소에 처넣어버려야 조용할 긴데. 안 그러냐?”
“네, 맞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도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철민이가 선생님 말씀에 큰 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데모는 부정 선거를 했기 때문이란 말이에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종례한다.”
“네…!”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선생님께 경례했다.
“일어 서! 차렷! 선생님께 경례!”
“한눈팔지 말고 빨리 집으로 가라. 전쟁이다. 전쟁!”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나갔다.
“반장, 빗자루로 싹싹 쓸고 걸레로 깨끗이 닦아 반짝반짝 빛나게 청소해라. 우리는 집에 간다. 수~고!”
철민이가 깐죽거렸다. 철민이를 따라 아이들도 우르르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내가 급장이 되자, 철민이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나는 칠판도 닦고 삐뚤어진 책상도 바로 놓았다. 호성이가 거들어 주며 너스레를 떨었다.
“네가 급장되는 바람에 내가 고생이다. 고생. 하하!”
“고맙다, 고마워. 아우야!”
칠판을 닦으며 호성이 말에 장난을 쳤다.
“정혜야! 호성아! 빨리 집에 가자. 위험하다.”
“영철 오빠, 벌써 왔어?”
“내가 도울 테니까 넌 저기서 기다려.”
“고마워. 같이 해!”
영철 오빠가 거들어 청소를 빨리 끝내고 책가방을 챙겨 교실 문을 나왔다.
“영철 오빠와 호성이 덕분에 청소 일찍 끝났네. 고마워 오빠야, 아우야!”
“뭐야?”
호성이가 주먹을 높이 들었다. 우리는 장난을 치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향해 뛰었다. 아침과는 반대편 문구점 앞에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그곳에는 텔레비전이 있었다. 우리는 그 문구점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아직도 혜숙이 언니 선언문 낭독하는가 봐!”
“그러게. 저렇게 오래하지?”
“그건 촬영을 해 놨다가 방송국에서 자꾸 내 보내는 거래.”
영철 오빠는 오빠라서 그런지 아는 것도 많았다.
“영철 오빠도 기자하면 되겠다. 나랑 같이.”
“형은 카메라 기자하면 되겠다. 정혜 말하는 것 찍으면 되잖아.”
영철 오빠는 그러면 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문구점 텔레비전은 소나기처럼 빗금이 심하게 쳐져 사람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와서 울면서 말하고 있었다. 말소리는 또렷하게 잘 들렸다.
“언니 아니네.”
“아주머니가 인터뷰하는가 보다.”
“우리 딸 좀 찾아주세요. 아침에 학교 가면서 이걸 써두고 나갔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공책에 쓰인 글을 기자한테 내밀었다.
“따님이 몇 학년입니까?”
“중학교 2학년이에요!”
“뭐라고 쓰여 있는지 제가 읽어봐도 되겠습니까?”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여기자 근우 이모다.”
호성이가 먼저 알아보고 말했다. 기자는 그 공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선거 데모로 목숨 바쳐 싸우겠습니다.-중략 <불효 딸 영희 드림>
-여중 2학년생이 어머니께 남긴 편지-
“네, 안타깝군요. 하지만, 어머니 염려 마세요. 따님은 큰일을 하고 꼭 돌아올 겁니다.”
“정말 아무 탈 없이 돌아올까요?”
“네, 기다려 보세요. 돌아 올 겁니다. 혹시 영희 양은 이 방송을 본다면 어머니가 걱정하시니까 얼른 집으로 돌아와요.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마음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시위 현장이었습니다.”
최루탄이 날아오자 기자는 몸을 피하며 재채기를 했다.
“영철 오빠! 그 중학생 언니 괜찮을까?”
“어, 괜찮을 거야.”
“우리도 데모하러 갈까? 오빠!”
“안 돼. 위험해!”
“우리 가보자 응?”
나는 영철 오빠 손을 잡고 흔들었다. 호성이도 가자고 했다. 정혜는 영철 오빠와 호성이 가운데 서서 손을 잡고 시위 현장으로 달려갔다.
온 거리에는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기붕 당선 플래카드가 온통 걸려 있었다. 하지만 플래카드가 안 찢어진 게 하나도 없었다.
“치, 부정선거로 당선 된 거면서 축하는 무슨 축하. 국민들이 찍어줘야 축하지. 그러니까 플래카드를 다 찢어 버리지. 안 그러냐? 호성아!”
나는 입을 가만히 놀려 두지 않고 떠들었다. 덕수궁 반대편에 엄청난 데모대가 모여 있었다. 둥둥둥! 북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영철 오빠와 호성이 중간에 서서 손을 잡고 데모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했다.
“내 딸을 보내 달라!”
“아까 텔레비전 그 아주머니다.”
* 진양은 한성여중 2학년이던 1960년 4월 19일 시위에 참여해 미아리 파출소를 거쳐 시내로 가다가 미아리고개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세브란스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1960년 4월 19일 시위에 나가며 남긴 한성여중 2학년 진양이 어머니께 쓴 글이 유서가 되어 버림. 14.3
9. 재열이가 사라지다
마산에서 들고일어난 시위는 서울에서 더 치열해졌다.
“빨리 뛰어 가보자!”
나는 영철 오빠와 호성이를 재촉했다. 우리는 덕수궁 담벼락을 끼고 뛰었다. 덕수궁 담벼락에는 아직도 후보들의 사진이 햇빛에 바래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유독 이승만 대통령 후보와 이기붕 부통령 후보 사진만이 갈기갈기 찢겨있었다. 나는 삼촌을 선거 날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간혹 한밤중에 옷을 갈아입으러 온다고 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집에 오지 않는 날이 오는 날보다 더 많다고 했다.
책 보따리를 매고 시위 현장까지 가려니 무겁기도 하고 거추장스러웠다. 공부가 일찍 끝나는 바람에 점심 도시락을 먹지 않아 더 무거웠다.
“오빠, 우리 책 보따리 무거운데 호랑이 아주머니 댁에 맡기고 갈까?”
“좋아!”
호성이도 찬성했다. 뒷골목 지름길로 가면 공터 바로 옆이 아주머니 댁이다. 호성이네는 골목 입구라 한참을 더 가야하고 영철 오빠 집과 우리 집은 중간쯤이라 마음이 급해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아주머니 댁에 책가방을 맡기기로 했다. 영철 오빠와 호성이는 멜빵가방을 등에 매고 있었고, 나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조각보 책 보따리를 허리에 매고 있었다. 공터를 가로질러 호랑이 아주머니 댁으로 갔다. 삼촌이 혜숙이 언니 과외를 시작하고 난 이후부터 아주머니는 항상 우리 편이었다. 삼촌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이것들아. 거긴 위험해서 안 돼야.”
우리가 시위 현장에 간다니까 아주머니는 펄쩍 뛰었다. 나는 책 보따리에서 수첩과 삼촌이 준 만년필을 꺼내 손에 들었다. 만년필은 삼촌이 아끼는 것을 내게 준 것이다. 만년필에는 삼촌 학교 금빛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삼촌이 제일 아끼던 것인데 내가 가져도 돼요?’
‘정혜, 기자가 될 거라고 했지? 진실한 글 쓰라고 주는 거야.’
“그러고 있으니까, 너도 기자 같다.”
만년필을 보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영철 오빠가 엄지척하며 말했다.
“정말? 그러니까 우리 빨리 가보자. 생생한 현장을 보고 수첩에 적어 오게.”
덕수궁 건너편 시위대는 학생 시민들이 뒤섞여 있었다.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자, 우리도 따라 외쳤다. 그때 구호 소리와 함께 악을 쓰며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 나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쳐부수자 공산군 나아간다 나아가 우리 동무들~~’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였다. 지난번 재열이가 할머니 댁에 왔을 때 선거 유세차량을 보고 부르던 ‘승리의 노래’였다. 고무줄놀이할 때도 부르는 노래다. 우리 모두 재열이를 따라 골목이 떠나가도록 목청껏 불렀던 생각이 났다.
“이거 재열이 목소리 아니야?”
영철 오빠가 먼저 말했다.
“맞아! 재열이야.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빨리 가보자.”
우리는 사람들을 비집고 소리 나는 쪽을 향해갔다. 재열이는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렸다.
