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맑은 날씨였는데... 오후에는 흐리고 비가 올려고 하네요~
고난주간 주님의 사랑가운데 거하고, 부활주일 영광의 주님을 만나 뵐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7장 1절은 6장 14절의 명령을 재진술하면서 마무리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6:14)
이 명령은 예수를 믿는 자들(언약 백성)에게 적절한 거룩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적용은 ‘하나님과의 화목’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게 하는 것에서 피하는 것인데(앞의 내용들을 참고하면), 긍정적으로 바울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바울과 그의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다른 복음을 가진 바울의 대적자들)과 분리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2-3절에서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소속되었음이 입증된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내용상 6:11-13과 동일선상에서 회개에 반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스캇 하프만은 바울의 대적자들에 의해서 선동되었다가 회개하여 바울에게 마음을 열기로 한 자들에게 얘기하는 걸로 봅니다(2-16절). 바울은 이들에게 이제 자신들을 영접하라고 명령하는데(2절), 이는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고(3절), 바울은 영적인 자녀들로서 그들 안에서 갖는 확신과 자랑과 위로 때문에 그들을 사랑합니다(4절).
5-7절에서 바울은 고린도인들의 회개와 고린도인들로부터 디도가 받았던 위로를 통해서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 기쁨의 기원은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6:2; 사49:8). 즉 바울은 디도의 돌아옴과 고린도인들 사이에서의 변화의 배우에 계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8-13b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사실상 고린도인들 사이에서 열매를 맺었다는 말을 디도로부터 들었을 때 그의 기쁨이 어떻게 더욱 증가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가 고린도인들을 근심하게 한 줄을 알았습니다(8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쓴 것은 그것이 진정한 회개로 이끌 수 있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근심은 그 사람의 행위가 세상이 제공하는 것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오는 슬픔입니다. 세상적인 근심은 세상의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나쁜 감정을 낳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삶에서 오는 사망을 초래하게 만듭니다(9-10절).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되는 근심’(경건한 근심)이 고린도인들의 구원을 위한 회개를 가져오고 또한 그들을 새롭게 하는 ‘간절함’을 갖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결과에 대해 위로를 얻고 기뻐하고 있습니다(13b). 게다가 디도로 인해 바울의 기쁨은 배가되고 있습니다. 이 기쁨이 배가 된 것은 바울의 ‘눈물 어린 편지’를 디도가 고린도에 가져가기 전에 고린도인들에 대해 ‘디도 앞에서 한 자랑’이 있었는데 그것이 실제가 되었고(13b-14절), 또한 ‘두려움과 떨림’으로 고린도인들이 회개하고 디도를 영접하였기 때문입니다(15절). 이러한 고린도인들로 인해 바울은 기뻐하고 있습니다(16절).
8장에서 주제가 갑작스럽게 바뀌고 있습니다. 1-7장까지는 회개자들을 격려하고 자신의 사역과 메시지의 합법성과 관련하여 불순종하는 자들과의 논증이었다면 8-9장은 갑자기 고린도교회에게 예루살렘의 가난에 힘든 크리스찬들을 위한 헌금에 동참하는 일을 재개하도록 도전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8-9장은 바울의 ‘눈물 어린 편지’에 반응해서 그들이 보여주어야 하는 ‘순종’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7:16에서 바울의 확신은 이 헌금과 관련한 기대로 이끌고 있는듯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8:1-7절에서 고린도인들을 위한 모범으로 먼저, 마게도냐의 과거 경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게도냐인들은 극심한 곤란 가운데서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연보는 ‘전적으로 자원해서’ 하였고, 헌금에 참여하는 일에 간절하였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복음의 사역에 대한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1-4절). 그런 가운데서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헌금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을(그들의 삶)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께 주었고, 그리고 바울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5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마게도냐인들의 반응에 의해 고무된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너희’ 가운데 시작된 ‘은혜’의 행위를 위해 디도를 고린도로 돌려 보냅니다(6절). 즉 바울은 마게도냐인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하셨던 것을 고린도인들에게도 역시 행하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이 영적인 은사의 풍성함을 소유함이, 곧 그들의 영적 실체가 나눠줌으로써 나타나야 할 것을 상기시키고 있는 듯 합니다(7절).