“재열아!”
호성이가 큰 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시위대의 구호가 소리를 삼켜버렸다. 계속 노랫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다 함께 손나발을 하고 더 크게 불렀다.
“재열아!”
노랫소리가 뚝 그쳤다. 저만치 군중들 맨 앞에서 재열이가 책 보따리를 어깨에 매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재열아!”
“어? 형아야, 정혜 누나야!”
“재열아, 위험한데 여긴 웬일이야?”
영철 오빠가 재열이를 보며 말했다.
“우리 학교 형들이 간다고 해서 따라왔는데, 형들이 다 없어졌어.”
“혼자서 노래를 부르고 그러니?”
“무서워서. 노래 부르면 안 무서워.”
“우리랑 함께 있자.”
재열이는 눈물범벅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재열이가 우리 손을 끌고 앞으로 갔다.
“뒤에 있는 게 덜 위험해. 뒤로 와!”
호성이가 재열이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형, 무섭긴 해도 앞에 서야 잘 보이고 재미있어.”
군인과 경찰들이 앞에서 총을 들고 왔다 갔다 했다. 우리도 재열이를 따라 앞에 섰다. 서로 떨어지지 않게 손을 꼭 붙잡았다.
“형, 누나! 나 할머니 댁에서 학교 다니게 해달라고 엄마한테 졸랐어.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원래는 할머니가 우리 집으로 오시기로 되어 있었는데, 할머니가 시장에 밥 배달하는 단골이 많아 우리 집에 못 오신대. 다음 주 월요일부터 형들과 누나 다니는 학교에서 다닐 거다.”
재열이 할머니는 머리에 밥 쟁반을 다섯 개도 더 올려서 이고 배달해서 시장 상인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했다. 남은 밥은 집에 가지고 오기 때문에 끼니 걱정은 없다고 했다.
“잘됐네. 환영한다.”
영철 오빠가 재열이 빡빡머리를 손으로 문질렀다.
“와, 잘 됐다. 진짜 내 동생 생겼네. 호성아!”
나는 호성이를 보고 놀렸다.
“저게 그냥.”
“호호!”
나는 호성이가 치켜든 주먹을 피하며 웃었다.
“나 할머니 댁에 오면 단짝으로 끼워 줄 거지?”
“물론이지.”
“고마워. 누나, 형아들!”
그때 가까이서 최루탄이 터졌다. 군중들이 아우성쳤다. 대학생들이 구호를 외치자, 군인들이 하늘을 향해 총을 쏘아대던 총구를 사람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길바닥에 픽픽 쓰러졌다. 길옆 건물 벽에는 총구멍이 숭숭 벌집 같았다.
“무, 무서워!”
“뒤로 가자. 재열아 이쪽이야!”
영철 오빠가 재열이 손을 끌며 말했다. 반대편에서도 수많은 인파와 데모대가 뒤섞여 시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누나, 형아 나 오줌 마려워.”
“그럼 어떡해?”
“우리 학교 화장실에 형아랑 같이 가자.”
“형 고마워. 사람이 너무 많아. 좀 더 참아볼게.”
“재열아, 혹시 우리와 헤어지거든 덕수궁 돌담길 맨 끝으로 와. 거기서 만나자. 거기가 우리 제2 만남의 장소거든. 여기서는 할머니 댁 가는 길 잘 모르잖아.”
“응, 알았어.”
그때 군인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시위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재열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우리 앞에서 대학생 한 명이 쓰러졌다.
“엄마야! 오, 오빠!”
나는 옆에 있는 영철 오빠를 붙들었다.
“모두 엎드려!”
누군가가 외쳤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땅바닥에 엎드렸다. 재열이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오줌을 바지에 쌌다. 내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딱딱 났다. 의사가 꿈인 호성이는 쓰러진 대학생을 일으키고 있었다. 호성이 손이 피범벅이 되었다.
“호, 호성아! 위험해. 엎드려.”
“구급차, 구급차를 불러야 해!”
호성이가 소리쳤다.
“사, 삼촌!”
쓰러진 그 대학생을 보자 삼촌 생각이나 울음이 터졌다.
“엉엉!”
“너희들 얼른 집에 가라. 빨리!”
울음소리를 들은 한 여학생이 소리쳤다. 시위 현장에는 교복 입은 여학생도 많이 있었다. 그 속에는 혜숙이 언니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우리 오빠 또래도 보였다.
한차례 군인들과 경찰들이 지나가자 좀 잠잠해졌다.
“애앵애앵!”
구급차가 와서 다친 사람들은 싣고 갔다. 그 대학생도 들것에 들려갔다.
“오빠, 저, 저 대학생 오빠 괜찮을까? 우리 삼촌은?”
나는 삼촌이 걱정되었다.
“그, 글쎄?”
모두 무서워서 말도 제대로 못 했다. 근우가 효정이와 몇몇 아이들이 군중 속에 있었다. 그들도 무서워 떨고 있었다.
“근, 근우야! 효정아!”
내가 근우와 효정이를 먼저 발견하고 불렀지만, 떨려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근우도 우리를 발견하고 불렀다.
“어? 정, 정혜야! 호성아!”
우리는 무서우면서도 아군을 만난 것 같이 반가웠다.
“영철 오빠, 우리 반 근우와 효정이 알지?”
“그, 그래.”
영철 오빠도 떨고 있었지만, 오빠답게 표 내지 않고 우리 반 동무들을 반겼다.
“형아, 누나야 나 할머니 집에 갈래. 허엉!”
“그래, 가자. 울지 마!”
재열이가 울먹이자, 영철 오빠가 달랬다.
“응, 울지 않을게.”
재열이는 옷소매로 눈물을 쓱 훔쳐냈다.
“근우 넌 집이 좀 먼데 여기까지 시위 온 거니? 위험한데.”
“위험하지만 우리도 시위하는 게 맞아. 우리나라의 주역이 될 거잖아. 지난번 우리 반 급장 선거 때 봤잖아. 철민이 자식 과자 돌리며 부정 선거하고, 정혜 너한테 지니까 개표 다시 하라며 성질부리는 거. 꼭 국회의원들이 하는 거와 뭐가 달라. 안 그래? 그래서 부정선거는 막아야 해. 우리도 작은 힘이지만 보태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는 너는?”
“내가 가자고 졸랐어. 나는 네 이모처럼 기자가 될 거거든. 그래서 영철 오빠와 호성이를 졸랐어. 이렇게 무서운 줄 모르고. 무서워.”
“우리 일단 저쪽 덕수궁 담벼락 쪽으로 자리를 옮기자.”
영철 오빠가 우리를 데리고 덕수궁 쪽으로 갔다. 그쪽은 좀 한산했다. 호성이가 따라가며 말했다.
“정혜 따라 나왔지만, 생각이 달라졌어. 근우 네 말처럼 우리도 작은 힘이지만 보태야 할 것 같아. 우리 선생님은 작은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면서 말뿐이라는 걸 급장 선거 때 알았잖아.”
그때 빨간 완장을 찬 괴한이 앞쪽에서 각목을 휘두르고 있었다.
“영철 오빠! 저거 봐! 지난번 선거 때 오빠 담임 선생님을 때린 그 깡패야.”
그 소리를 듣고 그 깡패가 뒤돌아보느라 각목이 공중에서 멈추고 두리번거렸다.
“부정선거 다시 하자. 김주열을 살려내라!”
구호 소리는 절정에 다다랐다.
“니들 알아? 오늘 전국 대학생 연합과 고등학생 형과 누나들, 일반 시민들까지 경무대 쪽과 광화문, 시청 쪽에서 데모 집결한다고 들었어. 어제 고려대 사건 때문이라고 하던데.”
근우가 이모한테 들었다며 말했다.
“우리도 그쪽으로 가보자.”
나는 영철 오빠 손을 끌며 말했다. 시위대가 물밀듯이 광화문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근우 팀과는 시위대에 떠밀려 헤어지고 말았다.
“어? 재열이도 없어졌어. 재열이 찾아봐!”
영철 오빠가 말했다. 나는 근우가 말한 그 상황을 수첩에 적느라 재열이 손을 잠깐 놓았었다.