8-10절에서 바울은 헌금하는 일을 완성해야 할 필요가 ‘그리스도로부터’의 직접적인 명령이 아니라 바울 자신의 ‘조언’이나 ‘명령’이라고 합니다(10:8; 13:10). 예수로부터 직접적인 명령을 받지는 않았지만, 마게도냐인들의 모범(1-7절)과 이제 예수의 모범을 갖고 헌금해야 할 필요성을 얘기합니다. 마게도냐인들에 대한 언급은 교회들 사이에서 경쟁을 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 그들의 형제와 자매들에게 합세하도록 대의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또한 참된 순종은 기쁨으로 주도된 의무의 행위어야 합니다. 명령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가장 커다란 방법은 해야 하는 것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권위에 자신을 내려놓고 기쁨으로 요구된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8:5, 11; 9:7). 이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마게도냐인들에 대해 말하고, 그다음에 예수에 대해서 말합니다. 예수의 ‘부요함’(천국에서의 그의 위치)과 ‘가난함’(육신을 입이신 것)에 대해서, 곧 예수의 사랑 안에서 표현된 ‘은혜’(성육신 사건)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곧 그리스도가 고린도인들을 위해 행하셨던 것을 고린도인들 또한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 위해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헌금을 내는 양보다 올바른 태도로 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그 사람의 변화된 마음의 질(믿음?)에 따라 헌금의 양을 맡기고 있는 듯 합니다(11-15절). 또한, 헌금의 깨끗함을 보증하기 위해서 그리고 헌금을 완성하는 일을 위해서 적합한 위임자들, 곧 디도와 두 형제를 보내고 있습니다(16-24절).
‘낙심하는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와 늘 동행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첫댓글 신뢰를 저버릴 수 있는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복잡한 심경을 바라볼 수 있는 본문이었습니다 (7장). 근심, 후회, 분함, 두려움... 그러나 위로의 하나님께서는 위로, 기쁨, 사모함, 애통함, 열심, 회개함, 깨끗함, 간절함, 안심함, 순종함, 그리고 신뢰함으로 변화시켜 주셨어요. 바울이 깨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양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목자의 마음을 향한 긍휼의 마음 아니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양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곧 예수님의 마음인 듯 합니다. 아멘입니다.
1.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되는 근심’(경건한 근심)
2.예수의 ‘부요함’(천국에서의 그의 위치)과 ‘가난함’(육신을 입이신 것)
아멘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이 오늘 우리의 희생과 섬김의 근거(헌금 및 기타 봉사 등)! 아멘입니다.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죄에서 깨끗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있는 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열린 문으로 가는 길 중간중간, 익숙했던 죄들과 옛 사람의 모습이 여전히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을 보며 발걸음이 느려지기도, 멈춰지기도, 화들짝 놀라 달아나기도 합니다.
구원하고 깨끗케 하시는 일은 온전히 하나님의 영역에 있는 일이지만, 자신을 깨끗케 함으로 우리가 입은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자(7:1)는 바울의 촉구는 이제 화목하게 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일에 성도의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라는 옷을 입었으나 그 옷을 입은 성도가 정말 성도다운지는 그가 선택하고 행하는 모든 행동이 증명할 것입니다.
양심에 거스르는 일을 하지않은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를 바로 회개하는 것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향한 관심과 안타까운 마음을 떠들어대는 입을 다물고 예수님이 그러셨듯 내가 가진 것을 기쁘게 나누는 행동으로, 선한 일을 할때에도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비방받지 않을 신중함으로…내가 가진 성도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7:11, 8:9-11,16-21)
네~ 맞습니다. 아멘입니다. 고린도후서를 통해서 현 시대의 성도에게도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에 늘 깨어서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져 믿음의 성장과 성령의 열매가 있으나 세상의 근심은 아무런 유익이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부활절 되시길 기도합니다.
나도 모르게 자꾸 들어오는 세상의 근심!
말씀과 기도와 감사로 대적하여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원하는 마음이 선하기를 바랍니다
아멘입니다. 자원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기도하는 것 마다 응답 되는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환란과 기근도 넘치는 기쁨을 막을수 없고 주께 향한 마음과 공동체를 돕고자하는 성도의 위로가 헌신을 더할수 있도록 하게 됨을 알게 됩니다. 세상의 근심에 매몰되지 않고 감사와 기쁨으로 모든 일을 감당할수 있기를 원합니다.
변화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 모든 것은 그분께 달렸습니다!