“재열아, 재열아!” 27.5
7. 비밀 상자 속 대통령 할아버지
어느새 해가 서쪽 하늘에 걸려 있었다. 긴 그림자가 시위대 위에 내려앉아 어둑어둑해졌다.
펑펑펑!
최루탄이 불꽃처럼 튀어 하얀 연기와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매캐한 냄새가 구역질이 나고 눈물 콧물이 줄줄 흘렀다.
“에취, 에취! 오빠! 저거 봐. 꼭 불꽃놀이 하는 것 같다. 진짜 불꽃놀이면 멋질 텐데. 그나저나 재열이는 어디 갔지? 재열아!”
나는 재채기를 하면서도 재열이가 걱정되어 찾았다. 뿌연 연기가 계속해서 하늘을 덮었다.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다. 시위대가 이쪽으로 몰렸다가 저쪽으로 몰렸다가 꼭 썰물과 밀물 같았다.
“으아!”
시위대 사람들이 놀라 흩어졌다. 바로 옆에 최루탄이 떨어졌다. 시위대가 둘로 갈라졌다.
“정혜야 빨리 피해! 호성이도!”
영철 오빠가 소리를 질렀다.
“부릉부릉 부르릉!”
그때 수십 대의 경찰 백차가 양쪽으로 갈라진 시위대 사이로 질주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경찰차에 부딪혀 쓰러졌다.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얀 오토바이를 탄 경찰들이 백차 뒤를 줄지어 지나갔다. 사람들이 다시 앞으로 몰렸다. 그 뒤로 지프차들이 지나갔다.
“우와! 멋지다.”
“멋지긴, 살벌하지.”
호성이가 한마디 했다. 우리는 모두 그 광경을 보려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앞으로 더 나갔다. 백차, 오토바이, 지프차가 시가행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일곱 살 땐가 여덟 살 때 엄마 손을 잡고 대통령 시가행진 구경을 갔었다. 그때도 수십 대의 백차들이 천천히 대통령 할아버지 차를 호위했다. 대통령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도로는 꽉 찼다.
‘대통령 만세!’
‘이승만 대통령 만세!’
대통령 할아버지는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중절모를 쓰고 뚜껑이 없는 차에 타고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도 까치발을 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 차가 우리 바로 앞을 지나갔다.
‘엄마, 저 할아버지가 대통령 할아버지야? 와, 멋있다.’
‘대통령 할아버지! 근사해요!’
나는 그때 손나발을 하고 큰 소리를 외쳤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대통령 할아버지가 잠시 우리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 모습은 너무나 인자해서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날 그 기억이 생생해 대통령 할아버지가 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달력에 나온 대통령 할아버지 사진을 오려서 내 비밀 상자에 넣어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런 좋은 대통령 할아버지가 이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불꽃놀이와 시가행진은 정말 멋있었다. 눈이 따갑지도, 재채기도 나오지 않았었다.
“정혜야, 위험해서 안 되겠다. 그만 집에 가자. 우리 아버지가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싫어, 영철 오빠는 겁쟁이야.”
나는 영철 오빠 말에 뽀로통해졌다. 무서웠지만, 더 보고 싶었다.
“집에 가는 게 좋겠다.”
호성이도 말했다.
“근데 오빠, 정말로 이 무서운 일을 대통령 할아버지가 저지른 거야? 믿기질 않아.”
“물론이지. 나도 믿기지 않는 거는 사실이지만,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잖아. 그 사전 투표 부정 선거가 도화선이 된 거고. 그렇게만 하지 않았어도 존경받을 텐데.”
“음, 내가 본 할아버지는 참 좋으신 분이었는데….”
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아 도리질을 했다.
“왜 대통령 할아버지가 부정을 저질렀는지 밝혀낼 거야.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어른들도 못하는데 네가 어떻게 해?”
호성이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고 봐!”
“독재를 막아라!”
그 구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 재열이도 찾아서 데리고 가야 하잖아. 재열이는 분명히 제일 앞에 있을 거야. 우리 앞으로 가 보자. 응? 우리 삼촌도 찾아야 하고. 아까 덕수궁 앞에서 대학생이 쓰러지는 거 봤잖아. 제발, 조금만.”
“이 많은 사람 속에서 어떻게 재열이와 삼촌을 찾아? 모래에서 바늘 찾기지.”
영철 오빠는 마지못해 따라오며 말했다.
“정혜야. 정말 위험하다. 집에 가는 게 좋겠다. 삼촌은 여기서 찾을 수 없어.”
호성이가 나를 달랬다. 나는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고 소리쳤다.
“그러면 재열이는 어떡해?”
시위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사람 넘어지면 도미노처럼 다 넘어질 것 같았다. 최루탄 냄새와 먼지와 사람들의 열기로 제대로 숨도 쉴 수조차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영철 오빠와 호성이도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재열이를 간절하게 부르며 앞장서 사람들을 밀치고 나갔다.
“재열아, 재열아!”
“밀지 마세요. 밀면 위험해요!”
대학생 교복을 입은 한 무리와 고등학생들이 섞여 확성기로 외쳤다.
“어? 저기 삼촌이다! 우리 오빠도 있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셋은 소리쳤다.
“성수 삼촌!”
“오빠!”
우리는 손나발을 하고 불렀지만, 시위대의 함성에 그 소리는 묻히고 말았다. 삼촌은 커다란 확성기를 들고 밀지 말라며 사람들에게 질서를 지켜 달라고 소리 질렀다. 그리고 구호를 외쳤다.
“구속된 동지를 풀어라!”
“우리가 흘린 피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삼촌이 이끄는 시위대가 바로 앞에까지 왔다.
“삼촌!”
나는 달려가 삼촌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 막아섰다. 삼촌이 깜짝 놀랐다.
“정혜야? 아니, 너희들! 위험한데 여기는 어떻게 왔어?”
“오빠!”
오빠도 깜짝 놀란다.
“정혜야, 여긴 왜 왔어?”
“우리도 데모하고 있어. 오빠도 데모해? 아버지한테 말했어?”
“쉿! 어머니한테 말하면 절대 안 돼!”
“응, 알았어. 근데 오빠, 학교에서 공부 안 하고 데모한 거였어?”
“위험해서 안 되겠다! 너희들 빨리 집에 가라!”
삼촌이 소리를 질렀다.
“아악!”
최루탄이 바로 옆에 떨어졌다. 하마터면 최루탄에 맞을 뻔했다.
“콜록콜록! 에, 에취! 우리도 데모해야 해요.”
삼촌은 시위대를 지휘하느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오빠도 못 알아볼 뻔했다. 우리가 고집을 부리자, 삼촌이 확성기를 오빠한테 맡기고 우리를 군중 밖으로 끌고 나갔다.
“녀석들, 큰일 나겠네. 너희들의 마음은 알겠는데, 이만하면 됐으니 이제 집에 가라.”
“싫어. 나 수첩에 다 적어야 한단 말이야.”
나는 삼촌에게 잡힌 손을 빼냈다.
“정혜야, 삼촌이 나중에 다 말해 줄게. 지금은 위험하니 그만하고 들어가라.”
펑펑펑!
그때 최루탄 불꽃이 4월의 하늘에 팝콘처럼 튀었다. 나와 호성이는 삼촌 손에 이끌려 군중 밖으로 나왔다
“헉헉!”
“참, 삼촌! 재열이를 덕수궁 시위 현장에서 만났는데 여기로 오면서 헤어지고 말았어요. 어떡해? 재열이를 찾아야 하는데요.”
“그게 무슨 말이야? 할머니 댁에 왔다던 그 꼬마 말이니? 그럼, 그 애가 저 인파 속에 있단 말이야? 그 어린아이가? 큰일 났네.”
삼촌은 우리를 호랑이 아주머니 집 대문 앞까지 데리고 와서 대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우당탕!”
“아이고 이게 무슨 소리고?”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뛰쳐나오며 말했다.
“아주머니 이 아이들 꼼짝 못 하게 해주세요.”
“내가 못 가게 일렀는데도 가더니, 그 꼴이 뭬야? 왜 너 둘 뿐이고? 영철이는?”
“삼촌, 영철 오빠도 없어졌어,”
영철 오빠는 오는 도중 군중에 휩싸여 헤어진 것 같았다.
“너희들 꼼짝하지 말고 아주머니 댁에 가만히 있어. 알았지?”
하늘에는 번쩍번쩍 빛이 퍼졌다가 깜깜해 지기를 반복했다. 이것이 다 대통령 할아버지가 저지른 짓이라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었다.
‘집에 가면 당장 내 비밀 상자에서 사진을 빼 버릴 거야.’
눈 깜짝할 사이 삼촌은 영철 오빠와 재열이를 찾아온다며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8. 텔레비전 속의 거짓 평화
아주머니가 켜 놓은 텔레비전에는 교복을 입은 대학생들이 화면에 꽉 찼다.
“대학생들이 엄청 많이 모였다.”
“응, 진짜 많다! 텔레비전으로 보니까 더 많은 것 같다. 그치?”
텔레비전 화면이 꼭 개미 떼가 바글거리는 것 같았다.
“너희들 저녁도 안 먹었갓지. 배고프갓어. 이거 먹어라. 장사하고 남은 기라. 호성이는 입맛에 안 맞겠지만 배고프면 뭐든 맛있지 안 갓어. 싸게 먹고 집에 가 봐라. 어머니 아버지야 아직 점포에서 안 왔겠지마는 할머니는 걱정하갓어야.”
호랑이 아주머니가 김밥하고 어묵 국물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정혜 넌 배 안 고파?”
“배고프긴 한데, 영철 오빠하고 재열이 걱정이 돼서 못 먹겠어.”
그때 텔레비전에서 아나운서가 말했다.
-서울대 학도호국단이 주축이 되어 문리대를 중심으로 천여 명의 학생들이 의기투합하여 부정투표 규탄 회의에 돌입했습니다.-
“호성아! 우리 삼촌 학교다. 저기 삼촌도 있겠네. 참, 삼촌은 영철 오빠와 재열이 찾으러 갔지.”
“저건 아침에 했던 것을 찍어 두었다가 방송국에서 다시 하는 거야. 그러니까 삼촌이 저기 있을 수 있어.”
“어떻게 그래? 지금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잖아.”
“글쎄! 나도 잘 모르긴 하지만 그런 기술이 있나 봐.”
“그나저나 삼촌 여태 안 와. 오빠와 재열이 아직 못 찾았으면 어떡해?”
우리는 걱정되어 배가 고픈데도 김밥을 먹을 수 없었다.
“삼촌은 형과 재열이 찾을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맞아. 그렇지? 걱정 말고 우리 김밥이나 먹자. 되게 맛있을 것 같아.”
“먹자!”
우리는 김밥을 입에 넣어 씹지도 않고 허겁지겁 먹었다. 점심도 먹지 않아 배가 몹시 고팠다. 텔레비전에서는 평화 행진을 하는 학생들이 길을 따라 물결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은 소리도 없이 텔레비전 속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호성아, 저건 시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시가행진하는 건데?”
“좋은 것만 내보내는 거야. 평화 행진처럼 보이게 하는 거지. 거짓 평화!”
“어째 그럴 수 있어?”
“그것도 기술이겠지.”
호성이는 남자라서 보는 게 달랐다. 나는 김밥 먹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텔레비전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니들 배 안 고픈 갑다. 하기사 세상이 요지경인데 니들이라고 밥맛이 나갓어? 그만 보고 밥 먹어라. 정혜야, 너무 가까이 가지마라 눈 다 베리갓어야.”
“아들은 보면 안 되갓어.”
“더 보고 싶어요. 평화 행진인데 뭐 어때요?”
“다 조작 아이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들은 몰라도 돼야. 김밥이나 먹거라.”
우당탕!
그때 대문이 거세게 열리면서 삼촌이 들어왔다.
“삼촌!”
나와 호성이는 맨발로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아이고 선생님, 왜 이제 오시오? 아들은 어짜고 혼자 왔시오?”
“아이들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삼촌 머리는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교복은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삼촌을 보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삼촌, 영철 오빠와 재열이 어떡해요?”
“호성아, 니는 내캉 영철이 집하고 재열이 할머니 댁에 가보자. 혹시 아이들이 집에 왔는지.”
“제가 가보겠습니다.”
“선생님은 이것 먹으면서 좀 쉬시라요. 그러다 선생님이 죽갓시오. 호성이는 따라 오거라.”
“혜숙이는 아직 안 왔습니까?”
“이 에미나이도 데모하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는구만요.”
아주머니는 김밥과 어묵 국물을 삼촌 앞에 두며 신발을 끌고 대문을 나서며 말했다. 호성이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주머니를 따라나섰다.
삼촌은 혼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젓가락을 삼촌 손에 쥐어 주며 말했다.
“삼촌, 배고프겠다. 김밥 먹어. 되게 맛있어요.”
“으응!”
삼촌은 김밥을 먹지 않았다.
“삼촌, 어서 먹어. 배 안 고파요?”
삼촌은 한 달 사이 완전히 뼈만 남아 있었다. 나는 진짜 대통령 할아버지가 이 모든 걸 시킨 건지 그게 더 궁금했다.
“삼촌! 대통령 할아버지가 독재해서 정말 국민들을 못 살게 하는 거예요? 나는 이해가 안 가요. 내가 본 대통령 할아버지는 엄청나게 인자해 보였거든요.”
“그래, 니가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시위대는 세종로와 태평로 일대를 거쳐 평화 행진을 했어. 그 평화 행진하는 장면만 텔레비전에서 보았지? 그 평화 행진 도중 깡패집단 폭력배로부터 학생들이 피습되었거든. 그건 텔레비전에 안 나왔지.”
“어째 그럴 수 있어? 호성이도 아주머니도 그리 말했는데. 그리고는? 궁금하다 빨리 더 말해 줘요.”
“예지동 백화점 앞에서 백여 명의 폭력배들이 벽돌과 부삽, 몽둥이, 쇠망치, 갈고리들을 들고 선두 학생들을 마구 난타했어. 수많은 학생이 현장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으아! 끔찍하다. 그것도 대통령 할아버지가 다 시켰다는 거야? 믿을 수가 없어요.”
“평화 행진 뒤 안 보이게 커튼을 친 게 문제지. 국민들은 그걸 모르거든. 속은 거지.”
삼촌은 쓴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삼촌은 알 수 없는 말만 했다.
“그 깡패 사건으로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더 거세졌단다.”
“그러면 텔레비전 속 평화 행진이 거짓 평화란 말이에요?”
“그래서 아주머니들은 아기를 업고 치마에 돌까지 싸서 나와서 도왔단다.”
-내 아이들에게 자유민주주의 나라에서 살게 하고 싶다-
라고 외치면서 말이야. 그래서 삼촌도 구호 문을 만들었지.”
“뭐라고 만들었는데요?”
<데모가 이적이냐, 폭정이 이적이다!>
<1인 독재 물러가라!>
주로 이러한 문구였지.”
그리고 삼촌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삼촌! 그래서요?”
삼촌이 반응이 없었다.
“삼촌!”
나는 삼촌 팔을 잡고 흔들었다. 삼촌은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삼촌, 삼촌!”
“어, 어엉?”
삼촌은 앉은 상태로 잠이 들었다. 나는 대청마루 구석에 있는 목침을 삼촌 머릿밑에 넣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앉은 채로 잠이 들었을까?
펑펑펑!
최루탄 쏘는 소리에 삼촌이 눈을 떴다.
“삼촌, 엄청 피곤한가 봐! 코를 얼마나 골던지.”
“내가? 나 안 잤는데. 생각 좀 하느라 눈만 감고 있었지.”
“어? 삼촌도 거짓말할 줄 알아요?”
“내가 그랬나? 그나저나 아주머니는 오셨어? 영철이와 재열이는?”
삼촌은 대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했다.
“아니, 아직 안 오셨어.”
“어찌 된 거야? 내가 가 봐야겠다.”
“삼촌 쓰러지겠어요. 아주머니 오실 때까지라도 좀 쉬어. 나도 걱정 돼 죽겠어요. 참, 아까 하던 이야기 더 해줘요.”
“그만하자.”
“안 돼! 난 알아야 해. 삼촌이 해 준 이야기 여기 적혀 있거든요.”
나는 수첩을 꺼내 흔들며 말했다.
“그럼 내게 인터뷰하는 건가?”
“그렇다고 생각하고 말해줘요. 네?”
“음-! 뭐부터 하지. 그래, 그게 좋겠다. 어쩜 삼촌을 다시는 더 못 볼 뻔했던 사건이니까.”
“정말요? 그럼 죽을 뻔했다는 거야?”
“그래. 내가 며칠 전에 경찰한테 쫓겼거든.”
“그래서 잡혔어요?”
“경찰이 곤봉을 내려치기에 무조건 뛰었지. 그들은 삼촌을 체포하는 것이 목적인 듯 악착같이 쫓아오더라.”
삼촌 얼굴이 신문에 몇 번 나오다 보니 그들이 삼촌 얼굴을 기억했단다.
“거기 서지 못해! 너 이성수인 것 우리가 다 안다. 좋게 말할 때 서라!”
나는 무릎을 끌고 바짝 삼촌 앞으로 다가앉았다.
“우리는 ‘뭉쳐야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것을 구호로 내걸고 전국 학생이 모인 거거든.”
삼촌은 집단에서 이탈하는 바람에 경찰들에 쫓기게 되었다고 했다. 두 명의 경찰이 삼촌을 쫓아와서 막다른 골목에 갇히게 되었다고 했다. 정말 잡히면 그 자리에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어떡해? 안 잡혔어요?”
삼촌은 그 두 경찰과 대항해서 싸우기로 결심했단다. 그리고 태권도로 돌려차기로 한 경찰을 쓰러뜨리고. 한 경찰은 어깨에 메고 던졌다고 했다.
“아고고, 이 새끼 태권도까지. 두고 보자 이성수!”
“저 새끼 신출귀몰한 귀신 아니야? 이성수! 너 나중에 잡히면 정말 죽는다!”
“나중에 두고 보자는 사람 하나도 안 무섭더라.”
삼촌은 손을 탈탈 털고 경찰들 뒤에다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와, 통쾌하다.”
“그 경찰들은 한마디씩 하고 줄행랑을 쳤지.”
“근데 삼촌 정말 태권도 잘해요? 뻥이죠?”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너, 삼촌이 태권도 검은 띠 유단자인 거 몰랐지?”
나는 믿기지 않았지만, 삼촌은 뭐든 잘하니까 믿었다.
“정말이야? 그래서 안 잡혔어?”
“안 잡혔으니까, 삼촌이 여기 있지.”
“와, 우리 삼촌 최고다.”
나는 삼촌을 다시는 못 볼 뻔했다는 생각이 들자, 울음이 터졌다.
“엉엉! 삼촌, 죽지 마. 위험하니까 데모도 하지 마요!”
삼촌이 등을 토닥여 주었다.
“대통령 할아버지가 그것도 시킨 거야?”
“그렇다고 봐야지. 데모하는 학생, 시민들 다 잡아들이라고 했으니까.”
“대통령 정말 나쁜 사람이다. 내 비밀 상자에서 그 사진 당장 빼버릴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있어요.”
‘너희들은 똑바로 된 민주주의 나라에서 살아야 할 건데….’
삼촌이 중얼거리다가 말했다.
“아주머니는 왜 여태 안 오시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아주머니가 급하게 대문을 들어섰다. 호성이도 뒤따라 들어왔다.
“선생님! 아이들이 집에 안 왓시오.”
“예? 정말입니까?”
삼촌은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섰다.
“저 다시 나가 찾아보겠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자유당 승리와 거짓 평화 행진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삼촌은 벌써 대문을 나서고 있었다.
9. 최연소 희생자
“삼촌, 우리도 따라가요.”
나도 호성이도 따라나서며 소리쳤다.
“너희들은 집에 있어. 위험해!”
우리는 삼촌 말을 무시하고 바짝 따라붙었다.
“이 많은 사람 속에서 어떻게 찾지? 영철 오빠와 재열이에게 아무 일 없겠지? 호성아!”
“영철 형은 괜찮을 거야. 형은 영리하잖아. 여기 지역도 잘 모르는 재열이가 걱정된다.”
“응, 맞아. 나도 재열이가 더 걱정이야.”
나는 뛰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영철 오빠와 재열이를 지켜주세요. 제발!’
이럴 줄 알았으면 어머니 따라 성당에 열심히 갈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철 오빠, 미안해. 내가 데모 가자고 해서 그래. 흑흑!’
나는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구름떼처럼 데모대 대학생과 일반 시민들이 덕수궁 쪽으로 건너왔다. 그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서 날카로운 비명도 터져 나왔다. 시위대는 더 격렬했다.
“부정 선거 타도하자!”
앞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깡패집단이 소리쳤다.
“기자다. 저놈을 잡아라. 카메라도 빼앗아라!”
“아악!”
깡패집단이 각목으로 그 기자 머리를 내리쳤다. 학생들이 달려와서 앞을 가로막섰다. 그 기자는 쓰러지면서도 카메라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었다. 그 기자 뒤에서 괴한이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어서 피해요!”
내가 소리를 지르자,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그 기자가 잽싸게 뒤돌아서서 사진을 찍었다. 괴한이 군중 속으로 몸을 숨겼다.
“살인 정치를 멈추어라!”
시위대에서 구호를 외치자. 모두 따라 외쳤다.
“영철아! 재열아!”
삼촌이 영철 오빠와 재열이를 부르며 앞으로 나갔다. 나와 호성이는 군중에 떠밀려갔다.
“헉헉! 삼촌!”
사람이 너무 많아 도저히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총소리가 바로 앞에서도 났다.
“엎드려!”
삼촌이 소리쳤다. 호성이와 나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잠시 조용해졌다.
“삼촌, 덕수궁 맨 끝 골목으로 가 봐요. 우리 제2 아지트예요. 형과 재열이가 거기 있을지도 몰라요. 아까 영철 형이 재열이한테 말해 주었어요.”
맞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지. 삼촌과 우리는 덕수궁 끝 골목을 향해 뛰었다. 달려가는 우리의 등 뒤에서 총소리가 계속 났다. 담벼락 앞에 웅크리고 있는 희미한 그림자가 보였다.
“삼촌, 영철이 형과 재열이에요.”
“영철 오빠, 재열아!”
영철 오빠가 재열이를 꼭 안고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둘은 사시나무 떨듯이 덜덜 떨고 있었다. 우리는 달려가서 영철 오빠와 재열이를 와락 안았다.
“집에 안 오고 왜 여기 있었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삼촌이 물었다.
“영철이는 우리 따라오다 왜 뒤떨어졌어?”
“군중에 휩쓸려 삼촌을 놓쳤어요. 그때 재열이 생각이 났어요. 제가 우리 아지트를 가르쳐 주었거든요. 아지트에 왔더니 정말 재열이가 있는 거예요.”
“그럼 얼른 집으로 와야지.”
“군인들이 총을 쏴서 무서워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요 앞에서 사람이 총에 맞아 죽었어요. 우리 눈으로 봤어요.”
“무서웠겠구나. 이제 괜찮아. 집에 가자.”
삼촌이 재열이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때 총알이 날아왔다.
피웅 피웅!
“엎드려!”
우리 모두 땅에 바짝 엎드렸다. 잠시 후 조용해졌다. 우리는 머리를 들고 일어섰다. 삼촌이 엎드려 있는 재열이를 일으켰다.
“자, 재열아 일어서라. 그만 집에 가….”
삼촌이 말을 멈췄다.
“재, 재열아!”
삼촌이 재열이를 흔들었다. 재열이는 엎드린 채 꼼짝하지 않았다.
“재열아!”
나와 호성이, 영철 오빠도 재열이를 부르며 흔들었다. 재열이 몸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아, 아파!”
“재열아, 비켜요 비켜! 아이가 다쳤어요. 아이가 총에 맞았다고요.”
삼촌은 재열이를 안고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우리도 뒤따라 뛰었다.
“그만 쏴! 아이가 총에 맞았단 말이야!”
삼촌은 재열이를 안고 뛰면서 그들을 향해 소리소리 질렀다.
“아!”
재열이 입에서 고통스러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재열아! 눈 떠 봐!”
“너희들, 얼른 구급차를 불러 와! 빨리!”
“아, 알았어요! 삼촌! 재열아, 제발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영철 오빠와 호성이가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정신 차려! 눈을 떠! 눈을 떠야 해!”
삼촌은 재열이의 가슴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막았다. 아스팔트 바닥으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재열아, 눈떠 봐! 얼른 눈뜨란 말이야! 으앙! 우리 동네로 이사 온다고 했잖아. 우리 단짝에 끼워 줄 건데.”
군중들은 물밀듯이 밀려왔다. 탱크를 탄 군인들이 군중들을 향해 대사 포를 쐈다.
“애애애앵!”
구급차가 저만치서 왔다. 삼촌은 재열이를 안고 구급차를 향해 뛰었다. 재열이 두 팔이 아래로 축 처졌다.
삼촌 앞에 구급차가 멈춰 섰다.
“아, 아이가 다쳤어요. 어서 빨리요!”
구급대원이 재열이에게 인공호흡을 했다. 출혈이 너무 심해 재열이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엄, 엄마….”
“재열아. 정신 차려!”
재열이는 잠깐 눈을 떴다.
“재열아, 삼촌이야. 우리가 보여?”
재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파 고통스러우면서도 우리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 인공호흡을 하던 구급대원이 손을 멈추었다. 삼촌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재열이는 한 번 뜬 눈을 감지 않았다.
“흑흑! 삼촌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삼촌이 너희가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데 죽으면 어떡해. 제발 죽지 마!”
성수 삼촌은 재열이를 안고 울부짖다가 손으로 재열이 눈을 감겨 주었다. 맑던 하늘이 갑자기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최루탄 불꽃만이 소리도 죽이고 하늘에서 번쩍거렸다. 모든 것이 중력을 잃은 것처럼 공중을 느리게 느리게 떠 다녔다.
삼촌은 재열이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며 말했다.
“할머니한테 알려라. 사랑병원으로 오시라고.”
영철 오빠가 재열이 회중시계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회중시계를 보자 지난번 할아버지 제사에 와서 재열이가 웃으며 하던 말이 생각났다.
‘이건 내 수호신이야. 이게 나를 지켜 줄 거거든.’
할머니는 재열이에게 그 시계가 멈추지 않게 밥을 잘 주라고 했단다.
‘할머니, 시계가 밥을 먹어?’
‘그 밥이 아니고, 여기를 돌리면 돼야. 태엽을 감는 거야. 야는 밥을 너무 많이 주면 배가 터지니께 적당히 주어야 혀.’
재열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할머니가 할아버지 회중시계를 주며 말했다고 해서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재열이의 시계는 정말 정확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이 시계를 나에게 주며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시계처럼 정직하게 살아라.’라고 하셨어. 그래서 나는 착한 사람이 될 거야.’
4월의 맑은 하늘에 재열이의 해맑은 얼굴이 둥둥 떠다녔다. 하늘에는 구름이 걷히고 맑았다. 그 무서운 일이 일어난 것을 외면이라도 하듯이.
구급차는 우리 셋을 덩그러니 남겨두고 ‘애애앵!’ 소리를 내며 부리나케 달려갔다. 우리는 멍하니 사라져 가는 구급차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길바닥에 재열이 책 보따리가 뒹굴고 있었다. 나는 책 보따리를 가슴에 안았다. 발길에 또 무언가 밟혔다. 삼촌 학교 로고가 새겨진 모자였다. 삼촌과 시위대가 목이 터지라 외치는 민주주의가 짓밟힌 것처럼 모자가 짓이겨져 있었다. 삼촌 모자도 주워 가슴에 안았다. 삼촌이 만년필을 주며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정혜 너 그거 알아?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것 말이야.’
10. 우리는 동지다!
재열이를 잃고 나와 삼촌은 물론이고, 골목 식구들은 넋이 나가 있었다.
“내 새끼 살려 내라! 재열아! 내 강아지! 니가 어디갔노?”
재열 할머니의 울부짖는 슬픈 소리가 골목에 애잔하게 깔렸다. 강아지조차도 숨을 죽이는지 짓지 않았다. 데모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어느 일요일 날, 집에 있던 삼촌이 말했다.
“정혜야, 작은아버지 댁에 갈 건데 함께 가지 않을래?”
“응, 따라갈게요.”
“정우이도 갈래?”
“밀린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삼촌!”
작은아버지는 삼촌 학교 교수님이다. 모처럼 작은아버지를 뵙기 위해 따라나섰다. 길거리는 전쟁이 났던 것처럼 어수선했다. 사방에는 호외로 날린 신문 조각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날려 다녔다. 덕수궁 담벼락에는 봄꽃들이 잎을 떨구고 있었다. 길거리에 하얀 목련꽃 봉오리가 똑똑 떨어져 사람들의 발걸음에 밟혀 짓이겨져 있었다. 재열이가 짓밟힌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떨어진 꽃잎들로 인해 거리 분위기가 더 어수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 그런 난리가 났는지, 그곳에서 재열이가 죽었는지, 봄꽃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피고 질 뿐이다. 봄꽃들은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일들을 충실히 한 셈이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섯 정거장 가서 내렸다. 작은아버지 댁에 도착할 때까지 삼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삼촌이 조심스럽게 벨을 눌렸다.
“누구요?”
대문 안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형, 성수에요.”
덜컹
대문이 열리고 작은아버지가 나오셨다.
“안녕하세요? 작은아버지!”
“정혜도 왔구나? 정우이는 잘 있고?”
“네, 오빠도 데모하느라 바빴는데, 오늘은 집에 있어요. 함께 오려고 했는데 그동안 밀린 공부를 해야 한대요.”
삼촌의 몰골을 보고 작은아버지는 많이 놀랐다. 삼촌은 아버지 삼 형제 중에 늦둥이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것이 작은아버지 눈에 보였다.
“그래, 살아 돌아왔구나.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이렇게 살아 돌아와 주어 정말 기쁘다. 희생된 친구들한테는 가히 미안하구나.”
작은아버지는 삼촌을 다친 곳이라도 있을까 봐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삼촌은 작은아버지의 위로에 그동안 고생한 것이 눈 녹듯이 녹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였다.
“이 나라가 어찌 되려고.”
그런 동생을 작은아버지는 말없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삼촌의 울음이 잦아들자, 작은아버지가 말했다.
“너희들이 이리 고생하는데, 너희들 뜻이 관철되어 똑바로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아야 할 건데 걱정이구나.”
“네, 저희도 그것이 걱정됩니다. 만약 저희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희생된 친구들과 어린 희생자들이 억울해서 어찌합니까? 그 어린 재열이는… 흐흑!”
삼촌은 말을 잇지 못했다.
“성수야! 너희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될지 모르겠구나. 우리가 너희들하고 뜻을 같이하기로 결의했단다.”
“정말입니까?”
교수들이 동참한다는 말에 삼촌은 기뻐했다. 작은아버지는 늘 삼촌의 든든한 구원자였다. 작은아버지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말했다.
“자, 우리는 동지다!”
두 사람은 손을 높이 들어 주먹을 마주쳤다.
“작은아버지 저도요. 저도 동지예요. 우리도 동지였는데….”
나는 재열이 생각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작은아버지가 의아해했다. 삼촌이 골목 친구들 이야기를 설명했다.
“친구를 잃었으니, 정혜가 마음이 많이 아프겠구나.”
작은아버지가 내 어깨를 가만히 안아주며 말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독재를 막아야 해. 사태가 이렇게 된 이상 확고한 민주주의를 쟁취해야겠기에 교수들이 동참하는 게야.”
작은아버지의 그 말에 삼촌은 힘이 나는 듯 모처럼 웃었다.
“민주주의를 쟁취하는데 교수, 학생, 노동자가 따로 있을 수 없지. 모두가 다 갈망하는 것 아닌가.”
“날짜가 언제예요? 저희도 준비할게요.”
“아직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조심해라.”
“알았어요. 형!”
“성수야, 교수들은 연세가 높은 분들이 많고, 또 숫자로도 부족할 것 같으니 될수록 많은 수의 학생이 참여해 주길 바란다.”
“염려하지 마세요. 우리가 최대한 교수님들을 호위할게요. 한 분도 희생자가 나오면 안 되기 때문이에요.”
4월 25일, 교수들이 시국 선언을 하고 동참하기로 한 날, 4백여 교수들은 <4·19혁명으로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평화적인 시가행진을 감행했다. 나도 그날 영철 오빠와 호성이, 근우, 효정이와 함께 교수들 결의 현장에 갔다.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우리는 김주열 소년의 죽음을 그냥 묵과할 수 없다. 소년의 죽음을 밝혀내지 못하면 영원히 자유 민주주의는 없다. 소년의 죽음을 밝혀내자!”
교수들이 혁명에 참여하는 날, 군중들의 수가 엄청 많았다. 교수들이 거리로 나오자, 신문팔이, 구두 닦기, 넝마주이까지 모든 시민이 또 한 번 합세했다.
군중들은 군인들이 끌고 나온 탱크를 탈취해 올라타기도 했다. 계엄군은 고령의 교수들이 다칠까 과격한 진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작은아버지가 대학생들을 지휘하는 삼촌에게 말했다.
“혹시 일부 과격한 학생들과 시민들과 계엄군 사이에 우발적인 충돌이라도 일어난다면 큰일이다. 어렵겠지만, 시민들은 해산시키면 어떨까?”
작은아버지는 그 말을 삼촌한테 하면서 두려움에 눈빛이 흔들렸다.
“그건 불가능해요. 이미 시민연대는 각오하고 모였으니까요. 여태 그들은 지식층들의 호응 없이 외롭게 싸웠다는 것을 형은 알고 있잖아요.”
“나는 괜찮아. 노교수님들이 다칠까 봐 그러는 거야.”
삼촌은 작은아버지를 항해 불만을 쏟아냈다. 삼촌이 작은아버지께 대드는 것을 처음 보았다. 삼촌은 동료 학생들과 재열이까지 희생된 데 대한 분노인 것 같았다.
“죄송해요. 형!”
“몰골이 말이 아니구나. 내 생각이 짧았구나. 자, 가자. 횃불을 들었으니, 끝까지 한번 해 보자.”
“자유의 횃불을 높이 들자!”
작은아버지의 선창으로 교수들은 묵직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이 대통령은 하야하라!”
“이승만은 물러가라”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
교수, 학생 시민연대는 자유의 횃불을 높이 들었다.
이승만 정부는 무너질 위기를 맞고 있었다. 학생들을 중심으로 교수들까지 시위가 확산되자 교수 대표와 학생의장이 대통령을 찾아가 하야할 것을 설득했단다. 그러자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더 젊었던 시절의 나는 우리 국민들을 잘 이해하고 있었소. 난 지금도 내가 그들의 동지라고 생각하고 있소.”
대통령이 우리의 동지?
‘동지가 같은 동지를 그렇게나 많이 죽였단 말이야?’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 거짓말! 내 친구가 죽었다고요! 내 친구는 이제 겨우 열 살이란 말이에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악을 쓰며 소리 질렀다. 재열이의 죽음이 헛될까 봐 두려웠다. 재열이가 보고 싶었다.
“호외요! 호외!”
그날 오후, 신문팔이 소년은 공중으로 호외를 날렸다. 나는 바람에 날려가는 신문을 한 장 주워 펼쳤다. 1면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실렸다.
—노교수들이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자 거리로 나섰다.—
11. 4⦁19 그날, 우리는 알아요!
4월 26일, 사랑국민학교 학생들이 덕수궁 앞에서 데모를 하기로 했다. 우리 학교 6학년 전한승 오빠의 죽음이 아이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희생 된 어린이 모두를 위한 것이다.
전날 밤, 우리 단짝들은 아래채 삼촌 방에 모였다. 내일 있을 시위에 사용할 플래카드 구호 문을 직접 손으로 쓰고. 다섯 어린이 얼굴을 천에다 그리기로 했다. 우리 오빠가 도와주었다.
“엄마, 하얀 천 있으면 좀 주세요?”
“장한 일을 하는구나.”
엄마는 플래카드 만들 천과 희생된 아이들 얼굴을 그릴 천을 주었다. 오빠는 천을 용도에 맞게 자로 재서 잘라주었고, 플래카드 큰 글씨는 오빠가 붓으로 써 주었다. 재열이 얼굴은 내가 직접 그렸다. 나는 재열이의 해맑은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천에 그린 얼굴 군데군데는 내 눈물자국이 번졌다.
“재열이 얼굴 잘 그렸네. 우리랑 맨날 함께 놀 텐데….”
영철 오빠가 내가 그린 재열이 얼굴을 보고 말했다.
“맞아. 재열이는 나쁜 짓 한 것도 없는데, 총과 검 앞에 희생됐어.”
호성이도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우리 학교 전한승 오빠는 영철 오빠가 좋아하는 형이었다. 한승 오빠 얼굴은 영철 오빠가 직접 그렸다. 나는 그 오빠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호성이는 학교에서 받아 온 사진을 보고 나머지 어린이를 그렸다. 그중 텔레비전에서 아주머니가 딸을 찾아달라고 호소하던 진양이라는 그 언니도 있었다. 나는 그 아주머니 생각이 나서 울컥했다. 단발머리에 하얀 중학생 교복을 입은 그 언니가 예뻤다.
“호성아, 이 언니 내가 그릴 게.”
왠지 그 언니를 내가 그려야 할 것 같았다. 호성이와 영철 오빠는 태극기도 몇 장 그렸다.
플래카드 문구는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
<어린이가 죽었다. 살려내라!> 등 몇 가지를 만들었다.
“이제 준비가 다 됐다.”
“수고 했다. 너희들 솜씨 좋다.”
오빠가 우리를 칭찬했다.
“오빠가 도와 줘서 빨리 끝냈어. 고마워 오빠.”
영철 오빠는 우리가 그린 얼굴 사진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있으면 모두 울 것 같았다.
“와! 한승이 오빠 참 잘생겼네. 아쉽다. 내가 보지 못해서…으앙!”
나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가 간식을 들고 와서 내가 그려 놓은 재열이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렇게 밝고 착한 아이를….”
엄마도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내일 아침 우리는 공터에서 만나 덕수궁 쪽 학교 시위대에 합류하기로 했다.
“참, 어른들한테는 비밀이다.”
“응, 알았어. 오빠.”
영철 오빠가 밤에 집에 갈 때 말했다.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하고.”
다음날, 어머니한테 인사를 하고 공터로 갔다. 영철 오빠와 호성이가 먼저 나와 있었다.
“호성아, 엄마한테 우리 데모하러 간다고 말했어?”
“아니!”
재열이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 있는 골목 어른들께 말하면 모두 앞장설 것이 분명했다. 재열이가 죽은 후 재열이 할머니는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가 데모에 나간다면 쓰러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골목 어른들한테는 비밀로 하자고 약속했던 것이다. 우리 엄마만 알고 있었다.
“자. 가자! 손 꼭 잡아.”
나는 영철 오빠와 호성이 손을 꼭 잡고 덕수궁을 향했다. 선생님들과 삼촌 그리고 우리 오빠도 앞장서 있었다.
모두 ‘어린이를 살려내라.’라는 머리띠를 이마에 두르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 삼삼오오 어린이들이 몰려왔다. 세종로와 경무대 앞쪽까지 사람들이 줄지어 빽빽이 모여 있었다.
국민학생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어른들도 대로를 가득 메우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군인과 경찰들은 총을 들고 아이들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근우와 효정이도 헐레벌떡 뛰어왔다. 어린이들 모두 손을 맞잡고 인간 띠를 만들었다. 백여 명의 어린이들 손에는 삐뚤빼뚤 직접 쓴 피켓이 들렸다. 근우와 효정이도 피켓을 만들어왔다.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
<어린이가 죽었다. 살려내라!>
플래카드를 보고 모두 구호를 외쳤다. 우리는 어젯밤에 그린 재열이 얼굴과 희생된 어린이가 그려진 천을 막대기에 달아 높이 들어 올렸다.
“내 동무를 살려내라!”
어린이 사진을 높이 들어 구호를 외치자, 시위대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와와
“우리가 너희를 보호할 거다. 겁먹지 마라.”
어린이 시위대를 삼촌이 이끄는 대학생들이 보호하느라 에워쌌다.
“우리 동무들을 살려 내라!”
“한승이를 살려내라!”
“재열이를 살려내라!”
아이들이 흥분해서 큰소리를 질렀다. 여학생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하늘로 울려 퍼졌다.
“재열아! 이 삼촌이 꼭 너희의 억울한 죽음을 위해 싸울게!”
삼촌이 이끄는 대학생 시위대가 아이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천천히 움직였다. 앞줄에는 영철 오빠 담임 선생님도 있었다.
“선생님!”
“오냐, 우리 함께하자. 희생된 우리 학교 어린이 한승군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재열군은 너희가 알고 지내는 동생이라고 했지?”
내 손에 들려 있는 재열이 얼굴을 보고 말했다.
“그 아이구나?”
나는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내 친구와 우리 언니 오빠들을 살려 내라!”
아이들 틈에서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어? 우리 담임 선생님과 철민이야!”
열렬한 자유당 지지자였던 선생님과 철민이가 뜻밖이었다. 호성이와 근우, 효정이와 함께 우리 선생님 곁으로 갔다.
“선생님! 철민아!”
“내가 너희들에게 부끄럽다. 너희들보다 앞을 보는 눈이 어두웠구나.”
“아니에요, 선생님! 선생님께서 함께해서 기뻐요.”
내가 말하자 철민이가 어색하게 서 있었다.
영철 오빠와 호성이가 철민이 두 손을 잡았다. 철민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였다.
“말하지 않아도 우린 알아. 너도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함께 쟁취하자!”
영철이 오빠가 철민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영철이 형, 그리고 정혜야, 호성아 미안해! 용서해 줘! 내가 너무 몰랐어.”
“짜사, 네가 여기 나온 것만으로도 됐어!”
영철이 오빠가 철민이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철민이가 눈물을 훔치며 멋쩍은 듯 구호를 외쳤다.
“우리 동무를 살려내라! 한승이 형을 살려내라!”
어린이 시위대가 전진하자 경찰과 군인들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어린이 시위대를 에워쌌다. 오후까지 행진이 계속되었다. 아이들의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위험하니 너희들은 인제 그만 집으로 가거라. 민주주의는 삼촌이 어른들과 함께 바로 잡으마.”
“우리는 분명히 그날을 기억하고 있어요.”
나도 삼촌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 눈에서 민주주의가 바로 서는 게 보여. 그래, 해 보자, 끝까지! 너희가 이 삼촌에게 힘을 실어 주는구나.”
철민이가 피켓을 들고 맨 앞장서서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4월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아이들의 함성은 하늘 높이 올라갔다.
최루탄이 시위대를 향해 발사되었다. 아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콜록콜록!”
그때 확성기를 통해서 낭랑하고 슬픔에 젖은 목소리로 동시가 낭송되었다.
우리는 알아요
아…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 오며는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놀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놀은
오빠와 언니들의 피로 물들었어요
오빠와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 먹고
저녁도 안 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 말 안 해도
오빠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강명희의 동시<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일부
“흑흑!”
동시 낭송이 끝나자, 시위 현장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잠시 총소리도 멈추었다.
“우리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마세요!”
“살려내라 내 새끼! 생때같은 내 강아지 살려내라!”
재열이 할머니가 피켓을 높이 들고 앞장서서 구호를 외쳤다. 골목 어른들이 모두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리어카에는 주먹밥과 물이 가득 실려 있었다. 며칠째 먹지도 못하고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 데모대와 어린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자, 이것 먹고 힘내서 큰 소리로 외치라요.”
호랑이 아주머니가 주먹밥을 나눠 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대학생들이 물과 주먹밥을 받아 가며 인사를 했다.
“내가 정말 바보였다. 밀가루 몇 포대와 내 새끼와 바꾸다니!”
재열이 할머니가 울부짖으며 외쳤다.
총을 든 트럭들이 시위대 앞을 지나가며 공중을 향해 총을 쏘았다.
“얼른 피해요!”
“죽일 놈들! 어디다 총을 쏘냐? 죽여라, 나를 죽여라!”
재열이 할머니는 재열이가 활짝 웃는 사진을 들고 군인들 앞으로 나와 외쳤다. 재열이의 그 미소가 너무나 해맑아 눈물이 났다.
“빨리 피하세요. 할머니!”
삼촌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대학생 시위대를 이끌고 경무대 쪽으로 경찰들을 유인했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두 선생님을 따라 움직였다.
“아이고 아이고, 이놈들아, 내 손주를 살려내라.”
재열이 할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아 검정 고무신을 벗어 바닥을 두드리며 통곡했다. 그리고 검정 고무신을 군인들을 향해 던졌다.
저녁 라디오와 신문에서 어린이 시위대를 머리기사로 다루었다. 강명희의 동시 낭송도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왔다.
신문 앞면에는 고개 숙인 대통령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12. 지지 않는 꽃
“호외요, 호외!”
골목에서 신문 배달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나는 달려 나가 호외 신문을 주워 왔다.
“엄마, 대통령 얼굴이 신문에 크게 나왔어요.”
바느질하느라 바쁜 손을 움직이는 엄마 코앞에 신문을 내밀며 말했다. 온통 한문이라 더듬더듬 읽다가 엄마에게 읽어 달라고 했다.
“국민들의 외침이 자유민주주의를 승리로 이끌었구나.”
“정말? 그럼, 대통령 그만하는 거야?”
“그렇다는구나.”
“아호, 신난다.”
이날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순간이었다. ‘뭉치면 이기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삼촌 말이 맞았다. 언니 오빠들, 그리고 전 국민이 뭉쳐 민주주의를 다 함께 일궈낸 것이다. 재열이가 죽은 건 정말 속상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정혜, 또 그 아이 생각하는구나. 재열이도 이 소식을 알면 기뻐할 거야.”
“그렇겠죠? 엄마!”
라디오에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날아갈 듯이 흥분했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4일 유혈사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총재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엄마도 희생된 아이들이 불쌍하다며 바느질감을 손에서 내려놓고 연신 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나도 재열이의 해맑은 얼굴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쳐냈다.
속으로 재열이를 불러보았다. 그때 삼촌이 손에 신문을 들고 대문을 들어섰다.
“어?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하하! 삼촌은 이 기쁜 소식을 우리 골목 어르신들이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달려왔는데.”
나는 삼촌을 놀렸다. 모처럼 삼촌과 농담을 하며 장난을 쳤다. 삼촌은 승리하고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온 것처럼 호외 신문을 높이 치켜들고 함박웃음을 웃었다.
그때 삼촌과 방을 함께 쓰는 오빠가 미닫이를 밀고 나왔다.
그때 대통령 하야 연설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왁자지껄 아이들 소리에 눈을 떴다. 내가 재열이(임동성) 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내 몸이 스멀스멀 아지랑이처럼 허물 거리더니 그 정혜라는 아이 몸에서 스르르 빠져나왔다. 나는 거짓말 같은 현실 속에서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블랙홀 같은 곳으로 빠진 것 같았는데, 정혜는 왜 나를 4•19혁명 당시로 데려갔을까? 무슨 메시지를 주려는 것일까?’
재열이가 동생같이 정이 들었다. 총을 맞고 피범벅이 된 그 아이가 죽기 전 그 아픈 고통 속에서도 우리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나 생생한 장면이라 실제 같았다.
“오늘은 65년 전, 4•19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되찾은 날이에요. 4⦁19혁명으로 희생된 우리 학교 어린이 전한승군과 네 명의 어린이를 위해 묵념합니다.”
각 교실에서 묵념하는 게 스크린을 통해 화면으로 보였다.
마이크를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눈을 감았다. 65년 전 정혜라는 아이를 통해 경험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외치는 함성이 생생히 들렸다.
재열이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동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동시를 낭송하고 나는 울먹였다. 교장선생님이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민주주의란 이렇게 아프게 태어났단다. 우리가 그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잘 지키고 키우자꾸나. 우리가 지킨다면 그 꽃은 영원히 지지 않을 꽃이니까.”
65년 전 정혜 삼촌이 한 그 말이 방금 한 것 같이 생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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